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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법 미비 틈타 들어온 중국 동포들, 의료·취업 사각지대에서 신음

위장결혼 무국적자에겐 인권도 없다?

국적법 미비 틈타 들어온 중국 동포들, 의료·취업 사각지대에서 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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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정부는 ‘위장결혼으로 인한 무국적자’의 한국 체류 방안을 마련하라는 인권위 권고를 수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우리 국민과 위장결혼했다가 그 사실이 적발돼 국적을 잃은 중국 동포 여성들은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가혹한 현실에 머물게 됐다. 한국에서 살기를 간절히 원하는 이들에게 인도주의적인 배려를 하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일까.
국적법 미비 틈타 들어온 중국 동포들, 의료·취업 사각지대에서 신음

무국적자는 건강보험, 휴대전화 가입이 안 되고 정식으로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 위장결혼에 따른 국적 말소로 무국적자가 된 한 여성이 단칸방에서 식사 준비를 하는 모습.

중국동포 김숙희(가명·여·46) 씨는 1996년 결혼해 한국으로 오자마자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러나 1999년 1월 결혼소개자가 허위결혼 알선혐의로 체포된 뒤 위장결혼자로 몰려 2000년 2월 집행유예 2년6개월을 선고받고 지인의 신원보증으로 출소했다. 이후 그는 정상적인 생활을 해왔고 집행유예 기간이 끝난 2002년 8월 한국 여권으로 중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03년 5월 중국에 다녀오려고 인천공항에서 출국수속을 밟다 단속돼 화성외국인보호소로 보내졌다. 김 씨는 그제야 자신의 한국 국적이 말소됐고, 자신이 무국적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문제는 법무부가 김 씨를 중국으로 강제퇴거 조치하려 해도 무국적 상태이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점. 당시 김 씨는 “중국으로 보낼 수 있으면 보내달라”고 요구했지만 중국 여권이 발급되지 않는 상태라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8개월 이상 보호소에서 머물던 김 씨는 공탁금 1000만 원을 내고 보호일시해제로 풀려났다. 김 씨는 이후 3개월마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를 방문해 체류연장 신고를 하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1000만 원을 돌려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위장결혼으로 인한 무국적자에겐 인권이 없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의 분명한 입장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지난해 9월 1일 법무부, 외교통상부, 보건복지부 등 3개 정부 부처에 ‘위장결혼으로 인한 무국적자 인권증진 방안’을 권고했다. 주요 내용은 무국적자의 지위와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할 것, 대한민국 내에서 안정적으로 체류하면서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 타국에 거주하는 가족의 사망 등 인도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 타국으로의 출국 및 재입국이 가능하도록 여행증명서를 발급할 것, 건강한 생활을 향유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정부의 의료비 지원사업 대상에 포함시킬 것 등이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위법한 행위로 무국적자가 된 사람의 체류를 허용할 경우 위장결혼을 방조할 우려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인권위 권고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통보해왔다고 한다. 이번 3개 부처의 ‘인권위 권고 불수용’ 결정을 통해 위장결혼으로 인한 국적취득 행위는 내국인에게 피해를 주고 국가를 기만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라는 정부 당국의 시각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나약한 개인

이러한 한국 정부의 입장에 대해 필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인권국가를 지향하는 국가의 시책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필자는 2007년부터 무국적자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2009년부터는 법무부, 국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무국적자를 대변해 문제제기를 해온 바 있다. 아래에서는 인권의 관점에서 정부의 판단에 대해 반박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정부의 인권위 권고 불수용은 ‘모든 책임을 나약한 개인에게 떠넘기고 정부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소극적 태도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 정부는 아무런 책임도 없을까? 사안의 본질을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당사자들이 처한 상황을 자세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앞서 김 씨의 사례를 보자. 그는 체류연장 신청을 하러 갈 때마다 출입국 공무원으로부터 빨리 중국으로 돌아가라는 추궁을 당한다. 중국으로 가고 싶어도 못 가는 판에 이런 치욕스러운 말까지 듣다 보니 심각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김 씨는 화가 나서 중국영사관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려 했지만 중국영사관 측은 아예 만나주지도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출입국사무소 직원과 함께 중국영사관을 방문했지만, 역시 답변은 “무국적자가 다시 중국 국적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것이었다. 입국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게 중국 측의 입장이다. 김 씨처럼 오도 가도 못하는 사람의 경우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한국 법무부의 비공식적인 요청에 대해서도, 중국 측은 “한국 정부와 당사자 사이의 문제”라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김 씨의 한국체류 기간은 벌써 16년째. 그중 무국적자로 살아온 기간이 8년이다. 무국적자인 그는 본인의 이름으로 취업활동을 할 수 없고, 통장을 개설할 수 없으며, 건강보험에도 가입할 수 없다. 심지어 현재 동거하는 한국인과 혼인신고조차 할 수 없다. 그는 한국 땅에서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의 인권위 권고 불수용 소식을 접한 김 씨는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친 것처럼 허탈해했다. 그는 “저는 언제까지 무국적자로 살아야 합니까, 위장결혼 문제로 이미 벌은 다 받았는데 정말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라며 울분을 토했다.

정부의 책임

2009년 2월 김 씨와 비슷한 사연으로 무국적자가 된 중국동포 여성 12명이 모였다. 당시 필자는 ‘무국적자 구제를 위한 시민모임’을 결성해 이들을 도울 방도를 찾고 있었다. 김춘진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을 통해 무국적자 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같은 해 3월 10일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위장결혼으로 인한 한국 국적 상실자 구제를 위한 입법 공청회’를 열기도 했다. 이 무렵만 해도 김 씨는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붙들고 살아갈 방법을 모색했다. 자신의 위장결혼을 진심으로 반성하며 법무부와 인권위에 도움도 요청했다. 그러나 김 씨와 동료들의 간절한 노력에도 한국 정부의 방침은 달라진 것이 없다. 이제 김 씨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자포자기한 상태다.

김 씨에게 국가는 ‘위장결혼은 한국 사회에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중죄 중의 중죄이며, 그 같은 행위를 저지른 사람은 인간적인 대접조차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어쩌면 김 씨가 가혹한 현실에 처해 고통받는 것이 바로 정부가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진지하게 짚어볼 문제가 있다. 인과응보에 따른 일벌백계를 전가의 보도처럼 강조하는 정부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가 하는 점이다. 매우 유감스럽게도 현 정부는 피해자의 눈물을 외면할 처지가 못 된다. 이제 와서 처벌의 효과를 누릴 입장도 아니다. 김 씨와 같은 무국적자가 생겨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이를 방지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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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필│동포세계신문 대표 겸 편집국장, 전(前) 무국적자 구제를 위한 시민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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