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인자 인정 안해 누구도 朴에 직언 꺼려
- 아버지-배신-독신자 3大 콤플렉스 과제
- 비서 4인방도 전적 신뢰 안해…메모지 직접 파쇄
- 김무성 기용해 탈피 시도…판세 뒤집을까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윤리위원장을 지낸 인명진 목사가 10월 11일 발표된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인선에 대해 평가한 말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새누리당스럽고, 박근혜스럽기도 하다”고 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는 이날 4인 중앙선대위원장 체제를 출범시켰다. 당내에서 황우여 대표와 정몽준 전 대표가 기용됐고, 외부에서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과 여성 CEO인 성주그룹 김성주 회장이 영입됐다. 국민대통합위원장과 공약위원장은 박 후보가 직접 맡았다. 총괄선대본부장은 한때 친박계의 좌장이었다가 탈박(脫朴)을 선언했던 김무성 전 의원의 몫으로 돌아갔다.
인 목사가 ‘새누리당스럽다’고 말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던 한광옥 전 민주당 상임고문의 영입을 어물쩍 마무리한 데 따른 혹평이다. 한 전 고문은 당초 국민대통합위원장으로 내정됐으나 그를 비리 혐의로 기소한 안대희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전 대검 중수부장·대법관)이 강력히 반발했다. 그러자 박 후보는 자신이 국민대통합위원장을 맡고 한 전 고문을 그 밑의 상임 수석부위원장에 임명했다. 이런 인사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것이 인 목사의 견해다.
또 당내 비박(非박근혜) 진영의 핵심인 이재오 의원의 선대위 참여 불발도 박근혜 포용력의 한계로 지적된다. 인 목사는 “국민대통합을 이뤄보려고 했지만 상당한 한계를 드러냈다. 많은 분이 왜 (선대위에) 들어간다고 했다가 나오고, 새누리당을 외면하는 것인지 스스로 잘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칙’의 두 얼굴
박근혜 후보는 각종 인선 때마다 법조인, 명망가 혹은 그의 자제, 국내외 명문대학 출신들을 선호하는 경향으로 비쳐졌다. 이 바람에 붙은 공주 이미지를 이번에도 털어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공주 이미지에 대한 반론도 있다. 김용준 전 헌재소장은 ‘만 19세 고시 수석 합격’‘서울법대 수석 졸업’‘소아마비를 앓은 최초의 대법관’이다. 국민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이 된 윤주경 매헌기념사업회 이사는 윤봉길 의사의 장손녀다. 김중태 전 서울대 민족주의비교연구회장은 박정희 정권 시절 일어난 제1차 인민혁명당 사건의 피해자다. 인요한 연세대 교수는 미국 출신으로 5대째 우리나라에서 선교 및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인적 구성을 볼 때 국민에게 감동을 줄 만한 선대위는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박근혜 리더십의 요체는 보통 ‘소신과 원칙’으로 요약된다. 1998년 국회의원이 된 이후 박 후보는 어떤 경우에도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말한 내용을 실천하는 원칙을 지켜왔다고 볼 수 있다. 일시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본인이 약속한 것을 지키려고 애쓰는 모습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은 것도 사실이다.
2010년 세종시 수정안 파동이 한창일 때 박 후보, 친박계 의원들, 일부 기자들이 사석에서 만났다. 한 참석자가 세종시 원안 고수를 고집스럽게 밀어붙이던 박 후보에게 “지금까지 지켜온 원칙이 0도라면 5도 정도만 기울이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박 후보는 “그것이 국민생활에 도움이 된다면 5도가 아니라 50도라도 기울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판단돼 원칙대로 가는 것”이라고 했다. 대선 후보가 된 이후 부분적으로 유연성을 보이기도 하지만 큰 기조는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박근혜식 소신과 원칙의 리더십은 분명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독선과 아집까지 소신과 원칙으로 포장되어선 안 된다. 불행히도 박근혜 후보에겐 가끔 이런 일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그가 소통 부재 이미지를 얻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대선 후보가 된 뒤의 ‘인혁당 두 개의 판결’ 발언은 결정적이었다. 자기가 그리던 그림에 스스로 낙서를 한 것과 같다. 지지율 급락 등 박근혜의 위기를 친박 측근 비리에서 찾을 게 아니다. 박근혜 본인이 자초한 측면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정치권 인사들은 박근혜 지지율 정체의 구체적 요인으로 4가지를 꼽는다. 문·안 후보의 고향인 부산·경남의 이탈, 40대의 실망감, 친박계 측근의 비리 의혹이 우선 거론된다. 이보다 근원적인 요인으로 지적되는 나머지 한 가지는 ‘근거 없는 낙관론’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새누리당의 한 중진의원은 “박 후보를 에워싸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선 여전히 ‘박근혜가 당연히 대통령이 되겠지’라는 ‘근거 없는 낙관론’이 만연해 있다. 이것이 박근혜 위기의 본질적 원인”이라고 말했다.
새누리 ‘20 vs 130’ 분열
친박계는 1년여 전 안철수 현상이 나타났을 때도 ‘찻잔 속의 태풍’ 정도로 치부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후 문재인 후보가 떴을 때도 컨벤션 효과라며 의미를 축소했다.
이런 점은 박근혜의 용인술 문제와 직결된다. 친박계 핵심 그룹은 박 후보에게 오는 친이계를 경계했고 4·11 총선으로 새로 편입된 친박계를 경계했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 의원 150명이 ‘20대 130’으로 나눠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박 후보 곁에서 열심히 뛰는 의원은 불과 20명 정도이고 나머지 130명 의원은 “당신들끼리 잘해보라”며 방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 20그룹에 속하는 핵심 참모 대부분도 박 후보 앞에선 눈치만 살피고 쓴소리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한다. 최경환 의원이 박 후보 비서실장직을 사퇴하면서 “이제는 누군가를 탓하기 전에 나는 무엇을 했는지, 나는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 솔직하게 돌아보자”고 토로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최근 당내에서 “후보를 빼고 모두 바꿔야 한다”는 고언이 나왔다. 박 후보는 “내일모레가 선거이기 때문에 지금은 힘을 모을 때”라고 일축했다. 그러자 눈치를 보던 황우여 대표, 이한구 원내대표가 버텼다.
‘미스터 쓴소리’ 조순형 전 의원은 10월 9일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 특강에서 “위기의 근본 의원은 1인 지배체제, 박 후보의 리더십에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진정한 민주적 정당체제를 갖추려면 최고위원들이 지도력을 발휘해야 하고 의원 전원이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했다. 새누리당 쇄신파 김성태 의원도 “박 후보가 자신에게 편한 사람들의 장막에 둘러싸여 있다”고 했다. 박 후보의 소통 부족 용인술과 후보 눈치만 보는 참모들의 행태가 정치적인 판단 실기(失幾)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새누리당스러운 선대위 구성, 소통 부재의 근저엔 박근혜식 불신의 리더십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 후보가 좀체 사람을 믿지 못한다’는 말은 여의도 정가에선 오래전부터 여러 가지 사례와 함께 회자되어왔다.
사람들은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핵심 측근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목숨을 잃은 사건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또한 육영수 여사 서거 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신군부가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권력암투와 배신의 스토리를 너무 많이 봐온 것도 사람에 대한 불신을 키웠던 것으로 추정한다.
박정희 사후 배신 경험
김무성 전 새누리당 의원이 8월 14일 입국하고 있다.
“가장 이상적인 용인술인 ‘의인불용 용인불의(疑人不用 用人不疑·믿기 어려운 사람은 쓰지 말고 일단 쓴 사람은 의심하지 말라)’는 ‘신뢰에 터 잡은 위임의 리더십’이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는 아버지 박정희의 ‘분리통치(divide and rule)의 리더십’을 금과옥조와 같이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절대로 2인자를 두지 않는다. 여러 명의 측근군(群)을 두어 맹렬한 충성경쟁을 유도하려고 든다. 상황이 좋을 때는 긍정적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상황이 나빠졌을 때는 보스가 외톨이가 되고 배신당할 수 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은 3대 콤플렉스로 설명했다. 그는 박근혜 후보에 대해 ‘아버지 콤플렉스’ ‘배신 콤플렉스’ ‘독신자 콤플렉스’에 빠져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최 소장은 최근의 박 후보 행보에서 변화의 한 자락을 발견했다. 아버지 콤플렉스는 유신 반대자의 과감한 영입으로, 배신 콤플렉스는 김무성 전 의원의 중용으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독신자 콤플렉스의 경우 박 후보가 “국가와 결혼했다”고 말했듯 이미 초월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박 후보는 자신이 정치생활을 시작했을 때부터 동고동락했던, 의원실 보좌진 4명에게는 가족처럼 무한신뢰를 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누리당 선대위 구성 과정에서 인적쇄신 파동이 일어나자 당내에서는 이들의 2선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자 언론은 이들을 “박근혜 핵심 4인방”으로 지칭하면서 “문고리 권력” “환관 권력”이라고 자극적으로 보도했다.
핵심 4인방
박 후보의 몇 안 되는 ‘가신그룹’으로도 표현되는 네 사람은 박 후보가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 당선돼 정치권에 입문한 뒤 14년 동안 줄곧 곁을 지켜온 4급 보좌관과 5급 비서관 각 2명이다. 이재만 보좌관(46)은 정책, 이춘상 보좌관(47)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정호성 비서관(43)은 메시지를 담당한다. 안봉근 비서관(46)은 박 후보 수행을 맡다가 최근 일정조정으로 업무를 바꿨다.
이상돈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 위원을 비롯해 4·11 총선 비상대책위원회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10월 8일 박 후보 비서진의 2선 퇴진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후보를 둘러싼 비서진이 오늘의 사태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박 후보는 과연 이들 4명의 보좌진에게 어느 정도의 신뢰를 보내고 있을까. 실제로 중진 국회의원을 능가하는 임무를 부여하고 전권을 위임했을까. 새누리당 의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네 사람이 박 후보와의 접근성과 충성심을 바탕으로 대선 과정에서 상당한 역할을 해온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박 후보를 대신해 일정을 짜고, 연설 메시지를 다듬고, 보고서의 요지를 정리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박 후보만의 특별한 현상도 아니다. 거의 모든 유력 정치인의 경우 비서진이 손발이 되어주며 비서진의 이러한 역할은 실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인혁당 두 개의 재판’ 발언의 경우도 상식적으로 보았을 때 박 후보의 보좌진이 박 후보에게 그렇게 발언해야 한다고 건의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내부의 의혹제기와 언론의 파헤치기 보도의 경우 4인방과의 과오에 관한 사실관계가 거의 제시되지 않았다. 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비난이 쏟아져도 ‘비서는 말이 없어야 한다’면서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는 이들 보좌진의 자세에 나는 더믿음이 간다”고 했다.
취재 과정에서 “이들 보좌진 4명에 대한 박 후보의 믿음도 제한적”이란 의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 여권 인사는 “박 후보는 손수 그려본 인선안, 정책 원안, 혼자 구상한 메모들을 폐기할 때 직접 처리하지 보좌진에게 맡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들 4명보다 더 신뢰를 받고 있는 감춰진 참모가 있다는 말이 여전히 의원회관 주변에 나오고 있다. 고(故) 최태민 목사의 사위인 정윤회 씨(58)다. 정씨는 박 후보가 국회에 입성할 때 ‘비서실장’이란 직함을 사용하면서 이들 4명과 함께 의원실에 상주했던 인물이다. 정씨는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정치판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강남 모처의 사무실에서 박 후보를 측면지원 한다는 설이 끊이지 않는다. 황태순 수석연구원은 “박 후보가 이참에 가신정치 논란을 일소해야 한다”고 말한다.
“박근혜 용인술에 관한 의심 중 가장 큰 의심은 ‘가신에게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느냐’는 점이다. 자신만의 독자적 영지가 있는 장수급들은 가신과 달리 때로는 쓴 소리도 하고 호락호락하지 않다. 보스에게는 가신도 필요하고 뻣뻣하지만 일을 해내는 장수도 필요하다. 보스는 어느 한쪽에 쏠려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아야 한다.”
김무성 이후 달라지는 분위기
불신의 용인술이 형성된 배경이야 어떻든 따르는 사람들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참모들이 서로 견제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친박계 한 인사는 한때 박 후보와 결별하면서 “친박계 다른 의원들의 극심한 견제가 견디기 힘들었다”고 토로한 바 있다. 다른 친박계 인사는 “나는 박 후보와 동지관계로 생각했는데 다른 친박계 사람들은 주종관계로 여기더라”고 했다.
박근혜 캠프에서 한동안 활동하다 이탈한 한 전직 참모는 “박 후보는 측근들이 원하는 것이 많다는 의심을 하는 것 같더라”고 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선 여권 내에선 김무성 선대본부장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있다. 김 본부장은 4·11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자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선거 후 총선에서 불출마하거나 낙천·낙선한 안경률·장광근·정옥임 전 의원 등과 함께 18박19일 동안 캠핑카를 타고 미국을 여행했다. 이 때 박 후보가 김 본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고 귀국 후에도 여러 번 접촉했다고 한다. 김 본부장이 원내대표 출마, 세종시 파동으로 관계가 틀어졌던 박 후보와 화해하고 컴백한 과정에 박 후보의 직접 설득이 있었다고 한다.
김 본부장은 캠프 사무실에 야전침대를 갖다 놨다. 박 후보 눈치를 살피던 다른 지도부와는 달리 “후보의 명령을 기다리지 마라. 우리가 결정해 먼저 집행하고 후보에게는 나중에 보고하면 된다. 책임은 내가 진다”고 지시하면서 독려하고 있다. 이 때문에 캠프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김 본부장은 박 후보와 거리를 두고 있는 이재오 의원을 비롯한 과거 친이계 핵심들, 공천 탈락으로 등을 돌린 전직 의원들의 동참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인명진 목사는 “김무성, 한 사람으로 당이 바뀌겠나. 바뀌어야 할 분은 박근혜 후보다. 이분의 리더십이 문제”라고 말한다. 박 후보의 변화 여부가 바로 자신의 운명의 바로미터라는 점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