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별 후, 친구를 불러내 밤새 술 마시며 하소연하거나
- 불 꺼진 그의 방 창문 아래 하염없이 서성이며 애태우던 풍경도 머잖은
- 미래엔 인류의 유물로 남지 않을까. 요즘 젊은 세대는 연애를
- ‘글로 배우는’ 것에 익숙하다. 유혹의 기술만이 아니다.
- 재회 방법까지 전문상담사를 통해 ‘배우는’ 이가 적잖다.
- 영화 속 판타지로만 여겨지던 ‘연애조작단’은 실재한다.

“네. 단, 기한이 정해진 게 아니니 상담 종료 때까지 추가비용은 없습니다.”
그와 이별한 지 20일째 되던 날, 불안과 초조가 뒤엉킨 마음으로 인터넷 연애 상담 사이트를 배회할 때였다. ‘재회 전문’ 타이틀을 내건 상담 사이트를 발견한 건 우연이지만, 막상 검색창에 ‘재회 상담’이란 단어를 입력하자 수십 개 사이트가 눈에 들어왔다.
상담 내용은 대부분 비밀글로 등록돼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지만, 사이트 이용 후기는 얼마든지 열람이 가능했다. 인터넷 쇼핑을 하듯 내담자들의 후기를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칭찬 일색인 곳, 글의 맥락이나 어투가 비슷하게 정돈된 곳은 제외했다. 다년간 인터넷 쇼핑 경험을 토대로 짐작건대, 이런 곳은 댓글 알바를 동원했을 가능성이 높다.
대면 상담을 진행해야 하는 곳도 일단 리스트에서 제외했다. ‘다른 업체에서 돈만 날리고 제대로 된 상담을 받을 수 없었다’는 후기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아 얼굴을 맞대고 상호 신뢰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모르는 사람과 마주 앉아 구구절절 실연당한 얘기를 실토할 만큼 심장이 단단하게 여문 상태가 아니었기에 우회적 방법을 택하는 편이 나을 듯했다. 1회 무료 전화 상담 후 유료 상담으로 전환할 수 있다니 우선 얘기를 들어보고 상담을 계속할지 여부를 결정해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재회 상담도 인터넷 쇼핑처럼
상담 신청 절차는 비교적 간단했다. 나이, 직업, 사는 곳 등 간단한 개인정보를 입력하는 난이 있고, 그 아래 만남에서부터 이별, 현재의 구체적 정황을 정리할 수 있게 한 빈칸을 채워 완료 버튼을 클릭하면 신청서가 제출됐다. 댓글을 통해 상담 가능 시간을 조율하고 며칠 후 1시간 20분가량 무료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상담사는 노련했다. 1시간여 동안 모르는 사람과 무슨 얘기를 얼마나 주고받을 수 있을까 싶던 암울한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심지어 그는 신들린 점쟁이나 되는 듯 내가 별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족집게처럼 콕콕 아픈 곳을 들쑤시며 내 마음을 짚어냈다. ‘내가 이런 유(類)의 연애상담만 하루에 몇 건을 처리하는지 알아?’라는 말을 귀에 들리게 내뱉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는 ‘나는 다 알아’ 병에라도 걸린 듯했다.
전화를 끊고 난 후 느낀 소회는 ‘아, 나도 결국 그렇고 그런 빤한 연애의 결말을 맞았구나’ 하는 것이었다. 물론 수화기 너머 상담사가 직접적으로 그런 슬픈 말을 던진 건 아니었다. 되레 상담사는 대화 말미에 고맙게도 “그분과 결혼하셔야죠”라는 말까지 위로하듯 건넸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선뜻 “정말 그러고 싶어요”라는 말 같은 건 튀어나오지 않았다. “글쎄요”라는 대답에 상담사는 살짝 당황하는 듯했다.
통 크게 20만 원을 쏘고 2회 서면 상담과 3회 전화 상담을 거쳤다. 심리 상태와 행동 패턴을 파악하기 위한 설문지가 오갔고, 전화 상담이 이어진 후엔 30쪽이 넘는 재회 프로그램 문서도 전달받았다. 조만간 헤어진 연인과 통화하게 되고 만남도 이뤄질 것이니 조바심을 버리고 자신이 하라는 대로 잘 따라와달라는 상담사의 당부도 덧붙여졌다.
나, 실연당한 여자야!

상담사가 말한 재회 시점은 헤어진 지 두 달여나 지난 시기인데, 그동안 정말 문자 두 통 주고받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혹여 그사이 괜찮은 여자가 나타나 그를 낚아채가는 건 아닐까 은근한 조바심이 생겼다. ‘헤어진 지 석 달 만에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더라’ 유의 얘기를 한두 번 접해본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죠.”
상담사는 그런다 한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투로 대답했다. 통화 첫날 무료 상담에서, ‘내담자 같은 경우 빨리 상담을 진행해 액션을 취해야 한다’고 말한 것과는 너무도 상반된 반응이었다.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새로운 이성을 만나게 되면 대부분 이전 연인과 비교 아닌 비교를 하게 됩니다. 그런 시점에서 남자친구가 내담자와의 좋았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단서를 제공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분명 혼란스러워지겠죠. 그런 타이밍을 노리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두 통의 문자메시지
20만 원의 비용이 아까운 건 결코 아니었다. 몇 차례 상담을 통해 친구들에게도 쏟아내지 못한 실연 이후의 아픈 속내를 잠시나마 털어낼 수 있는 기회비용으로 여기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지기도 했다. 상담사의 예언처럼 그와 다시 만나게 된다면 분명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 될 것이라는 확신도 생겼다. 이것이 상담사의 진짜 의도였든 아니든, 인고의 시간 동안 비로소 나란 인간을 제대로 돌아볼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별것 아닌 이유로 남자친구의 감정을 긁어댔던 유치함을 걷어내준 건 결국 ‘시간’이었다.그런데 정작 불안은 다른 곳에서 찾아왔다. 지금에 와서야 얘기지만, 기자들의 자조 섞인 연애담은 늘 불편했다. 겉으로는 연애상담소니 섹스 비하인드 스토리니 하는 타이틀을 내걸고 쿨(cool)한 척, 센 척 글발로 치장해댔지만, 결국 기사 형식을 빌려 만인 앞에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은 알몸을 발가벗기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잖나. 기사가 나간 후, 수년 전 헤어진 연인으로부터 융단폭격 같은 욕을 먹었다는 후일담도 심심찮게 들어온 터였다. 하물며 불과 20여 일 전 이별을 고하고 떠난 남자 얘기를 실시간으로 토해내야 하다니!
헤어진 남자친구 기억 속의 내가 ‘일에 미쳐 두 사람만의 소중한 추억마저 홀랑 까발려버린 여자’로 남게 되는 불행한 상황이 눈앞에 해일처럼 밀려드는 듯했다. 기사를 핑계 삼아 정말로 그와 재회할 기회를 거머쥐게 되거나, 설령 재회에 실패한다 해도 지금의 떨칠 수 없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하나씩 정리해나갈 방법은 찾게 되지 않을까 하던 꼼수는 부디 떠난 그 남자가 이 기사를 보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부메랑처럼 되돌아왔다.
“폭력, 불륜 등 최악의 상황에서 헤어진 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다시 만날 순 있죠. 하지만 재회 상담에서 중요한 건 재회 그 자체보다 재회 후 얼마나 달라진 모습으로 서로를 대하게 될 것인지입니다.”
오프라인으로 대면 상담을 진행하는 업체 몇 곳에 공식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리고 그들이 공통적으로 내놓은 재회 상담의 핵심은 재회 그 자체가 아닌 ‘재회 그 이후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재회 상담 서비스 방법은 다양했다. 기자가 경험한 것처럼 전화로 하소연을 들어주고 재회 방법을 안내하는 곳에서부터 헤어진 연인에게 자신의 진심을 호소하려 인터넷 방송이나 이벤트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 영화 ‘시라노연애조작단’에서처럼 실제로 연기자 등을 동원해 재회 상황을 연출하고, 그 우연이 필연인 것처럼 인식되게끔 ‘작전’을 펼치는 곳도 있었다.
재회 이후를 준비하라
“전화·대면 상담을 통해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만으로 부족하다고 판단될 경우, 혼자서 상황을 이끌어가기 곤란하거나 특별히 내담자가 진행을 요청할 경우 재회 프로젝트를 실행하기도 합니다. 우선 타깃(재회하고픈 대상)을 분석해 그의 동선을 파악하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을 통해 타깃이 내담자의 근황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합니다. 그런 다음 우연을 가장한 자연스러운 재회를 준비하는 방식이죠. 물론 단순히 우연한 만남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되는 것만으로 재회가 완성되는 건 아닙니다. 내담자의 내면은 물론 외면에도 변화가 필요하니까요. 그래서 상담을 통해 내면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건 물론 패션 스타일이나 헤어메이크업 등에도 변화를 줄 수 있도록 전문가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황수현 ‘디엘연애조작단’ 팀장의 설명이다. 그런데 모든 내담자가 이런 방식으로 재회에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우연이라도 얼굴을 마주치는 상황마저 거부감을 일으킬 만큼 끝이 좋지 않은 관계도 있기 때문이다. 폭력이나 불륜 등 극한의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