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호

“북한 장마당 최고 히트상품은 오뚜기 사과식초”

[집중분석]장마당의 힘

  • 주성하│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입력2009-11-05 16:5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여학생 최고 인기직종은 장마당 상인
    • ‘시장시스템’ 활성화하는 전화기
    • 국제환율 시세 정확히 반영하는 암시장 환율
    • 북한 양대 통치세력은 노동당과 장마당?
    “북한 장마당  최고 히트상품은  오뚜기 사과식초”
    북한에서 요즘 유행하는 우스갯소리. 북한의 어느 탁아소. 5세반(班)에 한 아이가 전학을 왔다. 아이들이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새로 온 어린이 주변에 우르르 몰려들었다.

    한 아이가 작은 입을 오물오물하며 물었다.

    “너네 엄만 뭐하니?” “공업품.”

    “돈 좀 빠지니?” “그냥 그렇다.”

    ‘공업품’이란 말은 장마당에서 공업품 장사를 한다는 의미다. ‘돈 좀 빠지니’는 ‘돈을 좀 버니’라는 뜻으로 통용된다. 이 우스갯소리는 엄마들이 하루 종일 장사 이야기만 하다보니 아이들이 주워듣는 대화도 장사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풍자하고 있다.



    최근 들어 장마당에 대한 북한 당국의 통제가 날로 강화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하지만 이제 장마당과 북한 주민 사이의 관계는 그 어떤 강제력도 뗄 수 없는 그런 관계가 돼버렸다.

    북한의 장마당 이야기는 남한에도 많이 알려져왔다. 북한에서 장마당은 죽어있는 존재가 아니다. 장마당은 매일 매순간 북한 주민의 희망과 절망, 웃음과 눈물을 먹고살면서 꿈틀거리는 생명체다. 장마당은 지금도 끝없이 진화하고 있다.

    “북한 장마당  최고 히트상품은  오뚜기 사과식초”

    맥주와 음료수 등 외국산도 팔리는 장마당.

    이 글에는 그 꿈틀거림, 변화와 진화를 담으려고 했다. 이미 알려진 북한 장마당에 대한 일반적인 풍속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야기, 변화 움직임을 중심으로 담으려 노력했다. 이 글에는 몇 달에 거쳐 인터뷰한 북한 주민 여러 명의 생생한 목소리가 녹아 있다.

    북한의 고등중학교 졸업연령은 만 16~17세다. 요즘 고등중 여학생은 졸업하면 장마당에서 어떤 일을 하면서 살 것이라는 목표를 미리 다 세우고 있다고 한다. 특히 도시가 그렇다. 졸업 시즌이 다가오면 여학생들이 모여앉아 “나는 중기(가전제품) 장사할 거야” “나는 식료품할거야” “나는 낙지 달리기(오징어 장사)할 거야”하는 식의 대화를 나누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는 것. 이들에게 장마당은 평생직장처럼 인식된다. 이미 그들의 부모는 그렇게 살고 있다. 여학생은 장마당을 제외하고는 꿈을 펼칠 곳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학생은 졸업 후 꿈을 말할 때 일반적으로 권력 지향적이다. 노동당이나 보위부의 간부, 군관 또는 기업 사장이 된다든지 하는 식이다. 북한에선 ‘권력=돈’이기 때문에 이는 권력과 돈을 함께 얻는 방식이기도 하다. 물론 출세에 필수적인 출신성분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에 돈만 벌겠다는 남학생도 적지 않다. 남학생과 비교하면 여학생은 권력에서 소외됐다. 북한에서 여성의 권리가 그만큼 취약하기 때문이다. 결국 여학생에게 남은 선택은 돈이다.

    장마당은 평생직장

    돈을 벌기 위해서는 장마당을 떠날 수 없다. 장마당은 앞으로 취직해야 할 일터며, 장사 품목은 그들의 직종이다. 이는 남한 여학생이 대학에 가서 무엇을 전공 할 것이며 어떤 회사에 취직하겠다는 꿈을 가지는 것과 똑같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남한에서는 시장경제 질서 안에서 경쟁이 이뤄진다면 북한에선 장마당이라는 공간에서 경쟁이 이뤄지는 것이다. 남한에서 전문직 출신여성은 결혼해도 취득한 자격증이 유효하듯이 북한에서 장마당 장사 역시 결혼과 상관없이 유효한 전문직이다.

    북한에서 취직해 생활을 꾸려나가는 시대는 지났다. 현재 제대로 가동되는 공장 기업소를 찾아보기 어렵고, 설사 취직해도 안 하느니보다 훨씬 못하다. 쌀 1~2㎏의 월급에 배급이 아예 없는 직장이 태반이다. 취직하게 되면 조직생활로 갖은 통제를 받는데다 여기저기 노력동원을 다녀야 하며 각종 명목으로 걷어가는 것이 또한 엄청 많아진다. 직장 근로자는 직장에서 받는 월급과 배급보다는 직장에 내는 것이 훨씬 많다. 직장 생활로 흑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적자를 보는 셈이다.

    그렇지만 남자는 어쩔 수 없이 직장에 다녀야 하는 경우가 많다. 남자에 대한 통제는 매우 엄격해 만일 국가가 알선한 직장에 이유 없이 무단결근하게 되면 행정처벌이 따른다. 심한 경우 감옥행이다. 여성도 이런 법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북한에서 여성에 대한 처벌은 남성에 견주어 볼 때 매우 경미하다. 특히 결혼했을 경우에는 처벌 강도가 더욱 낮아진다.

    여성이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자유가 남성에 비해 매우 크다보니 북한 장마당은 여성의 힘으로 운영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마당에선 여성파워가 남성을 압도한다. 과거 여학생도 조국을 위해 군대에 간다거나, 좋은 회사에 취직한다는 꿈을 꾸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군대에 가면 자기만 손해고, 좋은 외화벌이 회사라고 해도 결국은 자기 손으로 돈을 버는 것보다 못하다는 것을 누구나 점차 깨닫고 있다.

    장마당에 대한 동경은 어려서부터 길러진다. 요즘 북한 학교는 온갖 물품을 바치도록 학생들을 끝없이 쥐어짠다. 선생도 학부형에게서 뇌물을 받지 않으면 생계유지가 곤란하다. 그러니 돈이 있고 권세 있는 집 자녀가 선생에게 뇌물을 바치고 학생 간부 자리를 자연스럽게 꿰찬다. 돈이 없으면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내라는 것을 잘 낼 수 없고, 교사와 ‘사업’이 안 되기 때문에 돈 많은 집 자제에게 밀릴 수밖에 없다.

    “북한 장마당  최고 히트상품은  오뚜기 사과식초”

    북한 평양시 락랑구역에 있는 통일거리시장의 내부.

    교과서도 팔리는 장마당

    오랫동안 독재권력하에서 살아온 북한 주민은 권력에 약하다. 그러나 사회주의 평등교육과 반(反)자본주의적 교육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돈이 있다고 허세를 부리는 것을 참기 힘들어하는 경향이 있다. 북한에서 돈이 있는 사람은 권력을 가진 간부나 장마당에서 치부를 한 사람이다. 간부 자식은 신분이 다르니 그렇거니 하지만 어제까지 같은 신분이던 집 자식이 장마당에서 돈 좀 벌어 자기보다 나은 삶을 살면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는 의미다. 만약 그런 현실이 눈앞에 다가오면 “나는 꼭 돈을 많이 벌어 너를 뛰어 넘을 것”이라는 각오가 굳어질 수밖에 없다.

    부가 학생 간부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 쓰는 모든 학용품도 잘사는 집 자식과 못사는 집 자식의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내준다. 과거 북한에 사회주의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갈 때는 학용품, 책가방 등을 똑같은 것으로 골고루 나눠주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이런 공급제도는 완전히 붕괴됐다. 실례로 교복을 들 수 있다. 과거에는 학교에 갈 때 똑같은 교복과 책가방, 심지어 신발까지 같은 것을 신었다. 하지만 지금은 국가 공급이 끊어졌기 때문에 교복도 학생이 스스로 만들어 입는다.

    언뜻 보면 교복이 서로 비슷한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천의 재질이 다 다르다. 잘사는 집 자식은 고급천인 ‘사지천’으로 교복을 해 입지만 못사는 집 자식은 남이 입던 옷을 물려받아 누더기 같은 것을 입고 다닌다. 신발도 잘사는 집 아이는 수만원씩 하는 외국산 신발을 신지만 못사는 집 아이는 천 신발도 없어서 못 신는다. 외양부터 빈부 격차가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에 아이들은 학생 때부터 빈부격차를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다. 요즘엔 교과서도 학교에서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장마당에서 사야 한다. 부잣집 아이는 교과서를 살 수 있지만 가난한 집 자녀는 교과서도 없이 공부한다.

    이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이러니 어려서부터 돈을 벌어야겠다는 결심이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도 마찬가지다. 원래 북한은 가부장적인 유교사상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집안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높았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초반기에도 남자는 돈 한 푼 벌어오지 못해 여성이 장사해서 벌어온 것으로 먹고살면서도 집안에서 큰소리를 치면서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풍속도 점차 바뀌고 있다. 여성이 가정 생계를 도맡으면서 목소리가 점차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장마당에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시집가서도 발언권을 키우는 길이 된 것이다. 풍속 변화는 여성이 선호하는 남편감의 변화에서도 나타난다. 과거에는 제대군인에 당원인 남자를 선호했지만 이제는 돈을 많이 버는지가 더 중요한 관심사가 됐다.

    요즘 북한에선 “염소는 산으로 갔나”, “유모차는 튼튼한가”라는 은어가 퍼지고 있다. 이는 결혼 적령기의 여성이 남자를 고르는 중요한 기준이기도 하다. 여기서 염소는 담배를 피우는 시아버지를 의미한다. 염소가 산으로 갔느냐는 말은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느냐를 묻는 말이다. 시아버지는 대접만 받을 줄 알고 밥만 축내지 생활에 아무 보탬이 되지 않기 때문에 없는 것이 훨씬 낫다는 의미다.

    유모차는 시어머니를 의미한다. ‘튼튼한 유모차’는 앓지도 않고 건강해서 아이도 잘 봐주고, 며느리가 장사를 다니면 집안 살림도 책임져주며, 물건을 함께 들고 장마당에도 같이 나갈 수 있는 시어머니다.

    남자도 당연히 현실적으로 바뀌었다. 여자의 출신성분 같은 것은 따지지 않고 이제는 돈을 많이 버는 여성이 1등 아내감으로 떠올랐다.

    보따리 장사의 종말

    1990년대 북한이 급작스러운 경제난에 처하자 처음 번창한 것이 ‘보따리 장사’ 또는 ‘배낭 장사’라고 불리는 소규모 장사꾼이었다. 이들은 배낭에 식량이나 공업품을 담아 메고 이곳저곳 다니면서 시세 차익을 이용해 돈을 벌었다.

    이 때문에 당시 기차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사람들이 콩나물시루처럼 빽빽이 들어찬 기차 안에 한 사람이 몇 개씩 메고 다니는 배낭까지 실리면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이때 북한에서 몰래 찍혀 외부에 공개된 사진에서도 여성이 산처럼 큰 배낭을 메고 다니는 모습이 많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모습이 거의 없어졌다. 그 이유는 장사의 체계가 잡혀가고 기차도 잘 다니기 때문이다. 이제는 장사꾼이 서로 각 지방의 시세를 교환하면서 장사물품을 수하물로 보낸다. 그러자면 거래 상대방에 대한 신용이 보장돼야 한다. 아직은 미숙하지만 장마당이 점차 자리 잡히면서 이런 신용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또 과거에는 기차로 수하물을 보낸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그 수하물이 제대로 갈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도중에 증발돼도 누가 꿀꺽했는지 알 방법도 없었다. 그 때문에 배낭 몇 개를 나르기 위해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기차에 매달려야 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기차가 잘 다니면서 열차원들도 신용을 지켜 날라주고 일정 금액을 받는 형태가 정착되고 있다. 철도 경비도 심해져서 과거처럼 도둑이 함부로 열차에 침범해 물건을 훔쳐 달아나는 현상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수송망이 안정되고 신용 시스템이 작동하면서 자연히 기차를 이용하는 사람 수가 줄어들고, 기차가 혼잡하지 않으니 질서는 더욱 잘 지켜지고 있다. 장거리 버스나 돈을 받고 사람이나 물건을 날라주는 장거리 ‘서비스 차’가 보편화하면서 철도에 집중되던 화물도 분산되고 있다.

    직접 메고 다니지 않고 수하물을 보내는 방식으로 장사가 이뤄지다보니 자연히 규모도 커지고 있다. 수백, 수천 달러어치의 물품을 거래하는 큰손이 늘고 있다. 과거처럼 배낭 몇 개를 메고 다니는 사람은 경쟁에서 밀리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도시 생활수준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농촌은 예나 지금이나 농사로 먹고살기 때문에 생활수준이 높아질 여지가 크지 않지만 도시는 장사로 먹고살기 때문에 장사가 자리 잡히면서 함께 생활수준도 올라간다.

    1990년대 중반에는 도시민이 배낭을 메고 농촌으로 다니면서 물건과 식량을 바꾸어왔지만 이제는 그런 현상도 많이 줄어들었다. 요즘에는 도시에서 죽 먹는 집이 많지 않다. 강냉이밥에 국수를 먹는 집이 못사는 축에 들 정도다. 오히려 요즘 아사자(餓死者)는 농촌에서 나온다.

    “북한 장마당  최고 히트상품은  오뚜기 사과식초”

    평양 통일거리시장.

    전화기는 장사 필수품

    오랫동안 북한에서는 부의 상징으로 ‘5장6기’라는 말이 통용됐다. 5장은 다섯 가지 가구(옷장, 책장, 신발장, 이불장, 식장)를 의미하고 6기는 여섯 가지 가전제품(TV수상기, 냉동기(냉장고), 세탁기, 녹음기, 재봉기, 선풍기)을 의미했다.

    물론 이것이 다 갖춰져 있으면 지금도 잘사는 집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엔 5장6기를 따지면 촌스럽다는 시선을 받기 십상이다. 5장6기 시절에는 제일 귀중한 것이 TV로 꼽혔지만 이후 전력난으로 정전이 만성화하면서 TV 대신 장사에 필수적인 자전거가 가장 중요한 필수 품목이 됐다. 요즘에는 자전거와 함께 전화기가 새롭게 필수 품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왜냐하면 전화기와 자전거는 장사해서 먹고사는 데 가장 필수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북한에서도 정보 교환의 중요성을 누구나 느끼고 있다. 장사하는 집은 전화로 각 지방의 시세를 얻어듣고 재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전화가 없으면 속도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전화기 설치 바람이 불면서 전화기 설치비용이 점점 싸지고 있다. 초기에는 체신소에서 전화기를 설치하는 집까지 전화선을 끌어가는 비용이 컸기 때문에 1대 설치비용이 500달러에 육박했다. 하지만 이제는 전화기를 놓은 집이 많은 까닭에 새로 설치하려면 이웃집에서 선만 따면 된다.

    전화설치 비용은 이제 200달러 미만이다. 규모의 경제가 작동한 것이다. 북한에선 전화도 장마당에서 거래된다. 전화기와 전화번호가 함께 팔린다. 지난해 12월부터 평양을 중심으로 시작된 휴대전화 가입비도 처음에는 500달러까지 했지만 곧 300달러로 떨어지고 이제는 150달러밖에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전화기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이제는 평양시내에 전화기가 없는 집은 드물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아주 잘사는 집에만 전화기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빠른 변화다.

    전화기의 보급과 함께 생활수준도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전화기가 있는 집은 5장6기 정도는 다 갖추고 있다. 최근 평양시내의 전력 사정이 상당히 좋아졌다. 요즘 평양을 10년 전의 평양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평양에서 집에 전화기를 놓고 컬러TV를 보면서 사는 사람의 비율이 10년 전에는 열 집에 한 집도 안됐다면 이제는 70~80% 선까지 올라갔다.

    은행도 개인이 대신한다

    장사가 활성화되려면 은행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북한 은행은 사실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주민으로부터 신뢰를 완전히 잃었기 때문이다.

    은행이 신뢰를 받던 시절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신뢰마저 깡그리 잃어버린 시기는 1990년대 중반이다. 당시 은행은 주민들이 저금을 찾으러가면 돈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몇 년 동안 지급을 거부했다. 이러는 사이 북한돈 가치가 급속히 하락했다. 분명 저금할 때는 쌀 1㎏에 북한돈 5~6원이었는데 돈을 못 찾고 있던 몇 년 사이 쌀값이 120원 선까지 올라버린 것이다. 애써 저금한 돈은 휴지조각이 됐다.

    그때 잃은 신뢰는 지금도 회복되지 않았다. 북한 당국은 지금도 은행에 돈을 저금하라고 부추기면서 저금한 사람에 한해 ‘인민생활공채’라는 북한판 ‘로또’도 도입했지만 북한 주민은 콧방귀를 뀌고 있다.

    인민반장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강제로 저금을 독촉하면 주민들은 마지못해 잠깐 소액을 저금했다 한 달도 안 돼 다시 찾아온다. 은행에 맡긴 돈은 자기 돈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은행장 좋은 노릇을 할 이유가 있느냐”는 불만도 많다. 요즘에는 대다수 은행장이 자기 은행에 저금시킨 돈을 장사꾼에게 불법적으로 높은 이자율로 빌려주어 회전시킨 뒤 여기서 나오는 이자로 먹고살고 있다.

    은행 기능이 완전히 정지된 것은 아니다. 공장, 기업소의 월급을 지급하고 기업에 대출해주는 기능은 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을 상대로 한 영업은 거의 못하고 있다. 그나마 있어봤자 저금을 받는 것뿐 지역 간 송금 서비스 같은 것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장사를 하려면 송금 서비스가 필수적이다. 은행이 해주지 않는 이 부분을 이제는 개인 스스로 해결하고 있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실례로 평양과 신의주에 각각 A, B라는 장사꾼이 있다. 신의주에 사는 B는 중국에서 건너온 물건들을 평양의 A에게 보낸다. 앞서 말했듯이 요즘에는 운송의 정확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B는 자신이 직접 평양에 가지 않고 열차를 통해 물건들을 수하물로 보낸다. 이것을 북한에선 ‘올리 쏜다’고 표현한다.

    A는 이 물건들을 장마당에 ‘먹인(넘긴)’ 뒤 판매대금을 다시 B에게 보내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돈을 수하물로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돈 전달을 남에게 부탁하기도 쉽지 않다. 자신이 매번 돈을 갖고 신의주로 갈 수도 없는 일이다.

    이래서 등장한 것이 ‘이관집’이다. 이관집은 물건을 전문으로 ‘올리 쏘는 집’이나 ‘내리 쏘는 집’을 말한다.

    A는 평양에서 신의주로 물건을 계속 ‘내리 쏘는’ 집을 찾으면 된다. 이 집은 신의주에서 거래 대금을 받아야 할 집이기도 하다. B가 신의주의 이관집에서 돈을 받는 것만큼 A는 평양에 있는 이 이관집의 대방에게 돈을 넘겨주면 된다. 돈 거래가 정확히 됐는지는 전화로 바로 확인이 된다. 때에 따라서는 A가 직접 이관집이 되기도 한다.

    이 방식은 국가 간 불법 돈 거래 방식인 ‘환치기’나, 이슬람식 거래 방식인 ‘하왈라’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이관집’에는 일반적으로 수수료가 없다는 것이다.

    ㄱ이라는 지역에서 사는 사람이 ㄴ이라는 지역으로 갔다가 급히 큰돈이 필요한 경우에도 ㄱ지역과 거래하는 이관집을 찾으면 된다. 이관집은 장마당에서 수소문하면 찾을 수 있다. 돈이 필요한 사람은 자기 집에 이관집의 대방을 찾아가 얼마를 넘겨주라는 전화를 한다. 거래가 성사되면 즉시 전화로 서로 확인한 뒤 넘겨준 액수만큼 ㄴ지역의 이관집에서 받으면 된다.

    카드 한 장이면 어디 가서나 돈을 뽑아 쓸 수 있는 남한에서 볼 때는 이런 상당히 복잡한 거래가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은행이 제구실을 하지 않는 북한에서는 이것이 최상의 돈 거래 방식이다. 그나마 최근 몇 년 사이에 이런 방식이 퍼져 있기에 망정이지 이전까지는 북한 주민이 허리에 거액이 든 돈 주머니를 차고 다녀야 했다.

    북한에 등장한 이관집이라는 원초적인 돈거래 방식은 최근 들어 점차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거래수수료라고 할 수 있는 ‘이관비’를 받고 전문적으로 돈을 송금하는 집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영업형태는 주요 도시들에 믿음직한 거래 대방만 있으면 가능하다. 현재 시세로 이관비는 북한돈 100만원당 5000원 정도라고 한다.

    재미있는 점은 이관집 거래에서 외화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북한돈은 가치가 없기 때문에 한 배낭을 담아도 달러로 한 묶음도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큰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중국 위안화나 달러로 결제하는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지방별로 보통 북한돈 대 외화의 환율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환차익은 서로 보상해주어야 한다.

    “북한 장마당  최고 히트상품은  오뚜기 사과식초”

    장마당 최고 히트상품인 오뚜기 사과식초.

    보이지 않는 손

    그렇다면 북한 암시장에서 ‘현화(외화)’ 환율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이 문제는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다.

    오랫동안 북한을 들여다보면서 느낀 바이지만 철저하게 외부세계와 격리돼 있는 북한에서 암시장의 환율은 신기할 정도로 중국의 환율 변동과 거의 일치하게 연동돼 오르내린다. 그 기준은 어디서 만드는 것일까. 북한도 국가의 환율고시가 있다. 북한이 외부에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1달러에 북한돈 백 몇십원 정도다. 그러나 이 환율은 고려호텔을 비롯해 아주 제한적 공간에서 외국인에게만 적용된다.

    반면 평양과 지방에는 암시장 환율과 거의 비슷하게 달러와 북한돈을 바꾸어주는 국가 지정 외화거래소들이 존재한다. 물론 그래도 암시장보다는 못하기 때문이 이곳을 이용하는 개인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 암시장에서 오르내리는 환율은 국가 지정 외화거래소와 또 다르다. 외화거래소 환율은 며칠 고정돼 있는 경우가 많지만 암시장에서는 매일매일 민감하게 변한다. 10월 초 현재 100달러가 북한돈 38만5000원 선에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외화 환전상(대다수가 아줌마다)은 서로 다른 시장에서 거래할지라도 매일매일 똑같은 환율을 적용한다는 점이다. 이는 서로 다른 지역인 평양과 신의주의 암시장 환율은 차이가 날지라도 적어도 평양 안에서는 광복거리시장이나 사동시장이나 거래 환율이 똑같다는 뜻이다. 북한에서 외화를 바꾸어주는 사람들을 ‘돈쟁이’라고 부른다. 돈쟁이는 매일 아침 전화로 시세 정보를 교환한다.

    신의주의 경우 이런 돈쟁이가 100명 정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은 돈쟁이가 아침에 주고받는 통일된 시세는 과연 누가 결정하는가 하는 것이다. 시세를 결정하는 사람은 분명 매일 아침 중국 시세를 통보받는 것이 틀림없다.

    오랫동안 이 문제에 궁금증을 갖고 있었으나 “시세를 결정하는 여자 한 명이 있기는 한데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으며 돈쟁이들이 이 여자를 보호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뿐이다. 역시 암시장답다고 할 수 있다.

    북한에서 위안화는 ‘비’ 또는 ‘패’라고 한다. 달러는 ‘현화’ 또는 ‘아바이’, 엔은 그냥 엔이라고 하거나 ‘꿩 대가리’라고 한다. 반면 북한이 2002년 대외결제 화폐를 달러에서 유로화로 바꾸었음에도 유로화는 북한 내부에서 구경하기 힘들다.

    돈쟁이는 접근하는 사람에게 “큰 거 바꾸려나 작은 거 바꾸려나”고 묻기도 한다. 여기서 큰 거는 달러, 작은 거는 위안화를 의미한다. 북한에서 거래되는 외화는 이 두 가지가 절대적이다.

    가끔 중국 환율과 달리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실례로 신의주 시장에서 물건을 걷어가기 위해 중국에서 거액의 위안화가 갑자기 유입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 경우 위안화 가치는 중국의 환율과 상관없이 떨어진다. 한 신의주 상인은 “신의주 장마당에서 환율을 뒤흔들 정도가 되려면 100만달러 정도가 흘러들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이하 액수의 자금에는 신의주와 같은 비교적 큰 상업도시의 환율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장사도 전문화

    장사가 생존방식으로 굳어지면서 분업화도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지금 장마당에서 매대(매점)를 갖고 장사하는 사람들은 경력이 10년이 넘은 경우가 많다. 오랫동안 한 품목만 취급하면 자연스럽게 경쟁력도 생기고 노하우도 많아질 뿐만 아니라 믿음직한 거래처도 다양하게 확보할 수 있다. 또 분업화에 따른 전문성과 신용도도 크게 늘어나며 효율도 높아진다.

    분업화가 가져온 변화를 엿보기 위해 돼지고기 장사꾼을 사례로 들어보자. 대략 5년 전까지만 해도 장마당에서 파는 돼지고기는 장사꾼이 직접 농촌을 돌면서 확보했다. 농촌에 가서 무작위로 돌아봤자 한 번에 걷어오는 돼지는 1~2마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는 특정 군에서 한꺼번에 수십 마리씩 들여온다. 이렇게 대규모로 들어온 돼지를 ‘행방돼지’라고 부른다. 그 군에는 돼지만 전문적으로 잡아 장마당에 보내는 사람이 따로 있다. 이 사람은 자기 고장의 누구 집에 몇 ㎏ 나가는 돼지가 있는지, 어느 정도의 가격을 제시해야 합당한지, 심지어 뭘 먹여서 키웠는지까지 소상히 파악하고 있다. 장마당 장사꾼은 이제 예전처럼 자신이 직접 농촌을 돌면서 돼지를 잡을 필요가 없어졌고 단지 팔기만 하면 된다.

    여기서 잠깐 재미있는 사실 하나. 북한에서는 닭이 매우 비싸다. 현재 장마당에서 닭 1마리 가격은 1만원 정도로 돼지고기 1.7~2㎏과 맞먹으며 닭 5마리는 개 1마리와 맞먹는다. 큰 개 1마리는 5만원 선으로 쌀 25㎏과 맞먹는다. 닭이 비싼 것은 사람이 먹는 곡물을 먹여야 할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도둑맞기 쉬워 기르기 힘들기 때문이다.

    다시 분업화가 가져온 또 다른 변화의 실례를 들어보자. 예전에는 장마당마다 술과 음식을 파는 장사꾼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풍을 쳐놓고 풍로를 돌리면서 음식을 데워 파는데 음식 종류는 거기서 거기였다. 어느 집에서나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술과 함께 두부, 두부밥, 순대, 생선찌개 같은 것을 안주로 내놓았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장마당 입구 개인집 창고들을 개조해서 식당으로 쓴다. 그리고 집집마다 파는 음식 종류도 다양해지고, ‘저 집은 순대 잘하는 집’ ‘저 집은 인조고기 잘하는 집’(콩으로 만들어 돼지고기 맛이 나는 음식) 등의 평판을 듣고 있다.

    장마당에서 음식을 팔아 돈을 좀 번 사람들의 일부는 아예 시내로 나와 고급 식당을 차리기도 한다. 음식 종류도 다양해지는 것은 물론 고객을 겨냥한 전략도 고급화와 대중화로 차별되는 것이다.

    장마당에서 신용거래도 늘고 있다. 과거엔 신용에 신경을 쓰지 않던 사람들이 신용이 곧 돈이라는 점, 단골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단골이 찾아오면 절대 저울도 속이지 않고 가격도 싸게 받는다.

    재미있는 사례로 자전거 장사꾼을 들 수 있다. 북한엔 장물 자전거가 많다. 예전에는 도둑에게서 넘겨받은 자전거도 아무렇지 않게 팔았지만 이제는 장물 자전거를 정확히 설명하지 않고 팔아먹다가는 장마당에서 신용을 잃어 장사하기 힘들다. 대신 장물은 가격이 싸다.

    이런 경우,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긴 하지만 만약 자전거 원주인이 잃어버린 자전거를 찾아낸 경우 장물인 것을 알고 산 사람은 군소리 없이 손실을 안아야 한다. 왜냐면 훔친 물건임을 알고 샀기 때문이다.

    말 나온 김에 자전거 이야기를 좀 더 한다면 북한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의 80% 이상은 일본산 중고 자전거다. 그런데 최근 일본산 중고 자전거 가격이 급속히 상승했다. 일본의 대북제재 때문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중고 자전거 가격은 50~60달러였는데 지금은 3배가 넘는 180달러에 육박한다.

    ‘배물(배에서 직접 내린 자전거)’은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이 기회를 이용해 중국 화물선이 일본에서 중고 자전거를 사서 북한에 들여와 비싸게 판다. 중국 화물선이 남포항에 들어오는 바람에 과거에는 배물이 원산에서 많이 나왔지만 이제는 남포에서 조금 나오고 있다. 과거 북한인이 개척해놓은 무역선을 중국인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의 대북제재가 중국인 배만 불려준다는 소리가 나온다. 일본산 중고 자전거가 고장 나도 이제는 부품을 중국산으로 조달해야 한다. 비단 자전거뿐만 아니라 TV나 냉장고 등 과거 일본에서 넘어오던 중고 물품들의 사정은 다 마찬가지다.

    개인 운수업도 등장

    날이 갈수록 장마당의 효율성도 크게 높아지고 있다. 실례로 과거엔 장사꾼이 매일 저녁 매대 물품을 집으로 날라 갔다가 아침에 다시 날라 와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시장 짐 보관소에 맡기면 그만이다. 과거에 비해 훨씬 편리해진 것이다.

    요즘엔 북한에 과거엔 없던 서비스 형태도 등장했다. 실례로 오토바이를 사서 장마당 입구나 역전 입구에서 사람을 태워주는 돈벌이 방식도 요즘 유행이다. 이는 중국 어느 도시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개인운수업’의 초기 형태쯤으로 볼 수 있다.

    양강도 혜산시의 경우 오토바이로 태워주는데 10리당 보통 북한돈 3000~ 3500원을 받는다. 이런 서비스는 단속대상이지만 단속 보안원을 다 끼고 있는데다, 혹 누가 시비를 걸어도 아는 사람을 태우고 가는 중이라고 둘러대면 그만이다. 이런 오토바이는 서비스 시간과 휘발유를 절약하기 위해 미친 듯이 달리는 것이 특징이다.

    오토바이가 많이 없는 지역에서는 대신 자전거 뒤에 사람을 태워주는 서비스가 발달했다. 남포에서는 20~25분 자전거를 태워주는 데 1000원을 받는다.

    장마당이 발달하면서 상품의 국적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러시아산 식품이 장마당에 나오고 있는 것을 사례로 들 수 있다. 원래 러시아산 상품은 중국산보다 질은 좋지만 비싸다. 이런 까닭에 러시아 쪽 무역 통로는 과거에 전무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보드카, 맥주, 주스, 캔 음료, 식초 등의 식료품과 샴푸, 비누 등 세제를 중심으로 점차 러시아산이 나오기 시작했다. 가격은 중국산보다 비싸지만 질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나름대로 수요층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반면 러시아산 피복류는 북한 진출에 실패했다. 열서너 살 아이 옷도 북한 어른 3명이 들어간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사이즈가 맞지 않고 취향도 다른 것이 원인이다.

    북한 장마당에서 오래전부터 남한 상품들이 인기리에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단속 때문에 직접 내다놓고 팔지 못하지만 장마당에 가서 수소문하면 다 찾을 수 있다. 대신 남자가 가서 물어보면 잘 알려주지 않는다. 보안원이 구매자처럼 가장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반면 여성이 가서 물어보면 잘 대답해준다. 북한엔 여성보안원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상품은 상표가 없으면 가치가 대폭 떨어지기 때문에 상표를 떼고 세관을 통해 들여와선 다시 내부에서 상표를 다는 경우도 많다. 가짜 한국 상표를 붙이는 일도 흔한 일이다. 흥미로운 점은 진짜 한국산 상표가 달린 물품은 단속되면 골치가 좀 아프지만, 한국산 가짜 상표를 붙이고 팔다 적발되는 경우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속반에게 사실 이것은 진짜가 아니고 가짜 상표를 붙인 것이라는 것을 납득시키면 ‘이따위 짓 왜 하느냐’하는 질책은 받지만 크게 처벌받지는 않는다고 한다.

    인기상품인 한국제품

    요즘 북한 장마당에서 많이 팔리는 한국산 식품은 오뚜기 브랜드 사과식초와 양조식초다. 1.8L짜리로 사과식초는 북한돈 2만3000원(6달러), 양조식초는 1만9000원(5달러) 선에서 거래된다. 이 식초들이 진짜 한국에서 들어온 것인지, 아니면 중국에서 상표만 만들어 붙였는지는 파는 사람도 잘 모른다. 아무튼 오뚜기 사과식초가 요즘 인기가 좋다는 점은 분명하다.

    한국 브랜드의 고추장, 식용유, 밀가루 등도 잘 팔리는 품목이다. 한국 초코파이는 이제는 웬만한 장마당에서 다 찾아볼 수 있는 식품이 됐다. 이건 아예 내놓고 파는 데가 많다. 1개당 북한돈 500원이다. 개성공단에서 야간작업을 하면 하루 2개씩 나눠준다는 사실도 웬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한국산 공업품은 식품보다 훨씬 더 다양하다. TV, 컴퓨터, 카메라와 같은 가전이 많고, 장판, 옥돌매트, 분쇄기와 같은 가전이 아닌 물품도 다양하다.

    해가 갈수록 국가가 당연히 보장해주어야 할 영역도 장마당의 울타리 안으로 점점 끌려들어오는 양상이다. 실례로 교과서를 들 수 있다. 이는 원래 국가가 인쇄해서 학생들에게 무상 공급해야 하는 것이지만 종이가 없다보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수요가 있으면 공급자가 나타나는 것이 장마당의 법칙이다.

    국가에 없는 종이가 개인들에게는 있다. 개인들은 중국에서 종이를 수입해서는 지방 노동당 출판소인 도일보사에 가져다 교과서를 찍게 한다. 교과서뿐만 아니라 벽지도 이런 식으로 장마당에 공급된다. 도일보사는 대신 장사꾼들에게서 받은 대가를 직원들에게 배분하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국가의 공급이 없는 조건에서 노동당 출판사와 장사꾼의 공생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밖에 없다.

    요즘 장마당에 가면 교과서뿐 아니라 다양한 고급 공책도 많고 연필도 많다. 학생은 이제는 수업 준비물을 장마당에서 구입한다.

    장마당의 발달은 사람들의 의식도 바꿔놓고 있다. 장마당에서 성공한 자와 실패한 자의 생활격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자식들에 대한 관점까지 달라지는 것을 실례로 들 수 있다.

    잘 기를 자신이 없으면 차라리 1명을 낳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이 북한에 퍼지고 있다. 남한의 일반적 인식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요즘 북한에선 가난한 집에서 아이를 많이 낳으면 손가락질을 받는다. 아무리 노동당에서 ‘아이를 많이 낳아 당에 충직한 혁명가로 키우자’는 캠페인을 벌여도 소용없다. 사람들은 국가에서 먹여줄 건가 하면서 콧방귀를 뀌고 있다. 여전히 유교적 관점이 팽배하긴 하지만 자식 덕 보겠다는 부모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북한 장마당  최고 히트상품은  오뚜기 사과식초”
    주성하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김일성종합대 졸업

    북한군 예비역군관

    2002년 한국 입국

    2003년 동아일보 입사


    대신 아이에 대한 열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적게 낳아 제대로 키우겠다는 뜻이다. 요즘 북한에선 부모가 돈을 걷어서 자체 운영하는 탁아소까지 생겨나고 있다. 부모는 장마당에서 열심히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우수한 교사와 교육환경을 사는 것이다. 이런 탁아소에서는 아이도 잘 먹이고 교사도 열성이다.

    가난한 부모는 이런 데 끼질 못한다. 격차가 유아 때부터 형성되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잘 먹은 남자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의 차이는 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잘 먹은 아이는 키가 180㎝가 넘기 쉽지만 못 먹여 키운 아이는 160㎝ 넘기 힘들다. 이런 것을 보는 부모나 보고 자라는 아이들이나 돈을 벌어야 한다는 굳은 각오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가 공급이 끊겨 전 국민이 장마당에 매달린 지 약 15년, 북한은 날이 갈수록 노동당과 장마당이 공동 통치하는 나라로 변화하고 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