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호

이명박 정부 ‘잃어버린 100일’

‘토목공사 리더십’ 잊고 탈물질적 가치 존중하라

  • 강원택 숭실대 교수·정치외교학 kangwt@ssu.ac.kr

    입력2008-07-10 17:3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백일을 맞았지만 잔칫상은 없었다.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지만 축하인사도 없었다. 촛불은 켜졌지만 덕담은커녕 불평만 가득했다. 이제 겨우 100일을 넘겼는데,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너무도 크다. 갓 출범한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어야 할 이 시점에 국민은 벌써 깊은 실망감에 빠져 있다. 도대체 무엇이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착시] 대선 승리에 대한 잘못된 해석

    이명박 정부 ‘잃어버린 100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로 시작된 집회가 정권퇴진 요구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6월10일 민주화항쟁 기념일에 열린 집회에서는 20년 만의 최대 인파가 서울 도심을 가득 메웠다. 중·고등학생부터 유모차를 미는 젊은 주부, 대학생, 노동자, 386세대, 노인까지 다양한 부류의 사람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 위해 한마음으로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20년 전과 달리 박종철도, 이한열도 없는데 왜 국민은 저리도 분노한 것일까. 과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이명박 후보는 2007년 12월 대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투표율이 매우 낮기는 했지만 경쟁 후보를 사상 최대 표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사실 선거일 오래 전부터 그의 당선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불만이 컸던 만큼 그는 새로운 변화를 원하는 국민의 희망이었다.

    이명박 후보는 노무현 정부의 이념 과잉을 비판하면서 자신은 실용정책을 펴나가겠다고 약속했고 국민은 이에 환호했다. 재산 형성과정 등 도덕적인 문제에 대한 의구심이 없진 않았지만, 성공한 CEO로서, 유능한 행정가로서 그의 경력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에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줬다. 이 후보도 선거운동 내내 그런 자신감을 표명했다. 경제회복을 이끌 역량을 믿어달라고 했다.

    그러나 집권 후 100일 만에 국민은 그의 역량을 의심하게 됐다. 이처럼 단기간에 심각한 위기상황에 직면한 것은 손쉬웠던 대선 승리가 빚은 오만 때문이었다. 압도적인 승리에 도취해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국민의 뜻을 잘못 이해하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실용 표방하면서 이념의 틀에 갇혀

    이명박 후보가 지난 대선에서 승리한 것은 과거 보수세력이 강조해온 냉전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시장을 중시하는 경제적 보수의 색채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새로운 보수의 모습으로 비친 것이다. 더욱이 이회창 후보가 ‘냉전적 수구 보수’의 이미지를 띠면서 이명박으로 대표되는 경제적 보수의 차별성은 더 분명해졌다.

    그런 만큼 이전 두 차례의 대선 패배 때와는 달리 보수이념에 대한 거부감은 크지 않았다. 과거에 노무현의 등장에 환호하고 열린우리당을 지지한 이른바 386세대 유권자조차 거리낌 없이 이명박 후보에게 표를 던질 수 있었다. 많은 유권자의 눈에 이명박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보수는 과거 권위주의나 냉전 질서에 기반한 보수-진보의 갈등을 뛰어넘는 새로운 이념적 지향점으로 받아들여졌고, 보수의 자기 개혁으로 비쳤다.

    이에 비해 민주화 20년 동안 권위주의 시대의 부정적 유산에 대한 청산작업이 꾸준히 진행된 결과 그동안 진보진영이 외쳐온 자유, 인권, 민주와 같은 가치는 더 이상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됐다. 이명박의 보수가 자기 변혁을 이뤄낸 반면 진보진영은 탈권위주의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자기 변화를 이뤄내지 못한 탓에 진보진영은 선거 참패라는 값비싼 비용을 치러야 했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의 출범은 지난 20년 동안 진행된 민주화 성과 위에서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이며, 이명박식 실용주의에 대한 기대감은 과거의 보수-진보의 이분법을 뛰어넘어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자는 소망의 표출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과 측근들은 대선 압승을 노무현 정부에 대한 국민적 심판으로만 생각한 것 같다. 또한 진보진영의 대선 참패를 진보적 가치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과 불신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따라서 이명박의 당선을 무능력하고 과도한 이념적 편향을 보인 좌파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는’ 사명으로 간주했다. 과거 방식의 보수-진보라는 이념적 틀 속에 자신을 위치시켜놓고 자신의 정치적 성공을 진보의 실패에 대한 응징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은 실용을 표방한 이명박 정부가 스스로를 이념의 덫에 묶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쇠고기’를 ‘미국’으로 읽은 오판

    이명박 정부 ‘잃어버린 100일’

    자신을 밀실에 가두면서 지지자들을 소외시킨 이명박 대통령.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에 대한 조기 대응이 늦었던 것도 과거의 이념적 틀로 이 사태를 파악하려 한 데서 비롯됐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촛불집회가 열리자 이명박 정부는 촛불집회의 주장을 ‘미국’으로 읽었다.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를 식품의 안전성에 대한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반미집회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띤 것으로 이해했다. ‘쇠고기’가 아니라 ‘미국’을 문제의 초점으로 본 것이다.

    이 때문에 좌파가 선동했다거나 배후가 있다거나 ‘초를 누구의 돈으로 샀느냐’는 반응이 나온 것이다. 사태 초기에 근원적인 문제를 풀려고 하기보다 힘으로 억누르려는 태도를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과거의 눈으로, 이념의 눈으로 쇠고기 문제를 바라본 것이 사태를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확대시키고 말았다.

    쇠고기 문제뿐 아니라 각료 선정이나 대운하 등에 대한 여론의 반대가 거세질 때마다 이를 좌파·진보세력의 반발로 간주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정책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빼앗긴 진보세력이 자신을 흔들기 위해 괜한 시비를 거는 것으로 바라본 것이다. 그동안 국민과의 소통 부족이 자주 제기된 것은 국민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하기보다 이처럼 이념의 눈으로 단정하려는 편협한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태도로는 사태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으며 민심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다. 위기는 시대적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 탄생의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탄생을 과거식의 진보-보수를 뛰어넘는 새로운 실용의 시대를 향한 전환으로 이해하는 국민과, 진보와 좌파를 물리친 보수의 승리로만 바라보는 이명박 대통령의 시각 차이가 상호 소통의 통로를 막아버렸고 결국 출범 100일 만에 위기를 맞은 것이다.

    [밀실] 고립과 소외

    이명박 정부는 기존의 정치적 지지의 경계를 뛰어넘는 폭넓은 지지 속에 탄생했다. 이명박 후보는 영남이라는 지역적 경계를 뛰어넘어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의 표심(票心)을 장악했다. 보수라는 이념적 경계를 넘어서 과거의 노무현과 열린우리당 지지자를 대거 포섭했다. 상류층이라는 계층적 경계를 넘어 서울의 강남뿐 아니라 강북지역 유권자의 표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처럼 이명박의 압승은 지역적으로, 이념적으로, 계층적으로 지지층의 외연을 확대하면서 이뤄낸 결과다. 그러나 출범과 동시에 이 대통령은 스스로를 고립시키기 시작했다. 외연의 확대가 아니라 매우 좁은 공간으로 자신을 한정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자신을 밀실에 가두면서 그에게 표를 던진 지지자들은 점차 소외감을 갖게 됐다.

    밀실로의 후퇴는 내각 출범과 청와대 비서실을 구성할 때부터 나타났다. 내각 각료와 청와대 비서실 인사는 커다란 논란의 대상이 됐다. 언론과 국회의 검증을 거치면서 재산 축적 과정 등 도덕성에서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악화된 여론 때문에 일부 인사는 중도에 하차해야 했다.

    한쪽만의 대통령

    각료 및 비서실 인선 과정에서 나타난, 도덕성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점은 그 구성이 매우 편향적이었다는 사실이다. 국민은 초기 내각을 두고 ‘고소영’ ‘강부자’ 내각이라고 불렀다. 유행어가 되어버린 이 표현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일반 국민의 정치적 소외감을 잘 드러내고 있다.

    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강남 땅부자는 각각 학연, 종교, 지역, 계층을 대표한다. 고소영, 강부자 내각은 이 대통령이 학연, 종교, 지역, 계층을 따지면서 특정 분파를 편애한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고려대를 나오지 않은 사람,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 경상도 출신이 아닌 사람, 돈이 없는 사람은 모두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스스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매우 좁혀버린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강조해온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도 많은 사람을 소외시켰다. 지난 100일 동안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경제회복을 위해 기업의 활동을 지원하겠다는 의도보다 대기업을 편애한다는 인상이 부각됐다. 이 대통령은 대기업 총수들을 만났고 대기업 부설 연구소장을 만나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이명박 정부 ‘잃어버린 100일’

    2007년 6월 낙동강을 찾아 대운하사업을 설명하는 이명박 대선후보.

    그러나 노동계는 말할 것도 없고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배려를 하지 않았다. 쇠고기 파동, 조류인플루엔자, 고유가와 물가상승 등 여러 가지 어려운 경제 여건에 힘들어하면서 ‘경제 하나는 확실히 살리겠다’는 약속에 기대를 걸었던 국민은 자신들에게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는 대통령에게 서운함과 배신감을 가졌다.

    이 대통령은 선거운동 당시 성공한 CEO가 되기 전 가난으로 고생한 기억을 살려 서민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CEO의 경험은 가까웠고 고생스러운 가난의 시절은 기억 속에서 너무도 멀었다. 이처럼 지난 100일 동안 이 대통령은 ‘모두의 대통령’이라는 느낌을 주지 못했다. 보수세력의 대통령, 기독교의 대통령, 부자의 대통령, 영남의 대통령, 대기업의 대통령이었을 뿐이다. 그저 한쪽만의 대통령이었던 것이다.

    좁고 답답한 밀실로의 퇴각은 정당정치에서도 나타났다.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하이라이트는 12월19일 선거일이 아니라 8월20일 한나라당 경선일이었다. 박근혜와 이명박의 경쟁은 사실상 본선이었고 두 후보 간의 접전은 보는 이의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였다.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의 극적인 승리도 흥미를 끌었지만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은 패배한 박근혜 후보가 승복 연설을 할 때였다. 박근혜의 승복과 함께 한나라당은 경선 후유증에 따른 당 내부의 분열을 수습하고 본선을 향해 진군할 수 있었다. 지지층의 동요도 막을 수 있었다.

    정치를 모르는 대통령

    그러나 격렬했던 경선 과정에 생겨난 마찰에 대해 승자는 앙금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던 앙금은 국회의원선거 때가 다가오자 공천을 통해 드러나기 시작했다. 박근혜 후보를 위해 뛴 적지 않은 수의 의원이 공천에서 탈락했다. 이들의 탈락과 함께 한나라당 지지자도 많이 이탈했다. 18대 총선에 등장한 친박연대라는 해괴한 정당은 이명박 대통령이 그 생존의 자양분을 제공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이명박 지지는 또다시 축소되었다. 이번에는 자신의 강력한 후원세력을 소외시킨 것이다.

    통합의 상징이어야 할 대통령이 협소한 틀 속에 스스로를 가뒀다. 지난 100일 동안 너무나 많은 국민이 이런 대통령의 모습에 상처를 받았다. 이 대통령은 견고한 성(城) 속에 고독하게 군림하고 있었고 그 성은 국민이 다가가기에는 너무 높고 멀었다.

    [편견] 성공의 덫

    대통령이 되기 전 이명박의 경력은 화려했다. 현대건설의 성공적인 CEO로서 ‘현대 신화’를 이룬 주역의 하나이며, 서울시장이라는 행정가로 변신한 이후에는 청계천을 복원하고 대중교통체계를 혁신적으로 바꿔놓는 등 성공적인 임기를 보냈다. 대통령선거 때 그가 가장 많이 한 말이 ‘나는 해봐서 안다’ ‘나는 할 수 있다’였는데, 이 말은 그의 화려한 경력과 성공에 잘 어울렸고 신뢰감을 줬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이후 화려하리만큼 성공적인 그의 과거 경력은 이제 원만한 국정운영을 막는 장애가 되고 있다. 심각한 문제는 이 대통령이 자신의 과거 성공 경험에서 지금 나타나는 문제의 해법을 구하려 한다는 점이다. CEO로서, 행정가로서의 성공방정식과 상황 인식을 현재의 국정운영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데서 많은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예컨대 기업이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시급을 다투는 일이다. 타이밍을 놓치면 엄청난 손실을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최고정책결정자가 적시에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이 대통령 눈에는 법률안 하나를 두고 몇 주, 심지어 몇 달 동안 다투는 정치는 대단히 한심해 보일 것이다. 그 시간이라면 건물을 하나 짓고도 남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 긴 시간에 법률안 하나 통과시키지 못하고 싸움질만 하는 정치인은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존재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CEO로서, 행정가로서 성공한 경험은 이렇듯 정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낳았다. 이런 인식이 ‘탈(脫)여의도식 정치’에 대한 강조로 나타났다. 정치는 경시됐다. 청와대 비서진 등 정무적 판단과 고려가 필요한 자리에도 정치인은 두지 않았다. 자신의 주변에는 최고경영자인 자신이 내린 결정을 계획하고 집행할 과장, 계장 같은 실무 인력만을 배치했다. 그 결과 청와대의 정무 기능은 위축됐고 집권당인 한나라당도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 철저하게 소외됐다.

    시대상황에 대한 인식 부족

    처음에 이명박 대통령이 탈여의도식 정치나 CEO형 리더십을 말했을 때 많은 국민이 이를 반겼다.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의 과도한 정치 개입이 빚은 피로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신선하게 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에 대한 경시는 불과 100일 만에 이명박 정부를 심각한 위기로 이끌었다.

    쇠고기 수입 문제만 해도 사실 협상 전에 한나라당과 당정협의를 한 번이라도 했더라면 이런 상황으로까지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론의 향배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정당이라면 협상 내용에 따른 반응이 미칠 정치적 결과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통령과 한나라당 대표의 정례회동이 이뤄지고 있지만 당이 제기하는 의견에 귀 기울이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5월 대통령과의 회동 전날 강재섭 대표가 당에서 준비한 국정쇄신안을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를 없던 일로 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 배경에 청와대의 질책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해프닝은 이 대통령이 당을 바라보는 시각을 잘 보여준다. 이 대통령에게 집권당은 자신이 내린 결정을 야당의 반대를 뚫고 국회에서 처리해줄 도구적 수단일 뿐이다. 당을 자신의 지시를 받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아마 그때 당의 의견을 경청했더라면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치의 실종과 함께 나타나는 그의 편견은 바뀐 시대상황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비롯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개발 시대의 주역이었다. 그의 성공적 경력도 개발시대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그를 대통령으로 이끈 성공의 상징은 청계천이다. 청계천을 뒤덮었던 3·1 고가도로는 흥미롭게도 그가 재직했던 현대건설에서 지었다. 그것을 허물고 청계천을 복원한 공사의 주역은 전 현대건설 회장인 이명박 서울시장이었다. 도로가 필요했던 1970년대와 환경이 중시되는 2000년대의 상반된 시대적 요구가 청계천을 통해 구현된 셈이다.

    청계천 복원에 시민이 환호한 것은 눈에 보이는 도로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환경이라는 가치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눈에 보이는 물질적 가치는 중시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한 인식에는 취약해 보인다. 물질주의를 강조하는 개발시대적 인식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듯 보인다. 청계천 복원도 환경으로 읽기보다는 또 다른 형태의 건축물 조성을 통한 도시 미관 정비로 본 듯하다.

    쇠고기 파문만 하더라도 이명박 대통령은 사람들이 ‘그깟’ 쇠고기 수입 문제를 가지고 왜 이리 난리를 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먹기 싫으면 안 사먹으면 그뿐이라는 발언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쇠고기 수입 문제가 정치적인 논란거리로 확대된 것은 이것이 시대적으로 변화된 요구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입 쇠고기 파동은 탈물질적 가치를 반영한다. 이제 우리 사회는 배 불리 먹는 것이 소망이던 시대를 지나 음식 하나에도 삶의 질을 추구하는 시대로 변화했다. 깨끗한 환경, 건강한 삶, 문화적 풍요 등과 같이 탈물질적 가치에 대한 욕구가 지배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물질주의적 가치에 집착한다면 이 사안이 갖는 폭발력을 이해하기 어렵다.

    신뢰상실의 3단계, 묵살-은폐-번복

    대운하에 대한 반대여론이 심한 것도 이와 비슷한 이유에서다. 눈에 보이는 운하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환경을 중시하는 탈물질적 가치에 대한 선호가 커졌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운하 건설도 일방적으로 강행하려 한다면 쇠고기 수입 문제처럼 심각한 정치적 폐해를 낳을지 모른다.

    지난 100일 동안 쇠고기 수입이나 대운하 논란을 거치면서 적지 않은 국민이 과연 이 대통령이 한국 사회의 변화추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됐다. 자신이 활약했던 과거 시대의 사고방식에 여전히 묶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법에 대해서도 그 시절의 성공방정식에 집착하는 것 같기도 하다. 국민은 문화 콘텐츠나 지식산업, 우주산업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대통령은 여전히 토목공사에 매어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이명박 정부에서 제시한 주요 경제정책은 대운하와 같은 개발사업, 환율 조작을 통한 수출 확대 및 성장 전략, 정부가 직접 통제하려는 물가정책 등인데, 이 또한 1970년대를 떠올리게 한다.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정치적 위기의 또 다른 원인은 이처럼 국민이 원하는 시대적 요구를 대통령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반성] 신화는 없다

    언제 지났는지도 모를 만큼 빨리 지나갔어야 할 첫 100일이었지만 국민에게는 마치 몇 년의 세월이 흐른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하늘을 찌를 만큼 높아야 할 새 정부의 지지율은 20% 이하로 추락했다. 내각제라면 이미 내각이 붕괴되거나 최소한 우두머리인 총리를 교체해야 할 상황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요구가 제기되자 이명박 정부는 처음에는 이를 묵살했고 그 다음에는 감췄으며 그 뒤에는 번복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이런 대응을 보면서 많은 사람이 소외감을 가졌고 답답함을 느꼈고 이명박 정부를 믿을 수 없게 됐다.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집회는 언젠가 끝이 날 것이다. 그러나 촛불집회가 진정되더라도 쇠고기 파동이 남긴 상처는 상당히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잃어버린 신뢰는 금방 되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시급한 일은 실추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임기가 4년 9개월이나 남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어떤 정책도 제대로 추진될 수 없다.

    다른 한편에서 본다면 이처럼 빨리 위기에 직면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도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자신의 과거 국정운영 방식을 반성하고 리더십 스타일을 바꾼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말이다.

    이명박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한 날 언론은 그의 승리를 보도하면서 불도저라는 그의 별칭을 빠뜨리지 않았다. 그의 강한 추진력과 불굴의 의지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불도저는 개발시대에는 쓸 곳이 많겠지만, IT와 문화가 주도하는 소프트파워 시대에는 그다지 유용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밀어붙이는 불도저식 국정운영은 이제 시대의 변화에 따라 통용되기 어렵게 된 것이다. 국민을 일방적으로 끌고 가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국민에게 솔직하라

    지금 이명박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성공한 CEO, 행정가로서의 이명박을 뇌리에서 지우는 일이다. 과거의 화려한 경력과 그때의 성공 방정식을 잊어야 한다. 대신 그가 그토록 싫어하는 ‘정치인’이 돼야 한다. 정치의 세계에서는 국민을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는 절차와 과정이 대단히 중요하다.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크게 깨달았겠지만 대통령이 됐다고 모든 일을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기업의 CEO라면 어떤 과정을 거쳤건 많은 수익을 내면 그만이지만 정치의 세계에서는 최종 결과에 못지않게 그 과정과 절차가 중요하다.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는 그 절차와 과정의 생략이 가져온 정치적 결과다. 과거에 이 대통령은 그런 동의와 설득의 정치적 과정을 비효율적인 것으로 보았을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는 그런 과정을 겪지 못한 이유로 훨씬 비싼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지금 국민이 느끼기에 대통령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국민과의 거리감을 좁힐 수 있도록 다가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심에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대통령 스스로도 소통의 부족을 이야기했지만 여전히 경청보다는 홍보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국민에 가까이 다가서려면 들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 ‘잃어버린 100일’
    강원택

    1961년 부산 출생

    서울대 석사(정치학), 영국 런던 정경대학원 박사(정치외교학)

    한국정치학회 연구이사

    現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정당학회 부회장

    저서 : ‘서구 정치연구의 현황과 과제’(공저) ‘한국의 정치개혁과 민주주의’ ‘인터넷과 한국정치’ ‘한국정치 웹 2.0에 접속하다’


    진보 10년을 뚫고 나온 보수정부라는 이념적 틀로부터 해방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편견 없이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더욱 솔직해야 한다. 쇠고기 수입과 관련하여 솔직하지 못한 대응이 정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고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논란이 많은 대운하 사업을 비밀리에 추진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도 신뢰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제도화된 국무회의나 비서관회의를 활용하기보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소수의 측근에 의존하는 듯이 보이는데 이도 적절하지 않은 일이다. 국정 운영을 더욱 투명하고 개방적으로 해야만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초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다. 과거의 성공에서 비롯된 오만에 가까울 정도로 지나친 자신감이 집권 100일 만에 위기를 몰고 왔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아야 주변에 도움도 청하게 되고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그가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것은 본인에게도 분명히 자랑스럽고 보람된 일이겠지만 국민에게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 기대는 매우 컸다. 아직 임기는 충분히 남아 있다. 지난 100일간의 실패와 과오를 거울삼아 이번 위기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