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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 위해 불공정 감수할 순 없나

어린이집 CCTV 논란으로 본 정의의 한계

더 나은 세상 위해 불공정 감수할 순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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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 정신 사랑 윤리 같은, 숫자로 측정 못하는 가치가 사람 뽑는 과정에서 무시된다. 수치화할 수 있는 잣대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게 과연 옳을까.
더 나은 세상 위해 불공정 감수할 순 없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가 어린이집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 합의에 실패했다. 이 법안이 좌초할 위기에 처하자 전국의 영유아 부모 단체와 다수 국민이 분노한다. 수년 동안 잊을 만하면 반복적으로 일어난 아동학대 사건에 국민은 경악해왔다. 학대 양상은 도덕적 측면에서 이해할 수준을 넘었고, 어린이가 보육원 교사의 폭행으로 사망하는 사건까지 일어나면서 이대로 그냥 둘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시급한 문제는 아동학대를 막고 보육시설, 유치원에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의 불안감을 없애주는 것이다. 해결 방안으로 나온 게 모든 어린이집에 CCTV를 설치하도록 하는 법안이었다. 학부모가 24시간 감시할 수 있도록 해 학대를 막고 부모의 불안을 줄이자는 논리다. 이와 유사한 법안이 벌써 4번이나 발의된 바 있으나 입법은 번번이 무산됐다. 입법을 무산시킨 표면적 논리는 인권 및 교권 침해 요소가 있으며 실효가 별로 없을 것이라는 점. 일부에선 보육시설 단체의 로비 탓이라고 음모론을 내놓는다. 

근본적 질문 놓쳤다

CCTV를 설치한다고 아동학대가 근절되지는 않겠지만 억제 요인이 되기는 할 것이다. 아동학대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합리화할 수 없으며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측면에서 CCTV 설치는 합당하다고 볼 수도 있다. 반면 안 그래도 자기 자식만 중요시하는 젊은 학부모가 늘어가는 시대에 부모가 자녀를 언제나 들여다보게 된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분쟁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 자식에 관한 일을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며, 그런 부모라면 그다지 인간적이거나 부모답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어린이집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는 영역, 장소마다 감시 장비를 설치해야 한다면 CCTV를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 몇 군데나 남을까. 회사에서도 비리가 벌어진다. 게으름 피우는 직원은 어느 조직에나 있다. 아파트엔 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리거나 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있고, 국회의원도 부정부패에 연루되고 야합과 비리를 저지른다. 학교 교실에선 따돌림과 폭력이 만연해 있다. 이런 곳 모두에 CCTV를 설치할 수 있을까. 표현과 의사소통에 한계가 있는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시설이라는 점에서 특수성이 있지만, CCTV가 아동학대의 궁극적 해결 방법이 될 수는 없다.    



온 사회가 모든 어린이집에 CCTV를 설치할지 말지에 대한 논쟁에 집중하다보니 더 중요한 문제에 대한 논의가 실종됐다. 아동학대를 막으려고만 하는 현재의 양상은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전제한 것이다. 아동학대가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가치의 실종이니 도덕성의 상실이니 하는 허탈한 외침만 나돌 뿐이다.

다른 곳도 아니고 어린이를 보호하는 시설인 어린이집에서 학대가 일어나는 비극적 현실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이 역설적 문제의 바탕에 공정함, 공평함, 투명함에 대한 한국인의 집착이 있다고 해석해보면 어떨까.   

‘정의란 무엇인가’의 이면

최근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정의다. 마이클 샌들 하버드대 교수가 쓴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국에서 100만 부 넘게 팔려 저자마저 깜짝 놀랐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나돌 정도다. 더 재미난 것은,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사람은 구입한 사람 중 100분의 1도 안 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많이 팔려 정의가 한국 사회의 키워드가 된 게 아니라, 한국인의 심리 속에 정의가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기에 어려운 (결국 안 읽은) 책이 그만큼 팔린 것이다. 한국인이 정의에 목말라 있다는 사실의 방증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한국인은 왜 이렇게 정의에 매달릴까. 심리학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가족 확장성’과 ‘관계주의’를 강조하는 한국 사회의 문화적 특성은 사회적 정의와 충돌할 수 있다. 거시적 차원에서 가족주의나 관계주의는 사회적 태만이나 부정부패를 방지하는 기능도 한다. 회사, 국가와 같은 공적인 조직마저 가족이 확장된 것으로 이해하는 한국인의 특성은, 조직의 업무를 내 가족의 일, 내 자신의 일처럼 여기게 해 헌신적으로 행동하도록 한다. 관계주의적 심리 특성도 체면을 중시하고 다른 사람의 평가를 중히 여기게 해 더 열심히 일하고 양심적으로 행동하도록 우리를 이끌기도 한다.

한국인의 이 같은 특징은 우리가 세계에서 유례없는 경제 기적을 이뤄내는 데 견인차 구실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심리적 특성은 일대일 인간관계에서 인정에 끌려 판단하게 하고, 청탁을 거절하기 힘들게 하고, 공정함을 잃게 한다. 다시 말해 부정부패를 일으키는 주범이 되기도 한다. 하나의 문화적 특성이 정반대의 현상을 설명하는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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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균 |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taekyun.hu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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