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중심 민주당 vs 영남 중심 국민의힘 지도부
민주당은 이재명 개인 문제, 국민의힘은 구조적 문제
세대·이념·출신지역 유권자 지형 변화, 민주당에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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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같은 상황을 두고도 얼마든지 다른 처방이 나올 수는 있다. 문제는 현상에 대한 진단이 엇갈릴 때다. 애초에 바라보는 방향이 다를 땐 합의점을 도출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때는 접점을 모색하기보다 힘에 의한 일방적 결정이 이루어진다. 지금 국민의힘이 상황이 그렇다. 안철수·윤상현 의원 등 수도권 의원을 중심으로 제기하고 있는 수도권 위기론에 대해 당 지도부를 비롯한 친윤계 의원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찍어 누르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수도권은 항상 어려웠다”라는 권영세 의원이나 “멀쩡한 배에 구멍이나 내는 승객은 승선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은 이철규 사무총장의 반응이 대표적이다.
수도권 위기론이 대두하면서 정치권에서는 현재 대통령 지지율이 어떻고,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얼마이니 총선에 어떤 결과가 나올 거라는 예측이 쏟아지고 있다. 물론 지금의 지지율이 총선 때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국민의힘 수도권 위기론을 간과할 수 없는 건 그 원인이 단편적인 지지율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이라는 점에서다.
호남 의존도 대폭 줄여온 민주당
영남은 호남보다 인구가 두 배 이상 많다. 그만큼 국회의원 의석수도 압도적이다. 21대 총선을 기준으로 광주·전북·전남 등 호남 지역 의석은 28석이다. 반면 영남은 부산·울산·경남(PK)만 해도 40석으로 이미 호남 의석수를 훌쩍 넘는다. 여기에 대구·경북(TK)의 25석을 합하면 65석으로 호남의 두 배를 웃돈다. 영남을 지지 기반으로 하는 정당은 호남을 지지 기반으로 하는 정당보다 기본적으로 30석은 먹고 들어가는 셈이다. 따라서 총선 승리를 위해 호남을 넘어 전국적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전국정당론’은 민주당계 정당의 숙원이었다. 여기에 지역주의 청산을 내건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를 따르는 친노 그룹이 등장하면서 영호남을 중심으로 한 기존 정치 구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당내 비주류였던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은 민주당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그의 등장으로 민주당의 전통적 대주주인 동교동계와 새로 등장한 친노 세력 간 갈등이 시작됐다. 그 갈등은 2003년 불법 대북송금 특검을 거치며 더욱 격화됐고 급기야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통과로 이어졌다. 탄핵 역풍이 불며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압승을 거뒀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이전에 비해 전국적으로 고른 득표를 했는데 이것이 훗날 전국정당으로 거듭나는 발판이 됐다. 반대로 호남의 대주주들은 민주당 내 지분을 상당수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출범 후 문재인 대표 체제가 구축되고서는 기존 호남 세력의 탈(脫)민주당, 동시에 민주당의 탈호남 현상이 한층 더 강화됐다. 2012년 대선 때 한광옥·한화갑 등 동교동계 인사들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캠프에 합류했을 만큼 친노에 대한 동교동계의 앙금은 만만치 않았다. 문재인 당대표 시절 끊임없이 호남 홀대론에 시달렸고,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안철수라는 촉매를 만나 국민의당 창당으로 이어 졌다.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호남 28석 중 23석을 차지하며 ‘호남 싹쓸이’를 했다. 당시 민주당은 텃밭 호남에서 겨우 3석을 건지는 데 그쳤다. 민주당이 광주에서 얻은 의석보다 대구에서 얻은 의석(무소속 홍의락 의원 포함)이 더 많았고, 전남·전북을 합친 것보다 부산에서 얻은 의석이 더 많은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원내 제1당으로 총선에서 승리했다. 그 비결은 무엇보다 수도권에서 선방한 덕분이었다. 서울·경기·인천에서 민주당과 새누리당이 기록한 스코어는 83대 35. 이 점수 차는 2020년 21대 총선에서 103대 16으로까지 벌어졌다.
현재 민주당 지도부는 인천 계양구을을 지역구로 둔 이재명 대표와 서울에 지역구를 둔 홍익표 원내대표 체제다. 홍 원내대표는 21대 총선까지 서울 중구성동구갑에서 내리 3선을 기록했지만 내년 총선에는 서초구을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정청래(서울 마포구을)·박찬대(인천 연수구갑)·고민정(서울 광진구을)·서영교(서울 중랑구갑) 등 당 지도부 모두가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 지역구를 두고 있다. 선출직만 놓고 보면 지도부 전원이 수도권 출신인 셈이다. 이는 민주당의 호남 의존도가 과거에 비해 크게 줄었음을 보여준다. 호남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다는 게 아니라, 호남 이외에도 국민의힘에 맞설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됐다는 뜻이다. 민주당은 설령 과거 국민의당 같은 정당이 등장해 그들에게 호남 의석을 상당 부분 내준다고 해도 여당을 견제할 만한 의석을 갖출 수 있는 정당이 됐다. 수도권 지지 기반 덕분이다.
이재명 대표, 박광온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대부분 수도권에 지역구를 두고 있다. [동아DB]
김기현 대표, 윤재옥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는 대부분 영남에 지역구를 두고 있다. [동아DB]
강경 보수 지지층만 남았다
지도부의 수도권 이해도가 중요한 건 최근 선거에서 여론의 민감도가 대단히 높아졌기 때문이다. 컴퓨터에서 마우스의 민감도를 높이면 작은 움직임에도 커서가 크게 이동한다. 요즘 수도권 선거가 그렇다. 유리한 것 같다가도 악재 한두 개에 민심이 와르르 무너진다.2016년 1월,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야권 분열로 180석이 목표”라고 자신만만하게 주장했다. 실제로 그때만 해도 새누리당의 안정적 승리가 기대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총선 막판 ‘옥새 파동’으로 대표되는 공천 갈등이 빚어지며 민심이 대거 더불어민주당으로 이동했다. 2020년 치러진 21대 총선은 또 어땠나. 연초까지만 해도 민주당이 쉽지 않은 선거를 치를 거란 전망이 우세했다. 위성비례정당 창당, 인재 영입 실패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무엇보다 조국 사태 여파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선거에 가까워지면서 미래통합당에서 차명진 후보 막말 논란, 당내 공천 잡음 등이 불거졌다. 여기에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이 맞물리며 민주당은 당초 어려울 거란 전망과 달리 유례없는 대승을 거두었다.
이슈에 따라 민심이 확확 변하는 건 무당층 비율과 무관하지 않다. 정치 양극화로 표심을 일찍이 정해놓지 않은 무당층이 증가하면서 이들의 막판 선택이 승패를 가르게 됐다. 특히 ‘캐스팅보터’로 떠오른 청년층이 그렇다. 굳이 청년층을 강조하는 건 이들의 무당층 비율이 다른 세대에 비해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9월 1일자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무당층 비율은 18~29세가 46%, 30대가 47%에 달했다. 반면 40대는 36%, 50대와 60대는 20%에 불과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진보도 싫고, 보수도 싫다는 청년들은 평소엔 무당층으로 머물다가 선거 직전 이슈에 따라 특정 정당으로 빠르게 결집한다. 지난 대선이 그랬다. 국민의힘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공약이 발표되자 2030 남성들의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여기에 당황한 이재명 후보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 나름대로 중립적으로 취해 오던 입장을 버리고 여성 표심에 올인(All in)했다. N번방 사건으로 유명한 박지현을 전면에 내세웠고, PC주의 성향이 짙은 유튜브 채널에 출연했다. 이 전략도 성공이었다. 무당층 청년 여성들이 민주당으로 빠르게 결집했다.
이처럼 선거 막바지 행보 하나하나에 지지율이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매 순간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내려야 한다. 그런데 충성 경쟁이나 계파 간 이해관계로 초기 상황 진단 때부터 잡음이 발생하면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오기 어렵다. 당면한 현실을 외면하고 애써 부인한다면 수도권 ‘한 타 싸움’에서 그만큼 불리하게 작용할 공산이 크다.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 또한 답보 상태이긴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여론이 60%를 왔다 갔다 하는 데도 민주당은 그 반대 여론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 당 지지율은 한국갤럽 조사 기준으로 볼 때 1년 내내 국민의힘과 엎치락뒤치락하는데 보통은 국민의힘보다 못하다.
그 원인은 대체로 이재명 대표에게 있다. 계속되는 사법 리스크와 최측근 김남국 의원의 코인 논란 등 그는 당대표 취임 이후 1년이 넘도록 온갖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반대로 말하면 ‘이재명 리스크’만 사라지면 민주당의 위기는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문재인 정부 실정은 뉴스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그에 비해 국민의힘이 직면한 문제는 누구 한 명 쫓아낸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유승민, 이준석 등 바른정당계 인사들과의 갈등이 그렇다. 국민의힘은 이들을 포용하자니 대통령실이 용납지 않을 것이고, 배제하자니 사실상 중도 확장성을 포기해야 하는 딜레마에 놓여 있다. 당내 경선이나 영남 지역 선거야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고 해도 문제없겠지만 수도권 선거는 그런 식으론 어림없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유승민, 이준석이 싫다고 그 방향성마저 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계파를 넘어 중도라는 포지션마저 도려내고 있는 형국이다. 중도에서부터 온건 보수가 통째로 날아가니 정부 여당에 강경 보수만 남았다. 그런 경향성은 “공산전체주의 세력”을 작정하고 비판한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나 홍범도 장군 논쟁에서 잘 드러난다. 이런 방향성이 계속된다면 수도권·중도층 표심을 잡기는 요원하다.
2022년 수도권 유권자 비중 50.5%
지금이야 민주당 지지율이 변변치 못해 크게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선거에 가까워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선거 직전까지 지지 정당을 결정하지 못한 유권자 집단이 수도권·중도층으로 확장을 꾀하는 쪽과 강성지지층 결집에 전념하는 쪽 중 어디를 선택하게 될지는 자명하다. 또 하나 확실한 건 그 규모가 의석 몇 석이 아니라 수십 석을 결정하게 되리라는 점이다.수도권 위기론은 한국 사회가 처한 씁쓸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만큼 수도권으로 사람이 몰리고 있고, 다른 지역의 정치적 영향력은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 때만 해도 수도권 유권자 비중은 전체의 46.9%였다. 10년 뒤인 2012년 대선에는 48.9%로 높아졌고, 다시 10년 뒤인 2022년에는 50.5%로 절반을 넘기에 이르렀다.
서울 근교에 지어진 높고 빛나는 대단지 아파트는 비수도권 인구를 계속 빨아들이고 있다. 국회는 2016년 선거구를 획정하며 경기도 의석을 무려 8석이나 늘렸다. 서울과 인천도 각각 1석 증가했다. 반대로 영호남 의석은 2석씩 줄였다.
수도권 정당이 된 민주당에도 분명 딜레마는 있다. 양극화의 시대에 더는 지역이나 서민 계층을 대변하지 못하고 ‘수도권 중산층’ 정당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민주당의 정체성 변화가 지역소멸이나 계층 간 불평등 심화같이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합한지 의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권자 지형이 국민의힘보다 민주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달리 이야기하면 세대든 이념이든 지역적으로든 국민의힘이 점점 더 좁은 유권자 집단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