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사회가 신뢰의 위기 속에서 허우적대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모범을 보여야 할 이른바 ‘사회지도층’, 그중에서도 특히 정치인들이 이해관계의 유불리에 따라 말을 손바닥 뒤집듯 해왔기 때문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대의기구에서 국민 누구나 준수해야 할 법을 만드는 위정자들부터 약속을 지키지 않는 행태가 되풀이되면서 국민 사이에 ‘자기들이 만든 법도 안 지키면서 왜 우리에게 법을 지키라는 것이냐’는 반발이 커졌다.
그런 점에서 2015년 새해 예산안을 12년 만에 법정시한 내에 처리한 것은 국회가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모처럼 의미 있는 한 걸음을 내디딘 것으로 그 무게감이 크다. 국회가 이렇듯 정상적인 입법기관이자 준법기관으로 거듭난 데에는 정의화 국회의장의 공이 컸다. ‘신동아’는 신년호를 여는 첫 인터뷰 자리에 정 의장을 초대했다. 12월 5일 국회의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법치 바로 세우기의 시작”
▼ 새해 예산안이 오랜만에 법정시한을 넘기지 않고 통과됐습니다.
“의장 취임 첫해에 어떤 일이 있어도 법정시한 내 새해 예산안을 통과시키겠다고 다짐했는데, 약속을 지키게 돼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대한민국의 법치를 바로 세우는 것은 입법부인 국회가 헌법을 준수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헌법에 명시된 예산안 통과시한을 그간 국회가 지키지 않았다는 게 비정상이죠.
의장 취임 첫해에 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다고 봤어요. 이번에 기한 내 통과시켰으니 2015년에도 가능할 것이고, (2016년에) 다른 의장이 의사봉을 잡더라도 법정시한 내 예산안 통과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새해 예산안이 법정처리시한 내에 통과된 과정에는 정 의장의 치밀한 국회 운영 전략이 단단히 한몫했다. 정 의장은 세월호 특별법 협상 난항으로 국회 공전이 장기화하던 2014년 9월, ‘민생법안’을 직권상정해달라는 새누리당의 요구를 거부했다. 9월 26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정 의장은 법안 직권상정 대신 국회 정상화를 호소한 뒤 기습적으로 산회를 선포했다.
이후 여야는 9월 30일 극적으로 국회 정상화에 합의했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11월 말 새해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야당은 ‘논의할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며 연기를 주장했다. 하지만 정 의장은 예산 부수법안을 지정함으로써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의 국회 통과 가능성을 열어뒀다. 결국 여야는 12월 2일 합의를 도출했고, 법정시한 내 새해 예산안 통과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예측 가능한 국회
▼ 앞으로 어디에 중점을 두고 국회를 운영할 계획입니까.
“민생법안을 제때 통과시켜 국회가 국민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국민께 보여드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래서 2015년부터는 예측 가능한 국회가 될 수 있도록 요일별로 상시국회가 열리도록 할 계획이에요.”
정 의장은 국회 운영 계획이 담긴 2015년 일정표를 보여줬다. 언제 어떤 상임위가 열리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의장에 취임한 뒤 국회개혁위원회를 만들어 ‘일하는 국회, 예측 가능한 국회, 상시 국회’를 만들기 위해 10개 정도의 국회법 개정안을 만들어 운영위원회에 올렸어요. 그 법안이 통과되면 과거와 크게 달라진 국회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겁니다.”
▼ 국회가 어떻게 달라질지 기대가 큽니다.
“국회의 제1차 기능은 입법입니다. 비(非)입법 기능 중에는 정부를 견제하는 책무가 중요하고요. 거기에 더해 국가적으로 필요한 어젠다를 개발해 국민 여론을 형성하는 것도 국회가 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어제(12월 4일)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인성교육진흥법이 통과돼 앞으로 일선 학교에서 인성교육이 실시됩니다. 그에 발맞춰 국회 차원에서 우리 사회의 기풍을 바꾸는 사회정신운동, 가칭 ‘샛빛운동’을 펼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