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호

‘월가 신자유주의’ 첨병 美언론, 세계경제위기 사과해야

  • 김동률│KDI 연구위원·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박사(매체경영학) yule21@kdi.re.kr│

    입력2009-04-08 18: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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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가 신자유주의’ 첨병 美언론,  세계경제위기 사과해야
    1983년 8월31일 밤 대한항공 007여객기가 소련 전투기의 공격을 받고 사할린 인근 얼음바다에 떨어졌다. 탑승객, 승무원 269명 모두 북극해 밑으로 사라졌다. 한국인은 물론 미국인 절대 다수는 이 사건을 ‘소련의 만행’으로 규정했다. 두 나라 언론이 그렇게 보도했기 때문이다. 얼마 뒤 이란 민간 항공기가 기장 실수로 미국 영공을 침범, 미 공군에 의해 격추됐다. 그런데 많은 미국인은 항공기 기장에게 책임이 있다고 봤다. 왜냐하면 미국 언론이 그렇게 보도했기 때문이다.

    언론이 어떻게 전하느냐에 따라 대중의 인식은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엔트만(Entman, 1991)은 미국 언론이 소련 전투기의 행위는 ‘도덕적 폭거(moral outrage)’로, 미 전투기의 행위는 ‘기술적인 문제(technical problems)’로 틀 지움으로써 대중의 현실 인식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이것이 유명한 이론인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 우리말로 ‘틀 짓기 효과’다. 언론은 어떤 사안에 대해 미리 틀을 지어버리는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속에 깊숙이 박히는 큐피드의 화살처럼 말이다.

    경제 뉴스의 ‘정치성’

    지난해 말부터 언론은 신자유주의 (neo-liberalism) 담론을 비판하고 있다. 불과 10여 년 전 아시아 외환위기 때 언론은 신자유주의 모델을 만병통치약(panacea)쯤으로 인정했더랬다. 그런데 불과 10년 만에 태도를 바꾼 것이다.

    국익에 봉사하려는 언론의 정치성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등 언론 선진국에서도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물론 전쟁 등 국가적 위기상황에선 언론에 엄격한 중립성이나 객관성을 요구하기 힘들다. 이는 많은 학자에 의해 연구된 바 있다. 이른바 권위지, 또는 세계의 신문으로 불리는 미국의 ‘뉴욕타임스’나 ‘월스트리트저널’도 베트남전쟁, 걸프전쟁 등 전시 상황에선 궁극적으로 미국의 이익과 처지를 대변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긴장감이 덜한 경제 뉴스에까지 언론은 정치성을 띠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어 비판의 대상이 된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 미국 미디어는 영미식 주주 중심 모델(share-holder model),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에 기초한 신자유주의 담론의 우월성을 적극 전파했다. 그러나 현재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적 경제위기로 확산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담론의 지지자였던 미국 언론은 요즘 동시다발적으로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부각시키기에 분주하다. 그래서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해 가을 “미국 언론은 아시아 국가들에 사과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IMF 경제위기 당시 아시아 각국의 정책 입안자들에게 미국식 신자유주의만이 번영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며 따를 것을 강요하다 이제 와서 발뺌한다는 것이 블룸버그의 반성문이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도 “1997년 금융위기 당시 아시아 국가들에 신자유주의를 강제한 미국 언론은 이제라도 과거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엘리트 언론의 자국이익 추구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만 교수는 일찍이 미국 밖 정치 지도자들에게 “미국이 하는 말이 아니라 미국이 하는 행동을 보고 배우라”는 의미심장한 충고를 한 적이 있다. 그가 지적하듯 엘리트 언론도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태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시대와 환경에 따라서 동일한 담론에 대해 엇갈리는 해석을 하고 있다.

    매스컴은 사실의 전달에 그치지 않고 사회 구성원들에게 세상에 대한 그림을 제공하고 학습을 강요하고 구체적인 행동을 이끌어내려 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를 보라. 매스컴은 수많은 시민이 촛불을 들고 서울 광화문으로 뛰쳐나오도록 한다. 매스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현대사회에서 도태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왜곡되고 편향된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제공하는 미디어에 의해 지배받을지도 모른다. 세상을 정확하게 보는 힘은 언론을 정확하게 보는 힘과 일치한다. 매스컴의 이면의 진실을 보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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