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4일 오전 10시 경남 김해시 삼방동 가야컨트리클럽엔 안개가 자욱했다. 10m 앞이 내다보이지 않았다. 이런 악조건에서도 티오프를 한 것은 오전에 날이 맑아질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날 골핑 동반자는 강병중 넥센그룹 회장(74).
아웃코스 첫 홀 파5. 캐디가 앞 팀의 상황을 무전으로 알아보고 나서 “쳐도 되겠어요”라고 했을 때 안개는 더욱 짙어졌다. 티박스에 섰을 때 엉뚱하게도 헤르만 헤세의 시구가 생각났다. ‘안개 속을 거니는 이상함이여/ 산다는 것은 외로운 것/ 누구나 …다 혼자이다.’골프의 기본은 4인 1조로 어울려 함께 하는 운동이다. 다른 사람이 잃어버린 공도 주워주고, 잘 치도록 배려해야 한다. 안개 속에선 그게 불가능하다. 스트레칭을 했어도 손이 곱고 어깨가 뻐근한 것은 아무래도 안개 탓이었다. 목표 지점이 보이지 않으니 어디로 쳐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안개 속 티샷의 무상함이여!
강 회장은 개의치 않은 듯 부드럽게 티샷을 했다. 뒤에 안 일이지만 강 회장의 골프 철학은 ‘천고마비’다. ‘천천히, 고개 들지 말고, 마음을 비우고 스윙하라’는 뜻이란다.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찌는 좋은 계절을 뜻하는 ‘천고마비(天高馬肥)’와는 무관하지만, 동음이의어여서 금세 마음에 와 닿았다. 강 회장도 그 말대로 실천하기가 쉽지는 않다지만 40년 구력이 만든 비법이다. 그의 ‘천고마비’ 드라이브샷은 안개를 뚫고 골프공을 페어웨이 한가운데에 올려놓았다.
요즘 강 회장의 드라이브 비거리는 200야드 안쪽이고 스코어도 90대 중반 타수에 머물러 있다. 나이 탓도 있지만 그동안 제대로 레슨을 받은 적이 없고, 사업상 알게 된 지인들과 플레이를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다보니 스코어가 나아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90대 중반 타수이면 함께 라운드하는 이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에는 더없이 좋은 스코어”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젊어서는 장타자였고 실력도 좋았다. 최고 스코어는 79타. 그는 키는 크지 않으나 강골 집안 사람이다. 씨름선수 출신 연예인 강호동이 그의 칠촌 조카다.
홀인원, 이글 두 차례씩 기록
3번 홀에서부터 거짓말처럼 안개가 사라졌다. 그러나 도그레그홀, 벙커, 워터 해저드, 러프, 슬라이스, OB들과의 힘겨운 싸움이 시작됐다. 안개와 함께 사라져줬으면 좋았을 단어들. 하늘은 열렸지만 날씨는 제법 쌀쌀해 플레이가 순조롭지 않았다. 이날 따라 티마커를 티잉그라운드 맨 뒤에 놓아두는 바람에 거리가 멀어졌고, 깃대도 그린 앞부분에 꽂혀 있어 플레이어들이 심리적으로 부담을 많이 느꼈다. 전반 홀에선 강 회장도 파 하나를 잡지 못했다.
‘따박따박’ 친다는 말이 있다. 강 회장의 골프 스타일이 그랬다. 그는 자신이 실수할 때도, 남이 실수할 때도 “천고마비!”를 외치며 웃었다. 그러고 나면 다음 샷은 ‘굿샷!’이 돌아왔다. 보기를 이어가던 강 회장은 인코스 7번 홀 파3에서 깔끔하게 파를 기록했다.
김해 가야CC는 신어산 중턱에 자리 잡아 클럽하우스 아래로 수려한 봉우리들을 내려다볼 수 있다. 영남 지방에서 가장 큰 골프장(회원제 45홀, 퍼블릭 9홀)으로 올해 4월 넥센배 KLPGA 대회 개최를 계기로 국내 10대 코스로 진입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강 회장은 1년 전 부산지역 기업인 7명과 뜻을 모아 이 골프장을 인수했고 성공적으로 운영 중이다.
강 회장이 골프와 인연을 맺은 건 40년 전. 사업상 자주 만나던 일본 사람들의 권유를 받고 골프를 시작했다. 덕분에 사업도 순조로웠다고 한다. 강 회장은 홀인원과 이글을 생애 각각 두 번씩 했는데, 특히 2010년 5월 5일 부산 동래베네스트CC에서 기록한 두 번째 홀인원이 인상적이었다고 기억했다.
“125m 3번 홀 파3에서 7번 우드를 짧게 잡고 쳤습니다. 앞바람이 불어 130m 정도 계산했는데 맞는 느낌이 아주 좋았어요. 공이 핀 왼쪽 1m 지점에 떨어졌다가 굴러서 그대로 홀로 들어갔어요. 홀 앞에 워터 해저드와 벙커가 있고 그린도 일명 포대그린이어서 난도가 낮지 않은 곳이었는데, 정말 기뻤습니다.”
투명한 사회책임 경영
매월 첫째 목요일에 모여 운동하는 일목회(강 회장, 구자신 쿠쿠전자 회장, 남정태 유일고무 회장, 최종락 국제플랜트 회장) 회원들과의 라운드에서였다. 당시 이 골프장이 1년간 리모델링을 하고 신장개업한 직후 기록한 첫 홀인원이어서 그는 특별히 골프장으로부터 퍼터, 꽃, 양복티켓 등의 선물을 받았다. 홀인원을 한 뒤 그는 넥센이 만든 골프공 ‘빅야드(Big Yard)’ 신제품 박스에 ‘공이 아니고, 행운을 나눠 갖는다’는 문구를 적은 쪽지를 넣어 지인들에게 나눠주었다.
“홀인원 뒤에 손자도 얻었고, 기업인의 영예인 다산경영상도 받았습니다. 사업도 번창하고 있고요.”
강 회장은 동아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1967년 화물운수회사 옥정산업을 창업했다. 주로 일본에서 수입한 중고화물차를 굴렸는데 많게는 800대까지 갖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타이어에 펑크가 자주 나 타이어 품질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것을 계기로 타이어 사업에 뛰어들었다.
“운수업을 해보니 돈은 많이 벌리는데 그 돈이 모두 타이어 구입비로 들어갔어요. 당시만 해도 타이어 품질이 형편없어 펑크가 자주 났습니다. 그 무렵 재생 타이어 공장을 운영하던 한 지인이 공장을 판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쓰는 타이어를 직접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공장을 인수했습니다.”
이 공장을 기반으로 강 회장은 흥아타이어를 세웠고, 외환위기 직후 우성타이어(뒤에 넥센타이어로 개명)를 인수하면서 글로벌 회사로 도약했다. 우성타이어 인수 당시 주변에선 수익성이 낮다며 만류하는 이가 많았지만 그는 공장을 둘러보며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그래서 직원들에게도 업계 최고의 대우를 해줬고, 매달 회사 매출을 공개하는 등 신뢰 경영을 통해 노사화합도 이뤘다.
“신지애 선수와 라운드를 한 적이 있어요. 저에게 스윙할 때 클럽을 20cm 더 앞으로 보내라고 하더군요.”
넥센그룹은 지속적인 연구 개발을 통한 품질 향상, 적극적인 국내외 시장 개척, 대규모 설비투자, 스포츠마케팅 등 브랜드 키우기, 고객서비스 강화 등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는 회사라 대학에서도 성공사례로 소개되곤 한다. 스포츠마케팅의 대표적 사례는 넥센히어로즈 야구단의 메인 스폰서가 된 것. 넥센의 자회사이자 부산·경남 지역에서 인기 있는 방송인 KNN도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넥센은 타이어뿐 아니라 골프공 생산도 병행해왔는데, 최근 출시 브랜드인 ‘세인트 나인(Saint Nine)’은 지난해 주요 매체로부터 ‘히트 상품’에 꼽히는 등 인기몰이 중이다.
승승장구하던 강 회장도 큰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부산 울산 창원 등 동남권 산업벨트에 있는 기업들이 접근하기 쉬운 금융그룹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부산의 동남은행 등 5개 금융기관에 투자했던 것. 그러나 외환위기 여파로 어려움에 처하면서 2개 회사는 매각했고, 나머지 회사의 주식은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강 회장은 “금융그룹 만든다고 떠벌리며 ‘고개를 들었다가’ 그만 어려움에 봉착했다”며 인생살이도 골프처럼 ‘천고마비’ 정신으로 차근차근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강 회장은 자신의 아호를 딴 월석선도장학회를 설립해 1100여 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했고, KNN문화재단 등을 통해 문화예술·학술 분야에도 지원하고 있다. 자신은 2억 원이 안 되는 30여 년 된 낡은 아파트에서 검소하게 살고 있다. 강 회장은 1994년부터 9년간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재직하며 삼성자동차와 선물거래소를 유치하는 등 부산 경제 발전에 큰 힘을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