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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처럼 사각사각 박정희처럼 또박또박

메모의 정치학

이병철처럼 사각사각 박정희처럼 또박또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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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모. 별것 아닌 듯해도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 메모는 디테일을 살려주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잊지 않게 해준다. 이런 것들이 훗날 우리의 경쟁력을 높이고 삶을 윤택하게 한다.
이병철처럼 사각사각 박정희처럼 또박또박

1979년 8월 30일 전북 도청에서 메모하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메모를 하여서 무엇 하나, 성화를 받치어 무엇 하나, 속상한 일이 하도 많아, 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세, 니나노~

메모할 새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많은 사람은 “안 적어도 사는 데 아무 지장 없다”고 말한다. 반면, 어떤 사람은 매일 무엇인가를 기록한다. 대다수 사람은 ‘적어두지 않으면 안 되는 일’에 부딪혔을 때만 수동적으로 가끔 메모한다.

안 적어도 사는 데 지장 없다?

그러나 메모와 관련해 ‘열혈 활용파’와 ‘적당 무시파’ 중에선 전자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실제로 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 중 상당수는 메모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메모=정보, 정보=(지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경험한 일이라 다 아는데 왜 메모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맞는 말이다. 다만, 사람은 다 아는 일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린다. 하루 동안 한 일과 생각 중 90%는 망각된다. 이 가운데는 나중에 긴요하게 쓸 내용이 많다. 메모는 뇌의 보조 기억장치로서 매우 요긴하다.



‘젊은 날의 초상’을 쓴다면

예컨대 이문열 같은 작가가 ‘젊은 날의 초상’ 같은 자전적 소설을 쓴다고 치자. 메모하는 습관을 갖고 있었다면 유년 시절이나 대학 시절에 대해 쓸 내용이 풍부해진다. 글의 깊이도 달라진다. TV 드라마 작가 중 상당수는 드라마 시나리오를 집필하기 전에 드라마에 들어갈 내용을 충분히 취재해 기록한다. 이를 위해 먼 외국을 여행하기도 한다. 이런 내용이 드라마를 감칠맛 나게 한다.

디테일에서 갈린다

대중을 상대로 일하는 사람은 일반상품과 명품이 ‘디테일’에서 갈린다는 점을 안다. 메모는 디테일의 품질을 높여주는 좋은 방법이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메모 습관까지 갖고 있으면 금상첨화다. 범재에게 메모 습관은 천군만마의 동맹군이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메모 대왕’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최고의 애장품이 수첩이라고 할 정도다. 깨알 글씨로 빼곡히 쓴 것도 모자라 다른 종이까지 덧댄 두툼한 수첩들이다. 그래서 김 전 대통령의 말은 교과서였다. 정확한 수치와 풍부한 인용으로 이뤄진 그의 말은 곧 글이어서 그대로 받아 적으면 기사가 됐다는 것이 기자들의 평가다. 전문가들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그와 면담하면 오히려 강의를 듣고 나오기 일쑤였다. 그렇게 치열하게 읽고 들은 것을 기록해 고졸 학력을 극복한 결과, 대통령의 꿈을 이룬 것이다.

淸, 군사혁명, 어머님 대구행

지난 3월부터 서울시가 개방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신당동 가옥엔 1961년 5월 달력 사진이 걸려 있다. 1961년 5월 16일, 역사적인 그날엔 ‘청(맑음)’ ‘군사혁명’ ‘반공’ ‘어머님 대구행’이라는 메모가 있다. 박 전 대통령도 메모광이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을 방문한 이들은 벽을 가득 채운 지도와 그의 메모에 압도됐다. 아버지를 닮아 박근혜 대통령도 메모광이다. ‘수첩공주’라는 부정적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이런 메모를 바탕으로 ‘깨알 지시’를 내리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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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 rheeh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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