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호

‘쇼퍼홀릭’을 위한 영화 및 추천도서 목록

  • 주간동아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9-04-01 15: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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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퍼홀릭’을 위한  영화 및 추천도서 목록

    쇼핑마니아들의 컬트 무비, ‘쇼퍼홀릭’

    “꼭 와서 보셔야 해요. 영화 제목으로 칼럼도 쓰시잖아요.”

    영화 ‘쇼퍼홀릭’을 배급하는 브에나비스타 직원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부담을 주고 전화를 끊었다.

    이 불경기에 나더러 한국 흥행 스코어 책임이라도 지라는 말인가? 고마운 시사 초대에 내 발이 저려 꿈틀했던 건, 독자가 알다시피(대부분은 무심하시겠지만), 영화의 원작이 된 동명의 소설이 출판됐을 때 내가 이 칼럼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소설 ‘쇼퍼홀릭’을 한국에서 출판한 회사의 여직원은 부지런하게도 동명의 내 블로그를 찾아내 안부 글을 남겼고 그것이 계기가 돼 ‘쇼핑중독’을 주제로 책 서문을 쓴 정신과 의사와 만나 왕창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때 난 의사에게 “대량생산, 대량소비시대에 쇼핑 좀 하는 사람들을 우울증 환자로 몰아 향정신성약품을 처방하는 건 제약회사의 음모가 아닌가?”라고 물었던 거 같다.

    소설 ‘쇼퍼홀릭’은 대학 졸업 후 유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4권의 시리즈물을 다 읽은 외국어 원서였고, ‘위대한 개츠비’와 ‘호밀밭의 파수꾼’ 이후 현대 영미문학에 처음 진지한 관심을 갖게 한 소설이었다(유감스럽게도 ‘칙릿(chick lit)’은 ‘할리퀸’ 문고의 변종으로 평가절하돼 있다). 또 쇼핑중독자가 우울증으로 다크 서클이 생긴 음산한 분위기의 아줌마나 욕구불만으로 폭발하기 직전인 노처녀가 아니라 대부분은 지극히 제정신인 인간임을 보여준 소설이 ‘쇼퍼홀릭’이었다. 심지어 쇼퍼홀릭이란, 메마른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갈라진 틈에서 비집고 살아남은 매우 정서적이고 인간적인 부류처럼 묘사돼 있는 것이다.

    소설 ‘쇼퍼홀릭’이 영국에서 처음 출판돼 나온 건 2001년이고, 소설의 배경은 1997년 무렵이다. 서구에선 아시아의 자본을 빨아들여 흥청망청 좋은 시절이었다. 이 책이 한국에 들어왔을 땐 IMF 충격이 급속한 세계화로 이어져 또 눈이 휘둥그레지도록 살 것이 많았다. 청담동 로데오가 르네상스를 맞았고, 매일 새로운 럭셔리 브랜드들이 론칭 파티를 열어 새 모이처럼 작은 저녁 한번 먹이는 데 수억원씩을 쏟아 부었다. 엔화가 800~900원대를 오르내려 청담동보다 도쿄 물가가 더 쌌다. 오모테산토 역에는 한국 여자애들이 바글바글했다.



    불과 2~3년 전 얘기다. 지금 상황은 다들 지긋지긋하게 알고 있는 대로다. 영화 ‘쇼퍼홀릭’은 너무 늦게 온 걸까. ‘허영의 불꽃’을 떠오르게 했다. 시사회가 끝나고 만난 브에나비스타 직원에게 마음이 쓰리다고 말했다. 그녀라고 달랐을까. 2년 전에 개봉했다면 모두들 박수를 치며 내 얘기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 등장한 크리스찬르부탱이며 발렌시아가, 마크제이콥스의 전위예술 같은 디자인들, 샘플 세일에 길게 줄을 서서 ‘스타일’이라는 새로운 신을 영접하는 멋쟁이들, 커다란 얼음덩이 속에 넣어 얼려버린 신용카드를 손을 호호 불며 녹여 다시 꺼내 쇼핑하러 달려가는 레베카(주인공)의 에피소드는 지금 보면 거의 컬트 무비급이다. 믿어지지 않지만 그땐 쇼핑을 많이 한 뒤엔, ‘월급 더 주는 데로 옮겨야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던가.

    ‘쇼퍼홀릭’뿐 아니라 최근 한두 해 사이 개봉한 영화들 중엔 럭셔리한 부티크와 사랑스러운 쇼퍼홀릭이 등장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극장판 ‘섹스 앤 더시티’가 대표적이다. 영국판 보그지 에디터가 등장하는 ‘러브 앤 트러블’, 뉴욕 상류층의 의식주와 아울러 그들만의 교육방식을 보여주는 ‘내니 다이어리’, 슈어홀릭과 퍼스널쇼퍼를 소개한 ‘당신이 그녀라면’, 쇼퍼홀릭들의 우상 힐튼 자매를 비꼰 ‘화이트칙스’ 등 헤아릴 수도 없다. ‘쇼퍼홀릭’과 함께 개봉을 앞둔 영화 ‘뉴욕은 언제나 사랑 중’과 ‘신부들의 전쟁’도 결혼을 위한 쇼핑 이야기가 한몫을 한다. 이런 영화들은 모두 쟁쟁한 패션, 자동차, 샴페인 브랜드로부터 협찬을 받아 마치 패션 잡지 같다.

    좀 다른 미스터리물인 ‘더 클럽’(원제: Deception)은 경제위기가 유령처럼 다가오고 있던 지난해 개봉한 영화로, 아이비리그를 나와 칼만 안 든 강도로 변신해 잘살아가는 ‘뱅커’들의 삶을 보여준다. 럭셔리 산업을 먹여 살리는 우아한 고객들의 뒷면이 얼마나 추악한지도. 그만큼이나 헛헛한 건 영화 속에 나오는 쇼퍼홀릭들이 한순간에 ‘정신적 가치’의 소중함을 깨닫고 무소유주의자로 전향한다는 거다. 닐 부어맨의 유명한 책 ‘난 왜 루이비통을 불태웠는가’만큼이나 공감 안 가는 해피엔딩이다.

    ‘쇼퍼홀릭’ 출판 이후 영화뿐 아니라 쇼핑중독과 럭셔리 쇼핑에 대한 책도 많이 나왔다. 여주인공들이 모조리 쇼핑중독인 일련의 칙릿 소설뿐 아니라 쇼핑을 경제적, 사회적, 심리적으로 다룬 책들이 각광을 받았다.

    마음씨 좋을 것 같은 영문학자가 명품에 사족을 못 쓰는 ‘스탕달 증후군’을 나름 긍정적으로 해석해준 ‘럭셔리 신드롬’, 루이비통과 샤넬, 에르메스의 이미지 전략을 장인 정신이라는 각도에서 본 ‘메이드 인 브랜드’(저자가 일본인), 사치와 과소비를 망조로 경고하며 꾸짖는 책 ‘사치의 나라 럭셔리 코리아’(저자는 한국인) 등을 들 수 있다. 쇼핑의 역사가 흥미롭게 전개되는 ‘쇼핑의 유혹’과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각국 쇼퍼홀릭의 쇼핑을 꼼꼼하게 취재해서 분석한 ‘럭스플로전’은 쇼핑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하는 책이다. 어쨌든 저자들이 쇼핑보다는 도서실에서 연구하는 걸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좋은 시절이었다. 영화 ‘쇼퍼홀릭’엔 2년 전에 내가 갖고 싶었지만 단념할 수밖에 없었던 재킷이 나왔다. 눈을 뗄 수 없었다. 마치 서랍을 뒤지다가 떠나간 애인의 사진을 우연히 본 것 같았다. 영화를 보고 마음이 쓰렸던 건 끝내주는 커팅의 그 흰색 재킷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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