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노총 초대 사무총장 출신 권영목씨의 ‘양심선언’
- “출간 막으려는 민노총 측의 협박 받아”
- 정파주의로 타락한, 말뿐인 민주노조
뉴라이트전국연합(상임의장 김진홍 목사, 이하 전국연합)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노총)의 어두운 속살을 파헤친 글을 책으로 엮어냈다. 저자는 민노총 초대 사무총장을 지낸 권영목 전 전국연합 상임대표. 권 전 대표는 집필을 마친 직후인 2월13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52세.
권 전 대표는 1987년 현대엔진(현 현대중공업) 초대 노조위원장을 맡은 것을 계기로 노동운동에 투신해 현대그룹 노조협의회 의장, 민노총 초대 사무총장을 지냈다. 현대중공업 총파업 등을 이끌며 3차례 구속됐던 그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노동운동가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1988년에는 제1회 전태일노동상을 수상한 바 있다.
권 전 대표는 1998년 IMF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좌파 노동운동가에서 합리적 노동운동가로 사상을 전향했다. 이후 뉴라이트 계열의 신노동연합을 설립, 대표를 지냈고 전국연합 상임대표로 활동해 왔다.
권 전 대표는 전국연합에서 활동하는 5~6명의 노동운동가와 함께 지난해 말부터 이 책을 준비해 왔다. 준비하는 과정에 민노총 측의 협박, 위협도 많았다고 전국연합 측 관계자들은 전한다. 권 전 대표와 함께 이 책의 출간을 준비해온 임헌조 전국연합 사무처장의 말이다.
“지난해 말 ‘민노총 충격 보고서’가 만들어진다는 소문이 나면서 민노총 관계자들의 협박이 이어졌다. 문자, e메일 등으로 권 전 대표를 괴롭혔다. 그러나 ‘민노총이 해체돼야 노동운동이 산다’는 신념으로 권 전 대표는 책의 출간에 박차를 가했다. 심근경색 등으로 건강이 안 좋은 상태였지만 권 전 대표는 사무실과 PC방을 오가며 이 책을 준비했다. 민감한 내용이 많아 권 전 대표가 별세한 뒤 유족조차 출간 여부를 고민했지만 권 전 대표의 유지를 받든다는 차원에서 출간을 결심했다.”
권 전 대표는 이 책의 출간과 함께 민노총 개혁연대를 띄워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계획이었다고 전국연합 측은 전한다. 전국연합에선 이를 ‘제3노총 설립운동’이라 불러왔다. 사망 당시에도 권 전 대표는 ‘새로운 노동운동(제3노총)’을 준비하는 전국의 활동가들과 강원도 강릉에서 워크숍을 진행하던 중이었다.
“민노총 측의 협박 있었다”
‘민노총 충격보고서’는 총 6개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부패백화점 민노총’ ‘파업공화국 민노총’ ‘회의조차 하지 못하는 말뿐인 민주노조’ 등의 제목이 달린 각 장에서 권 전 대표는 민노총의 문제점과 현실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다음은 각 장의 주요 내용이다.
# 1장 ‘부패 백화점 민노총’
첫 본론에 해당하는 이 장에서 권 전 대표는 1990년대 후반 발생한 이른바 민노총 ‘재정위 사건’ 등 민노총 출범 이후 일어난 각종 부패·비리 사건들을 소개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설립 초기에 돈가뭄에 시달리던 민노총은 부위원장을 책임자로 하는 재정위원회를 출범시켜 조합원들의 지원을 받아 노조물품을 판매해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지도부 일부가 이 사업으로 모인 공금 5억2000여만원을 빼돌려 주식에 투자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민노총은 이들에 대해 직권정지 처분을 내렸다.
권 전 대표는 이 사건에 대해 “회계 능력이 없는 노동자가 노조라는 권력을 통해 큰돈을 만지면 공금 유용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노조에서는 이를 일벌백계하는 대신 정과 의리를 내세워 가볍게 처분하는 등 비도덕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비판했다.
“(공금 횡령에 가담했던) 김모씨는 민노총을 탈퇴해 민주당 국회의원까지 지냈으며 민모씨는 민주노동당 지역구 위원장을 역임했다. 주식투자에 앞장섰던 최모씨는 사건 후에도 버젓이 민노총 사무노련 위원장에 당선되는 등 공금을 유용한 장본인들이, 더군다나 민주를 외치는 민노총에서 별다른 제재 없이 활약하고 있다.”(18쪽)
‘민노총 충격보고서’ 저자 권영목씨는 민노총 초대 사무총장을 지냈다.
“썩어도 너무 썩었다. 민노총 출범 초기에 벌어진 비리가 문어발처럼 뻗어나와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온통 시커멓게 썩었다. 권력이 집중되는 곳에 부패가 만연한다고 했던가. 이들은 허술한 감사제도와 투쟁이라는 무기를 내세워 힘을 얻고, 그렇게 얻어진 권력을 내세워 거리낌 없이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 비리가 너무 심해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만연되어 있다.”
# 2장 ‘파업공화국 민노총’
“민노총 설립 10년은 파업으로 해가 뜨고 파업으로 해가 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하는 국민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해마다 민노총의 총파업 뉴스가 세계 곳곳으로 배달되어 다른 나라 신문에 오르내릴 정도다.”
권 전 대표는 ‘깡패조직보다 무서운 노조의 투쟁방식’의 대표적인 예로 2005년 5월에 벌어진 울산 플랜트노조 파업을 들었다. 당시 배관공, 용접공 등 일용직 근로자들로 구성된 플랜트노조는 근로조건 개선, 근로기준법 준수 등을 위한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원청업체인 대기업과 이들을 직접 고용하는 전문건설업체들은 플랜트 노조원들과의 고용관계가 모호하다는 이유를 들어 단체교섭을 거부했고, 이에 노동자들이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다. 협상이 결렬되자 노조원들은 울산공장 내 70여m 높이의 정유탑을 점거하고 고공농성을 벌였으며 경찰은 경찰특공대를 전격 투입해 상공에서 물대포를 쏘는 방법으로 진압했다.
권 전 대표는 “(18일간의) 울산플랜트노조 파업에 동원된 경찰력은 9개 중대 1000여 명에 달했다. 과격시위로 국가의 공권력이 낭비된 것이다. 경찰이 노조의 천막 안에서 압수한 물품을 보면 우리의 노동운동이 얼마나 과격한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고 밝혔다.
당시 파업현장에서는 화염병 8개, 쇠파이프 497개, 쇠갈고리 16개, 새총 11개, 볼트와 너트 등 새총알 500개, 4리터짜리 시너통 4개 등 모두 1134점의 시위용품이 발견됐다.
저자는 파업으로 인한 경제손실을 지적하며 2005년 2월 강성 노조의 극한투쟁으로 폐업한 중소기업 대덕사의 사례, 노조의 극렬투쟁을 견디다 못해 파산기업인 금강화섬을 인수한 경한인더스트리가 낙찰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벌인 사례 등도 자세히 소개했다.
이 외에도 권 전 대표는 2004년 보건의료노조 파업과 GS 칼텍스 파업의 경우 “협상이 원만하게 진행되는 중에 벌인 파업으로 노조의 일방성에 의해 벌어진 일”로, 2005년 벌어진 항공사 조종사 노조 파업의 경우 ‘그들만의 배부른 투쟁’으로 평가했다.
# 3장 ‘회의조차 하지 못하는 말뿐인 민주노조’
이 장에서 권 전 대표가 하고 싶었던 말은 한마디로 정리된다.
“자기 생각이 옳더라도 상대방을 설득하지 못한다 하여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민주가 아니다. 더구나 남의 강제에 의한 것도 아닌, 단결을 생명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이 회의조차 진행 못하고 폭력과 욕설에 의존하면서 국민의 지지를 받고자 하는 것은 참으로 염치없는 일이다.”(83~94쪽)
화염병, 쇠파이프…깡패보다 무서운 노조
권 전 대표가 민노총의 비민주성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꼽은 사건은 2005년 3월에 열린 민노총 임시대의원회의다. 권 전 대표는 당시에 대해 “회의장은 강경파와 반대파 간의 몸싸움으로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고 적었다. 그는 또 “실제로 파업을 주도하는 강경파는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들만의 총파업을 위해 나머지 조합원들을 희생시키는 비민주적인 조직”이라고 민노총을 꼬집었다.
권 전 대표는 국민파, 중앙파, 현장파 등으로 불리는 민노총 내부의 정파 간 갈등이 민노총의 비민주성을 심화하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민노총 조합원 중 20~30%(전체 근로자의 2% 미만)에 불과한 현장파와 중앙파가 파업에너지를 분출한다는 게 권 전 대표의 생각이다.
# 4장 ‘일 안 하고 노는 노조 전임자, 그들만의 현장 권력’
권 전 대표는 이 장에서 “노조 지도부가 지나친 특혜를 누리면서 권력화됐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주요 내용.
“정부의 국고 보조금(2005년 기준 10억원)을 받아 쓰면서 민노총은 걸핏하면 정권퇴진운동으로 정부를 협박하고, 총파업으로 엄청난 사회비용을 낭비시키고 있다. 파업을 주도하는 노조 전임자도 회사에서 임금을 지급받는다. 매년 민노총의 총파업을 주도하는 현대자동차의 경우 노조활동만 하는 노조전임자가 734명에 달하며, 이들은 연간 450여억원의 임금을 지급받는다. 이 외에도 노동조합은 회사로부터 차량이나 유류비 등 각종 지원을 받고 있다. 여타의 다른 중소기업 노동조합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특혜적 지원이라고 볼 수 있다.”(94~95쪽)
“현대차 노무 관리비 또한 연간 100억원에 달한다. 한마디로 노조에 갖다주는 뒷돈이라고 보아야 한다. 놀면서 직장 다닐 수 있고 심심치 않게 돈이 생기니 노동조합 대의원 자리는 결코 버릴 수 없는 완장이다.…이렇게 해서 7~8년간 대의원 자리를 유지한다.”(95~96쪽)
# 5장 ‘비정규직 문제에 립서비스 하는 민노총’
이 장에서 권 전 대표는 “민노총이 비정규직 문제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갈등에 눈감고 있다”고 주장했다.
권 전 대표는 “2008년 현대차 노조는 비정규직을 노조에 가입시키는 문제로 찬반투표를 벌였으나 결국 부결돼 비정규직을 노조에 받지 않기로 했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면 자신들이 정리해고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걱정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600명의 신입사원을 뽑는 일로 1년 넘게 노조에 끌려 다닌 현대차 전주공장 사태에 대해서는 “개인의 기득권이 회사의 성장과 일자리 창출보다 중요했던 노조원들의 이기심과 이를 부추긴 활동가들이 만들어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비정규직은 반찬, 휴게실도 다르다
권 전 대표는 나아가 민노총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주요 대기업 노동현장에서 벌어지는 비정규직들에 대한 차별과 무시 행태는 이미 국민적 공분을 일으킬 정도라고 비판했다. 권 전 대표는 그 사례도 공개했는데, 예를 들어 구내식당 반찬도 다르고 휴게실도 다르고 심지어 식권에 그려진 그림도 다르다고 지적했다. 권 전 대표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정규직 노조가 결심만 하면 얼마든지 즉각 시정할 수 있는 일인데 왜 온갖 차별을 묵인하는가”라고 반문했다.
# 6장 ‘민노총의 이념과 정체성’
권 전 대표는 마지막 장에서 그동안 운동계 내부에서조차 언급이 금기시되어온 정파 문제를 본격적으로 꺼냈다. 민노총 내부의 국민파, 현장파 등 여러 정파를 도표등을 이용해 비교 분석한 결과도 내놨다. 각 정파를 대표하는 그룹과 그룹을 사실상 지도하는 노동운동가들의 실명과 현직을 공개해 관심을 끈다. 이와 관련 권 전 대표는 “이들 정파들이 현장노동자들을 정치 문제의 동원대상으로 전락시켰다”고 주장했다.
권 전 대표는 또 학생운동가들이 노동계에 유입된 과정, 규모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민노총 내의 고질적인 정파투쟁의 모태가 이미 1980년대 노동운동의 현장과 지역에서 싹트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다음은 이 장의 주요 내용.
“민노총의 대립구조는 대의원대회가 계파별 세력다툼의 장으로 변질되면서, 현장 조합원의 요구나 의견을 대변해야 할 대의원들이 오직 정파의 거수기 신세가 되어 있는 실정이다.”(125쪽)
“이미 지구상에 별로 남아 있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의 지배체제까지 거론하며 진짜 사회주의 세계혁명을 꿈꾸고 있는 조직들이 민노총을 정파라는 이름으로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노사 간 상생을 위한 참여와 협력을 민노총에 기대한다는 것은 헛된 일이다.”(128~129 쪽)
“국민파를 대표하는 전국회의의 정치적 입장은 남한 내의 독자적인 노동자 정당이나 사회주의 건설 대신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정부를 세워 북한과의 민족통일을 이루는 것을 과제로 노동자들을 의식화시키고 있다.”(1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