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 전화번호 안 바꿨다
정당은 당비뿐 아니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당
사법 리스크라는 먹구름부터 걷어내야
비대위는 이재명 물러난 뒤 논의해도 돼
이낙연, 대체재 될 수 없고 돼서도 안 돼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동아DB]
체포 동의 찬성 139명, 반대 138명
2월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이 진행되고 있다. [동아DB]
‘재적의원 과반 이상 출석, 출석 의원 과반 이상 찬성’이라는 가결 요건에 단 10표가 부족해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최종 부결됐다. 찬성이 반대보다 1표 더 많은 투표 결과가 나온 뒤 민주당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 들끓었다. 소속 의원이 169명인데 반대표가 138명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결과는 노웅래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 때 161명이 ‘반대표’를 던진 것과 비교됐다. 민주당 소속 의원 중 최소 31명이 체포동의안에 ‘반대’가 아닌 ‘찬성’ 또는 ‘기권’ ‘무효표’를 던졌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3월 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이재명 대표 지지자들이 수박 풍선을 밟아 터뜨리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수박 7적 처단’이라고 이름 붙여진 포스터가 온라인에서 대거 유포됐고, 공천에서 배제해야 할 의원 명단이 돌았다. 이른바 수박 7적 중 한 사람이 이상민 의원이다. 이 의원에게 총선을 1년 앞둔 민주당의 예상 진로와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운명에 대해 들어봤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부결 이후 당내 상황은 어떤가.
“긴장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는 시시각각 조여오고, 재판도 시작됐다.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지도부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표결 결과에 대해 당내 의견이 엇갈리는 양상이다.
“친명계(친이재명계)는 단일대오를 유지하자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어떻게 결속력을 높일까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런데 침묵하는 다수가 있다.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당의 리스크로 확대되는 상황을 원치 않는 이들이 더 많다.”
대표의 리스크가 당의 리스크로 번지지 않으려면 이 대표가 거취를 결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당이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이 대표가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선출된 당대표를 강제로 물러나게 할 방법은 없다.”
윤영찬 “이재명 대표, 도의적 책임 져라”
이 의원과 함께 수박 7적에 이름이 올라간 윤영찬 의원은 이 대표의 경기도지사 시절 초대 비서실장 전모 씨가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데 대해 “도의적 책임을 지라”며 사실상 대표직 사퇴를 요구했다.윤 의원은 3월 10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이재명 대표 관련된 일로 수사받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어 고인이 되신 분이 네 분”이라며 “단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버리고, 삶의 이유인 가족을 떠나야 할 만큼, 그분들을 고통에 빠뜨렸던 원인이 대체 무엇이었나. 이재명 대표나 주변에서 고인에게 부담 주는 일이 있었다면 대표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의원은 “(이재명) 대표가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게 인간이고 그게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숨진 전 씨는 유서에서 “이 대표는 이제 정치 내려놓으십시오. 대표님과 함께 일한 사람들의 희생이 더 이상 없어야지요”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현재 진행되는 검찰 수사 관련 본인 책임을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일만 열심히 했을 뿐인데 검찰 수사 대상이 돼 억울합니다”라고 쓴 것으로 전해졌다.
다시 이상민 의원의 얘기를 들어보자.
당내 최대 계파인 ‘더좋은미래’ 의원들이 견해를 밝혔다.
“애매모호한 점이 있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대표에 대한 사퇴나 거취 표명 요구 없이 당을 혁신하자고 얘기한 것이 그렇다. 당내 불만을 최소화하자고 하는데, ‘어떻게’가 빠져 있다. 혁신에 대한 방법론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은 점이 의아하다.”
50여 명이 참여한 민주당 내 최대 의원 모임 더좋은미래(더미래)는 3월 8일 이 대표를 향해 당 내홍 수습에 나설 것을 촉구하면서 ‘당내 상황 및 향후 진로에 대한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재명 대표는 3월 15일 ‘더미래’ 의원 28명과 2시간 넘게 간담회를 열고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더미래 대표를 맡고 있는 강훈식 의원은 간담회 후 “국민에게 더 많은 신뢰를 받기 위해 소통, 성찰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며 “이를 위해 전면적인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고 (이 대표에게) 전달했고, 이 대표의 결단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상민 의원은 겉으로 표출되는 당내 목소리가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당에 끼치는 악영향이 크다는 점을 대부분 인식하고 있다. 의원 전체를 전수 조사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당의 미래를 불안하고 암울하게 보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그런데 그 같은 생각을 공개적으로 표출하는 데 신중한 편이다. 그렇다 보니 ‘대안이 없다’며 대표를 지키자는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크게 들린다. 그러나 실제로는 ‘물러나야 한다’는 견해와 ‘대안이 없다’는 태도가 팽팽하다. 혼란이 장기화할 수록 당에 끼치는 악영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우선 대표의 사법 리스크부터 걷어내야 한다는 데 다들 공감하고 있다.”
6월이면 이낙연 전 대표가 귀국한다.
“이낙연 전 대표는 이재명 대표 대항마가 될 수도 없고, 돼서도 안 된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지금 이 대표의 대표직 사퇴와 유지를 두고 당내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만약 이 전 대표가 귀국해 이 대표의 대안이 되려 한다면 어찌 되겠나. 친명계와 친낙계 간 당파 싸움만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이 전 대표가 귀국하더라도 당 상황에는 개입하지 말고 거리를 두는 게 당을 위해 좋은 일이다.”
그는 특히 “당 운영 주도권을 누가 잡느냐는 다음 문제”라며 “지금 급한 것은 우리 당이 방탄 정당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당이 1인 정당, 사당(私黨)이 됐다. 특정인을 위한 방탄 정당이 됐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그 프레임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 누가 당 운영의 주도권을 잡느냐는 그다음 문제다.”
“방탄 프레임 이탈이 시급”
이 대표가 자리를 비워줘야 비대위 체제로 전환할 수 있는 것 아닌가.“비대위든 뭐든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은 이 대표가 거취를 결정하는 게 필요하다. 누가 당을 이끌 것인지는 이 대표가 물러난 뒤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도 늦지 않다. 지금은 당에 드리운 사법 리스크라는 어두운 먹구름부터 걷어내야 한다.”
그는 민주당이 활로를 열려면 “이재명 대표 거취 문제가 정해져야 한다”고 시종일관 강조했다. 다만 ‘당위론’적인 그의 주장은 다소 공허하게 들렸다. 당원 뜻에 따라 선출된 당대표를 강제로 끌어내릴 방법은 거의 없다. 그의 말마따나 다수 의원이 그의 뜻에 동조하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침묵의 카르텔’을 유지하고 있다. 화제를 내년 총선 전망으로 돌렸다.
22대 총선이 1년 남짓 남았다. 내년 총선을 어떻게 예상하나.
“내년 총선에 혹독한 시련이 있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다.”
민주당은 2021년 4·7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패했고, 지난해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 3연패를 했다. 일반적으로 선거에서 연거푸 패하면 원인을 찾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게 일반적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실정(失政) 덕에 내년 총선이 민주당에 불리하지만은 않다는 일종의 낙관론도 존재한다. 이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국정 운영을 엉망진창으로 하고 있어 내년 총선이 윤석열 정부 심판의 장이 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고 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와 여당 실정으로 크게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 인사 문제다. 인사는 국정 운영의 기본 중 기본이다. 국정 운영에 필요한 최고 전문가를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과거 함께 일해 본 검찰 출신 인사를 주변에 임명하는 경향이 있다. 전문성에도 맞지 않고, 해당 분야에서 인정받기 힘든 사람을 중용해 국정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둘째는 신상필벌이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책임지고 물러나게 했어야 한다.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은 자녀 학교폭력 문제로 임명되자마자 물러났는데 공직 기강을 확립하는 계기로 삼았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불거졌을 때 총체적으로 파악해 처리하지 않고 법률적으로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로 접근한다. 셋째는 공정과 상식을 기반으로 한 통합의 리더십을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 야당과 협치는 물론 타협의 정치까지 실종됐다. 대선 때 윤 대통령이 야당을 국정 운영의 핵심 요소로 인정하겠다고 해 기대했다. 그런데 취임 후 협치는 고사하고 야당의 실체조차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 일관한다. ‘내 갈 길 간다’는 식의 독주 리더십을 선보여 실망스럽다. 나 홀로 리더십이 장기화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허점이 드러나 타격받기 쉽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치명적이고 결정적인 리더십 결함을 보이고 있다.”
“정당은 민심 향배에 귀 기울여야”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 이후 온라인에 유포된 수박 7적 포스터. [온라인 캡처]
총선이 상대평가라고는 하지만, 민주당부터 국민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까지는 개인별로 목소리를 내왔고, 삼삼오오 모여 당을 걱정하는 상태다. 좀 더 세력이 규합되면 힘을 보여줄 기회가 있을 것이다.”
박홍근 원내대표 후임을 선출하는 원내대표 경선이 그 계기가 될 수 있나.
“아직은 누가 출마할지 후보 윤곽이 뚜렷하지 않다. 친명계는 당내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누군가 나올 것이고, 반대쪽에서도 대립 구도를 만들어 견제하려 할 것이다.”
그는 “박홍근 원내대표는 방탄 국회, 1인 정당이라는 비판을 자초하면서까지 이재명 대표를 옹호하고 함께하려는 모습을 보였다”며 “차기 원내대표는 그 같은 모습을 지양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당력을 당대표 한 사람을 보호하는 데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당은 당원이 낸 당비뿐 아니라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당이다. 그렇기에 민심의 향배에 귀 기울이고, 국민 눈높이에 맞게 정당을 운영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당위론적으로는 반박할 수 없는 그의 얘기가 현재 민주당이 보이는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여운을 줬다. 이 의원은 “공당을 사유화한다는 오명에서 벗어나길 원하는 여론이 원내대표 경선을 거치면서 표출될 것”이라며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줄 후임 원내대표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체포동의안 표결 이후 이 대표 강성 지지층이 이 의원을 수박 7적 중 한 명으로 낙인찍었다.
“민주당은 민주주의 정신을 존중하고 인권을 중시하는 민주정당이다. 그런 민주정당에서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고 7적이니, 수박이니, 색출이니 하면서 반민주적·반인권적 행태를 표출하는 것을 용인하면 되겠나. 의견이 다르다고 배척하고 모욕적인 언사로 폭언하는 것은 민주당이 지금 당장 극복해야 할 반민주적 행태다.”
문자폭탄은 안 오나.
“많이 온다.”
전화번호를 바꿀 법도 한데, 오래전 번호를 그대로 쓰는 이유가 있나.
“번호를 바꾸면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오히려 더 꿋꿋이 쓰고 있다.”
신동아 4월호 표지.
구자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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