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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라인’ 동쪽으로 美 몰아내는 게 中 목표

미국 vs 중국, 태평양 패권전쟁

  • 장량(張良) | 중국청년정치학원 객좌교수·정치학박사

‘하와이 라인’ 동쪽으로 美 몰아내는 게 中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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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라인’ 동쪽으로 美 몰아내는 게 中 목표

지난해 7월 16일 서해 공해상을 항해 중인 미국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에 F-18 호넷 전투기가 착륙하고 있다.

6·25전쟁 휴전 이후 미국은 동아시아 정책을 변경했다. 소련의 남진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일본의 공업화를 가속화하고 △중국을 소련으로부터 떼어놓으며 △한국과 대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한 것이다. 미국은 당초 중국 공산화 이후에도 마오쩌둥과 화해해 소련의 남진을 방어할 계획이었으나 마오쩌둥이 뤼순과 다롄을 포함한 만주지역 통제권 확보 등을 위해 6·25전쟁에 개입하자 일본을 공업화하고, 한국과 일본에 군대를 주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틀었다. 이에 힘입어 한국과 대만은 공업화에 나서면서 군사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한국과 남베트남 등 동아시아 연안(rim)으로 군사력 전진 배치를 추구하던 미국은 베트남 전쟁이 교착 상태에 놓인 1969년 7월 닉슨 독트린(제2의 애치슨 라인)을 발표해 다시 한 번 서태평양 열도선(오키나와-괌)으로의 후퇴를 선언했다. 닉슨 독트린은 1970년대 초 △미·중 및 중·일 수교 △오키나와 행정권 일본 반환 △제7사단 한국 철수 △미군의 남베트남 철수로 이어졌다. 닉슨 독트린은, 중·소 분쟁을 이용해 국력을 회복할 시간을 제공해 소련과의 냉전에서 미국이 승리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중국의 ‘진주목걸이’ 전략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세계 유일 초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은 2000년대 들어 재정과 무역의 쌍둥이 적자가 누적되고, 중국의 부상이 본격화하며, 9·11테러가 상징하듯 극단주의 이슬람 세력의 도전이 첨예화하면서 일대 위기를 맞았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2003년 이라크 전쟁, 이란과의 계속된 대립 등으로 인해 중국의 부상에 제대로 대응할 여유를 갖지 못했다. 이렇게 된 데는 극단주의 이슬람 세력의 도전도 도전이지만,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 대한 전통적 경시도 큰 몫을 했다. 미국은 서부 러시아를 포함한 동유럽과 함께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가진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 관심을 집중한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2008년 경제위기로 전 세계가 불안정에 처한 상황에서도 중국의 경제성장은 지속됐다. 2014년엔 구매력(Purchasing Power Parity) 기준으로 중국이 미국의 경제력을 추월했다. 일본마저 ‘미국이냐, 중국이냐?’를 두고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중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에 힘입어 대만, 동남아국가연합(ASEAN) 회원국, 한국 등 인근 국가를 경제적으로 포용하는 한편, 해·공군력 증강을 통해 남중국해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얀마, 스리랑카, 몰디브, 파키스탄, 세이셸, 탄자니아 등의 인도양 항구들을 목걸이 형태로 연결하는 군사전략, 이른바 ‘진주목걸이 전략’으로 아프리카 동해안을 포함한 인도양에 대한 영향력도 강화했다. 우리의 서해, 동중국해, 남중국해는 중국의 내해(內海)로 변해가고 있다. 중·일 갈등의 진원지인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도 중국의 동진(東進) 추진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중국은 센카쿠 열도 분쟁을 국가통합과 서태평양 진출의 전제조건인 해·공군력 강화 기회로 이용한다. 또한 미국에 ‘신형대국’ 관계를 주장하면서 서태평양에 대한 통제권을 넘겨줄 것도 요구한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으로 동아시아에서 지배적 위치가 흔들리자 2009년 2월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의 ‘아시아 소사이어티’ 연설을 통해 ‘아시아 회귀(re-balancing to Asia)’를 선언했다. 레이 마부스 해군장관은 2014년 6월 척당 33억 달러에 달하는 1만5000t급 스텔스 구축함 3척이 건조되면 태평양 지역에 우선 배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때늦은’ 아시아 회귀

하지만 때늦은 결정이었다. 1980년 미국-동아시아 간 무역액이 이미 미국-유럽 간 무역액을 능가했으며, 2000년에는 동아시아로부터의 수입액이 미국-유럽 간 무역액을 추월했다. 초대국 중국의 부상이 1970년대 말부터 시작돼 2000년대 초에는 도약 단계에 들어섰는데도 미국은 여전히 대서양주의(유럽 우선주의)에 빠져 있었다. 미국이 동맹국과 우호국에 제공할 경제·안보자산은 점점 줄어든다. 향후 미국의 최대 과제는 재정 부족과 동아시아 동맹국이 미국에 대해 갖는 신뢰의 간극을 메우는 일이 될 것이다.

미군을 ‘전략적 유연성’ 개념의 기동군 형태로 개편하는 것도 해외 곳곳에 고정된 군부대를 주둔시킬 재정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시오노 나나미가 쓴 ‘국가와 역사’에 따르면 로마제국도 국력이 쇠퇴하는 말기로 가면서 전략적 유연성에 기초해 라인 강, 도나우강, 브리타니아(영국), 다키아(발칸 반도) 등 곳곳의 전선에 주둔군이 아닌 기동군을 배치하는 방향으로 군사전략을 변경했다. 오스만투르크 제국도 마찬가지다. 대영제국이 1950년대 중반 이후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 등을 제외한 수에즈 운하 인근의 해외 군사기지를 포기한 것도 결국 재정 부족 때문이었다.

2013년 기준 매년 1500억 달러 안팎의 국방비를 지출하는 중국은 2014년부터 연 10% 넘게 국방비를 증액했다. 8~9년 후에는 미국과 유사한 수준의 국방비를 지출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렇게 되면 20년 후 중국은 적어도 규모 측면에서는 미국과 유사한 수준의 군사력을 보유할 전망이다. 산업화한 초대국 중국의 군사력 증강 속도는 그만큼 빠르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 일본, 영국 등이 축적한 것과 같은 전쟁 경험이 없다. 같은 첨단무기로 무장해도 훈련만 한 군대와 실전을 경험한 군대의 차이는 크다. 중국의 군사력은 이 점을 감안해 평가해야 한다. 중국의 우주전력도 세계 최강 미국에 비해 크게 열세다. 전통적 육군 국가인 중국의 해·공군력 역시 미·일에 비해 취약하다.

중국의 연안 지역을 직접 겨냥할 수 있는, 백령도-평택-제주도를 연결하는 한국 서해안의 전략적 가치가 상승한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과 관련해 ‘비등점’은 동중국해, 남중국해와 함께 서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에게는 중·일 간 충돌의 현장인 동중국해와 함께 국가 운명과 직접 관련된 서해가 특히 중요하다. 현재의 국력 증강 속도를 감안하면 중국이 초강대국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며 15~20년 후에는 적어도 동아시아-서태평양 지역 패권국가가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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