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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추(老醜) 괴물’ 막으려면 처벌보다 예방, 소외감 달래야”

범죄심리 전문가 이웅혁 교수가 말하는 노인 범죄

“‘노추(老醜) 괴물’ 막으려면 처벌보다 예방, 소외감 달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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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61세 이상 노인 범죄 비율, 12년 새 3배 급증
  • ● 노인-사회 잇는 연결고리 약화로 범죄 유발
  • ● 노인 특유의 사고 경직성이 ‘격정 범죄’로 비화
  • ● ‘범죄 투사’에서 ‘사회복지사’로 경찰 역할 바뀌어야
“‘노추(老醜) 괴물’ 막으려면 처벌보다 예방, 소외감 달래야”
세칭 ‘어부 살인.’ 2007년 한여름에 벌어진 끔찍한 사건을 기억하는가. 그해 8월 한 70대 어부가 전남 보성과 고흥 앞바다에서 자신의 배에 공짜로 태워주겠다며 대학생 남녀 2명을 바다로 유인해 처참히 살해하고, 20여 일 뒤 다시 20대 여성 2명을 같은 수법으로 사망케 한 그 잔혹한 사건 말이다. 범인 오모(당시 71세) 씨는 남학생을 날카로운 어구(漁具)를 사용해 바다에 빠뜨려 숨지게 하고, 여학생을 성추행하려다 실패하자 그마저 바다로 밀어 넣었다. 특히 오씨는 범행 동기에 대해 “처녀니까 만져보고 싶어서 그랬다”고 태연히 진술해 전 국민을 경악시켰다. ‘노인과 바다’가 ‘노인과 범죄’로 바뀐 순간이었다.

오씨는 2010년 6월 사형 확정판결을 받았지만, 욕정에 눈멀어 물고기 대신 4명의 고귀한 인명을 빼앗은 연쇄살인 행각을 벌인 그가 통상 무력할 것으로 여겨지는 70대 노인이란 사실에 우리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브레이크 없는 노인 범죄

비단 그뿐인가. 최근 노인에 의해 발생하는 강력범죄는 큰 사회적 파장을 낳았다. 5월 28일 21명의 환자와 간호조무사의 목숨을 앗아간 전남 장성 효사랑요양병원 화재 참사는 뇌경색증으로 입원한 82세 치매 남성 김모 씨의 방화가 원인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같은 날 서울 지하철 3호선 매봉역에서 도곡역으로 가던 전동차 안에서 미리 준비한 인화물질을 바닥에 뿌리고 불을 지른 이도 71세 남성 조모 씨였다. 자칫 2003년 발생한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 같은 대형 참사로 번질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범죄를 저지른 조씨는 7월 11일 1심 판결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앞서 4월 전남 영암 모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대낮에 여학생 4명을 성추행한 사건의 범인 역시 64세 선원 박모 씨였다.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전체의 11%. 2040년엔 3명 중 1명이 노인일 정도로 고령화 속도가 빠르다. 2050년이면 세계 최고령 국가가 될 것이란 우울한 전망마저 있다. 이처럼 노인 인구가 나날이 증가하면서 절도·사기 등 노인 대상 범죄가 기승을 부리지만, 한편으론 노인이 저지르는 범죄 비율 역시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전체 범죄 중 61세 이상 노인(국내 대다수 노인 범죄 연구자는 61세 이상을 노인 범죄의 연령기준으로 삼는다)의 범죄 비율은 2012년의 경우 7.3%. 이는 2000년의 2.7%에 비해 12년 새 3배 가까이 급증한 수치. 특히 61세 이상이 저지른 범죄 중 71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도 2000년 14.6%에서 2012년엔 21.2%로 크게 늘었다.

노인은 신체적·정신적으로 허약하므로 통상 범죄 피해자이기 쉽다는 사회 통념을 깨뜨리며 급속히 가해자로 변모해가는 이런 현실에 대한 대책은 없는 것일까. 최근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유병언 전 회장의 도피, 동부전선 GOP 총기난사, 김형식 서울시의원의 재력가 ‘살인교사’ 혐의 등 각종 굵직한 사건과 관련해 공중파 및 종편 채널로부터 끊임없이 출연 요청을 받는 경찰대 출신의 범죄심리 전문가 이웅혁(49·경찰청 과학수사 자문위원, 경찰청 대테러협상위원)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무서운 노인’의 속출을 어떻게 분석할까. 이젠 범죄에서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걸까.

고령화 시대 ‘뇌관’

“‘노추(老醜) 괴물’ 막으려면 처벌보다 예방, 소외감 달래야”

장성 효사랑요양병원 방화 용의자인 80대 남성 김모 씨(가운데)가 5월 30일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나왔다.

▼ 왜 노인 범죄가 급증한다고 보나. 노인 인구 증가 속도보다 강력범죄 증가 속도가 더 빠르다.

“범죄 유형에 따라 그 원인을 좀 달리 봐야 한다. 사실 취약계층 노인에 의한 절도도 빈발하는데, 그건 경제적 빈곤과 관련이 있다. 구체적 사례를 들면, 대형마트에서 한 할아버지가 계산대에 섰는데 그가 쓴 모자에서 핏물이 떨어지는 걸 종업원이 보고 기겁을 했다. 다친 줄로 알고. 근데 모자를 벗겨보니 머리 위에선 훔친 삼겹살이 녹고 있었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상점 절도 사건의 전형이다. 일정한 소득이 없어 먹고살기 위해 각종 식료품이나 소주, 담배 같은 기호품을 훔치는 건 그야말로 절대적 빈곤 때문이다. 반면 ‘만성적 직업범죄자(career criminal)’는 노인이 돼서까지 평생 죄를 저지르는 경우다. 그럼에도 큰 틀에서 본다면, 결국 노인 범죄 발생의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청장년층에 비해 사회와 많이 유리돼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직업 상실과 은퇴에 따른 자아존중 상실과 고립감, 배우자와의 사별, 이혼이나 자녀 출가에 따른 가족해체, 질병 등으로 노인과 사회를 잇는 연결고리들이 약해지면서 한층 범죄에 이르기 쉬워진다. 가족이나 사회로부터 소외받는 데서 오는 박탈감이 정신적 문제를 야기하고, 그게 노인 범죄 급증에도 투영되는 것이다.”

▼ 노인 범죄는 어쩌면 노인 절대 인구 증가에 따라 생겨난 사회병리학적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더라도 우리나라 경우는 유독 흉악한 범죄가 많은 것 같다.

“아직 국가별로 노인 범죄를 비교한 통계나 연구가 변변히 없는 실정이어서 단언키는 어렵지만, ‘격정 범죄’가 많은 건 분명해 보인다. 예컨대, 지하철역에서 70대 남성 2명이 사소하게 몸을 부딪친 후 우발적으로 폭력사건을 일으킨 적도 있는데, 이는 노인 특유의 완고함이 순간적 감정 폭발로 이어진 격정 범죄 사례다. 가부장적 문화 아래 ‘어르신’ 대접을 받던 시대에서 이젠 권위가 하락한 한낱 무력한 존재로 전락한 현실 간의 괴리 상태에서 자신이 과거에 누린 사회적 지위나 체면에 손상이 생겨 분노를 느끼면 그걸 빨리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폭력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여겨서다. 노인 특유의 사고 경직성에서 보면, 그런 게 용납이 안 되는 것이다. 또한 생물학적으로도 노화에 따른 호르몬 분비 변화로 충동조절 능력이 약해지는 것도 거기에 상승작용을 일으킨다고 볼 수 있다. 2008년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숭례문 방화사건 역시 그 연장선에서 파악된다. 평범한 70대 남성 채모 씨가 자신의 땅이 신축 아파트 건설 부지에 포함됐는데 보상금 액수에 불만을 느끼곤 사회에 분노를 표출하려고 불을 질렀다. 해당 공무원이 나름대로 채씨를 납득시키기 위해 여러 차례 설명했을 텐데도, 그로선 그 액수와 보상 절차 자체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적어도 자기 기준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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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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