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호

장자연 사건으로 엿본 연예계 성(性)비리 실태

“단순 만남 소개비는 500만~1000만원, 동거 대상 연예인은 부르는 게 값”

  • 김범석│ 일간스포츠 연예팀 기자 kbs@joongang.co.kr│

    입력2009-05-09 12: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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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흥주점에서 신인 오디션 보는 유명 PD
    • 영화 만들 때마다 추문 일으키는 유명 감독
    • 연예인 소개해주고 외제차 장만한 브로커
    • 재벌 자제들에게 ‘이상형’ 연결해주는 ‘찍팅’
    • 레이싱 모델, 아나운서, 리포터까지 대기
    장자연 사건으로 엿본 연예계 성(性)비리 실태

    죽음으로써 연예계 비리를 폭로한 고 장자연씨.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신인 탤런트 장자연(29) 사건을 계기로 또다시 연예계의 추악한 실상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경찰 수사를 피해 일본에 머물고 있는 장자연의 소속사 대표 K씨가 검거되고 검찰 수사가 마무리돼야 이번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겠지만 이제까지 드러난 정황만으로도 대한민국 연예계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공개된 셈이다.

    장자연 사건을 보면 지금 이 시간에도 힘없는 신인이나 연예인 지망생들은 ‘뜨기 위해’ 원치 않는 접대 자리에 불려가고, 이른바 유력인사들 앞에서 굴욕적으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기획사나 캐스팅 권한을 갖고 있는 끗발 있는 유력인사들에게 소중한 시간과 인권을 짓밟히고 있는 것이다.

    장자연 사건을 바라보는 대중문화계 내부의 시각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메이저리그에선 좀처럼 있을 수 없는 다소 특이한 사건이라는 시선. 싸이더스HQ나 나무엑터스, 예당엔터테인먼트 같은 대형 연예기획사들은 “이번에 문제가 된 장자연씨의 소속사나 전 매니저 유장호씨의 경우 사단법인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 회원도 아니며 매니저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업계 종사자의 사기를 저하시켰다”며 씁쓸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일부 매니저들 때문에 전체가 욕을 먹고 있다는 볼멘소리다.

    “지금 데리고 나오라”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에 가입된 포레스타 엔터테인먼트 배경렬 대표는 “장자연씨 소속사는 광고 모델 에이전시로는 유명한 곳이지만 매니지먼트는 몇 년 전부터 사업을 축소하고 있었고 다른 기획사와의 교류가 거의 없는 ‘도꼬다이’ 회사였다”며 “유씨도 송선미씨와 이미숙씨 일을 봤지만 경력이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매니저로 알려져 있다. 두 매니저의 싸움에 신인 탤런트가 휘말려 괴로워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건 아닌지 의심스럽고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자연 사건이 연예계에서 사라지지 않는 병폐의 소산이고 빙산의 일각이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신인 연기자나 가수의 술시중과 성 접대는 연예계의 공공연한 사실이며, 이번 사건으로 일부 속살이 드러났을 뿐 전혀 새로운 얘기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얼마든지 제2, 제3의 장자연 사건이 재연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기자가 만난 연예 관계자들은 익명을 전제로 자신의 피해 사례와 목격담을 털어놓았다. 이 중에는 연예계의 추악함에 환멸을 느껴 전직한 사람도 여럿 있다. 그리고 이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지속되는 한 이런 병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현역 매니저 K의 증언을 들어보자. 올해로 8년차 매니저인 그는 2007년 한 방송사 드라마국 PD에게 당했던 황당한 사연을 폭로했다. 당시 미니시리즈를 준비하고 있던 A프로듀서는 평소 힘없는 매니저와 신인 연기자를 무시하는 언행으로 악명이 높았다. 처음 보는 매니저에게 자동차 열쇠를 주며 세차까지 시킬 정도였다. 하지만 상당수 기획사 매니저들은 자사 소속 신인 연기자를 좋은 시간대에 편성이 결정된 미니시리즈에 출연시키기 위해 경쟁적으로 A를 찾아가 허리를 숙였다. 오디션이라도 한번 보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매니저도 있었다.

    황당한 건 A가 신인들의 오디션 장소로 여의도의 한 유흥주점을 택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미혼이던 A는 S대 출신으로 상당한 재력가 부모를 둔 덕에 고급차를 몰고 다녔다. 매니저 K는 “어느 날 밤 A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돌이켜보면 그때 가지 말았어야 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화의 요지는 ‘지금 신인 연기자를 데리고 이곳으로 올 수 있느냐’는 것. 갑작스러운 연락이었지만 PD가 먼저 전화해 연기자 실물 미팅을 하겠다고 하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부랴부랴 신인 연기자를 미용실에 데려가 머리 손질부터 시킨 뒤 함께 여의도 유흥업소를 찾았다. 그곳은 방마다 화장실이 딸린 룸살롱이었다.

    A는 혼자 있었다. 신인 연기자가 자기 소개를 한 뒤 세 사람은 폭탄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A의 양주잔이 빌 때마다 신인 연기자는 두 손으로 공손히 그의 술잔을 채워줬고, 안주도 먹기 좋게 A의 접시에 옮겨 날랐다. 적당히 긴장이 풀어지자 매니저 K가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띄웠다.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졌다.

    술에 취한 A가 K의 휴대전화에 ‘먼저 일어나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이런 일을 처음 겪은 K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해 끝까지 자리를 지켰고, 결국 자정을 넘긴 뒤 신인을 데리고 나와 A와 헤어졌다. 법인카드도 없었던 K는 이날 100만원이 넘는 술값을 개인카드로 그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우리 연기자가 캐스팅만 된다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며칠 후 조감독을 통해 결과를 알아봤지만 캐스팅은 불발이었다. 아까운 돈과 시간만 축낸 것이다. 신인에게도 면목이 없었다.

    장자연 사건으로 엿본 연예계 성(性)비리 실태

    3월18일 기자회견을 연 장자연씨의 전 매니저 유장호씨.

    “네 몸이 보고 싶다”

    K는 나중에서야 A가 여러 매니저에게 이런 방법으로 술 접대를 받았다는 걸 알았다. 캐스팅 권한을 가진 ‘갑’의 지위를 이용해 매니저와 신인 연기자를 불러낸 것이다. 캐스팅 단계에서 A로부터 밤에 불려나간 매니저가 최소 10명이 넘었고, 신인 여자 연기자를 혼자 두고 자리를 피해준 매니저에게 출연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도 나중에 알게 됐다.

    K는 “주연 여배우에게는 온갖 아양을 떨면서 힘없는 신인이나 단역에게는 차갑게 군림하는 A의 이중적인 태도를 보고 화가 치밀었지만 원래 이 바닥이 다 그런 것 아니냐며 분을 삭여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 드라마에는 여주인공의 친구 역과 대사가 있는 조연을 신인들이 맡았는데 대부분 A가 건드렸다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말했다. A는 이 미니시리즈를 끝으로 방송사에서 나와 거액을 받고 외주 드라마 제작사로 스카우트돼 현재 프리랜서 PD로 활동하고 있다.

    겸손하고 양심적으로 일하는 PD도 많지만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 PD도 적지 않다는 게 매니저와 캐스팅 디렉터들의 증언이다. 신인은 캐스팅을 통과했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 편집 과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인은 드라마가 종영될 때까지 프로듀서의 술자리나 회식 제안을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고 한다.

    한번 눈 밖에 나면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중간에 하차하거나 편집 과정에 가위질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PD의 부당한 접대 요구에 나약하고 힘없는 연기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취약한 수직구조인 것이다.

    2008년 개봉한 코미디 영화의 편집실에서 벌어진 구타사건도 감독의 부적절한 관계 제안이 불씨였다. 당시 촬영을 마치고 편집 중이던 모 감독은 한 조연 여배우의 연기분량을 걷어내고 있었고, 이 소식을 듣고 찾아온 영화 제작자와 시비가 붙어 치고받는 주먹다짐으로까지 번졌다. 감독이 촬영 도중 이 여배우에게 “사귀자”고 프러포즈했는데 거절당하자 분하고 괘씸한 마음에 그 여배우가 나온 장면을 모조리 편집하는 걸로 보복했던 것이다.

    한 영화 제작자는 “나름대로 자체 정화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영화계에서 여성 연기자를 성적 대상으로 생각하는 감독이 있다”며 이 방면에서 악명 높은 Q감독의 사례를 설명했다.

    Q감독은 자신이 연출하는 거의 모든 영화의 여주인공과 ‘섬씽’을 갖는 걸로 유명하다. 국제무대에 진출할 정도로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어내 많은 여배우가 그의 작품에 캐스팅되길 원할 것 같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작품에 대한 ‘애정’만큼 여배우에 대한 집착과 애정 공세가 거세서 웬만한 여배우가 아니고는 견딜 수 없다고 한다. 워낙 집요하고 끈질기게 관계를 요구해 체념 상태에서 감독의 요구를 들어주는 여배우가 많다고 한다. 그의 영화에 톱스타보다 늘 신인 연기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오디션을 보거나 미팅을 할 때 매니저없이 따로 오라고 신신당부하는 것도 Q감독만의 특징이다. Q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카페에서 여배우와 미팅을 했을 때 일이다. 매니저는 밖에 세워놓은 차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Q가 여배우를 데리고 뒷골목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마음이 다급해진 매니저는 여배우에게 “괜찮겠느냐”고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이 여배우는 “실장님, 불안하니까 뒤에서 감독 모르게 따라와달라”고 부탁했다. 카페에서 맥주를 마신 Q감독은 여배우에게 노골적으로 “네 몸이 보고 싶다”며 잠자리를 요구했고, 이에 놀란 여배우는 혼비백산해 도망치듯 마수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당시 매니저는 “한 방에 뜨고 싶은 신인이라면 그런 유혹에 충분히 흔들릴 수 있을 것”이라며 “그 일을 겪은 뒤 Q감독이 만든 새 영화를 볼 때마다 씁쓸한 웃음밖에 안 나온다”고 말했다.

    ‘피아노맨’

    한 전직 매니저는 “영화 제작자의 여배우에 대한 횡포도 만만치 않다”고 고발했다. 2007년 지방에서 올 로케로 촬영한 모 영화 촬영지 숙소에서 벌어진 일이다. 40대 노총각이던 영화사 대표 C는 자신이 제작하는 모든 작품의 여주인공과 돌아가면서 사귀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당시 한 여주인공이 이를 강하게 거부해 자주 마찰이 있었다고 한다. C는 밤마다 여배우를 자기가 묵는 방으로 불러 연기에 대한 품평을 늘어놓으며 생트집을 잡았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문밖에는 늘 여배우의 매니저가 지키고 있었지만 C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배우가 펑펑 울 정도로 괜한 신경질을 부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당시 매니저는 “여름이었다지만 영화사 사장이 트렁크만 입고 자기가 묵는 방에 여배우를 오라 가라 하는 저의가 대체 뭐였겠느냐”면서 “몇 번 그런 수모를 겪은 여배우들은 거의 대부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영화사 사장의 모종의 거래에 응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 드라마 캐스팅 디렉터는 “모 드라마 PD의 경우 작품을 할 때마다 의외의 신인이 반드시 등장하는데 십중팔구 그렇고 그런 관계로 보면 맞다”며 “식사자리 같은 사석에서 드러내놓고 애정을 표시할 때도 있어 중견 연기자들이 민망해할 때도 많다. 염치를 모르는 건지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마치 자신이 대단한 권력을 쥐었고 이를 자랑하는 것처럼 보여 어이없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사극 연출가로 유명한 한 중견 PD도 연기 지도를 해준다는 핑계로 여배우의 몸을 더듬는 등 온갖 추태를 부려 여배우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다. 특히 녹화가 없는 날 신인을 사람들이 없는 대본연습실로 불러내 온갖 민망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 매니저는 “여자 몸을 잘 더듬는다고 해서 ‘피아노맨’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라며 혀를 내둘렀다.

    한 가수 매니저 L의 목격담도 충격적이다. 신인 가수의 경우 소속사 사장보다 더 받들어 모셔야 할 사람이 프로듀서와 작곡가다. 이들에게 한번 미운 털이 박히면 원하는 곡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데뷔 시기가 늦어질 수 있어 소속사 사장이 이들을 접대할 때 미성년자인 신인 여가수를 술자리에까지 부른다는 게 이쪽 불문율이라고 한다.

    ‘물뽕’의 위력

    매니저 L은 “프로듀서가 가라오케에서 신인 가창력을 테스트한다는 명분으로 이 노래, 저 노래를 시키는데 군기를 잡기 위해서인지 아이가 거의 쓰러질 때까지 시킬 때도 있다”며 “만약 힘 있는 기획사의 신인이었다면 과연 이렇게 막 대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다”고 말했다. 결국 수십 곡의 노래를 부른 무명 여가수는 자리가 파한 뒤 굴욕감과 수치심 때문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고 한다.

    간혹 술 접대뿐 아니라 노골적으로 잠자리를 요구하는 작곡가도 있다. 히트곡 제조기로 유명한 모 중견 작곡가는 유명 톱가수 이름을 들먹이며 “누구누구도 신인 때는 다 이렇게 컸다. 아무개는 얼굴도 모르는 방송국 간부들과 매일 밤 동침해야 했다”며 2차를 강요해 악명이 자자하다. 매니저도 이를 말릴 마땅한 방법이 없어 신인과 함께 비애를 느낀다고 한다.

    술 접대 자리에서 신인의 술잔에 환각 성분의 약을 몰래 타서 먹이는 비정한 사람들까지 있다고 한다. 신인의 저항감을 줄여 접대 상대에게 잠자리까지 제공하게 하려는 추악한 범죄 행각이다. 이때 보통 술에 히로뽕을 타는데 이를 은어로 ‘물뽕’이라 부른다. 이 물뽕을 마시면 상대방의 작은 관심이나 호의에 몇십 배 감동하게 돼 잠자리 제안도 별 거부감 없이 순순히 따른다고 한다. 환각 상태에 빠지면 처음 보는 사람의 “밥 먹었니?” 같은 의례적인 말에도 이를 대단한 호의로 받아들여 쉽게 몸과 마음을 준다는 증언이었다.

    한 매니저는 “물뽕은 웬만해선 소변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기 때문에 가라오케나 클럽에서 흔히 사용된다. 마시면 기분이 업(up) 되고 성욕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곧잘 악용된다”고 말했다.

    경력 10년차 가수 매니저 P는 “1990년대만 해도 여성 가수나 소녀 그룹의 경우 방송사 간부나 기획사 사장, 매니저와 은밀한 관계를 맺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이런 친구들은 가장 먼저 솔로 활동을 하게 지원해주거나 가요 프로 MC를 맡게 해 다른 멤버들보다 성공 속도가 훨씬 빠른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간혹 신인이 먼저 접대나 몸 로비에 대해 적극성을 보일 때가 있어 오히려 매니저들이 당황스러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연기자 못지않게 초기 투자자금이 많이 드는 신인 가수에게는 스폰서 제안이 흔한 일이다. 새 앨범을 준비 중인 가수 아이비도 자신의 미니홈피에 “만나주기만 하면 3억원을 주겠다는 스폰서의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고 폭로해 눈길을 끌었다. 말로만 나돌던 스폰서의 실체가 확인된 사례다.

    2006년 업계 5위 안에 드는 유명 연예기획사 실장으로 근무했던 J의 현재 직업은 ‘좀 이상한’ 매니저다. 겉으로 보면 매니저인데 소속 연예인도 없고, 회사도 없다. 드라마 PD나 영화사 조감독도 만나지 않는다. 하루 일과도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외출할 뿐 낮 시간엔 대부분 집에서 자거나 온라인 게임으로 소일한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BMW5 시리즈를 장만했고, 골프연습장도 열심히 다닌다. 밤에는 강남 룸살롱과 가라오케에서 살다시피 한다. 로또라도 맞힌 걸까.

    그의 직업은 정확히 말하면 매니저 출신 브로커다. 신인 탤런트나 연기자 지망생을 ‘좋은 오빠’라고 불리는 남자들과 연결해주는 일이 그의 신종 밥벌이인 것이다. 간혹 신인들이 확보되지 않으면 급한 대로 룸살롱에서 알게 된 유흥업소 접대여성이나 가라오케 DJ들을 연기자 지망생이라 속여 소개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죄책감은 전혀 들지 않는다. 어차피 서로 속고 속이는 쇼 비즈니스 세계이고, 실제로 ‘텐 프로’에서 배출된 연예인도 여럿 있기 때문이다.

    J는 “현역 매니저로 일하는 친구나 후배를 보면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하는 자괴감도 들지만 수입을 생각하면 전직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며 “매니저로 일하면 기껏해야 월급 300만원을 받지만 이쪽은 한 건만 제대로 성사되면 기본 단위가 1000만원으로 뛴다. 한번 이쪽에 발을 담그면 절대 그쪽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털어놓았다.

    “공짜로 성형수술 해주겠다”

    그가 말하는 스폰서와 연예인의 관계는 철저하게 수요와 공급 법칙을 따른다. 여자 연예인을 향한 돈 많은 남자들의 수요가 끊이지 않고, 스폰서십을 원하는 연예인의 공급이 공존하기 때문에 아무리 언론에서 비판해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비즈니스’라는 설명이다.

    그가 브로커 세계에 발을 내디딘 건 2년 전 우연히 참석한 한 모임이 발단이 됐다. 자기보다 먼저 이쪽 세계에 발을 담근 선배 매니저의 “얼굴이나 보자”는 호출이었다. 그가 도착한 청담동 와인바에는 그 선배를 비롯해 여자 모델과 의사 예닐곱 명이 질펀하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의사들은 8학군에 있는 고교 선후배들로 모두 유부남이었다. 모델들과는 초면이었지만 이들은 금세 오빠-동생 사이가 됐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근처 가라오케로 옮겼다.

    J는 그날 호형호제하기로 한 30대 후반 성형외과 전문의 P로부터 “언제 시간 되면 신인을 데려와라. 공짜로 성형수술을 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뭔가 미심쩍었지만 J는 며칠 후 자기가 데리고 있던 신인을 신사동에 있는 P의 병원으로 데려가 견적을 받았고, 며칠 후 눈 앞트임 수술을 받게 했다. J는 자연스럽게 연기자들과 회사에서 일 잘하는 매니저로 인정받았고, 팀장에서 실장으로 승진도 했다.

    그리고 정확히 한 달 뒤. 자기가 소개해 준 P와 신인 연기자가 내연의 관계가 됐다는 걸 알게 됐다. 신인 연기자는 P가 마련해준 신사동의 월세 200만원짜리 풀 옵션 오피스텔을 선물 받고 뛸 듯이 기뻐했다. 드라마에서 첫 단역을 따냈을 때도 그렇게 기뻐하지 않던 아이였다.

    P는 J에게도 300만원어치 백화점 상품권을 쥐어주며 섭섭하지 않게 사례했고, 룸살롱에 갈 때마다 J를 불러 친분을 쌓았다. 드라마나 영화 제목을 거론하며 특정 여자 연예인의 이름을 들먹이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P는 “혹시 OOO랑은 안 친해?” “식사 한번 하게 해주면 서로 좋지 않겠느냐”며 J를 떠봤다.

    J에게 여자 연예인의 개인 연락처를 알아내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한 다리만 건너면 담당 매니저도 잘 아는 선후배 사이였지만 이런 은밀한 만남은 절대 그들을 통해서는 성사되지 않는다는 걸 J는 잘 알고 있었다. 이럴 때 J의 접촉 대상은 코디네이터나 미용실 스태프, 또는 마담뚜였다.

    J는 이들을 만나 단도직입적으로 “친한 의사 형이 있는데 한번 만나볼 생각이 있느냐”고 묻거나 “스타 마케팅 때문에 그런데 거마비를 챙겨줄 테니 한번 연예인을 데리고 병원을 찾아달라”고 부탁해 승낙을 얻어내곤 했다. 단골 병원이 있다 해도 여자 연예인들이 성형 협찬에 솔깃할 수밖에 없다는 걸 J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좋은 스폰서 소개해달라”

    이렇게 한두 번 연예인과 스폰서의 만남을 주선하다 보니 그쪽 ‘인맥’도 차츰 두터워졌다. 그 중심에는 어김없이 P가 있었다. 그는 룸살롱에서 “괜찮은 동생”이라며 50대 시행사 회장에게 J를 소개했고, J는 이 회장에게 모 연예인을 만나게 해주는 조건으로 1000만원을 받았다. 난생 처음 만져보는 수표였다.

    연예인에게는 광고 미팅이라고 둘러댔고, 시행사 회장은 광고기획사에 임원으로 있는 친구를 데리고 나와 연예인의 환심과 믿음을 동시에 샀다. 결국 여자 연예인과 회장은 그 뒤로도 몇 차례 더 만났고, J는 깐깐한 그 연예인에게 “좋은 분을 소개해줘 고맙다”는 칭찬까지 들었다. J는 이후 회장에게 1000만원짜리 수표를 한 번 더 받았고 꿈에 그리던 외제차를 장만했다.

    J는 이 일이 있고 나서 미련 없이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PD들에게 늘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고 일한 만큼 성과가 따르지 않아 회의가 든 데다 결정적으로는 200만원도 안 되는 월급이 쥐꼬리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J의 인생에 늘 행운만 따랐던 건 아니다. 운 좋게 스폰서와 만나길 원하는 연예인을 찾아 일을 성사시켜놓고도 받기로 한 돈을 몇 번 떼였고, 친구와 선후배 매니저 사이에서 양아치로 불리며 인간관계도 흉흉해진 것이다. 쉽게 번 돈은 그만큼 쉽게 빠져나갔다. 마치 자신이 의사나 사장이 된 것처럼 유흥비를 물 쓰듯 썼고, 금세 카드빚도 눈덩이처럼 불었다.

    요즘 카드빚 독촉에 시달리는 J는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 대신 신인 연기자를 소개하는 걸로 업종을 변경했다. 신인 프로필을 찍는 사진작가한테 연기자 지망생을 소개받아 스폰서를 소개하고 있다. 아무래도 신인이다 보니 커미션이 적지만 성사 건수는 노력한 만큼 유지되고 있다. 신인이나 연기자 지망생의 경우 레슨비나 카드빚 때문에 먼저 “좋은 스폰서를 소개해달라”고 제안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는 친척 중 누가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하면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며 말릴 것이라고 했다. 웬만큼 독한 마음을 먹지 않고서는 이런저런 유혹에 넘어가기 십상인 곳이 바로 연예계라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J처럼 전직 매니저가 브로커로 나서는 경우도 있지만 연예인과 스폰서를 연결해주는 은밀한 통로는 따로 있다. 바로 ‘마담뚜’로 불리는 강남의 음식점과 유흥업소 여사장들이 그들이다. 씨네씨티 극장이 있는 학동사거리를 중심으로 이런 곳이 열 곳도 넘는다고 한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곳은 한 고급 음식점이다. 이곳은 평범한 음식점처럼 보이지만 연예계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사교장이다. 대기업 오너와 재벌가 인사, 언론사 사주와 광고대행사 대표 등이 단골이다. 그래서 이곳의 40대 여사장은 연예계뿐 아니라 정계 재계 법조계 등 발이 안 닿는 곳이 없어 ‘왕언니 해결사’로 통한다. 한 여자 연예인은 “경미한 교통사고부터 입원실과 수술실 민원, 각종 법정 소송까지 전화 한 통이면 일사천리로 해결될 정도”라고 했다. 여사장의 연륜이 있다 보니 이곳에선 주로 30~40대 연예인이나 이혼한 ‘돌싱’ 연예인과 재벌가, 전문직 종사자들과의 만남이 이뤄진다고 알려져 있다.

    ‘돈 베팅’은 남녀의 만남을 앞두고 시작된다. 보통 남자 쪽에서 ‘누굴 만나게 해주면 이 정도 사례하겠다’고 약속하는데 간혹 여자 연예인이 고마움의 표시로 자신이 받는 돈의 10~20%를 떼어줄 때도 있다.

    “일거수일투족 감시하라”

    하지만 돈만 있다고 해서 아무나 이 음식점의 멤버가 될 수는 없다. 워낙 말이 많은 동네다 보니 철저한 멤버십으로 운영되며 믿을 만한 사람의 추천이 아니면 여사장과 통성명하기도 쉽지 않다는 전언이다.

    1층 홀에서는 식사만 하고, 은밀한 만남은 주로 위층에 마련된 별실에서 이뤄진다고 한다. 한때 가정집처럼 꾸며진 밀폐된 공간이 건물 꼭대기 층에 있다고 소문이 났지만 확인되진 않았다. 한 매니저는 “스폰서와 연예인의 만남은 우리도 모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나중에 소문을 듣고 알게 된다”며 “그래서 간혹 소속사 사장으로부터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라는 지시를 받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매니저라는 직업에 비애를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이 음식점이 주로 30대 이상 연예인 출입이 잦은 곳이라면 이 근방에 있는 실내형 포장마차에는 주로 10~20대 여자 연예인들이 드나든다. 이런 곳은 여사장의 나이도 20대나 30대 초반으로 낮은 것이 특징이며, 전직 연예인 출신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한때 가수로 활동했지만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하고 은퇴해 술집 사장이 된 S도 그중 한 명이다. S는 현역으로 활동할 때 닦아놓은 인맥을 바탕으로 다양한 직업군의 손님을 가게로 불러 모아 금세 청담동에서 유명 인사가 됐다.

    일단 몸매와 외모가 뛰어난 여자 모델과 연기자 후배들을 자주 오게 해 ‘물 관리’부터 들어간다. ‘수질’ 좋은 가게로 한번 소문이 나면 연예 관계자나 유학생, 돈 많은 재벌 2, 3세가 몰려오는 건 시간문제다. S를 비롯한 20~30대 여사장의 최대 무기는 친화력. 한번 사람과 안면을 트면 싹싹한 화술과 매너를 발휘해 단골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 물론 아무한테나 그런 노력을 들이는 건 아니다.

    아무래도 연령대가 낮기 때문에 이쪽은 연예인과 스폰서의 격식 있는 만남이라기보다 소개팅 분위기에 가깝다는 게 여러 브로커의 증언이다. 서로 다른 테이블에 있는 남녀 일행을 여사장이 합석하게 하거나 “서로 알아두면 좋은 사람들”이라며 안면을 트게 한다는 것이다.

    한 브로커는 “미혼인 재벌 2, 3세에게 어떤 스타일의 연예인을 좋아하냐고 묻고 이상형을 소개해주는 ‘찍팅’이 유행”이라고 말한다. ‘찍팅’이란 마음에 드는 한 사람을 찍으면 그 사람을 소개해주는 은어. 하지만 연락이 닿더라도 만남이 성사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는 그 연예인과 이미지가 가장 흡사한 대체 연예인을 소개한다고 한다. 남자가 흡족해하지 않더라도 ‘이렇게까지 노력했다’는 걸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성사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S는 자신의 ‘나와바리(구역)’에 속한 연예인을 적극 활용하는 편이다. 언제든 전화 한 통이면 나올 수 있는 친한 여자 연예인을 많이 거느리는 것 자체가 스폰서의 환심을 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S의 한 측근은 “지난달 깜찍한 외모의 여자 연예인과 모 면세점을 계열사로 둔 대기업 자제를 연결해주고 남자에게 아우디 자동차를 선물로 받았다”고 귀띔했다. 이곳에는 연예인뿐 아니라 아나운서와 레이싱 모델, 리포터들까지 찾아와 남자들의 ‘간택’을 기다린다고 한다.

    연하 남자친구를 스타로 만들어

    마담뚜는 소개의 대가로 돈보다 선물을 받는다. 자동차 선물이 가장 많고, 시계나 명품백도 언제나 환영받는 품목이라고 한다. 현금을 주고받는 건 서로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환금성이 높은 물건으로 사례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 마담뚜는 “작년부터 경기가 안 좋아져 다시 현금을 주고받는 추세”라며 “만나게 해주는 조건으로 500만~1000만원, 동거할 수 있는 ‘오픈 마인드’를 가진 여자 연예인을 소개해주면 부르는 게 값”이라고 했다.

    재벌 2, 3세들이 연예인을 만나고 싶어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희소성이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스타를 내 여자로 소유하고 싶은 욕망과 그들과의 친분을 통해 상류층이라는 존재감을 확인받고 싶은 심리가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방송사 연예인 출신 O가 운영하는 인근 포장마차도 초저녁이 되면 늘 젊은 남녀 연예인으로 붐빈다. 워낙 물 좋은 곳으로 소문이 나서인지 남자 가수와 개그맨도 자주 찾는다. O가 드라마 PD나 기획사 사장과도 두루 친하기 때문에 특히 연예인 지망생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O는 될성부른 지망생을 기획사에 소개하거나 뉴 페이스를 찾는 제작사 관계자의 가교 노릇을 하기도 한다.

    O는 “물장사를 오래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사람을 알게 되고 선남선녀들끼리 우리 가게에서 눈 맞는 일도 비일비재한데 이를 굳이 마담뚜라고 색안경을 쓰고 보면 좀 억울한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과거에는 마담뚜가 나서서 재벌가와 연예인을 연결하는 일이 많았다지만 요즘은 한 커플이 맺어지면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이너서클이 생겨 자기들끼리 친구들을 소개한다”고 말했다.

    최근 눈에 띄는 특징은 ‘누나 스폰서’들의 대거 출현이다. 예전에도 남자 신인 연예인과 경제력이 있는 여자 스폰서가 공공연하게 존재했지만 요즘엔 여자 스폰서의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 이들의 만남은 자금난을 겪는 기획사가 투자를 받는 형식으로 여자 스폰서를 끌어들이고 소속 신인 남자 연예인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지금은 톱스타로 발돋움한 H와 K 등이 모두 신인 시절 ‘누나’들의 아낌없는 지원으로 성장한 사례다.

    한 매니저는 “당시 H는 하도 많은 누나와의 술자리에 불려나가 ‘내가 호스트바 선수도 아니고 힘들어서 못해 먹겠다’고 불평했고, 결국 드라마 한 편이 히트해 거액의 위약금을 물어주고 소속사와 헤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여자 스폰서에 대해 “일부 재벌가 딸이나 강남에서 고급 음식점이나 피부미용실을 운영하는 젊은 여사장들이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으면 십중팔구 남자 연예인과 얽혀 있다고 보면 된다. 이들 중 일부는 직접 에이전시나 매니지먼트 사업에 뛰어들어 연하 남자친구인 신인 연기자를 스타로 만들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모델 출신이지만 지금은 드라마 주연을 꿰찰 만큼 스타가 된 J는 소속사 여사장과 동거 중이라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신인 시절 오갈 곳 없는 J를 뒷바라지하며 스타로 만들어줬고, J도 보은하기 위해 여사장과 연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선남선녀가 모여 있고 성공에 대한 욕망과 성적인 탐욕, 무한경쟁과 돈이 이종교배하는 연예계에서 자정 노력이 계속되지 않는 한 성로비와 스폰서를 뿌리 뽑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많은 연예산업 종사자의 공통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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