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호

클림트를 만나는 특별한 봄날

  • 글· 함정임 소설가, 동아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입력2009-04-07 17: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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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림트를 만나는 특별한 봄날

    ‘아담과 이브’, 1917년, 캔버스에 유화, 173X60cm, 벨베데레 미술관, 빈

    봄날 늦은 아침 서울의 거리를 걷는다. 진눈깨비를 지나고, 꽃샘바람을 지나고, 안개와 황사를 지나, 마침내 4월의 햇빛 속으로 들어간다. 2009년 서울의 봄은 황금빛 황홀경에 빠져 있다. 우리의 수도 서울이 언제 이토록 금빛으로 눈부셨던가. 마치 오스트리아 빈이 통째로 서울로 옮겨온 느낌이다. 빈에서 서울까지, 클림트(G. Klimt·1862∼1918)를 만나러 가는 길은 멀고도 가깝다.

    몇 해 전 여름 오스트리아 빈의 벨베데레 궁 옆 호텔에 일주일 동안 머물렀다. 원래는 빈에서 사흘을 묵기로 예약돼 있었으나, 예정일에 앞당겨 도착했고, 오래 머물렀다. 그때 유럽의 동쪽에는 100년 만에 홍수가, 서쪽에는 혹서가 몰아닥쳤다. 나는 홍수로 갈 길이 막혀버린 채 신기루 속을 헤매 다니듯 8월의 빈을 순례했다. 천재지변은 뜻밖의 선물로 지치고 상심한 여행자를 위로했다. 클림트와의 만남이 그것이었다. 나는 수시로 벨베데레 궁의 오스트리아 미술관에 소장된 클림트의 작품들-특히 ‘유디트’와 ‘키스’-앞에 가 섰다. 1년 전 나는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라는 17세기 서양 최초의 여성화가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을 한국에 번역 소개했고, 시대를 초월해 그녀의 존재를 예술사에 우뚝 세워준 ‘유디트’의 족적을 따라 로마와 피렌체의 현장을 섭렵한 뒤였다.

    클림트를 만나는 특별한 봄날

    ‘마리아 뭉크 초상’, 1912년, 캔버스에 유화, 50X50.5cm, 개인 소장

    ‘유디트’와 마주한다는 것은 ‘유디트라는 하나의 역사’와의 대면을 의미한다. 유디트는 성서에 나오는 여성으로 앗시리아의 왕비다. 적장 홀로페르네스가 남편을 죽이고 자신과 백성을 정복하려 하자 미모로 꾀어서 동침을 가장, 잔혹하게 참수한다는 내용이다. 미켈란젤로를 비롯해 보티첼리, 카라바조, 루벤스 등 당대의 일급 화가들이 화제(畵題)로 다루면서 유디트는 하나의 미술적 화두가 되었다. 이 유디트의 역사에 혁명적인 획을 그은 두 사람이 있는데,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와 클림트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실제 자신이 겪은 강간 사건을 중첩시켜 잔혹한 복수의 현장을 묘사했고, 클림트는 복수의 격정 뒤에 오는 감정 상태를 황금빛 관능으로 승화했다.

    클림트가 서울에 온다는 소식이 풍문으로 전해졌을 때, 나의 관심은 당연히 ‘유디트’의 동행 여부에 쏠렸다. 서울에서 만나는 ‘유디트’는 어떤 느낌일까. 벨베데레 오스트리아 미술관 현장에서 만난 그녀는 알려진 팜 파탈의 파괴적인 이미지보다는 에로스(큐피드)의 화살 앞에 놓인 성녀 테레사의 이미지가 강했다.

    클림트를 만나는 특별한 봄날

    ‘유디트Ⅰ’, 1901년, 캔퍼스에 유화, 84X42cm, 벨베데레 미술관, 빈

    미의 역사에서 볼 때 에로티시즘의 정점인 ‘테레사 성녀의 황홀’(로마, 비토리오 대성당, 베르니니 作)이 클림트의 ‘유디트’에서 언뜻 보이더니, 그의 또 다른 걸작 ‘키스’에서 확연하게 잡혔다. 미술사에는 ‘유디트의 역사’만큼이나 키스의 역사도 풍부한데, 로댕의 ‘키스’, 마르그리트의 ‘키스’, 뭉크의 ‘키스’, 그리고 클림트의 ‘키스’가 있다.



    그런데 클림트의 ‘키스’는 여느 화가의 그것과는 달리 입맞춤이 아니다. 둘이 하나가 되는 첫 순간이 입술과 입술의 키스에서 비롯된다면, 클림트의 ‘키스’는 한 남자가 두 손으로 여인의 얼굴을 움켜쥐고 자신의 입술을 여자의 뺨에 대고 삼킬 듯이 빨아들일 뿐 여자의 입술에 포개지 않는다.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괴력의 보이지 않는 쾌락과 반대로 눈을 살포시 감은 여자의 표정은 그 어떤 외부의 힘(욕망)에도 깨어날 것 같지 않은 죽음과도 같은 고요와 관능의 내적 절정을 보여준다.

    클림트를 만나는 특별한 봄날

    ‘여자 누드’, 1883년경, 캔버스에 유화, 86.5x42.5cm, 개인 소장

    우리가 한 점의 그림 앞에 서기 위해 오랜 시간 기획하고 먼 길을 떠나는 것은 ‘그것이 놓여 있는 자리’까지를 포함해서 하나의 작품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혹시 클림트가 살았던 세기말의 풍광을 고스란히 간직한 빈에서 숨을 쉬는 그의 작품들이 아시아의 첨단을 달리는 서울로 옮겨오면 그의 고유한 황금빛 아우라는 사라지고 마는 것은 아닐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만난 클림트의 걸작들은 아우라의 상실보다는 관람객의 열기에 한층 신비롭게 부활하고 있었다.

    클림트를 만나는 특별한 봄날

    ‘누워 있는 소녀의 얼굴’, 27.3X42.2cm(위).‘누워 있는 남자의 얼굴’, 44.8X31.4cm(아래). 부르크테아터에서 상연한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위한 습작, 1887년경, 종이에 검은색 크레용과 연필, 알베르티나, 빈

    서울에서의 클림트전은 희귀한 기회인만큼 적어도 세 번은 만나야 ‘클림트를 보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빈의 벨베데레 옆 호텔에 일주일간 머물며 내가 실천했던 감상법이기도 하다. 한 번은 ‘유디트’와 그의 ‘빈의 여인들’을 위해, 또 한 번은 ‘베토벤 프리즈’를 위해. 마지막 한 번은 아쉽게도 벨베데레에 두고 온 ‘키스’를 위해, 오스트리아 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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