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3월 인도에서 열린 요가 페스티벌에 참석한 한 종교지도자.
종교는 이처럼 문명의 형성과 유지 과정뿐만 아니라 문명의 교류와 만남에서도 중요하다. 십자군 전쟁, 중세 이슬람의 확산, 서양의 남아메리카 진출, 청교도의 북미 이주와 같은 중대한 사건에 종교가 큰 역할을 했음은 분명하다.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가 중국을 거쳐 한국과 일본으로 전파되면서 현지 문화를 더욱 기름지고 풍요롭게 만들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종교는 문명 간의 교류를 대단히 거친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십자군 전쟁, 유럽의 남아메리카 진출과 같은 사건은 종교적 배타주의가 문명 간의 만남을 얼마나 끔찍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지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종교의 영향력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다. 적성국을 ‘악의 제국’으로 규정했던 레이건 대통령이나, 이슬람 국가들과 전쟁을 벌인 부시 대통령 부자(父子)에게서 ‘종교적’ 색채를 감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리고 수천 명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간 9·11 테러 역시 ‘지하드(Jihad)’라는 이슬람식 성전(聖戰) 개념을 알지 못하고선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이렇듯 종교는 여전히 문명의 교류에서 큰 변수로 기능하고 있다. 이 글은 20세기 후반 미국에 진출한 동양 종교 지도자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문명의 교류와 충돌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깨달음’을 얻었다는 동양 종교 지도자들이 미국에서 일으킨 각종 스캔들을 통해 문명의 교류와 충돌 양상을 되짚어보는 것이 이 글의 주된 요지다.
청교도들이 이주하면서 형성된 미국은 전형적인 개신교 국가였다. 하지만 상황은 급격하게 변화한다. 19세기 말부터 활발해진 동서양의 교류로 인해 동양 종교가 미국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나아가 중국인을 선두로 많은 동양인들이 미국에 정착하면서 동양 종교의 미국 진출은 가속화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소강기를 거치지만 전후 미국인의 동양 종교에 대한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특히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란 미국의 젊은이들은 동양 종교와 같은 새로운 것을 받아이는 일에 거리낌이 없었다. 게다가 진화론과 같은 현대적인 과학 이론을 거부하는 근본주의적 기독교 역시 동양 종교의 확산에 일조했다. 그중에서도 기독교에 대한 불만이 미국인들이 동양 종교에 눈을 돌리게 된 으뜸가는 이유였다.
동양 종교에 매혹된 서양인들

비틀즈 멤버들은 동양종교에 관심이 많았다.
동양 종교에 매혹된 이들은 영적 스승을 찾고자 대양을 건너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예컨대 그룹 비틀스(Beatles)는 1968년 초월명상(Transcendental Meditation)의 창시자인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Maharishi Mahesh Yogi·1917~2008)의 아시람(ashram·사원)을 방문한다. 비틀스의 인도 체류는 당시 서양을 휩쓸던 동양 종교의 인기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서양인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알게 된 동양의 이른바 ‘깨달은’ 스승들 역시 가르침을 전하고자 먼 길을 나서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로시(Roshi·老師)라고 불리던 일본 선승을 필두로 동양의 종교 지도자들이 미국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한다. 이 글에서 다룰 바그완 스리 라즈니시, 스와미 묵타난다, 초감 트룽파 등이 바로 이 무렵 미국에 건너간 인물이다. 동양 출신의 종교 지도자들은 스승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구루(guru)’로 총칭됐다. 구루는 산스크리트어로 ‘지식을 전달하는 자’라는 뜻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지식은 ‘영적인 자기완성에 필요한 앎’을 의미한다. 미국에서 구루는 영적인 지혜를 전해줌으로써 개인의 영적 완성을 이끌어주는, 동양 출신의 종교적 스승을 의미했다. 이제 미국은 동서양 종교가 뒤섞인 도가니가 됐다. 근본주의적 개신교에서부터 가톨릭, 이슬람, 유대교, 힌두이즘, 불교, 도교, 뉴 에이지, 신지학(神智學·Theosophy), 크리스천 사이언스, 사이언톨로지(Scientology), UFO 컬트에 이르는 온갖 종교가 한 공간에서 어울렸던 것이다. 그리고 동양의 구루는 동양 종교의 상징으로 문명 교류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