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의생(醫生), 전쟁 거치며 한의사로 변모
현대의학-한의학 같이 배우는 日本
한의사도 시험 거치면 의사와 동일 대우 中國
한국만 갈라진 의사와 한의사 체계
의학은 과학적 치료 통해 환자 살리는 학문
의학-한의학 나눌 이유 없어
2024년 10월 29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 의과대학 앞을 한 시민이 지나고 있다. [뉴스1]
기대는 이내 실망으로 바뀌었다. 한의학의 바탕이 되는 음양오행 이론이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동양철학의 중심을 이루는 음양의 순환, 목화토금수의 성질을 가진 물질들의 상호작용, 그리고 기의 흐름을 조절해 인간을 치료한다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왜 과학적 근거가 낮아 보이는 한의학을 전공한 이들에게 국가에서 정식으로 진료 면허를 주게 된 것일까. 답은 같은 학기에 들었던 의사(醫史)학 강의에서 들을 수 있었다.
전 세계서 한국만 유일한 ‘의료 이원화’
과학이 발달하기 전부터 인류는 각자의 방식으로 질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 결과 세계 여러 지역에는 ‘전통의학(traditional medicine)’ 이라 불리는 치료법이 존재해 왔다. 특정 질환에 어떤 치료가 효과적인지, 어떤 부작용이 생기는지를 인류는 경험적으로 터득했던 것이다. 동아시아에는 한의학이 있었고, 인도에는 아유르베다, 서양에도 4원소설에 기반한 전통 의학이 있었다.
그리스의 철학자 엠페도클레스는 우주가 흙·공기·물·불의 4가지 원소로 돼 있다는 4원소설을 주장했고, 그의 제자들은 이를 발전시켜 4체액(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설을 제시했다. 이 4체액의 균형이 깨진 것을 질병의 원인으로 본 히포크라테스가 진단과 치료에 이용했다. 하지만 성과는 좋지 못했다.
결국 환자들은 종교에 의지했다. 당시의 병원은 모여든 환자들을 수도원 한편에 수용해 놓은 구호소에 불과했고, 위생 관념이 없던 의사들은 오히려 병균을 더 퍼뜨렸다.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죽은 페스트가 유행했을 무렵 환자를 돌본 성직자들이 일반인들보다 많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유럽인들은 마침내 병의 원인을 신의 분노가 아닌 인간 육체에서 찾게 됐다. 즉 생존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 혁신이 필요한 상황에서 기존 전통 의학의 효용성에 물음표가 붙었고, 르네상스가 시작되며 과학을 기본으로 하는 현대 의학이 태동한다.
이런 큰 흐름 아래 세상을 구성하는 100개 남짓 원소들이 밝혀지며 주기율표가 만들어졌고, 16세기 해부학자 베살리우스 등에 의해 혈액순환이 밝혀져 4체액설을 비롯해 1500년 동안 정설로 자리 잡은 전통 의학의 치료법은 박물관으로 향하거나 민간에서나 통용되는 대체보완의학(alternative complementary medicine)으로 남았다.
그러나 한의학은 유럽의 의학처럼 지배 이론이 뒤집어지며 발전하는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한 명나라처럼 현실에 안주하며 스스로를 혁신해 드넓은 바다로 나아가는 도전을 거부한 것이다.
일본은 서양으로부터 현대 과학과 현대 의학을 재빨리 받아들여 발전시켰다. 그러면서 기존의 한의사에게 현대 의학 교육을 해 의사면허를 주었고 의대생에게 의과대학에서 한의학을 가르치고 의사면허 취득 후 한약 처방이 가능하도록 해줬다. 이를 ‘일원적 의료 일원화’라고 한다.
하지만 중국은 거센 근대화의 물결에도 한의사 양성 제도(중의사)를 그대로 뒀다. 중국 지도자였던 덩샤오핑의 ‘백묘흑묘론’, 즉 치료만 잘하면 중의학이든 서양 의학이든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중의대와 서의대가 따로 있어 각각 면허를 취득하지만, 추가로 2년을 더 배우면 ‘결합의사’ ‘중서결합의사’가 될 수 있으며, 이들 면허 범위에는 차이가 없다. 이를 한의사와 의사 두 개지만 면허의 범위가 같다는 특징을 들어 중국식 ‘이원적 의료 일원화’라고도 한다.
우리 경우를 보면 일제강점기 총독부가 ‘조선의료령’에 따라 기존 한의사를 ‘의생(醫生)’으로 부르며 현대 과학에 기반을 둔 의사 및 치과의사와는 다른 대우를 했다. 광복 후 제정된 ‘보건의료행정법안’에서도 의료인 규정에 한의사는 배제됐다.
그러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고 임시 수도 부산에서 열린 의회에서 ‘의료인의 절대 부족’ ‘비싼 양약’ ‘민족 고유 문화 발전 필요성’ ‘한방에 대한 뛰어난 대중 접근성’ 등을 고려해 통과된 국민의료법을 통해 의생에게 한의사라는 명칭이 부여됐다. 다만 한의사는 의사와 동등한 권한과 의무를 가지지만 현대 의학에 관련한 진단기기 사용과 치료를 금지했다. ‘상호배타적 의료 이원화 제도’가 시작된 것이다.
한의사도 이미 현대 의료 장비 사용 중
2024년 6월 2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한의학 및 통합의약 국제산업박람회’를 찾은 관람객들이 설명을 듣고 있다. [뉴스1]
본과 3학년 때 서울아산병원 소아외과 서브인턴을 하면서 한약을 먹고 간이 망가진 10세 환아의 간이식 수술을 참관했다.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안타까운데 부모님은 얼마나 힘드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양대병원 인턴 때는 등에 침을 맞고 양측 폐가 찢어지면서 기흉이 발생해 위독한 상태로 응급실로 실려 온 환자의 흉관 삽입을 보조했다. 말도 안 되는 치료를 하고 현장에서 기본적 처치도 못 한 한의사에게 분노했다. 내과 전문의가 된 후엔 초기 암을 약침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꾐에 넘어가 치료 시기를 놓쳐 목숨을 잃는 환자도 보았다.
이 시기에 온라인에서 허준의 ‘동의보감’에 실린 투명 인간이 되는 법, 죽은 사람을 살리는 법 등 비과학적 내용이 다수 담겨 있다는 내용이 퍼졌다. 방송에서는 다이어트 한약과 약침의 부작용에 대한 내용이 보도됐다. 침 치료가 플라세보(위약) 효과를 제외하면 몇 가지 유형의 통증과 구역질에만 효과를 보일 뿐이라는 연구 결과도 퍼지며 한의학에 부정적 여론은 커져갔다. 이런 추세에 건강보험 재정으로 지급된 진료비 중 한방 의료 비중은 계속 감소해 2014년 4.2%에서 2022년 3.1%로 줄었다.
한 입시 사이트에서는 한의대생들의 자괴감이 담긴 글이 널리 공유되기도 했다. 내 고향 친구도 그랬다. 학업을 마치는 본과 4학년 무렵 한의학의 비과학성에 한계를 느낀 친구가 진로에 대해 상담을 요청한 것이다. 그 친구는 결국 시험을 다시 봐서 의학전문대학원에 들어갔다.
한의학에 대한 부정적 여론과 수요 감소를 겪은 한의사들은 현대 의학 영상 장비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최근 골밀도검사기, 뇌파검사기, 초음파기기 등에서 한의사 처방에 대한 법적 분쟁으로 이어졌다. 일부 한의사들의 의료 기기 사용이 승소하긴 했지만 ‘한의학의 근간인 음양오행, 기(氣)와 혈(血)이 초음파나 엑스레이에 잡히지 않는데 한의사들이 꼭 의료 장비를 써야 하냐’는 부정적 여론은 더 커졌다.
한의학의 과학화란 명분으로 세금이 낭비된 사례도 있다. 지금까지 수백억 원이 투입된 ‘한방난임치료 지원사업’이 대표적 예다. 의료정책연구소에서 2017~2019년까지 2년간 해당 사업을 분석한 결과 침과 약침술의 시술 여부에 따른 임신 성공률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체외수정과 비교해 보았을 때는 누적 임신성공률이 훨씬 낮았다.
한의사도 수련 거쳐 필수 의료 인력으로 변모해야
의사 부족에 따른 응급실 의료 대란에 정부가 군의관, 공보의를 파견하기로 한 2024년 9월 4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 이대목동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앞으로 의료진이 지나고 있다. [뉴스1]
일원화 방법은 앞서 말한 것처럼 일본식 일원적 일원화, 중국식 이원적 일원화 2가지가 있다. 한의사협회에서는 대체적으로 중국식 이원적 일원화를 원하는 분위기지만 더 나아가 미국 정골의사(D.O·Doctor of osteopathic Medicine)의 사례를 벤치마킹하려 한다.
정골의학은 1864년 미국 의사이던 앤드루 스틸(Andrew Taylor Still)이 뼈의 위치를 교정하는 시술로 체액의 불균형을 치료하면서 시작됐다. 수많은 정골의과대학이 있었지만 1920년 미국 전체 의대 수준을 평가했던 ‘플렉스너 리포트’에 의해 정골의대 상당수가 수준에 미달해 폐교 처분됐다. 정골의대는 살아남기 위해 커리큘럼을 의대 교육 기준에 맞춰 과감히 변경했다. 인증평가를 통과한 정골의대 졸업생은 일반 의사와 교육, 수련, 업무 범위에서 실질적 법적 차이가 없는 진료권을 얻게 됐다. 한의사협회는 이처럼 의대 과목 수업을 늘려 의사와 동일한 권한을 갖겠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의대 교수를 대거 임용해야 하기에 현실적으로 어렵다.
결국 일본식 ‘일원적 의료 일원화’를 시행함이 옳다. 한의대 학생들은 2년의 추가 의학 강의를 통해 의사면허 시험 응시 자격을 부여받고 2년간 한의과대학 소재지 근처에서 의무적으로 대학병원 수련 기간을 갖는 것, 기존 한의사들은 2년의 의과 수업과 2년의 거주 지역 대학병원 수련 기간을 갖도록 해 수료를 마친 이들에게 의사면허와 함께 한방과 전문의 자격증을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방안은 한의사협회에서도 제안된 바 있기에 무리 없이 시행할 수 있다.
의료 일원화는 지역의 부족한 의료 인력 공급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두 번째로 적다. 그나마도 필수 의료와 큰 상관이 없는 한의사가 포함된 것이라 의료인 숫자 부족에 대한 문제가 제기돼 왔다. 이 방법으로 의료 일원화를 하면 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의대 정원을 늘려 전문의로서 진료 현장에 나서기까지 11년이 걸린다. 반면 기존 한의사들을 추가 교육해 의료 현장에 투입하는 편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것이다.
한의학이 그 나름의 방법으로 환자를 치료해 왔는데 ‘이렇게 하면 한의학이 사장되지 않을까’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 방법으로 한의학이 과학화되면 많은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버드나무에서 아스피린을 추출한 것처럼 한약재에서 치료 물질을 추출해 추후 제약산업을 선도할 발견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의료 일원화 작업은 의료인 숫자 조정을 하는 문제이고, 직역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기 때문에 세심한 조정이 필요하다. 특히 의과대학 교육 여건 및 우리나라의 저수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2000명이나 늘린 의대 정원 감축도 병행돼야 할 것이다. 의료 정책 개선에 대한 강한 여론이 있을 때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하나하나 개선해 나가야 한다. 지금이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