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격이라는 속담은 대한의사협회의 행태와 딱 맞아떨어진다. 눈먼 돈은 임자 없는 돈, 우연히 생긴 공돈을 가리킨다. 용도가 정해진 돈을 눈먼 돈처럼 쓰는 게 유용이다. 횡령은 공금을 불법으로 차지하는 행위를 말한다.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대한의사협회 사무실.
‘신동아’가 입수한 보건복지가족부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의사협회는 ‘공금’을 ‘쌈짓돈’처럼 썼다. 공적자금을 의사협회의 사적 용도, 집행부의 개인적 목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의료광고사전심의제도는 의료법상 국가의 업무로, 의료광고수수료는 공적자금이다. 또한 의사협회에 꾸려진 의료광고심의위원회의 회계는 의사협회의 예산과 분리해 운영해야 한다.
보건복지가족부는 2007년 4월 의료광고 심의업무를 의사협회에 위탁했다. 2007년 4월~2008년 6월 의사협회는 8000건의 의료광고를 심의하면서 수수료 명목으로 9억원을 받았다. 의료광고수수료는 필요 경비를 충당하는 목적 등으로 사용하게 돼 있다.
Episode1
의사협회는 2007년 11월 그랜드카니발 승합차를 구입했다. 의료광고 심의업무를 맡은 직원의 이동 효율성을 높이고자 이 승합차를 구입했다는 게 의사협회의 설명. 그러나 보건복지부 감사 결과 의료광고 심의업무와 관련해 이 차량을 사용한 적은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2731만6000원짜리 승합차를 의사협회 업무용으로 사용한 것이다. 의료광고심의수수료로 구입한 빔브로젝터 1대, 카메라 2대(구입가격 : 1309만6800원)도 의료광고 심의와 무관하게 의사협회 업무용으로 쓴 것으로 감사 결과 드러났다. 의사협회가 구입한 니콘D3 DSLR 카메라는 전문가급 사양을 갖췄다. 보건복지부는 의사협회가 이 카메라를 심의업무에 쓴 적이 없다고 밝혔다.
Episode2
‘몽블랑’ 만년필은 고가의 사치품이다. 22만5000원은 봉급생활자의 한달 용돈. 의사협회는 전직 의료광고심의위원장에게 “그간 수고했다”며 22만5000원짜리 만년필을 사줬다. 의사협회 예산으로 선물했다면 문제 될 게 없다. 의사협회는 이 만년필을 사면서 의료광고수수료를 썼다.
Episode3
의사협회는 의료광고심의수수료를 택시비로도 사용했다. 의사협회는 한국에서 손꼽히는 압력단체. 회원의 소득 수준이 높아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적다. 이런 의사협회가 택시비에 ‘공금’을 쓴 걸 어떻게 봐야 할까?
Episode4
2007년 9월23일 의사협회 의료광고심의위원장 A씨는 골프장과 식당에서 간담회 명목으로 52만1200원을 사용했다. 간담회를 왜 회의실이 아닌 골프장에서 했을까? 의사협회는 공금을 운동 전 아침밥과 그늘막 음료수 등을 사는 데 썼다. 보건복지가족부는 ‘골프장 간담회’에서 의사협회가 쓴 돈은 직무와 무관하다고 결론 내렸다.
Episode5
의사협회는 2007년 8월~2008년 9월 1400만원을 의료광고 심의업무를 맡은 직원의 복리후생 목적으로 지출했다. 그중 318만650원이 부당하게 집행됐다.
2007년 5월 검찰이 의료계의 정관계 로비를 수사하면서 서울 강서구 가양동 대한한의사협회를 압수수색한 뒤 증거물을 담은 상자를 차량으로 옮기고 있다
작지만 몹쓸 모럴 해저드
의료광고심의수수료를 유용한 곳은 의사협회만이 아니다. 대한치과의사협회(이하 치과의사협회)와 대한한의사협회(이하 한의사협회)도 공금을 전용했다. 치과의사협회는 지난해 추석 때 의료광고심의수수료로 구입한 신세계백화점 상품권(10만원권 49매)을 광고 심의업무와 무관한 치과의사협회 산하의 학회 인사에게 뿌렸다. 또 의료광고 심의업무와 무관한 일로 12회에 걸쳐 술을 마셨다. 한의사협회도 추석 때 갈비로 추정되는 선물을 사면서 549만550원을 썼다. 올해 설에는 곶감 80짝을 증빙자료 없이 구입하면서 400만원을 쓴 것으로 회계처리했다. 의료광고심의위원회에 8차례 참석한 보건복지가족부 직원에게 120만원의 거마비도 지급했다.
치과의사협회는 프린터 토너를 73만원에 구입하면서 세금계산서를 발급받지 않고 간이영수증으로 처리했다. 토너를 싸게 구입하고자 전자상가를 이용했기 때문이란다. 한의사협회는 복사용지, 토너를 사는 데 661만원을 쓰면서 간이영수증으로 처리했다. 수백만원의 경비를 간이영수증으로 회계처리하는 것은 일반 기업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의사협회 치과의사협회 한의사협회는 2007년 4월~2008년 6월 14억여 원을 의료광고심의수수료로 징수했는데, 그중 1억원가량을 부적절하게 집행했다. 보건복지가족부 감사에서 드러난 의사단체의 공금 유용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1951년 의료법이 제정된 뒤 의료광고는 원칙적으로 금지돼왔다. 2005년 10월 헌법재판소가 ‘특정의료기관이나 특정의료인의 기능, 진료방법을 광고하는 것을 금지한 의료법 제46조 3항이 표현의 자유와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의료광고를 옥죄던 족쇄가 풀렸다. 2007년 4월 개정된 의료법에 따르면 보건복지가족부는 의료광고에 대한 사전심의를 해야 한다. 그런데 보건복지가족부는 이 업무를 의사단체에 맡겼다. 전문가들은 “의사협회 치과의사협회 한의사협회가 모럴 해저드를 근절하지 않으면 보건복지가족부가 직접 의료광고를 심의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