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분들, 정말 많이 오셨네요. 제가 대법관 됐을 때보다 더 카메라가 많은 것 같아요. 작은 회의실에서 편안하게 하려고 했는데 분위기가 그렇게 안 돼서 죄송합니다.”
김 전 위원장은 국회에서 법이 통과된 바로 다음 날 개인 일정 때문에 해외로 떠났다. 그 주 토요일, 예정보다 앞당겨 귀국한 그는 주말 내내 법안 내용을 면밀히 검토했다. 그사이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이 헤아릴 수 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일일이 답변할 수도, 특정 언론사와만 인터뷰할 수도 없어 결국 기자회견을 준비했다”는 게 김 전 위원장의 설명이다.
기자회견에 앞서 그는 자신의 의견을 정리한 A4용지 8장 분량의 문서를 배포하고,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비판의 수위는 강했다. 법안 하나하나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리고 ‘반쪽 법안’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면서도 국회 법 통과 직후부터 제기된 개정 및 수정 논란과 관련해서는 “시행도 하기 전에 법 개정이나 수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성급하다”면서 “이 상태라도 제대로 출발하는 게 중요하다”고 법 시행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논란의 빌미 된 ‘여론조사’
김 전 위원장이 법안을 고민하고 만들 때부터 이날 기자회견문을 발표하기까지, 그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은 남편 강지원 변호사다. 김 전 위원장이 ‘김영란법’을 입법 예고하고 정부 각 부처와 조율 중이던 2012년 11월 권익위원장에서 물러난 것은 강 변호사의 대선 출마 때문이었다. 그러니 누구보다 김 전 위원장과 김영란법을 둘러싼 걱정과 고민을 같이할 수밖에 없었을 법하다.
기자회견 이틀 후, 서울시내 한 카페에서 강 변호사를 만났다. ‘반쪽 법안’을 접한 김 전 위원장의 반응과 그간의 사정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였다. 마침 김 전 위원장의 기자회견 내용 중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이 법 적용 대상에 포함된 것이 위헌이 아니라고 밝힌 것과 관련해 논란이 일던 터였다. 문제의 기자회견 내용 중 일부다.
“우리 국민 69.8%가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인까지 확대된 걸 바람직하다고 평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과잉입법이라든지 비례의 원칙을 위배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이 위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대목에서 논란의 빌미가 된 것은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근거로 여론조사 결과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과학적 근거가 미흡한 여론조사를 근거로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게 과연 대법관까지 지낸 법률전문가로서 적절하냐는 비판이다. 강 변호사는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이 같은 논란 자체에 대해 강한 불만을 쏟아냈다.
“나의 답변은 이겁니다. ‘참 무식한 이야기다.’ 우리가 위헌성을 판단할 때 비례의 법칙이라는 것을 고려해요.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정성’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 이 네 가지를 따져서 비례의 원칙에 적합하면 합헌이고 위반하면 위헌이라고 판단하는 것이거든요. 예를 들어 사형제도가 합헌이냐 위헌이냐, 또 간통죄가 합헌이냐 위헌이냐, 이건 정답이 없어요. 간통죄만 하더라도 네 번씩이나 합헌이라고 했다가 마지막에 와서 위헌이라고 했잖아요. 이렇게 바뀔 수 있는 거예요. 결국 법은 누가 만드느냐? 국민이 만드는 겁니다.
이번에 법 적용 대상에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이 포함된 것에 대해 국민의 69.8%가 지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어요. 그것은 결국 규제의 목적이 정당하다, 방법이 적절하다, 이 정도의 피해는 최소의 것이다, 그리고 언론의 자유라든지 표현의 자유와 같은 법익과의 관계에서도 균형성이 있다고 국민이 판단한 거예요.
시간이 없어서 이 네 가지를 다 설명하지 못하고 여론조사 결과만 이야기하니까 이게 어떻게 법률적인 이야기냐고 비판하는데, 법률 공부를 조금이라도 한 사람이라면 금방 이해할 수 있는 겁니다. 물론 여론조사 결과를 가지고 법을 제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론조사 결과가) 중요한 참고자료가 된다는 의미에서 인용한 것인데, 그걸 비판하는 걸 보면서 참 안타까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