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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서울과 강남으로 나누자

서울을 서울과 강남으로 나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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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서울과 강남으로 나누자

시카고 건축협회의 보트투어에 오른 관광객들이 시카고강을 따라 도심의 초고층빌딩 숲으로 들어서고 있다. 초고층 빌딩이 고층, 중층, 저층 빌딩과 함께 수직적, 수평적으로 집적되어 경관미를 연출한다.

②실패한 방법론 | 용산 프로젝트 좌초

지금 세계는 자본주의(capitalism) 체제가 주름잡고 있다. 세계적 금융-경제 위기가 찾아왔지만, 대다수 국가에선 ‘자본주의의 틀 내에서 해결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한때 세계를 양분했던 공산주의(communism)가 몰락하면서 가졌던 가장 큰 의문도 “자본주의는 왜 망하지 않는가”였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따르면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으로 창출한 이익 중 최저생활 유지에 필요한 임금 이외의 모든 이익을 자본가에게 착취당하고 있고 이런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모순은 생산량의 증대에 따라 증폭돼 필연적으로 자본주의를 몰락으로 이끌어야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모순이 생산량의 증대에 따라 실제로 증폭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자본주의는 몰락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이유를 마르크스 이후의 서구 맑시스트는 ‘자본주의의 유연성(flexibility)’에서 찾았다. 즉, 생산량 증대에 따라 자본의 이익이 극대화돼 독점자본의 형태가 되면,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임금을 엄청나게 올려주어 갈등을 어느 정도 해소해버리는 유연성을 발휘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유지해나가더라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갈등을 조장하지 않는다. 시장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균형점을 찾아 모두 이익을 얻는 평화스러운 곳이다. 타의에 의해 내적 갈등과 위기가 발생하면 자본주의는 스스로 대처하고 관리하고 지연시켜 결국 갈등과 위기를 타넘고 평화스러운 윈-윈 상태를 회복한다. 그것이 맑시스트가 보기에는 ‘가식적인 평화’임에도 말이다.



‘단군 이래 최대사업’이라더니

‘단군 이래 최대사업’으로 불린 28조원 규모의 ‘용산 국제업무지구’ 사업은 ‘서울 개조’의 간판 격이다. 그런데 이 사업이 최근 좌초 위기에 처했다. 경제위기 등 외부 탓으로 돌리기에 앞서 ‘반자본주의적 방법론’에 문제가 있었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다.

위기는 사업주체인 (주)용산역세권개발이 2차 중도금 8000억원을 납부기한(3월31일)내 토지 매각사인 코레일 측에 지급하지 못한 데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용산역세권개발과 코레일은 소송을 벌일지 모른다. 2년 이상의 사업차질이 불가피해졌다. 2차 중도금 연체 이자만 매월 120억원(연리 17%). 서울시와 국민연금 등 4200억원을 출자한 공공기관도 사업 연기나 무산 시 막대한 손실이 예상된다. 이렇게 된 데는 금융기관의 유동성 위기에 따른 대출 중단이 일차적 이유다. 그러나 토지보상 문제를 둘러싼 서부이촌동 주민들과의 갈등이 이 사업을 위태롭게 한 것도 사실이다. 투자자들에게 부정적 요소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사업 초기, 서울시는 코레일 소유 용산 철도기지창 부지(44만3000㎡)만을 국제업무지구로 조성하려는 코레일 측 계획을 바꿨다. 인근 서부이천동 한강변 주택지역(12만5000㎡)도 사업에 포함시키도록 했다. ‘세계적인 명품 수변도시’를 만들겠다는 청사진이었다. 사업주체 측은 이 지역 아파트, 주택 소유자 2240가구 중 50% 이상에게서 동의서를 받아 전체 토지를 수용한 후 한강변인 이곳에 초고층빌딩을 세우고 그 뒤편으로 주상복합아파트를 지어 입주권을 주는 방식(수용식 보상)을 진행했다.

그러나 동의서가 잘 걷히지 않았다. 일부 주민은 보상 방식에 불만을 나타냈다. “땅부터 내주고 나중에 토지보상금을 책정하는 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 보상금이 적게 나와 쫓겨나더라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지 않느냐”는 불만이었다. 아파트 주민들은 강변북로 방향 아파트 벽면에 서울시를 성토하는 대형 플래카드를 걸어놓았다.

‘한강 공공성 회복’의 그늘

한강변 서부이촌동 토지의 수용 과정은 서울시가 내건 개발방식인 ‘한강 공공성 회복’과 맥이 닿아 있다. ‘공공성 회복’이라는 어휘는 위압적으로 들렸다고 한다. 한강변 주민은 ‘나는 공공재(公共財)인 한강변을 부당하게 점유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게 됐다. 이는 ‘내 아파트는 내가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자기 자산(資産)으로부터의 ‘소외’를 강요하는 것이다. 주민은 ‘뺏길지 모른다’는 위기감과 상대편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됐다. 이런 가운데 상대편은 “땅부터 내놓으면 나중에 보상비를 결정해주겠다”는 수용방식을 추진했다. 위기와 불신은 사실로 확정됐다. ‘온건보수’적이던 주민은 갈등과 투쟁을 마다하지 않게 됐다.

용산 사업을 시행하는 ‘대기업 자본’과 한강변에 주택과 토지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중산층 자본가’는 사업 집행 이전에는 계급적 이해를 공유했다. 그런데 ‘한강 공공성 회복’이라는 개발 방식은 이들을 분열시키고 대립하게 했다. 애초 존재하지도 않던 적대관계, 갈등관계를 새로 낳은 ‘반(反)자본주의 방법론’이며 ‘유연성이 결핍된 커뮤니케이션’으로 평가될 수 있다. 가스통 대신 인감도장으로 개발에 저항하는 중산층 자본가도 스트레스를 받기는 마찬가지다.

이는 ‘청계천 복원’ 방식과 대비된다. 당시 서울시는 ‘영세세입자 강제퇴거’라는 필연적 계급갈등이 발생하자 물질적 보상(대체상권 조성)과 설득(친환경 이슈로 생존권 이슈 덮기)이라는 자본주의적 유연성으로 갈등을 해체하고 사업을 성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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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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