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ip 8, 212.5X120cm, 듀랄륨에 우레탄 아크릴 도료, 2009
서울대 미대 조소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1973년 도불, 국립 장식학교를 졸업하고 활동하던 작가는 1987년 올림픽조직위원회의 여직원한테 전화를 받는다. 제주도에 설치되는 88서울올림픽 성화도착 기념 조형물 현상 지명 공모전 권유였다. 지인들의 만류-이미 내정된 작가가 있을 것이다-에도 접수 마감 날 제출한 그의 계획안이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당선됐다. 그만큼 그의 조각은 새로웠다.
이 공모전은 그가 고국으로 돌아오는 계기가 됐다. 그가 젊은 시절을 모두 보낸 도시, 파리와의 사랑은 4년 전 작업실을 정리하는 것으로 아쉽게 마무리를 지었다. 그는 4월19일까지 갤러리 박영에서 열리는 ‘맥-한국현대회화 8인’전에 참여한다. 조각가로 알려진 그가 ‘회화작가’가 된 건 그의 탁월한‘평면 오브제’를 알아본 전시기획자의 권유 때문이다. 부연하자면 그는 1982년 클레르몽페랑 아트 페스티벌에서 조각품 뒤에 설치한 평면 아크릴 오브제로 ‘회화상’을 수상했다.
Diptyque2, 120X100cm, 듀랄륨에 우레탄 아크릴 도료, 2008
“듀랄륨에 자동차 도료를 쓴 평면적이면서도 건축적인 오브제다. 공간의 볼륨을 압축한 것으로 보면 된다. 평면에서 원근감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작품 중 바퀴처럼 생긴 원의 형태, 나선형, 곡선 오브제가 많다. 어떤 의미인가.
거친 것과 매끈한 것, 직선과 곡선, 긴장감 있는 두 개의 볼륨, 인간과 인간 등 대립적인 두 가지 물성이 밀고 끌며 움직이는 공간이 좋다. 한 독일 평론가는 나의 나선형이 이상을 향하려는 욕구라고 풀이해주더라.”
-한국에서 0.7% 건축법(건축비의 0.7%를 공공미술품에 할당)에 의해 공공조각품을 ‘발주’받는 작가들은 따가운 시선을 받곤 한다.
제주도에 설치된 올림픽 성화도착 기념조형, 2000X1800X800cm, 콘크리트와 스틸, 1987-1988
-공공조각물에서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
“대학원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많은 사람이 내 조각이 건축적이라고 한다. 공공조각은 전시대에 돌덩이를 올려놓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난 전시장에 있는 조각을 ‘뻥튀기’해서 거리에 내놓는 것을 혐오한다. 공공미술품은 건물과 길, 사람들을 배려하는 스페이스를 구성하는 것이다.”
-혼자 작업하는 작가들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하겠다.
“한국 상황을 몰라 고생했다. 특히 공무원들이 어이없어하는 행동도 많이 했다. ‘관행’이라는 걸 모조리 거부했으니까. 이 기회에 20년 전 올림픽 기념물을 만들 때 함께 공사장에서 일했던 인부들께 감사드린다. 그땐 젊고 고지식해서 커피 한잔도 그냥 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가진 사진들을 보니 모두 공사 인부들이 찍어주신 거더라.”
-한국에서 공공미술 작가로 활동하면서 후회스러운 점이 많은가.
“아니다. 오히려 후배들에게 진심으로 충고해주고 싶다. 절대로 업자가 되려고 작가이길 포기해선 안 된다고.”
갤러리박영
2008년 11월에 문을 연 갤러리 박영은 도서출판 박영사가 기업의 문화적 기여를 실천하기 위해 파주 출판단지에 설립한 복합문화공간이다. 갤러리와 유망한 작가를 후원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한다. 4월19일까지 한국 회화사에서 독특한 세계를 구축한 작가 8인의 ‘맥-한국현대회화 8인’전이 열려 정보원을 비롯해 하종현, 김구림, 이강소, 곽훈, 서승원, 안정숙, 김태호 등 대가들의 신작을 소개한다.
031-955-4071. www.gallerypakyo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