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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없는 후진 축구의 민낯

구닥다리 전술, 수준 이하 정보력
시스템 부재, 무능한 기술委

철학 없는 후진 축구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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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통탄할(woeful)’ ‘실패(failure)’ ‘창피한(embarrassing)’
  • ● ‘의리’ 아닌 시스템이 ‘원 팀’ 만들어
  • ● 시청률 상업주의에 다 걸기한 공중파 방송
철학 없는 후진 축구의 민낯

6월 27일 브라질 월드컵 벨기에와의 조별리그 최종 3차전을 마친 뒤 우는 손흥민(왼쪽).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수많은 나라가 야심 찬 목표를 걸고 용쟁호투를 벌인 끝에, 독일이 우승한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스페인,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의 첩혈쌍웅들이 목숨을 건 혈투를 벌인 끝에, 독일이 우승한다? 코스타리카, 알제리, 벨기에, 칠레, 멕시코 같은 와호장룡들이 핏발 선 경기를 벌인 끝에, 독일이 우승한다? 기승전독(獨)~! 이번 대회, 어떤 경우라도, 마치 독일이 우승하도록 예정된 듯 보였다. 예전의 독일답게 견고했다. 강철이었다. 동시에 빨라졌다. 쾌속의 질주! 중원까지 끌어올리는 극단적인 압박 수비 후 역습 때 일체의 주저함도 없이 상대 골문으로 직진하는 것. 독일 전차의 우승은 예고된 것이었다.

독일과 한국이 만났다면…

독일의 공수 조직은 톱니바퀴 같았다. 기계처럼 차갑고 냉철했다. 해부하듯 상대를 도려냈다. 전차군단은 틀을 유지하면서도 타국의 장점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독일이 자랑하는 게겐 프레싱에 점유율을 높게 가져가는 스페인의 티키타카(탁구 치듯 짧고 빠른 패스 플레이)를 가미했다. 전통적으로 강한 세트피스 때의 위력에 네덜란드가 뽐낸 카운터펀치의 역습도 흡수했다.

축구 전술은 이번 월드컵에서도 진화했다. 호성적을 거둔 팀들은 스리백 포백을 섞어 구사하는 등 다양한 전술을 엮어 상대에 대응했으나 홍명보 감독은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주류이던 4-2-3-1만을 고집했다. 원톱(1)으로 나선 박주영은 고립돼 단 한 차례의 슈팅도 하지 못했다. 축구팬들은 ‘0슈팅, 0골, 1따봉, 1미안’이라고 박주영을 비난했다.

‘전술’, 즉 11명을 어떻게 배치해 경기를 풀어나가느냐 하는 것은 축구 역사 그 자체를 이룬다. 19세기 유럽에서는 피라미드 시스템(2-3-5)이 등장해 정확한 포지션 개념에 따른 확률의 축구를 1930년대까지 구사했다. 이를 깨기 위해 중원을 강화하는 이탈리아의 ‘WM’(3-2-2-3) 시스템이 나왔고 여기서 좀 더 공격적인 변화를 도모하는 헝가리의 ‘MM’ 시스템이 나왔다.



이 체계를 분쇄한 것이 펠레의 브라질이 이룩한 ‘4-2-4’였으며 또한 이를 깨기 위해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 수비가 1960년대에 나왔다. 이 견고한 성채를 부수기 위해 네덜란드는 최종 수비와 전방 공격수 간격을 20여 m로 유지하면서 전원 공격 전원 수비의 토털사커를 추구했는데, 이것이 현대 축구의 골간으로 지금까지 유지된다. 물론 이후에도 독일의 ‘3-5-2’, 잉글랜드와 이탈리아의 ‘4-4-2’ 등이 출현한 바 있다. 이런 전술에서는 반드시 마테우스 같은 리베로, 지단 같은 플레이메이커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놀랍게도’ 스리백이 부활했다. ‘놀랍게도’라고 한 것은 3명의 수비가 안방을 책임지는 이 수비 전술이 1990년대 후반 이후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10여 년 동안 대세를 이룬 것은 포백이었다. 일단 4명이 수비 라인을 형성하지만 수시로 좌우 윙백이 상대 진영의 최전방까지 올라가는 공격 전술이다. 반면 스리백은 3명이 그 자리를 고수하는 수비 전술. 따라서 스페인의 영향권 아래 전 세계 축구가 세밀한 패스 축구를 추구한 10여 년 동안 공격 지향의 포백이 대세를 이뤘다.

그랬는데, 스리백이 부활한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부활한 스리백은 세 가지 점에서 과거의 스리백과 차이가 있다.

첫째는 그 위치. 3명의 수비가 거의 하프라인까지 올라가서 수비를 한다. 이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세밀한 패스 같은 공격술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자기 뒷공간을 허락하지 않는 강한 전투력과 경기 전체를 읽어내는 시야. 이를 얕잡아봤다가는 상대 공격수들이 어김없이 오프사이드에 걸려든다.

둘째는 동료들의 협업. 기본적으로 3 명이 수비 라인을 형성하지만 수세 상황에서 좌우 미드필더들이 신속하게 내려온다. 그래서 실제로는 파이브백, 즉 5명이 수비진을 구축하는 것이다.

셋째는 과거의 스리백이 수비에 치중하는 전술이라면 새로운 스리백은 공격을 하기 위한 전술이라는 점이다. 하프라인에서 상대방의 공격을 차단했을 때 이 전술에 따르면 일제히 전진하는 공격이 가능하다. 몇 번씩이나 주고받으면서 좌우로 열어가는 게 아니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전진하는 것이다. 독일 도르트문트의 위르겐 클롭 감독이 이를 완성했기 때문에 이 전술을 독일어를 사용해 ‘게겐(gegen) 프레싱’이라고도 한다.

이번 대회에서는 독일 네덜란드 코스타리카 칠레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알제리 같은 팀들이 이 전술을 실천했다. 이전의 패러다임을 고수한 팀들, 즉 잉글랜드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한국 등은 고전했다. 이 전술의 효과가 극대화될 경우 대승대패의 결과를 낳는다. 네덜란드는 스페인을 5-1로 꺾었고 독일은 브라질을 무려 7-1로 물리쳤으며 알제리 또한 한국에 전반에만 3골을 쏟아 부었다. 홍명보 감독이 “모든 것은 나 자신의 전술 실수 때문”이라고 한 것은, 그의 이런저런 발언 중 거의 유일한 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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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 │축구칼럼니스트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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