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하순 오후 남녘의 바닷가는 뜻밖에도 따뜻했다. 지레 겁먹고 두툼한 겨울 점퍼를 입은 취재팀이 무안할 정도로.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은 부드럽다. 부두에 갇힌 바다는 고요하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 진해군항. 벚꽃의 도시 진해는 일제강점기 일본 해군의 요충지였다. 이곳에서 2월 2일 한국 해군 잠수함사령부 창설식이 열렸다.
잠수함 강국 북한
잠수함은 전략무기다. 전술무기가 개별 전투에서 사용되는 것이라면 전략무기는 적의 군사기지나 산업시설, 주요 무기체계를 파괴해 전쟁수행능력을 현저히 떨어뜨리거나 전쟁을 종결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핵무기, 대륙간탄도미사일, 전략폭격기, 항공모함, 잠수함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처럼 전략무기는 보유 사실 자체만으로 적에게 큰 위협이 된다.
그중에서도 잠수함은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내는 효율 만점의 비대칭전력으로 꼽힌다. 특히 전략핵잠수함에서 발사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SLBM)은 오늘날 가장 위협적인 무기로 꼽힌다.
비대칭전력은 핵무기,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포함해 특수부대, 잠수함 등 게릴라전이나 기습전에 유용한 전력을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었던 배경에 연합군 수상함과 상선을 무차별 격침한 잠수함 유보트의 활약이 있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태평양전쟁에서 진주만 기습으로 주도권을 잡은 일본 해군이 끝내 미국 해군에 참패한 이유 중 하나도 잠수함 운용전략의 실패였다.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벌인 포클랜드 전쟁의 승패도 잠수함 전력에서 판가름 났다.
한국 해군의 잠수함사령부 출범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간 남북한 전투력 비교에서 한국 해군은 비록 전투함 수에서 북한에 뒤지지만 종합적인 전력 면에서 우세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첨단무기와 자동화 시스템 등 질적인 면에서 앞서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수상함끼리의 전력 비교였다. 우세하다고 자부하면서도 한편으로 찜찜했던 건 북한의 잠수함 전력 때문이었다.
일찍이 잠수함의 중요성에 눈을 뜬 북한은 1963년 구(舊)소련에서 잠수함 2대를 도입한 이후 지속적으로 늘려 현재 70여 척을 보유하고 있다. 수량만으로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잠수함 강국이다. 이에 비해 1992년 독일에서 잠수함을 도입한 한국 해군은 현재 13척을 운용한다.
2010년 3월 26일 해군 장병 46명의 목숨을 앗아간 천안함 사건은 우리 국민에게 잠수함 공포증을 안겼다. 침몰 원인을 조사한 민군합동조사단은 북한 잠수함(연어급)에서 발사한 어뢰가 천안함을 폭침했다고 결론지었다. 해상경계선을 넘어와 우리 함정 가까이에서 어뢰를 쏘고 사라지다니.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충격적인 공격이었다. 아무리 첨단 수상함을 갖고 있어도 바다 밑이 뚫리면 속수무책이라는 점에 우리 군과 국민은 아연실색했다.
잠수함사령부 창설은 이처럼 다급한 안보 현실을 감안한 것이기도 하다. 이를 계기로 우리 해군의 잠수함 전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수량도 늘지만 무엇보다도 질적인 면에서 북한을 압도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2020년부터는 더 강력한 화력으로 무장한 3000t급 대형 잠수함을 도입한다. 이대로라면 한국 해군의 숙원인 원자력추진잠수함(핵잠수함)을 보유할 날도 머지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해군은 세계에서 6번째로 잠수함사령부를 갖췄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사령부가 생겼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 이전까지 해군 전투부대에는 1·2·3함대사령부, 작전사령부 등이 있었다. 소장이 지휘관인 사령부는 일선 최상급 부대로 독립적이고도 종합적인 지휘권을 행사한다.
‘물속의 닌자(忍者)’
그런데 그간 잠수함 부대는 사령부 한 단계 아래인 전단 체제였다. 그에 따라 작전, 수리, 교육훈련 기능이 분산돼 여러 사령부의 개별 지휘를 받아야 했다. 교육훈련만 잠수함전단이 맡고, 작전은 작전사령부, 정비는 군수사령부 지휘를 받아야 했다. 이제 사령부 창설로, 분산됐던 기능이 한 군데로 모이게 된 것이다. 잠수함사령부는 잠수함전대, 교육훈련전대, 기지대대, 수리창으로 구성됐다.
잠수함사령부는 진해만 안쪽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았다. 진입로 입간판에 ‘ONE SHOT, ONE HIT, ONE SINK’라는 부대 구호가 적혀 있다. 말 그대로 ‘한 방에 쏴서 맞히고 가라앉힌다’는 뜻이다. ‘물속의 닌자(忍者)’라는 별명을 가진 잠수함은 공격에 능한 반면 방어에 취약하다. 빨리 쏘고 빨리 달아나는 게 관건이다. 한 방에 제압하지 못하면 위치가 발각돼 역공당한다. 공격당해도 버틸 여지가 있는 수상함과 달리 잠수함은 한 방에 격침되고 승조원 전원이 몰사할 수 있다.
취재팀은 부대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곧바로 현장취재에 나섰다. 맨 먼저 한국 잠수함 발달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관을 둘러봤다. 제909잠수함교육훈련전대장 이성환 대령의 안내를 받았다. 역사관에는 사진과 문서를 비롯해 어뢰, 기뢰, 미사일 등 각종 무기, 음탐장비, 추진체계 모형 등을 전시해 놓았다.

기지로 입항하는 잠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