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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리포트〉 이색테마기획: 빌딩

“반지하·옥탑방·고시원은 이 시대 가장 슬픈 건물”

‘N포 세대 마지막 거처’ 반·옥·고

  • 박경은|고려대 노어노문학과 4학년 kyungeun0411@naver.com

“반지하·옥탑방·고시원은 이 시대 가장 슬픈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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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빨래’에서 주인공 몽골 청년 솔롱고는 꿈을 이루기 위해 ‘무지개의 나라’ 한국으로 온다. 그러나 5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옥탑방에서 산다. 솔롱고 역을 맡은 배우 임강성은 “나도 옥탑방에서 살아봤다”고 말했다. 

소위 반지하·옥탑방·고시원은 ‘N포 세대의 마지막 거처’로 통한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5월 대선에서 우리 사회의 ‘청년 주거 빈곤 현상’을 ‘반·옥·고’로 표현해 관심을 끌었다. 몇몇 청년은 “반지하·옥탑방·고시원은 이 시대의 가장 슬픈 건물”이라고 말한다. 필자는 현 세태의 음울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건축물인 반·옥·고를 취재했다.



TV 드라마가 미화하지만…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박상우의 소설 ‘내 마음의 옥탑방’은 “나의 기억 속에는 세월이 흘러도 불이 꺼지지 않는 작은 방 한 칸이 있다”라는 감미로운 문장으로 시작한다. TV 드라마 속에서 옥탑방은 청춘 남녀의 사랑이 싹트는 낭만적인 장소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 속 옥탑방의 삶은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 권모(30) 씨는 대학을 다니며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부터 3년째 서울 안암동 하숙집 4층 건물에 딸린 옥탑방에서 혼자 거주한다. 권씨의 방은 N포 세대가 머무는 옥탑방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옥탑방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다가구주택 옥상 마당에 ‘탑’ 모양으로 대충 지은 한 칸짜리 방이다.



바람을 막아주는 단열재가 시공되어 있을 리 만무하다. 초가을부터 얇은 알루미늄 현관문과 창틀로 찬바람이 숭숭 들어온다. 여름엔 태양열을 그대로 받아 방 안은 뜨겁게 달궈진다. 권씨는 “겨울에 너무 추워 키우던 고양이를 매일 밤 끌어안고 잤다”고 말했다.

“겨울철 하루는 방 안에 있다 건물 4층 실내로 가서 공용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 안이 미지근했다. 알고 보니 냉장고 온도보다 우리 방 온도가 더 낮았다.”

권씨는 이 방을 떠나지 못한다. 그의 얇은 지갑에 부담이 덜한 싼 집세 때문이다. 보증금 없이 식비·수도세·전기세 포함해 월세 30만 원이다. 권씨는 이 방에서 탈출하는 것이 인생 목표가 됐다.


“서류엔 없는 건물”

취업준비생 이모(여·28) 씨는 서울 종암동 4층 다가구주택 옥탑방에서 2년 동안 살았다. 같은 건물 내 다른 원룸은 월세 45만 원이지만, 이 씨의 방은 월세 38만 원으로 저렴했다. 이씨는 이 방에 대해 “3~4평 된다. 건물 옥상에 불법 증축되어 서류엔 없는 건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씨는 “방이 무지하게 더웠다. 단순히 꼭대기 층이라 더운 게 아니라 단열이 안 돼 태양이 내리쬐면 천장이랑 벽이랑 바닥이 바로 달아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통계개발원에 따르면, 올해 전체 청년 가구(249만5696가구) 중 20.3%(50만5492가구)는 반지하방, 지하방, 옥탑방, 고시원에 거주하는 주거 빈곤 가구에 속한다. 이는 다른 연령대 주거 빈곤 가구보다 2~3배 높은 수치다. ‘주거 빈곤 가구’란 주택법상 최저 주거 기준에 미달하는 가구, 지하나 옥상에 사는 가구, 비닐하우스나 고시원 등 주택 이외 거처에 거주하는 가구 등을 가리킨다.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 자료(2016)에서도 지하방과 옥탑방에 사는 20대 가구의 비중은 모든 세대 중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반지하방과 지하방 주거 가구는 20대가 100가구당 5.6가구로, 30대 0.2가구와 40대 0.3가구에 비해 월등히 높다. 옥탑방 주거 가구도 20대가 100가구당 0.2가구로 다른 세대에 비해 두 배 높다. 또한 지하방과 옥탑방에 거주하는 20대 가구의 비중은 해가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이다.

취업준비생 윤모 씨는 대학 졸업 후 30세가 되도록 아직 직장을 못 잡았다. 그는 지금 안암동 반지하방에서 산다.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25만 원으로 집세가 싸지만 사람이 살 곳이 못 된다는 게 윤씨의 말이다. 

“햇빛은 아예 안 들어오고 공기 순환도 당연히 잘 안 된다. 목과 기관지가 확실히 안 좋아졌다. 여기 사는 단 하나의 이유는 돈이다. 정말 탈출하고 싶다.”

서울 대학가의 멀쩡한 자취방은 보증금 1000만~5000만 원에 월세 50만~70만 원에 육박한다. 윤씨는 이 보증금과 월세를 감당할 좋은 직장을 구하지 않는 한 답이 없다고 말한다.



“비 새도 못 나가는 이유는…”

김모(여·27) 씨처럼 서울의 상당수 젊은 직장인은 돈을 벌어도 반지하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김씨는 서울 신림동의 반지하방에서 3년째 살고 있다. 이런 김씨는 곧 타의에 의해 이 방에서도 내몰리게 됐다.

김씨가 사는 반지하방은 지난해 여름과 올해 여름 큰비에 잇따라 침수됐다. 골목길보다 방이 더 낮은 곳에 있는 데다 배수시설에도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살림살이가 물에 젖어 김씨는 큰 불편을 겪었다. 김씨의 집주인은 결국 건물을 재건축하기로 결심했고 세입자 김씨에게 방을 비워달라고 통보했다. 김씨는 “반복적으로 비가 새고 침수되는 이런 방에라도 계속 있고 싶은 내 신세가 조금 처량하다”고 말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도 옥탑방·반지하살이의 고단함을 토로하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 다음은 20대 누리꾼들이 쓴 글이다.

“드라마 같은 데서 옥탑방을 미화하거나 희화화해서 생각보다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말 ‘헬 오브 헬’이다.”

“반지하에서 2년 정도 살았다. 열심히 돈 벌어서 빨리 탈출해야겠다는 ‘동기부여’를 받았다”

“반지하에 살지 않았다면 지금 더 건강하지 않았을까. 반지하에 살면 없던 병도 생긴다.”

서울 시내 고시원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은 고시원이 옥탑방·반지하에 못지않게 열악하다고 말한다.

대학원생 김모(여·27) 씨는 서울 서초동 한 상가건물 고시원에서 기거했다. 김씨는 “다시는 그런 데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김씨가 고시원에 손사래 치는 이유는 우선 작아도 너무 작은 방 면적이다. 김씨는 “2평 정도의 방에서 시체놀이하듯 살았다. 너무 좁은 데에서 지내다 정신이 어떻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툭하면 감기를 앓는다고 한다. 김씨 방은 고시원 건물 내 복도 쪽으로 창이 난 소위 내창방. 고시원 중에서도 ‘익스트림 체험’을 하는 곳으로 통한다.


내창방

김씨의 내창방은 창문이 건물 밖으로 난 방보다 월세가 5만 원 저렴했지만 외부의 신선한 공기가 들어올 틈이 없었다. 또한, 방안 환풍구를 통해 다른 세입자 방 먼지와 찌든 냄새 같은 것이 흘러들어왔고 잘 빠지지도 않았다고 한다.

한 누리꾼은 “고시원에 사신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아실 테지만 방이 햇볕도 잘 안 들고 다닥다닥 붙어 있어 답답하다. PC 모니터만 한 조그만 창문이 유일한 숨구멍인데 그마저 건물 주변 흡연 구역에서 온종일 올라오는 담배 연기 탓에 열어놓을 수 없다. 목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고시원은 2007년 4700여 개에서 2017년 1만1800여 개로 10년 새 2.5배나 늘었다. 



고시원 직접 가보니… “가장 가난한 사람이 가장 비싼 건물에 거주”
홍수지|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sjho0703@naver.com


서울시내엔 1층 상가, 2층 음식점, 그 위로 고시원인 건물이 많다. 이런 고시원은 건축법상 ‘주택’이 아닌 ‘제2종 근린생활시설’로 ‘다중생활시설 건축기준’이 적용된다. 국토교통부는 2015년 최소한의 생활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고시원 설립에 8가지 건축기준을 도입했다. 그러나 이 조치는 실효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필자는 외벽에 ‘~리빙텔’이라는 간판이 달린 서울시 성북구 안암동 고시원 건물을 찾았다. 세입자 장모(25) 씨의 양해를 구해 방문을 열자 화장실, 침대, 책상이 한눈에 들어왔다. 관리인은 방마다 개별 화장실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유리벽으로 된 간이 화장실은 방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방에서 취사는 금지돼 있다. 장씨는 “화장실에서 나오는 습기가 너무 고통스럽다. 창문을 열어두어도 반나절이 지나야 빠진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 번엔 화장실이 없는 방을 고를 것이라고 했다.

“여성 전용이라더니…”



고시원은 건축기준법상 범죄예방 설비를 갖춰야 한다. 그러나 필자가 방문한 안암동의 또 다른 고시원 ‘~하우스’의 경우, 현관에 설치된 번호 키가 작동하지 않았다. 한 여성 세입자는 “여성 전용 고시원이라고 해 입주했는데 관리인이 남성이라 오히려 더 불안하다”고 말했다. 

2,3층을 통틀어 40여 명이 거주할 수 있는 다른 한 고시원에는 공용 세탁실과 주방이 달랑 하나씩만 있었다. 법엔 개수에 관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어있지 않다. 소음 관련 규제도 유명무실하다. 세입자 이모(24) 씨는 “방음이 잘 안 된다. 옆방 사람이 통화하는 소리가 다 들려 애인이랑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다. 밤엔 코 고는 소리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국토교통부가 정한 1인당 최소 주거면적은 14㎡(약 4.2평)다. 그러나 필자가 둘러본 고시원 방 대부분은 이 면적에 못 미치는 것 같았다. “고시원은 사람이 살 데가 아니다”라는 말이 왜 많이 나오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런 고시원도 결코 월세가 싸지 않다. 간신히 발을 뻗고 누울 수 있는 방이 한 달에 45만 원이다.

고시원에선 환기도 큰 문제인데, 심지어 ‘창문이 없는 방’도 볼 수 있었다. 고시원을 알아보는 김모(24) 씨는 “방 한가운데에 기둥이 있는 방도 있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가격 때문에 한번 고려하게 되더라”고 말했다.

열악한 환경과 그리 저렴하지도 않은 방값에도 불구하고 방문한 고시원엔 빈방이 별로 없었다. 노량진에 위치한 고시원에서 거주하면서 공무원임용고시를 준비하는 노모(24) 씨는 고시원에 사는 가장 큰 이유로 보증금이 없는 점을 꼽았다. 

통학 거리가 멀어 학기 중에만 고시원에 거주하는 대학생 하모(24) 씨는 “고시원 방에 오래 있으면 우울증에 걸리기 십상이다. 바깥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잠만 자러 들어간다”고 했다.

“존엄성 파괴되는 건물”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에 따르면 고시원업은 “구획된 실(室) 안에 학습자가 공부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숙박 또는 숙식을 제공하는 형태의 영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고시원은 그 이름처럼 고시 공부하는 곳이어서 주거시설 관련 규제가 느슨하다. 그러나 월세 보증금 여력도 없는 대도시 주거난민들에게 고시원은 마지막으로 가는 거처다.

규제를 강화하면 고시원 공급이 줄어 주거 난민이 갈 곳을 잃을까?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은 고시원에 대해 “인간의 존엄성이 파괴되는 건물”이라고 말한다. 여기에다 월세가 싸지도 않다. 주거 난민에겐 더 떨어질 바닥도 없다는 이야기다. ‘민달팽이 유니온’에 따르면, 고시원의 평당 가격은 강남 타워팰리스의 평당 가격보다 비싸다고 한다. 한 세입자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비싼 건물에 살고 있다”며 쓴웃음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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