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 시 :2009년 10월7일
■ 장 소 :코리아나호텔
■ 사 회 :황준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미래연 산업노동전략센터장
■ 패 널 :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 미래연 산업노동전략센터 연구위원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 미래연 금융재정전략센터 연구위원
옥우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 / 미래연 산업노동전략센터 연구위원
이장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 미래연 산업노동전략센터 연구위원
저성장 사회 도래하나
황준욱 오늘의 토론 주제는 ‘저성장 시대’입니다. 한국 경제의 패러다임이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바뀌고 있습니다. 경제성장률이 연 10% 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가 많을 것 같습니다만 7~8%대의 고성장도 어느덧 추억이 됐습니다. 일자리 구하기가 쉬웠으며 해마다 임금이 오르던 시절의 삶을 앞으로는 누리지 못하리라는 견해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과거 같은 고성장 사회로 되돌아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겠으나 저성장 시대가 올 거라는 예측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저성장 사회가 실제로 도래할 것인지에 대해 먼저 말씀해주십시오.
성태윤 한국 경제는 과거와 달리 자본이 상당히 축적돼 있습니다. 지금의 선진국이 그랬듯 자본이 고도로 축적되면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는 게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따라서 과거처럼 고도성장을 목표로 정책 방향을 잡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과거에 7%, 8%씩 성장했는데, 지금은 3, 4%대로 성장률이 떨어졌으니 다시 7%, 8%로 올려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합니다. 정책을 그런 식으로 구사하면 상당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요.
황준욱 저성장 사회가 도래하리라고 보는군요.
성태윤 경제성장률이 하락한 시대를 저성장 사회라고 정의할 때 그렇습니다. 물론 경제성장률은 경기변동에 따라서 오르락내리락합니다. 다만 저성장 사회를 논할 때 언급하는 경제성장률은 잠재경제성장률을 가리키는 겁니다. 앞으로 잠재성장률이 고도성장기에 비해 떨어지리라는 점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습니다.
옥우석 한국의 성장동력이 약화하고 있다는 점엔 거의 모두가 동감하는 것 같습니다. 성장동력은 투입과 효율성 측면으로 나눠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저출산, 고령화가 노동 투입 부문에서 문제를 일으킬 겁니다. 자본 투자를 크게 늘림으로써 성장률을 높이는 것도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인적자본 축적과 관련해서도 걱정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교육 생산성이 떨어진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대학생 수는 굉장히 많이 늘었지만 생산성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성장률 저하 추세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장기적 트렌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변창흠 저성장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점엔 대체로 동의가 이뤄진 것 같습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대선공약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을 보면 딴 세상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도 747공약을 내걸고 집권하지 않았습니까. 지방자치단체는 경제성장률이 10%가 넘어야 이뤄질 수준으로 도시기본계획을 짜고 있어요. 지자체가 제시한 목표대로라면 한국 인구가 적어도 7000만명은 돼야 합니다. 수도권 인구가 현재 2300만명에 달하는데, 수도권 지자체들의 계획대로라면 수도권에 3000만명은 거주해야 합니다. 환경이 바뀌었는데도 고성장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고성장은 빈곤탈출, 소득증가, 삶의 질 향상을 견인했습니다. 저성장 시대를 준비하려면 고성장 시대에 발생한 문제점들을 되짚어봐야 합니다. 고성장은 개인에게 사회적 이동, 신분 상승, 부의 축적이라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기존의 공동체와 삶의 가치를 파괴했습니다. 저성장 시대를 헤쳐나가려면 고성장에 의해 희생된 가치를 복원해야 합니다.
이장혁 4% 성장이 현실인데 6%, 7% 성장하겠다는 목표에 따라 계획을 세우면 10, 20년 뒤에 엄청난 부작용이 올 수 있습니다. 예컨대 도심 외곽의 대형 아파트 단지는 살겠다는 사람이 줄어 슬럼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 가지 꼭 말씀드리고 싶은 건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게 궁극적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국가 구성원의 행복도와 삶의 질을 높이는 걸 국가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행복도, 삶의 질을 높이는 것과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것을 같은 차원에 놓고 들여다볼 필요는 없습니다. 성장률이 높다고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고, 성장률이 낮다고 모든 사람이 불행해지는 게 아니거든요. 기대 수준을 바꿔야 할 때가 됐습니다. 옥 교수 말씀대로 투입 요소를 늘려서 성장하는 데엔 한계가 있습니다. 어떻게 효율적으로 생산요소를 투입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황준욱 저성장 시대의 개인의 삶으로 주제를 옮기겠습니다.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바뀔까요? 교육에 대한 수요나 패턴이 바뀔 수 있을까요? 부동산시장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이장혁 자식 교육도 하나의 투자입니다. 투자 대비 수익, 즉 기대수익을 가정하고 투자하는 거죠. 성장률 하락세가 이어진다면 교육비의 기대수익을 지금보다 저평가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아직 고성장 시대의 향수에 빠져 있습니다. 교육에 무리하게 투자하는 분은 10년, 20년, 30년 뒤 후회할 가능성이 적지 않아요. 교육은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에 국가 전체로 봐서도 과도한 교육비 투자는 생산요소 투입의 효율성을 크게 떨어뜨리는 겁니다. 저성장 사회에선 계층간 소득 불균형이 더욱 심화하면서 계층 이동의 역동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소득엔 큰 변화가 없는데도 삶의 만족도는 떨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옥우석 기대수익이 떨어진다고 해서 교육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까요? 교육투자는 다소 무리하게 비유하면 주식시장을 닮았어요. 성공한 사람은 눈에 보이는데, 실패한 사람은 잘 안 드러납니다. 조기유학을 보냈더니 외국계 기업의 임원이 됐다더라, 연봉이 1억원이 넘는다더라, 이런 소문은 쉽게 나지만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습니다. 교육투자는 앞으로도 늘어날 것 같습니다.
저성장 사회의 개인
성태윤 교육투자의 기대수익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위험을 고려한 수익률까지 낮아진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자녀가 교육 과정에서 도태되면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리스크를 알면서도 교육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어떤 구조가 형성돼 있습니다.
변창흠 고성장 시대엔 고급인력의 수요가 많았습니다. 교육만큼 투자 대비 효과가 높은 부문도 없었습니다. 저성장 시대엔 고급인력에 대한 수요가 줄 수밖에 없습니다. 수익률은 떨어지겠지만 투자는 계속될 겁니다. 교육 프로그램을 다양화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교육의 질, 양, 유형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해요.
성태윤 언론에서 자주 제기하는 이슈가 기업을 위한 ‘맞춤식 교육’입니다. 그런데 맞춤식 교육이 갖고 있는 위험이 상당합니다. 산업 트렌드는 숨 가쁘게 바뀝니다. 특정 산업에 얽매인 형태로 교육받은 사람은 트렌드가 바뀌면 운신의 폭이 좁아집니다. 운이 좋아서 뜨는 산업에서 일하면 다행이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끔찍하겠죠. 대학교육은 일반적인 지식, 스킬을 받아들이는 흡수 능력을 키우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그래서 미국, 유럽에서도 교양교육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옥우석 산업 수요에 맞춰 인력을 공급하는 건 대학의 역할이 아닙니다. 대학은 학생들에게 지식, 기술의 ‘흡수 능력’을 키워주는 곳입니다. 대학(university)을 갈 사람과 전문대(professional college)를 갈 사람을 구분해야 하는데, 모두가 대학을 선택하게끔 하는 시스템이 문제입니다.
황준욱 저성장 시대의 국토의 계획, 운용은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요? 주택시장의 변화 양상도 독자의 관심사일 것 같습니다.
변창흠 이명박 정부가 규제 완화에 나서면서 부동산시장도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계획이 수립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주택, 국토 부문에서 정부의 개입이 센 나라였습니다. 법률도 선(先)계획, 후(後)개발을 규정해놓았고요. 국토 및 토지 정책에서 수요/공급의 시장 패러다임을 추종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고성장 시대의 국토, 주택의 수요 팽창 과정에서 이득을 가장 많이 본 계층입니다. 그런데 앞으로도 그럴까요? 1980년대 도시적 용도로 쓰이는 국토는 전체의 3.1%였습니다. 지금은 그것이 6.4%로 높아졌습니다. 30년 동안 도시적 용도로 쓰이는 국토가 2배로 늘어난 것입니다. 2020년 목표는 국토의 9.3%를 도시적 용도로 쓰는 것입니다. 이 같은 국토계획에 맞춰서 주택정책도 입안되고 있습니다. 작은 정부를 공약으로 내건 보수당 정부가 팽창 지향적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결국 어떻게 될까요? 지방의 미분양 아파트가 지금은 조금 줄어서 14만호쯤 됩니다. 미분양 문제가 수도권으로 불어닥칠 겁니다. 토목·건설은 일자리 창출 능력이 뛰어납니다. 경제위기 국면에서 토목·건설이 해법으로 떠오르면서 이 부분이 더욱 팽창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팽창이 저성장 시대에 엄청난 위기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황준욱 부동산 양극화는 저성장 시대에도 계속될까요?
변창흠 부동산 양극화는 토지와 주택으로 나눠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토지는 주택보다 소유의 집중도가 훨씬 심합니다. 민간 보유 토지의 65%를 상위 5%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반면 주택은 소유의 집중도는 심각하지 않은 편입니다. 그 대신 가격의 격차가 크지요. 지방과 서울, 서울 강남·강북 간 주택가격 차가 엄청나지 않습니까? 예컨대 강남지역은 교육·문화환경이 우수한데다 자산의 기대수익마저 높습니다. 낙후한 곳에 사는 사람들은 더 나은 곳으로 이사하고 싶어하게 마련이죠. 저성장 시대에도 부동산 양극화는 심각한 문제로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주택의 상품가치가 높은 지역으로 수요가 더욱 집중하면서 그런 지역의 주택 값이 계속 오르는 추세가 계속될 가능성이 큽니다.
황준욱 저성장 사회의 일자리는 어떤 형태일까요? 선진국들은 저성장 사회로 이동하면서 실업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옥우석 1970년대 오일쇼크가 유럽이 저성장 시대를 맞이한 계기입니다. 굉장히 파괴적인 형태로 오일쇼크가 유럽을 타격했습니다. 당시 발생한 고실업이 매우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겁니다. 한국이 유럽처럼 고실업 사회로 나아갈까요? 저는 중단기적으로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배달’의 민족 아닙니까? 파리에서도 한국 가게는 배달을 해줍니다. 대리운전을 한번 보십시오. 우리가 새로운 형태의 직업을 창출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새로 창출되는 직종이 고부가가치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를 비교하면 고용탄력성이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고용성장률로 나눠보면 당시나 지금이나 비슷한 수치가 나옵니다.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말이 나도는데, 실제로는 고용 창출 능력 자체는 그렇게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1980~90년대엔 대기업이 일자리를 만들었습니다만 2000년대 들어서는 대기업의 고용은 감소세입니다. 대신 중소기업이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10인 이하의 작은 기업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고용을 창출하고 있지요. 서비스 부문의 일자리도 늘고 있고요. 고용이 줄었다기보다는 창출 패턴이 변화한 것입니다. 제조업의 고용 감소는 1990년대부터 시작된 트렌드로 대기업의 고용 창출은 이젠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한국은 제조업 대비 서비스 산업 고용자 수가 가장 빠르게 증가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새로 창출된 일자리의 대부분이 나쁜 일자리입니다. 일자리의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는 거죠.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큽니다.
황준욱 좋은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거군요. 교육투자는 증가하는데 좋은 일자리는 줄어든다면….
변창흠 1990년대 말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강제적으로 구조조정이 일어났습니다. 그 과정에서 탈락한 이들이 서비스업, 그중에서도 음식, 숙박, 도소매업 쪽으로 몰렸습니다. 서울의 인구 대비 음식점 수, 택시운전자 수는 선진국에 비해 훨씬 많습니다. 시장은 작은데 경쟁은 치열하니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요. 지금 한국의 자영업은 노동을 스스로 만들어서 파는 구조입니다. 서비스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3~4% 성장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저성장 사회의 기업
황준욱 개인에서 기업으로 주제를 바꾸겠습니다. 기업의 생산방식, 경영방식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요? 금융체계는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야 할까요?
■ 장 소 :코리아나호텔
■ 사 회 :황준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미래연 산업노동전략센터장
■ 패 널 :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 미래연 산업노동전략센터 연구위원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 미래연 금융재정전략센터 연구위원
옥우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 / 미래연 산업노동전략센터 연구위원
이장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 미래연 산업노동전략센터 연구위원

왼쪽부터 이장혁, 성태윤, 옥우석, 황준욱, 변창흠
황준욱 오늘의 토론 주제는 ‘저성장 시대’입니다. 한국 경제의 패러다임이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바뀌고 있습니다. 경제성장률이 연 10% 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가 많을 것 같습니다만 7~8%대의 고성장도 어느덧 추억이 됐습니다. 일자리 구하기가 쉬웠으며 해마다 임금이 오르던 시절의 삶을 앞으로는 누리지 못하리라는 견해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과거 같은 고성장 사회로 되돌아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겠으나 저성장 시대가 올 거라는 예측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저성장 사회가 실제로 도래할 것인지에 대해 먼저 말씀해주십시오.
성태윤 한국 경제는 과거와 달리 자본이 상당히 축적돼 있습니다. 지금의 선진국이 그랬듯 자본이 고도로 축적되면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는 게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따라서 과거처럼 고도성장을 목표로 정책 방향을 잡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과거에 7%, 8%씩 성장했는데, 지금은 3, 4%대로 성장률이 떨어졌으니 다시 7%, 8%로 올려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합니다. 정책을 그런 식으로 구사하면 상당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요.
황준욱 저성장 사회가 도래하리라고 보는군요.
성태윤 경제성장률이 하락한 시대를 저성장 사회라고 정의할 때 그렇습니다. 물론 경제성장률은 경기변동에 따라서 오르락내리락합니다. 다만 저성장 사회를 논할 때 언급하는 경제성장률은 잠재경제성장률을 가리키는 겁니다. 앞으로 잠재성장률이 고도성장기에 비해 떨어지리라는 점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습니다.
옥우석 한국의 성장동력이 약화하고 있다는 점엔 거의 모두가 동감하는 것 같습니다. 성장동력은 투입과 효율성 측면으로 나눠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저출산, 고령화가 노동 투입 부문에서 문제를 일으킬 겁니다. 자본 투자를 크게 늘림으로써 성장률을 높이는 것도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인적자본 축적과 관련해서도 걱정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교육 생산성이 떨어진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대학생 수는 굉장히 많이 늘었지만 생산성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성장률 저하 추세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장기적 트렌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변창흠 저성장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점엔 대체로 동의가 이뤄진 것 같습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대선공약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을 보면 딴 세상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도 747공약을 내걸고 집권하지 않았습니까. 지방자치단체는 경제성장률이 10%가 넘어야 이뤄질 수준으로 도시기본계획을 짜고 있어요. 지자체가 제시한 목표대로라면 한국 인구가 적어도 7000만명은 돼야 합니다. 수도권 인구가 현재 2300만명에 달하는데, 수도권 지자체들의 계획대로라면 수도권에 3000만명은 거주해야 합니다. 환경이 바뀌었는데도 고성장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고성장은 빈곤탈출, 소득증가, 삶의 질 향상을 견인했습니다. 저성장 시대를 준비하려면 고성장 시대에 발생한 문제점들을 되짚어봐야 합니다. 고성장은 개인에게 사회적 이동, 신분 상승, 부의 축적이라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기존의 공동체와 삶의 가치를 파괴했습니다. 저성장 시대를 헤쳐나가려면 고성장에 의해 희생된 가치를 복원해야 합니다.
이장혁 4% 성장이 현실인데 6%, 7% 성장하겠다는 목표에 따라 계획을 세우면 10, 20년 뒤에 엄청난 부작용이 올 수 있습니다. 예컨대 도심 외곽의 대형 아파트 단지는 살겠다는 사람이 줄어 슬럼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 가지 꼭 말씀드리고 싶은 건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게 궁극적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국가 구성원의 행복도와 삶의 질을 높이는 걸 국가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행복도, 삶의 질을 높이는 것과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것을 같은 차원에 놓고 들여다볼 필요는 없습니다. 성장률이 높다고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고, 성장률이 낮다고 모든 사람이 불행해지는 게 아니거든요. 기대 수준을 바꿔야 할 때가 됐습니다. 옥 교수 말씀대로 투입 요소를 늘려서 성장하는 데엔 한계가 있습니다. 어떻게 효율적으로 생산요소를 투입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황준욱 저성장 시대의 개인의 삶으로 주제를 옮기겠습니다.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바뀔까요? 교육에 대한 수요나 패턴이 바뀔 수 있을까요? 부동산시장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이장혁 자식 교육도 하나의 투자입니다. 투자 대비 수익, 즉 기대수익을 가정하고 투자하는 거죠. 성장률 하락세가 이어진다면 교육비의 기대수익을 지금보다 저평가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아직 고성장 시대의 향수에 빠져 있습니다. 교육에 무리하게 투자하는 분은 10년, 20년, 30년 뒤 후회할 가능성이 적지 않아요. 교육은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에 국가 전체로 봐서도 과도한 교육비 투자는 생산요소 투입의 효율성을 크게 떨어뜨리는 겁니다. 저성장 사회에선 계층간 소득 불균형이 더욱 심화하면서 계층 이동의 역동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소득엔 큰 변화가 없는데도 삶의 만족도는 떨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옥우석 기대수익이 떨어진다고 해서 교육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까요? 교육투자는 다소 무리하게 비유하면 주식시장을 닮았어요. 성공한 사람은 눈에 보이는데, 실패한 사람은 잘 안 드러납니다. 조기유학을 보냈더니 외국계 기업의 임원이 됐다더라, 연봉이 1억원이 넘는다더라, 이런 소문은 쉽게 나지만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습니다. 교육투자는 앞으로도 늘어날 것 같습니다.
저성장 사회의 개인
성태윤 교육투자의 기대수익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위험을 고려한 수익률까지 낮아진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자녀가 교육 과정에서 도태되면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리스크를 알면서도 교육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어떤 구조가 형성돼 있습니다.
변창흠 고성장 시대엔 고급인력의 수요가 많았습니다. 교육만큼 투자 대비 효과가 높은 부문도 없었습니다. 저성장 시대엔 고급인력에 대한 수요가 줄 수밖에 없습니다. 수익률은 떨어지겠지만 투자는 계속될 겁니다. 교육 프로그램을 다양화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교육의 질, 양, 유형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해요.
성태윤 언론에서 자주 제기하는 이슈가 기업을 위한 ‘맞춤식 교육’입니다. 그런데 맞춤식 교육이 갖고 있는 위험이 상당합니다. 산업 트렌드는 숨 가쁘게 바뀝니다. 특정 산업에 얽매인 형태로 교육받은 사람은 트렌드가 바뀌면 운신의 폭이 좁아집니다. 운이 좋아서 뜨는 산업에서 일하면 다행이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끔찍하겠죠. 대학교육은 일반적인 지식, 스킬을 받아들이는 흡수 능력을 키우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그래서 미국, 유럽에서도 교양교육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옥우석 산업 수요에 맞춰 인력을 공급하는 건 대학의 역할이 아닙니다. 대학은 학생들에게 지식, 기술의 ‘흡수 능력’을 키워주는 곳입니다. 대학(university)을 갈 사람과 전문대(professional college)를 갈 사람을 구분해야 하는데, 모두가 대학을 선택하게끔 하는 시스템이 문제입니다.
황준욱 저성장 시대의 국토의 계획, 운용은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요? 주택시장의 변화 양상도 독자의 관심사일 것 같습니다.
변창흠 이명박 정부가 규제 완화에 나서면서 부동산시장도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계획이 수립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주택, 국토 부문에서 정부의 개입이 센 나라였습니다. 법률도 선(先)계획, 후(後)개발을 규정해놓았고요. 국토 및 토지 정책에서 수요/공급의 시장 패러다임을 추종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고성장 시대의 국토, 주택의 수요 팽창 과정에서 이득을 가장 많이 본 계층입니다. 그런데 앞으로도 그럴까요? 1980년대 도시적 용도로 쓰이는 국토는 전체의 3.1%였습니다. 지금은 그것이 6.4%로 높아졌습니다. 30년 동안 도시적 용도로 쓰이는 국토가 2배로 늘어난 것입니다. 2020년 목표는 국토의 9.3%를 도시적 용도로 쓰는 것입니다. 이 같은 국토계획에 맞춰서 주택정책도 입안되고 있습니다. 작은 정부를 공약으로 내건 보수당 정부가 팽창 지향적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결국 어떻게 될까요? 지방의 미분양 아파트가 지금은 조금 줄어서 14만호쯤 됩니다. 미분양 문제가 수도권으로 불어닥칠 겁니다. 토목·건설은 일자리 창출 능력이 뛰어납니다. 경제위기 국면에서 토목·건설이 해법으로 떠오르면서 이 부분이 더욱 팽창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팽창이 저성장 시대에 엄청난 위기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황준욱 부동산 양극화는 저성장 시대에도 계속될까요?
변창흠 부동산 양극화는 토지와 주택으로 나눠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토지는 주택보다 소유의 집중도가 훨씬 심합니다. 민간 보유 토지의 65%를 상위 5%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반면 주택은 소유의 집중도는 심각하지 않은 편입니다. 그 대신 가격의 격차가 크지요. 지방과 서울, 서울 강남·강북 간 주택가격 차가 엄청나지 않습니까? 예컨대 강남지역은 교육·문화환경이 우수한데다 자산의 기대수익마저 높습니다. 낙후한 곳에 사는 사람들은 더 나은 곳으로 이사하고 싶어하게 마련이죠. 저성장 시대에도 부동산 양극화는 심각한 문제로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주택의 상품가치가 높은 지역으로 수요가 더욱 집중하면서 그런 지역의 주택 값이 계속 오르는 추세가 계속될 가능성이 큽니다.
황준욱 저성장 사회의 일자리는 어떤 형태일까요? 선진국들은 저성장 사회로 이동하면서 실업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옥우석 1970년대 오일쇼크가 유럽이 저성장 시대를 맞이한 계기입니다. 굉장히 파괴적인 형태로 오일쇼크가 유럽을 타격했습니다. 당시 발생한 고실업이 매우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겁니다. 한국이 유럽처럼 고실업 사회로 나아갈까요? 저는 중단기적으로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배달’의 민족 아닙니까? 파리에서도 한국 가게는 배달을 해줍니다. 대리운전을 한번 보십시오. 우리가 새로운 형태의 직업을 창출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새로 창출되는 직종이 고부가가치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를 비교하면 고용탄력성이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고용성장률로 나눠보면 당시나 지금이나 비슷한 수치가 나옵니다.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말이 나도는데, 실제로는 고용 창출 능력 자체는 그렇게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1980~90년대엔 대기업이 일자리를 만들었습니다만 2000년대 들어서는 대기업의 고용은 감소세입니다. 대신 중소기업이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10인 이하의 작은 기업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고용을 창출하고 있지요. 서비스 부문의 일자리도 늘고 있고요. 고용이 줄었다기보다는 창출 패턴이 변화한 것입니다. 제조업의 고용 감소는 1990년대부터 시작된 트렌드로 대기업의 고용 창출은 이젠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한국은 제조업 대비 서비스 산업 고용자 수가 가장 빠르게 증가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새로 창출된 일자리의 대부분이 나쁜 일자리입니다. 일자리의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는 거죠.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큽니다.
황준욱 좋은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거군요. 교육투자는 증가하는데 좋은 일자리는 줄어든다면….
변창흠 1990년대 말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강제적으로 구조조정이 일어났습니다. 그 과정에서 탈락한 이들이 서비스업, 그중에서도 음식, 숙박, 도소매업 쪽으로 몰렸습니다. 서울의 인구 대비 음식점 수, 택시운전자 수는 선진국에 비해 훨씬 많습니다. 시장은 작은데 경쟁은 치열하니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요. 지금 한국의 자영업은 노동을 스스로 만들어서 파는 구조입니다. 서비스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3~4% 성장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저성장 사회의 기업
황준욱 개인에서 기업으로 주제를 바꾸겠습니다. 기업의 생산방식, 경영방식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요? 금융체계는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