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3월호

‘서울의 밤’ 점령한 하바로프스크 미녀군단 5000명

서울 중부서 외사계장이 털어 놓는 ‘인터걸’의 세계

  • 하태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입력2006-12-06 11: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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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발을 휘날리며 사내들의 시선을 끄는 8등신의 러시아 여인들. 90년대 초반부터 돈을 찾아 하나 둘씩 자태(姿態)를 드러낸 이들은 10년도 지나지 않아 이미 5000여 명을 헤아리는 ‘대군단’이 됐다. 러시아 관련 범죄 전문요원으로 특채된 서울 중부경찰서 외사계장과 러시아 대사관 법률고문으로 러시아 여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는 국제 변호사의 눈을 통해 살펴본 인터걸의 삶, 그리고 그들의 애환.》
    러시아 사람들은 그를 알아본다. 서울 중구 을지로 6가 국립의료원 옆 대화호텔과 두산타워 뒤쪽에 자리잡은 거평프레야 사이의 좁은 골목길에 자리한 ‘러시아 타운’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건의 현장에는 어김없이 그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96년 2월에 경찰에 입문한 김성호(金成鎬)경위. 경찰경력은 이제 만 4년밖에 안되지만 서울 중부경찰서에서만 경찰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그의 보직은 외사계장. 러시아와 관련된 범죄가 전공이다. 어느덧 ‘러시안 캅’이란 별명도 얻었다.

    김경위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93년부터 1년간 러시아 모스크바대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한 뒤 95년 외대 러시아어과를 졸업했고, 이어 모 대기업에서 러시아지역 담당으로 8개월간 활동했다.

    그런 김경위의 마음을 돌려 놓은 것은 95년 8월 경찰청에 나붙은 러시아 전문인력 특채. 당시는 러시아인의 한국 진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었고 그에 따라 치안수요도 급증하는 상황이었다. 김경위는 “공직에 투신해 보람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지원했는데 운좋게 합격했다”고 말했다.

    ―러시아 여인들의 매춘이 본격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언제부터 입니까?

    “95년 경찰에서 처음으로 러시아 매춘부를 적발했지만 사실 그전부터 러시아 여인들의 매춘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당시 검거된 러시아 여자들은 관광비자로 입국해 보따리 장사를 하던 사람들이었는데 본격적인 매춘부는 아니고 재미삼아 몸을 팔았던 것 같습니다. 한국남자를 따라 여관으로 가 화대로 20만원을 받았는데 돈에 끌려 몇차례 윤락을 한 아마추어들이었지요.”



    96년 중부경찰서에서도 러시아 여인들의 매춘행위를 적발했다. 대학에 재학중이던 이들은 한국인 5명과 1인당 3∼6차례씩 윤락행위를 해 3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뒤 검찰의 기소유예 조치로 강제출국 당했고 ‘파트너’였던 40대 한국인 5명은 동종 전과가 없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로 불구속 처리됐다.

    ―구속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몸을 팔고 사는 것이 죄가 된다면 왜 자신들만 구속하고 ‘재미를 본’ 한국사람들은 불구속으로 수사하느냐며 따져 곤혹스러웠습니다. 러시아 여성들은 윤락행위 방지법 이외에도 출입국 관리법도 위반했다는 사실을 설명했지만 막무가내로 동등한 처벌을 해달라고 소란을 피우더군요. 심지어 미아리나 청량리 윤락가는 버젓이 영업을 하는데 왜 자신들만 처벌하느냐는 항의도 했어요.”

    ―러시아인들은 윤락을 중대한 범죄라고 생각합니까.

    “그들은 윤락이라는 단어 자체를 낯설어 합니다. 자기 몸을 팔아 장사를 한다는 단순한 생각을 가진 경우가 많아요. 성(性)이라는 게 소중히 여겨야 하는 성(聖)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은 희박합니다.”

    김 경위는 러시아 여자들의 성의식에 대해 약간의 설명을 곁들였다. 러시아인들은 매매춘을 단순히 ‘애정행각’ 정도로 이해하기 때문에 중죄라고 보기는커녕 그다지 수치심도 느끼지 않는다는 것. 러시아에서는 매매춘 행위를 단속하더라도 풍기문란과 같은 경범죄로 취급해 10달러 정도의 벌금만 물면 쉽게 풀려날 수 있다고 한다. 김 경위는 “러시아인 중에는 매춘은 삶을 영위하는 한 방편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러시아에서 섹스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이유를 김 경위는 우선 추운 기후에서 찾는다. 동토(凍土)에서는 살을 에는 추위 때문에 외부 활동 자체가 자유롭지 않은 경우가 많다. 여관이 발달하지 않은 이들은 서로의 집에서 사랑을 나누는데 익숙하다. 18세를 넘긴 여자가 남자집에 초대를 받아 갈 경우 ‘섹스’를 염두에 두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

    실제로 97년 12월 동아일보 해외토픽란에는 AP발로 ‘극동지역 사할린 반도의 유지노―사할린스크 청소년 범죄 세미나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극동지역 10대 중 여자 응답자의 25%가 매춘부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는 기사가 게재되기도 했다.

    5000여명이 전국에 퍼져

    ―국내 러시아 여인들의 윤락 양태는 어떻게 바뀌었나요?

    “처음에는 보따리상 중에 돈이 모자라 물건을 사지 못한 사람들이 우연히 매춘을 했습니다. ‘하룻밤 봉사’의 대가로 20만원(150달러) 이상을 번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대단한 매력이었지요. 물건을 사가는 것은 물론 두둑한 용돈까지 벌어갈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한국에 오려는 러시아인들이 크게 늘었습니다. 또 이 사업이 장사가 된다는 것을 안 러시아에 인력송출업체가 생겨나면서 러시아 여인들의 서울행 러시가 시작된 것이지요. 극동지역에서는 한국에 오는 여인들을 위한 전세기까지 등장했을 정도니까요.”

    ―지역적으로는 어떤 분포를 보입니까?

    “처음에는 모스크바 여성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은 극동의 하바로프스크나 블라디보스토크 사람이 많아요. 모스크바 출신 인터걸들은 대부분 유럽시장으로 진출하고 있기 때문에 극동지방에는 잘 오지 않아요. 한국이 경제위기를 겪던 97년 말부터 두드러진 현상입니다. 모스크바를 서울에 비한다면 하바로프스크나 블라디보스톡은 시골 소도시 정도라고 보면 좋아요. 모스크바 여자들이 패션감각이 좋고 조금은 교활한 면을 보인다면 하바로프스크 여자들은 굉장히 순박해요. 하라는 것은 군소리 않고 하는 촌색시 같다는 비유가 적당할 거예요. 한국에 들어오는 러시아 여인들이 급증하면서 서울과 부산 정도에서만 볼 수 있던 러시아 여인들이 전국으로 퍼져나가게 됐지요.”

    ―인천 대전 등 대도시뿐 아니라 중소도시에도 러시아 여인들이 퍼져 나갔다는 얘깁니까?

    “현재 정식으로 공연비자(E―6)를 받고 들어온 러시아 여자의 수가 2000명을 넘었습니다. 이 정도 숫자라면 대도시의 관광호텔을 가득 채우고도 남는 숫자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공연비자를 받고 온 러시아 여자보다는 관광비자를 받고 입국한 뒤 기한을 넘겨 장기체류하는 러시아인이 더 많다는 데 있습니다. 정확한 통계를 잡을 수 없기 때문에 단언할 수는 없지만 대략 5000명의 러시아 여자들이 한국에 들어와 활동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그 여자들이 전국 방방곳곳의 중소도시에서 술을 따르고 있는 것이지요.”

    ―을지로6가에 형성된 ‘러시아 타운’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까.

    “이제는 더 이상 러시아 촌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한때 국립의료원 옆 대화호텔에서 거평프레야 사이 골목은 러시아인들로 넘쳐났지만 이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어요. 러시아인들이 빠져 나간 자리를 몽골 사람들이 급속도로 메우고 있습니다. IMF체제에 든 97년 12월 이후 한국인의 소비심리가 극도로 위축되자 러시아인들은 하나둘 이태원으로 장소를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IMF 이전에는 20만원이면 250달러였지만 이제는 150달러밖에 되지 않으니 달러를 더 벌고 싶었겠지요. 미군쪽이 돈벌이가 된다는 것을 안 것이지요.”

    “한국에 가면 대박 터진다”

    ―미군들을 상대로 한 윤락이 많아졌다는 얘기입니까?

    “러시아 여자들에게도 ‘아메리칸 드림’이 있습니다. 세계 최대부국인 미국에 가 미국 시민권을 얻어 살고싶다는 러시아 인을 여러 명 만났습니다. 실제로 미국인과 결혼해 미국으로 간 경우도 있으니까요.”

    ―러시아 여자들의 생활은 어떻습니까?

    “공연비자를 받고 입국한 러시아 여자들은 한국에 있는 외국연예인 수입업체들이 숙박을 해결해 주는 조건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길거리에 나앉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이태원에 가장 많이 살고 다음으로는 경기도 파주·일산 등에도 모여 산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불법체류하는 러시아 여자들의 경우 대개는 여관에 장기 투숙하고 있지요. 또 폭력조직에 집단적으로 감시를 받는 등 주거형태는 천차만별이지요.”

    ―러시아 여인들은 어떤 경로로 한국에 들어옵니까?

    “인터걸들은 대개 현지 신문의 모집광고나 개인적인 루트를 통해 현지 조직과 연결됩니다. ‘한국에 가면 대박 터진다’는 광고가 신문이나 방송에 공공연히 실린다고 합니다. 젊은 러시아 여성들이 한국에 들어오는 경우는 체류기간 6개월에 2년까지 연장이 가능한 공연비자(E―6)가 있고 체류기간이 15∼20일인 관광비자(C―3)가 있지만 몸을 파는 여인들은 대개 신청서류가 간단한 관광비자인 경우지요.”

    ―공연비자와 관광비자 이외에는 없나요?

    “드물게 나오는 것이 방송비자입니다. 방송에 출연한 사람에게 주는 비자인데 체류기간이 2년이라 러시아 여자들이 무척 갖고 싶어하지요. 러시아를 무대로 한 모 방송국의 ‘백야 3.98’이라는 드라마를 찍을 때 국내 체류중이던 러시아 여인들이 대거 몰렸습니다. 대사도 없이 엑스트라로 카메라에 스치기만 해도 2년 체류가 보장되니 너도 나도 촬영장으로 몰려든 것이지요.”

    ―공연비자를 받아 한국에 들어오는 경로는 어떻떤 겁니까?

    “매춘목적의 인터걸이 아니라 미군 영내의 클럽이나 관광호텔, 관광특구 등에서 일하는 댄서들은 국가에서 관리합니다.

    이들은 러시아 내의 송출회사를 통해 한국내 외국연예인 공급업체(프로덕션)와 계약을 하지요. 또 한국 영상물 심의위원회 공연심의과로부터 심사도 받습니다. 매춘을 엄격히 관리하는 프로덕션은 이들이 국내에 도착하자마자 에이즈검사 등을 받게 한 뒤 거주등록증을 발급해 줍니다. ‘매춘을 하면 최고 3000달러의 벌금을 문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명시하는 곳도 있습니다.”

    ―그런 ‘프로덕션’은 몇 곳이나 있습니까?

    “현재는 59곳이 등록을 마치고 외국연예인을 미군영내클럽이나 관광호텔 등에 투입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52곳이던 것이 두 달도 안돼 7곳이나 더 늘어났지요.”

    술좌석 팁 5만원

    ―매춘을 하다 적발된 러시아 여인들에게는 어떤 조치가 내려집니까?

    “윤락행위 방지법 위반으로 구속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여자들의 경우 일단 구속한 뒤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지면 그대로 러시아로 추방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문제는 한번 추방된 여자가 다시 국내에 입국한다는 것입니다. 출입국 관리사무소에서는 매춘행위 때문에 추방된 러시아 여자들은 다시 입국시키지 않고 있지만 여권을 위조하는 방법 등으로 버젓이 국내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출입국 관리가 그만큼 허술하다는 증거죠.”

    법무부 출입국관리소 관계자도 “원칙적으로 매춘행위를 하다 추방당한 사람에 대해 재입국은 금지되지만 영어 철자를 교묘히 바꾸거나 여권을 위조하는 등의 방법으로 입국하는 것까지 막을 방법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주로 밤에 일하는 러시아 여자들은 낮에는 어떤 생활을 합니까?

    “낮 12시부터 밤 9시까지는 자유시간이라고 할 수 있지요. 물론 관리를 받기는 하지만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은 아니므로 여가를 즐길 정도의 자유는 있어요. 그래서 러시아 여자들은 한국에서 남자친구를 사귀려고 노력해요. 술을 마시다가 만난 사람 중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사귀자고 하는 편이지요. 러시아어를 할 줄 알면 금상첨화라고나 할까요.”

    ―구체적인 사례가 있나요?

    “매춘행위로 구속된 러시아 여인을 수사하니 휴대폰을 소지하고 있었습니다. 외국인은 국내에서 휴대폰을 소지할 수 없기 때문에 휴대폰 소유자를 조회해보았더니 모 중소기업 사장이더군요. 술집에서 만나 친구가 됐는데 연락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휴대폰을 사줬다는 거예요. 러시아와 거래를 하기에 러시아어도 할 줄 아는 이 사람을 추궁해 보니 러시아 여자와는 약 1년 정도 사귄 사이더군요. 시간이 나면 교외로 다니며 선물도 많이 사준 모양이더라고요. 어학공부를 했다나요.”(웃음)

    ―다른 종류의 불법은 이루어지지 않나요?

    “최근에 공연비자로 들어온 러시아 여자 중 일부가 불법으로 누드모델을 하고 있다는 혐의가 포착돼 수사중입니다.”

    ―최근에는 룸살롱에 취직한 러시아 여자들이 급격히 늘어 쉽게 접할 수 있다고 하던데요?

    “경찰과 검찰의 단속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드러내놓고 영업을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단골위주로 비밀리에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경찰이나 검찰의 함정수사도 있을 수 있으니까 ‘검증된’ 고객들에게만 여인들을 비밀리에 공급하는 것이지요”

    ―팁은 얼마나 받나요?

    “공정가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술을 따르는 경우 5만원을 받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한때 10만원까지 몸값이 부풀기도 했지만 이제는 절반입니다. 말도 제대로 안 통하고 또 중간중간 스테이지에 춤을 추러 가느라 자리를 뜨는 경우가 많아 몸값이 떨어진 것이지요.”

    김경위는 “러시아 여인들은 불법체류 등 떳떳하지 못한 신분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법적인 구제를 호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러시아 대사관에서 법률고문으로 활약하는 변호사를 소개해 줬다.

    법무법인 ‘로 · 케이스’에서 활동중인 이원형(李元珩)변호사는 러시아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딴 국제변호사. 92년 단국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러시아에 들어가 모스크바대 국제사법대학원을 졸업했다. 5년간 러시아에 머무르는 동안 러시아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면서 기업의 투자문제 세금분쟁 특허신청 등을 주로 다뤘다.

    ―대사관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요?

    “97년 한국에 돌아와보니 러시아 관련 범죄가 크게 늘었더군요. 이런 까닭에 러시아 대사관에서도 법적 분쟁에 대처하기 위해 법률전문가가 필요했던 것이지요. 제 근무경력 등을 살펴보고는 법률고문으로 위촉한 것 같습니다.”

    ―러시아 여성의 매춘문제가 본격화한 것은 언제입니까?

    “서울 중부경찰서에서 96년 러시아 매춘부 3명을 구속한 이후 비슷한 사안으로 경찰에 구속되는 경우가 크게 늘었습니다. 그때마다 제가 경찰서나 대사관에 가 법률적인 자문을 했지요.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대규모 인력 송출 조직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러시아 여자들이 돈을 벌겠다는 일념으로 개인적으로 한국을 찾는 정도 였지요. 매매춘문제가 본격화한 것은 98년 러시아 여자들에게 공연비자(E―6)를 허용하면서부터입니다. 러시아 여자들이 양적으로 팽창하면서 불법이 자행될 ‘저변’이 확대된 셈이지요. 이후 대사관에는 구타당했다거나 돈을 받지 못했다고 호소하는 사례가 급증했습니다.”

    ―러시아 여자들의 한국 생활은 어떻습니까?

    “러시아에서보다는 낫겠지만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10평 남짓한 방에 5,6명씩 합숙하는 경우가 다반사고 음식도 냉장고 안에 김치만 달랑 넣어두고 견디는 경우가 많습니다.”

    ―러시아 사회에서 한국의 존재는 어떤 경로로 알려집니까?

    “하바로프스크 인구가 170만이고 블라디보스토크가 100만 정도입니다. 직업여성들 사회에 한국의 존재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현지 신문에 광고가 나는 경우도 있고요. 힘이 들지만 한국에 오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신화’가 러시아에 알려진 지 오래입니다. ”

    ―주류를 이루는 법률상담은 어떤 것입니까?

    “초기에는 계약조건에 명시한 급여를 받지 못했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습니다. 러시아 여자가 현지에서 광고 등을 통해 한국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면 자신의 사진을 가지고 인력 송출업체를 찾아갑니다. 얼굴 앞면 뒷면 옆면을 찍은 사진과 전신 사진 등이 한국에 보내지고, 한국의 프로덕션에서는 그중 마음에 드는 여자를 선별해 러시아측에 회답을 보냅니다. 이렇게 해서 보통 숙식제공에 월 400달러를 지급한다는 계약이 이루어집니다. 러시아 여자는 한 달간 춤을 추고 돈을 받는 것이지요. 하지만 돈을 제대로 받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일방적인 계약파기인 셈인데 경찰에 신고하면 될 것 아닙니까?

    “보통 업소에서는 6개월치를 한꺼번에 모아 주겠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아요. 러시아 여성들도 기본계약금 이외에 불법으로 손님들에게 술을 따르면서 부수입을 올리기 때문에 당장 돈이 궁하지는 않아요.

    손님 테이블에 앉으면 받는 봉사료 5만원 중 3만원 정도는 본인의 몫이니까 굳이 몸을 팔지 않아도 러시아에서보다는 넉넉하게 사는 셈이지요. 특히 춤을 추는 조건으로 입국해서 손님들에게 술을 따르는 것이 금지사항이라는 것을 러시아 여자들도 알기 때문에 처음에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요.”

    버림받은 자식들

    ―돈 문제말고도 인권유린 등의 문제가 종종 발생하지 않습니까?

    “공연비자를 받아 정식으로 들어온 경우에는 그런 사례가 적지만 관광비자로 입국해 불법 장기체류를 하는 경우에는 자신의 권익을 찾기 힘듭니다. 스스로 불법을 저지르고 있기 때문에 사법기관에 찾아갈 수도 없고 말도 잘 안 통하니 하소연할 곳도 없지요. 게다가 어지간한 술집은 대개 경찰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자기 편이 하나도 없는 셈입니다. 두들겨 맞았다고 하소연 해도 귀기울여 줄 사람이 없는 것이지요.”

    ―여권과 비행기표를 빼앗고 일하는 시간 이외에는 사실상 감금을 하는 사례도 많다데요.

    “공연비자로 적법절차를 밟고 들어온 경우는 좀 덜하지만 불법 체류자들을 관리하는 경우는 강제적인감시가 이루어지고 있을 것입니다. 매춘조직을 경찰에 알리거나 하면 조직이 파괴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필사적으로 지키는 것이지요. 댄서들도 관리가 느슨해지면 자발적으로 매춘에 가담할 가능성이 있어요. 그럴 경우 관계 당국으로부터 외국연예인을 수입할 수 있는 자격을 박탈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관리할 필요성을 느끼지요.”

    이변호사의 견해에 대해 외국연예인을 수입해 공급하는 업체들은 “정식 인가를 받고 합법적으로 활동하는 우리는 감금이나 매춘 강요 등의 불법행위를 절대 하지 않는다”고 강변했다.

    미군기지 주변의 외국인 전용 유흥업소에 러시아 댄서들을 공급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러시아 인력송출업체와 직접 계약을 한 뒤 그들에 대한 등록업무는 물론 체류기간 연장 등의 수속을 대행하고 있으며 출입국 관리 당국과 국정원에도 보고를 해 불법을 저지를 여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8명의 댄서를 공급하는 조건으로 60만원의 소개료를 받을 뿐 웃돈을 받거나 돈을 착취하는 경우는 전혀 없다고 주장했지만 외국연예인을 공급하는 업체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면서 일부 프로덕션에서는 일반음식점이나 일반나이트 클럽 등 외국인을 고용할 수 없는 업체로 러시아 여인들을 마구 공급하는 불법행위를 자행한다고 털어 놓았다.

    ―대사관에서는 조치를 취하지 않나요?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러시아 대사관에서도 말썽을 일으키는 여자들에 대해서는 애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뼈대있는 가문에 태어난 돌연변이’ 정도로 치부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러시아 여자들도 외교채널을 통해 공식적으로 항의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기 때문에 체념하는 편입니다.”

    ―러시아 여성들의 연령대는 어떻습니까?

    “아무래도 20대가 가장 많습니다. 제가 상담한 여자 중에는 경찰대 출신 여자도 있고 모스크바 교대를 나온 인텔리 여성도 있지만 대부분은 불우한 처지에 있는 여자들입니다. 학력은 고졸이 많고 이혼을 한 경력이 있거나 이미 술집에서 몸을 팔던 여자들이 주류입니다. 자기나라에서는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 한국에까지 흘러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국에서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한 채 러시아로 돌아간 여인들을 통해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도 돌았을 법한데 한국행 러시가 줄지 않는 이유는 어디에 있나요?

    “어느 정도 수익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계약조건과 일치하는 돈을 받지는 못했더라도 팁으로 버는 돈도 러시아에서 버는 것에 비하면 큰 돈입니다.”

    이 변호사는 러시아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급여수준은 고작 40∼50달러지만 한국에 오면 몸은 고되지만 잘하면 1000달러 정도를 벌 수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일종의 ‘신천지’라고 말했다.

    ―러시아 여자들은 한국에서 번 돈을 어떤 용도로 사용합니까?

    “대부분의 러시아 여성들은 검소합니다. 한국에서 번 돈은 거의 러시아에 있는 가족이나 부모에게 보내요. 은행을 통한 송금이 어려운 경우는 본국에 돌아가는 인편에 돈을 전합니다.”

    폭력조직과의 연계 흔적

    ―폭력조직이나 마피아와 연계한 조짐은 없습니까?

    “직접 드러나지는 않지만 고려인이나 마피아 조직이 국내에 들어와 활동하고 있다는 흔적이 드러나고 있어요. 지난해 3월 용산에서 발생한 러시아 여인 살해사건도 그 경우에 해당합니다. 사건은 이렇습니다. 하바로프스크 출신의 20대 여자 2명이 관광비자로 한국에 들어와 이태원에 있는 룸살롱에서 일하며 매달 1500달러의 수익을 올리자 이 구역을 담당하는 한국내 러시아 조직원이 자기 여자친구와 같이 찾아와 계속적으로 돈을 요구했습니다.

    이태원에서 일하는 대신 매달 1000달러를 상납하라는 요구였지요. 처음 몇 달간은 마지못해 돈을 주었지만 계속되는 요구에 참지 못하고 여자를 살해한 사건이었습니다. 1심에서 각자 징역 12년을 선고 받고 항소를 포기해 현재는 교도소에서 복역중입니다.”

    한편 이 사건을 담당했던 서울지법은 “피해자의 협박에 시달리다 범행에 이르렀고 외국인으로 한국에서 어려운 생활을 한 점은 인정되나 범행수법이 잔인해 엄벌에 처한다”고 밝혔다.

    ―한국을 ‘기회의 나라’로 알고 희망에 가득차 입국했던 러시아 여인들이 떠날 때는 적개심을 가지고 떠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외국인에 대한 2중적인 잣대가 우리나라만큼 심한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특급호텔에서 숙식하고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외국인을 보는 눈과 산업연수생으로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을 보는 시선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 아닙니까? 그런 대접을 받고 한국을 떠나는 외국인이 어떤 감정을 갖겠습니까? 꿈에도 오고 싶지 않은 나라가 되는 것 아닙니까?”

    ―러시아 여인들이 한국인에게 바라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춰본 러시아 여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 자신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 싸늘하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못사는 민족에 대한 멸시의 감정이 잔뜩 들어 있다는 것이지요. 돈이 없어 이곳까지 와 몸을 파는 짐승만도 못한 여자라는 멸시의 눈으로 보는 한국인이 너무 많아 가슴 아프다는 것입니다.”

    김성호 경위는 60년대 한국인들이 광부나 간호사로 독일에 대거 수출됐을 때 독일인들이 쓴 친화정책을 예로 들었다. 김경위는 “독일정부는 한국인들에 대해 차별적인 태도를 보이기보다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국민이라는 인식을 갖도록 한 결과 한국인의 뇌리에 독일인은 매우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국민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그로 인해 2차 대전을 일으킨 민족이라는 부정적인 인식 대신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킨, 우리가 모델로 삼아야 할 민족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았다는 것. 우리가 지금 한국에 들어온 러시아인을 대하는 태도가 20~30년 후 러시아인들이 한국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성호 경위는 러시아인들의 불법행위를 감시하고 불법이 있을 경우 이를 수사하고 구속하는 경찰, 이원형 변호사는 러시아인의 억울한 점을 듣고 법적인 선처를 호소하는 변호사. 동일한 현상을 서로 상반된 시각에서 바라보는 이들에게도 서로 근접한 견해를 나타내는 부분이 있었다. 자본의 흐름에 따라 인력의 흐름도 좌우되는 현실에 러시아 여인들이 돈을 찾아 한국으로 향하는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이 그것. 하지만 한국의 법이 러시아 여인들에게 진출을 허용하는 영역은 관광호텔이나 외국인 전용 유흥업소에서의 댄싱걸 뿐이다.

    매춘 목적으로 입국하는 러시아 인터걸이나 그들을 관리하는 조직에 대한 철저한 단속을 전제로 이제는 국내에 필요한 러시아 여인들의 수효를 국가가 정확히 관리해 추가 입국을 통제하거나 공연목적 이외에 다른 업종에도 취업이 가능하도록 비자용도를 확장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것이 러시아 전문가 2인의 공통된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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