
2013년 9월 5일 구속영장 발부 직후 구치소로 향하면서 결백을 외치는 이석기 통진당 의원. 이 의원은 2014년 8월 11일 항소심에서 내란선동이 인정돼 징역 9년,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았다.
2013년 11월 정부가 통진당 해산 심판을 청구한 후 18차례 변론이 진행됐다. 법무부와 통진당이 제출한 서면 증거가 각각 2900여 건, 900여 건에 달한다. 그중 법무부가 제출해 헌재가 증거로 채택한 일심회·왕재산 사건 관련 문서가 북한과의 연계성과 관련한 핵심 증거다. 수사기록의 증거 채택을 놓고 법무부와 통진당 간 공방이 거칠었다.
헌재는 왕재산 사건 대북 보고서와 북한 노동당 지령문 등을 증거로 채택했다. 통진당 측은 최후변론에서 “왕재산이나 일심회 등 사건은 극히 일부 당원의 행위”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수사기록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신동아’가 입수한 수사기록과 대북 보고서, 지령문 등에 따르면 북한은 통진당(민노당)을 장악하려고 다양한 시도를 했다. 통진당을 통해 ‘김정일의 영도를 실현’하려 한 것이다. 노동당의 지령과 똑같은 내용으로 통진당 당직 인선이 이뤄진 적도 있으며 강령을 바꾸려는 시도도 했다.
“우리 당의 요구에 부합하도록”
북한 노동당은 일심회를 통해 중앙당 및 서울시당 장악에 집중했다. 일심회는 미국 시민권자 마이클 장 씨가 주사파 운동권을 포섭해 결성한 지하조직. 장씨는 1994년 노동당 대외연락부(현 225국) 지령을 받고 1994년 밀입북해 노동당에 입당한 후 ‘모란봉’이라는 대호명(對號名·보안을 위해 이름 대신 사용하는 명칭)을 받았다. 유기순 당시 북한 대외연락부 부부장은 “통일사업을 위해 남한 내 지하조직을 꾸리라”고 지시했다.
장씨는 1997년 말 연세대 출신 손○○ 씨를 포섭해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삼은 일심회를 결성했다. 일심회는 ‘장군님의 유일적 영도를 실현하려 한마음으로 뭉쳐 투쟁한다’는 뜻이다. 장씨는 고려대 애국학생회 부부장 출신 이○◇(2000년 말 포섭) 씨, 고려대 삼민투 위원장 출신 이○○(2001년 6월 포섭) 씨, 전대협 사무국장 출신 최기영(2005년 2월 포섭) 씨로 지도부를 구성했다.
장씨는 중국 등에서 대외연락부 인사와 접촉해 김정일 영도체계를 구축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한국 내 정세, 민노당 내부 동향 등을 노동당에 보고했다. 손씨 등도 베이징 대외연락부 안가(安家)를 방문해 △민노당 지도방향을 학습하고 △충성결의 편지를 작성 및 제출했으며 △민노당 주요 인물에 대한 평가 사업 임무를 부여받았다. 일심회는 ‘장군님의 영도를 실현하라’는 지령에 따라 민노당 중앙당과 서울시당을 장악하는 데 주력했다. 최씨는 통진당의 2012년 집권전략위원회에 핵심 간부로 들어가 영향력을 행사했다.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최종 변론이 2014년 11월 25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렸다.
지령문에 따르면 북한 노동당은 “△민노당 정책 방향을 우리 당의 요구에 부합하도록 할 것 △중앙당 간부대오를 친북 NL 계열로 영입·강화할 것 △민노당이 통일전선적 정당이 되도록 대외사업을 영도할 것” 등을 지시했다.
일심회는 최씨에게 “중앙당의 기획 실무 부문에 대한 김정일의 영도를 구현해 민노당이 우리 당(북한 노동당)의 요구에 맞게 반미 민족 공조의 합법적 단위로 역할을 다하도록 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또한 “NL계가 조직한 통일산악회를 파악해 이를 지도할 방법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최씨는 통일산악회의 규모와 관련해 경기동부 200여 명, 울산연합 1000여 명, 인천연합 2000여 명이라고 보고했다.
2005년 12월 6일 북한 노동당은 민노당 당직 선거를 앞두고 약정된 e메일을 통해 일심회에 “당직 선거를 계기로 당 정책위원회를 완전 장악하라” “정책위원장으로는 경기동부의 이○△을 내세우고, 그 아래에 우리의 영향하에 있는 사람들을 넣어라” “당직·공직 겸직 금지가 없어지는 경우 ○○○만한 인물이 없으므로 그를 당대표로 선출하라” “당직·공직 겸직 금지 조항이 폐지되지 않으면 현 비대위 집행위원장을 당대표로 밀고 나가라”고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