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23일 국방부는 ‘국방백서2008’을 발표했다. 병력 규모는 물론 주요 재래식 무기체계 숫자에서도 북한이 여전히 남한에 비해 우세하다는 게 위협평가의 골자였다. 그러나 곳곳에서 확인되는 미국의 정보판단은 이와 완전히 다르다. 북한군은 이미 “재래식 전쟁을 수행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왜 생겼고, 누가 옳은가.
‘2008 대한민국 해군 국제 관함식’이 열리고 있는 부산 앞바다에서 7일 대한민국 이지스급 세종대왕함(맨 앞) 등이 해상사열을 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한미동맹의 기초는 북한이라는 위협에 대한 공동의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 인식이 다르다면 두 나라 사이 정보의 공조체계에는 균열이 발생하고, 한미관계는 갈등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단순히 미사일 논란만 그런 것이 아니다. 북한의 재래식 군사적 위협에 대해서도 한미 양국이 정반대의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 첫 번째 정황이 국방부가 지난 2월 발간한 2008년판 ‘국방백서’다. 이명박 정부 들어 처음 발간된 이번 백서에서는 북한의 재래식 군사위협, 그중에서도 특히 특수부대의 위협을 2년 전에 비해 대폭 상향 평가했다. 북한의 총 병력이 100만명에서 102만명으로 증가했고, 특수부대는 12만명에서 18만명으로 6만명이나 증가했다는 것이다. 북한군 제2제대에 속해 있던 특수부대가 제1제대로 통합됨으로써 경보병 위주의 특수부대로 재편되었다는 게 그 골자다.
2월23일 국방부가 배포한 ‘국방백서2008’.
한국과 미국의 판단 불일치
그러나 미 정보당국이나 주한미군 관계자 누구에게 물어도 “북한의 재래식 위협은 10년 전과 비교해볼 때 새로운 것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한미연합사가 작성하는 한반도 정보판단서(PIE)에도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에 의한 전면전의 위협은 감소하고 있다”고 명기돼 있다. 이 정보판단서는 한미 공동으로 작전계획을 수립하는 데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3월10일 미 상원 청문회에 출석한 마이클 네이플스 미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DIA) 국장은 “북한이 대규모 병력을 전진배치하고 있지만 장비가 부실하고 훈련이 부족해 남한을 상대로 대규모 군사작전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상태”라고 못 박았다. 더불어 그는 “이러한 한계 때문에 북한은, 주권을 보장받고 기술적 우위에 있는 상대에 대한 억지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핵 능력과 탄도미사일을 강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한반도에서 더는 재래식 전면전쟁이 어렵다”는 것이다. 오직 핵과 미사일을 앞세운 비대칭전쟁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반면 이상희 국방장관은 한국군이 작전적으로 대비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북한의 현존위협은 바로 재래식 지상전력이라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이번 백서에서 부각시킨 북한의 경보병부대가 대표적이다. 나아가 한국군 지상전력이 아직도 북한군에 비해 열세라는 인식아래 국방개혁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신형 전차, 자주포, 장갑차, 다연장로켓을 앞세운 ‘기동군단’ 창설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네이플스 국장의 말은 이러한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나 다름없다.
일각에는 한미 양국의 이러한 인식 차이가 원래 1월로 예정돼 있던 ‘국방백서’의 발간시기를 2월로 늦추게 된 중요한 이유로 작용했다는 주장도 있다. 필자가 접촉한 한 국방부 관계자는 “올해 초를 목표로 진행되던 백서 발간이 늦어진 것은 북한의 위협을 서술하는 부분에서 한미 정보당국 사이에 진통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발간 직전까지 한미 군 당국의 정보 관계자들이 이 부분을 두고 옥신각신했다”고 말한다.
3월11일 키 리졸브 훈련에 참가하는 미 제3함대 소속 항공모함 존 스테니스(John C. Stenniss)호가 부산 해군작전사령부 부두에 입항했다. 존 스테니스호는 선체의 길이가 317m, 활주로 길이는 32m, 높이는 20층 빌딩과 맞먹는 80여m에 축구장 3배 크기의 비행갑판에는 F/A-18E/F 전투기와 조기경보기 E-2C, 전자전기 EA-6B 등 항공기 80여 대를 탑재하고 있다.
북한의 재래식 위협을 높게 평가하려는 한국과 낮게 평가하려는 미국의 갈등은 한미연합사령부를 무대로 수시로 벌어졌다. 특히 월터 샤프 현 연합사령관이 부임하면서 한미의 북한 위협 수준 판단은 확연히 갈라졌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최근까지 연합사령부에서 근무했던 한 예비역 장교의 설명이다.
“북한이 더 이상 재래식 지상전을 감행하지 못한다는 것은 과거 도널드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의 지론이었다. 리언 라포트, 버웰 벨 등 전임 연합사령관들은 이에 저항했다. 여기에는 미 지상군을 감축하려는 럼스펠드 장관과 그에 반감을 가진 미 야전 육군의 이해관계도 작용했다. 이 때문에 펜타곤과 주한미군사령부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긴장이 감돌았다.
그런데 월터 샤프 사령관이 부임하면서 이러한 긴장은 싹 사라졌다. 샤프 사령관이 본국의 판단에 완전히 동조해버린 것이다. 그 결과 주한미군의 전통적 재래식 전면전 교리는 급속도로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주한미군사령부는 전세계 미군 사령부 중 재래식 전면전쟁의 교리를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는 유일한 사령부다. 현재 한미 연합으로 실시하는 폴이글, 연합전시증원연습(RSOI), 프리덤 가디언 연습, 키 리졸브 훈련 등은 20세기 재래식 기계화 전쟁의 이미지에 부합되는 군사훈련이다. 전세계를 통틀어 해외에서 미군이 20세기식 전쟁개념을 바탕으로 훈련하는 지역은 한반도밖에 없다.
이 때문에 벨 전 사령관을 비롯한 역대 연합사령관들은 주한미군이 육·해·공군과 해병대를 모두 보유한 완전성을 갖춘 군대로 남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럼스펠드 장관 시절부터 이런 전통적인 교리는 급속도로 무너지지 시작했고, 이윽고 야전 지휘관을 제대로 거치지 못한 정책형 지휘관이라 할 샤프 현 사령관이 부임하면서 주한미군은 지상군이 아닌 정보부대와 해·공군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럼스펠드식 개편’이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한 주한미군 관계자는 필자에게 “월터 샤프는 주한미군 지상군을 설거지하기 위해 부임한 사령관”이라고 비꼬았다.
1월부터 내내 해·공군 역할만을 강조하고 있는 샤프 사령관의 말을 뒤집어보면, 동두천에 주둔한 주한 미 2사단은 ‘노는 군대’, 또는 ‘불필요한 군대’나 다름없다. 여기에다가 최근 주한미군의 아프간 차출설이 속속 흘러나오는 정황까지 고려하면, 최근 한국에서 2사단의 운명이 경각에 달렸다고 주장하는 군사전문가들의 경고도 마냥 무시할 수만 없다.
이러한 정책기조를 놓고 보면 북한의 지상전 위협을 부각하는 일은 미국 정부에‘이적 행위’에 가깝다. 한국에서 지상병력을 감축하고 싶어하는 미국의 속내가 “한반도에서 더 이상 재래식 전면전은 없다”는 북한 위협의 평가절하로 연결되는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추세가 미국만의 것은 아니다. 북한군의 재래식 전쟁수행능력을 의심하는 정서는 한국 내에서도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 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역임한 한 예비역 장성은 필자에게 “북한이 전쟁을 도발하더라도 전쟁을 지속시킬 능력은 없다”고 단언한다. 특히 102만에 달한다는 북한 총 병력 수치는 위협의 실상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는 가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최근 수년간 북한군의 탈영병이 이미 20만명을 넘어섰고 이를 찾아다니는 병력도 20만명에 가깝다. 실제로 전투가 가능한 병력은 많이 잡아봐야 50만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증언도 나온다. 이마저 전투준비 태세는 형편없다. 국군정보사령부에서 근무하다 최근 전역한 한 예비역 장성은 필자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북한에도 저격부대가 있지만 실탄이 모자라 사격훈련을 거의 하지 않는다. 한 인민군 탈북자는 한참 어려웠던 시기에 1인당 사격훈련용으로 지급된 탄약이 1년에 3발뿐이었다고 밝히더라. 그래서 13년 복무기간에 사격훈련은 3년에 한 번 정도 했다고 한다.”
필자가 지난해 만난 인민군 출신 탈북자도 비슷한 사례를 제시했다. 후방 지원부대에 근무한 한 탈북자는 자신이 속한 부대원의 3분의 1이 제대로 먹지 못해 ‘허약중대’로 재분류된 적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들은 전투능력도 없고 노동도 하지 못한다. 전투원들의 지구력이 영양 상태가 좋은 한국군 장병들과 상대조차 되지 않는다.
싸우는 방법이 달라졌지만
전방에 배치된 전차도 이미 1950~60년대 생산된 노후화한 기종이 대부분이다. 연료도 없이 장시간 방치됐기 때문에 시동이 걸릴지도 의문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연료 부족으로 인해 전시 기동능력이 저하되므로 남한 현지에서 연료를 조달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군이 남한에 오면 주유소부터 찾아야 할 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노후 기동장비들은 대부분 야간전투능력이 취약하고 정밀성도 떨어진다. 평양 시내에도 경비용으로 전차가 배치되어 있지만 3년 동안 움직이는 모습은 한 번도 목격되지 않았다는 식이다.
북한군 전투준비 태세의 급격한 약화는 지상군 위협의 총량이 현저하게 줄어들었음을 뜻한다. 이 때문에 북한 군부는 지상군 전력을 경량화하면서 비대칭전력으로 재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시점도 최근이 아니라 꽤 오래전의 일이다. 1991년 걸프전 시기를 변곡점으로 해서 대체로 1990년대 중후반까지 이러한 재편이 이뤄져왔다고 말할 수 있다. 최근 들어 북한군은 그러한 재편마저 정지된, 시간 속에 멈춰버린 군대가 되고 말았다. 이러한 현실을 근거로 미국은 “10년 전에 비해 북한 재래식 위협은 새로운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방백서 2008년판은 왜 오래전에 이뤄진 경보병 중심 재편 사실을 새로 공개했을까. 혹시 1990년대 후반까지 이뤄진 북한군 전력재편에 대해 우리 군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다가 이제 와서야 그 사실을 부각하는 것은 아닐까. 한 예비역 관계자의 말이다.
“5~6년 전부터 여러 야전 지휘관 사이에는 ‘북한군이 싸우는 방법이 달라졌는데 우리 군은 너무 구태의연하지 않느냐’는 여론이 있었다. 북한군은 이미 기계에 의한 대규모 전면전에 대해 자신감을 상실하고 있다. 약화된 재래전력과 특수군을 융합해 새로운 부대로 재편하고, 이를 기반으로 남한에 대한 점령보다는 기습과 게릴라전에 치중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군은 오로지 전 축선을 방어하고 모든 전선에서 압도적 우세를 달성하려는 무모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반성의 목소리가 있는 것이다.
이런 고정관념으로 국방을 하려면 국가예산을 전부 국방비에 쏟아 부어도 안 된다. 우리도 대규모 병력과 장비에 의한 전면전보다는 소수정예 전력으로 신속하게 공간을 커버하는 새로운 전략, 창의적인 접근이 요구된다는 견해가 있다.”
‘특수전 병력 6만 증가’의 진실
여기서 북한이 경보병사단을 증편함으로써 특수군 위협이 증가했다는 ‘국방백서’의 새로운 정보판단을 다시 들여다보자. 문제는 북한의 ‘특수군’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다. 그에 따라 논란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 또 다른 예비역 관계자의 지적이다.
“북한의 경보병부대가 요인암살, 주요시설 기능마비, 테러 등 특수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정예부대인지는 의문이 있다. 그런 특수부대를 양성하는 데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 화력과 통신장비, 보호장구를 갖춰야 하고 정예요원으로 만들기 위한 사격, 레펠 등 각종 훈련도 해야 한다. 지금의 북한군이 과연 그런 능력이 있을까.
오히려 상당수 경보병부대는 전쟁이 발발할 경우 한미연합군과의 대적을 포기하고 6·25전쟁 때처럼 산속에 들어가 게릴라전을 벌이기 위한 전력으로 봐야 옳을 듯하다. 그런데도 특수군이라는 표현만을 보고 우리 군도 비용 때문에 많이 보유하고 있지 못한 707특수임무부대 쯤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오산이다. 북한의 특수전 위협이 증가했다면 우리의 작전적 중심을 파괴하기 위한 주공전력이 증가됐다고 판단할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위협이 증가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대다수 전문가는 북한군의 비대칭전력 재편은 재래식 전력의 열세 때문에 생겨난 궁여지책일 것이라고 평가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4년 표방한 ‘미 제국주의와의 판가리 속결전’ 개념에 따른 북한식 ‘신 작전계획’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제적인 전력 운영’은 우리에게 새로운 고민과 대응방안을 요구하는 것이 사실이다. 국방백서에 북한군의 전력재편에 대한 서술이 나오게 된 배경은 지난해 4월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가 이상희 국방장관에게 ‘북한군의 경보병전력으로의 재편’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면서부터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
필자는 이렇듯 근거가 불확실한 위협인식이 미래 한국군이 갖추어야 할 핵심전력을 보유하는 과제를 등한시하고 육군 중심의 재래식 전력에 국방재원을 집중하게 만드는, 다시 말해 예전의 한국군으로 회귀하는 오류를 부른다고 여러 차례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합참 정보본부의 한 관계자는 필자에게 “북한의 경보병전력으로의 재편은 향후 우리 군 구조발전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사안임에 분명하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의 말을 인정한다 해도 북한군 재편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관한 전략적인 고민보다 북한군의 재래전력이 양적으로 앞선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백서의 단순논리는 미래 안보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결여한 소치라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어 보인다. 특히 백서에서 남북한 군사력을 비교하면서 병력, 전차, 전투함정, 전투기 등 핵심무기가 북한에 비해 남한이 열세인 것처럼 표현한 대목은 언론의 호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접근방식에 깔려 있는 철학과 사상은 군이 ‘효과 중심’과 ‘능력 위주’의 군사력 건설 개념을 포기하고 재래식 전력의 수적 우세를 확립하는 낡은 ‘위협 중심’ 개념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낱알 세기’의 한계
한 일간지는 백서의 내용과 관련해, 북한이 남한보다 전차는 1600대(1.7배), 해군 수상전투함은 300척(3.5배), 공군 전투기는 350대(1.7배)가 더 많다며 북한의 압도적인 우세를 주장했으나 전투력이 우수한 신형 장비만을 기준으로 했을 때 남한이 압도적 우세로 바뀐다고 분석했다. 국내 굴지의 방위산업체에 근무하는 한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구(舊)소련의 전차 명칭에 붙는 번호는 생산연도다. 예컨대 T-54전차는 1954년에 생산이 개시된 모델이다. 북한은 아직도 T-54를 갖고 있다. 반세기가 넘은 전차인 것이다. 그런데 군은 전력비교를 할 때면 한국군의 1990년대식 K-1전차와 T-54의 전력지수 비율을 1대0.9로 입력했더라. 이렇게 비교하니 남측의 열세가 심각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북한의 전차는 PT-76(1964년 도입) 519대, T-34(1944년 도입) 62대, T-55/54(1964년 도입) 2767대, T-62(1977년 도입) 310대로 구형 전차가 주종을 이룬다. 이러한 구형 전차는 전체 3900대의 전차 중에 93.8%에 달한다. 반면 한국의 경우 M47(1959년 도입) 400대, M48A5(1977년 도입) 850대로 총 2300대의 전차 중 구형은 54.4%에 불과하다. 최신형인 K1/K1A1은 1200대, T-80U는 80대를 보유하고 있고, 최근에는 최신형 K-2(흑표) 전차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한국형 전차의 우수성은 세계적이다. 그 질적 차이는 북한의 수적 우세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전투임무기도 북한이 840대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지만 6·25전쟁 무렵 도입한 미그15와 1960년대 도입한 미그19/21이 364대나 된다. 나머지도 1980년대 도입한 기종이 대부분이다. 반면 한국은 전투기 490대 중에 1990년대 이후 도입한 최신형 KF-16이 130대, F-15K가 39대로 상당수준 현대화를 달성했다. 이러한 차이를 무시하고 오로지 대수로만 전력을 비교하는 방식을 전문용어로 단순개수비교라고 하는데, 흔히 ‘낱알세기(bean count)’라고 평가절하되는 방식이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은 2004년 8월 남북 군사력 비교에 관한 용역 연구를 수행했다. 미국 랜드(RAND)연구소의 워게임 모델에 남북한의 전력지수를 입력해 시뮬레이션한 이 연구 결과 남한 군사력이 육군은 북한의 80%, 해군은 90%, 공군은 103% 수준이라고 보고한 것이다. 그러나 이 연구 결과가 나오기에 앞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당시 국방연구원장이 국방부와 합참의 반발을 의식해 특히 육군이 대북 열세인 것처럼 숫자를 조작하도록 했다고 판단했다. 당시 국방연구원 연구자들은 줄줄이 민정수석실로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관계자의 말이다.
“정작 이상한 일은 육·해·공군을 각각 북한과 비교하면서도 이를 다 합친 총체적 전력비교 수치는 없었다는 점이다. 각 군이 당연히 합동작전을 벌일 것임을 감안하면 한국군의 합동성 지수라 할 수 있는 총체적 전력비교가 더 필요한 것 아닌가. 그런데도 마치 해·공군은 그만하면 백중세인데 육군은 심하게 열세이므로 육군의 전력강화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폈다. 육군이 열세라고 해도 해·공군의 우세가 이를 상쇄할 가능성은 무시된 것이다.”
“청와대에 엄청 깨졌다”
거꾸로 그나마 단순개수비교 방식을 탈피하려고 노력한 이때의 국방연구원 연구 결과를 두고, 조영길 당시 국방장관이나 김종환 합참의장 등 군 수뇌부는 펄쩍 뛰었다. 노골적으로 “왜 이렇게 쓸데없는 연구를 했느냐”며 황동준 당시 국방연구원장을 질책한 것이다. 육군 출신을 주축으로 했던 당시 수뇌부는 단순개수비교를 탈피한 남북군사력 비교를 ‘불순한 연구’로 몰아붙이며 금기시했다. 우리 국방부와 합참은 낱알세기 방식 이외의 새로운 기법에 의한 남북군사력 비교는 객관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을 아직까지 고수하고 있다. 그 결과가 바로 ‘국방백서2008’이다.
1990년대 초 주한미군사령관을 역임한 게리 럭은 북한군의 재래식 전력우위 상실을 예견하며 ‘기회의 창(window of chance)’이라는 이론을 폈다.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 비교우위는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소진될 수밖에 없으므로, 비교우위가 남은 마지막 시기에 북한 군부가 도발의 유혹을 느낄 것이라는 골자였다. 따라서 1990년대 중반을 전후해 한반도 안보정세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예견이었다.
그의 말대로 1994년 이른바 ‘불바다 위협’ 발언부터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에 이르기까지 2~3년은 한반도에서 하루도 전쟁 위기가 가실 날이 없던 위기의 시대였다. 그리고 지난 3월10일, 이제는 미국 군 정보당국의 최고위 인사가 자신 있게 “북한이 열세”라며 한국군의 ‘국방백서’ 내용을 뒤집는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기에 이른 것이다.
2월말 국방부는 국방개혁 기본계획안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에 보고했다. 이 보고서에는 북한의 재래식 지상전 위협이 증가했다는 백서 내용과 동일한 전제와 가정을 기초로 우리 군이 갖추어야 할 전력의 우선순위가 정렬돼 있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에 난색을 표하며 재검토를 지시했다. 3월초 필자를 만난 한 합참 관계자는 “엄청 깨졌다”고 말했다. 국방부가 제시한 전력의 우선순위가 당면한 북한의 객관적 위협을 전제로 한 체계적인 접근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이에 관한 필자의 문의에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북한의 핵 위협 대비전력, 전시작전권대비 전력 등이 강조될 것으로 본다”고 답변했다. 이 관계자는 “재래식 지상전 전력소요에서 중복된 낭비요인을 찾아내야 한다는 세부과제가 국방부에 부여됐다”고 설명했다.
미래 전쟁의 네 가지 이미지
우리가 북한의 다양한 위협을 거론하고 미래전쟁의 양상에 대해 많은 논의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유사시 한반도에서 벌어질 미래전쟁의 양상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게 정답이다.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의 김종하 교수는 저서를 통해 최근 거론되는 미래전쟁에 대한 네 가지 시각은 주로 ‘첨단기술전쟁(high-tech war)’‘사이버전쟁(cyber war)’‘평화유지전쟁(peacemaking war)’‘더러운 전쟁(dirty war)’으로 초점이 모아진다고 분석한다. 반면 우리 군은 이와 별개로 ‘재래식-기계화전쟁(conventional mechanical war)’의 이미지에 더 부합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재래전쟁에 대한 뿌리 깊은 고정관념은 재래식 장비의 대북 열세라는 강박증에 군을 가둬놓는 보이지 않는 창살인 셈이다.
이전 정부에서 국방부 산하기관장을 지낸 공군 예비역 장성은 “미래의 안보위협을 고민할 줄 모르는 군인은 군인이 아니”라고 질타한다. 현존 위협 대비에 안주하며 장비 숫자 늘리기에 몰입하는 소아적 태도의 국방부에는 미래 안보를 위한 국가 대전략이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런 국방부에 어떻게 국가의 안전을 맡길지 걱정된다는 논리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전선에서 복무해온 야전군인의 입장을 마냥 무시하기도 어렵다. 북한 전역을 관찰하며 한반도로부터 발을 빼려는 미국의 ‘분석’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오랜 야전 경험을 통해 쌓아 온 우리 야전군 지휘관의 ‘직관’을 믿을 것인가. 혼란의 소용돌이는 블랙홀처럼 우리의 이성을 빨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