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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 공동기획 - 문명의 교차로에서 <마지막 회>

깨달은 동양 구루가 왜 성(性)스캔들 주인공이 됐을까?

종교적 프리즘으로 본 문명 교류

  • 성해영│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교수·종교학 lohela@daum.net

깨달은 동양 구루가 왜 성(性)스캔들 주인공이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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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은 동양 구루가 왜 성(性)스캔들 주인공이 됐을까?

서구인들은 힌두 문화 중에서도 요가에 대한 관심이 특히 높다.

스와미 묵타난다(Swami Muktananda, 1908~1982)는 인도에서 태어났다. 그는 15세에 스승인 니탸난다(Nityananda)를 만나고 영적인 여정에 오른다.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여러 스승을 사사한 끝에 탄트라(tantra)에 입문한 그는 수행을 시작한 지 9년 만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묵타난다는 회음부에 위치한 쿤달리니(kundalini)의 에너지를 정수리에 있는 차크라로 승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 쿤달리니 요가를 가르쳤다. 그는 라즈니시와 마찬가지로 성적 에너지의 종교적 중요성을 강조한 탄트리카(tantrika·탄트라 수행자)였다. ‘구루를 선택할 때에는 구루의 인품과 행동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제자들의 권고로 미국으로 건너간 그 역시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기는 매한가지였다. 제자들과 그를 만난 여러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그가 남의 영적 에너지를 각성시키는 비범한 능력을 가졌고, 존재의 궁극적 본성을 직접 체험했을 소지도 매우 컸다. 하지만 자신의 성적 에너지 탓에 그는 커다란 스캔들을 야기한다.

묵타난다는 쿤달리니 에너지를 성적 결합이 아닌 종교적 차원으로 승화해야 한다고 줄곧 가르쳤다. 영적 에너지를 성적 만족이 아닌 깨달음을 얻는 데 쏟으라는 주장이었다. 성관계는 당연히 금지의 대상이었고, 실제로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러나 이런 그가 많은 여성 신도와 성관계를 맺는다는 얘기가 1970년대 말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그에게 실망하고 교단을 떠난 측근들이 비밀을 폭로하기 시작했다. 스탄 트라우트(Stan Trout)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묵타난다가 매일 저녁 어린 여성신도들을 침대로 유혹했다고 폭로했다.

이 폭로를 접하고 관심을 갖게 된 윌리엄 로다모르(William Rodarmor)는 취재와 인터뷰를 거쳐 ‘스와미 묵타난다의 비밀스러운 삶’이라는 기사를 묵타난다의 사후에 발표한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충격적 사실들이 기사를 통해 자세하게 밝혀진 것이다.

기사의 초점은 묵타난다의 비밀스러운 성생활이다. 1981년 73세이던 묵타난다가 탄트라 요가에 입문시킨다는 명목으로 20대 초반의 여성을 유혹해 성관계를 가졌다는 이야기에서부터 1978년 인도의 가네스푸리(Ganeshpuri)의 아시람에서 그에게 성추행을 당한 미국 여성의 체험까지, 엄격한 금욕 수행자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성적 에피소드가 소개됐다. 익명의 보고자에 따르면 묵타난다는 어느 날 저녁 젊은 여성을 그의 방으로 따로 불렀다. 옷을 벗으라고 한 후 그를 산부인과 진료대와 흡사한 침대에 눕히고, 탄트라 수행이라고 설명하면서 성관계를 가졌다는 것이다. 보고자는 발기불능이었는데도 억지로 관계를 시도했다는 등의, 실제 경험자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세부적인 내용도 언급했다. 묵타난다와 그는 비밀스러운 만남을 이어갔고, 묵타난다는 관계를 마친 후 돈과 보석을 선물로 줬다고 한다. 아내와 함께 교단을 떠난 후 교단 관계자들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은 마이클 딩가(Michael Dinga)는 진료대 모양의 침대를 자신이 직접 만들어 구루에게 바쳤다고 후일 인정하기도 했다.

기사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딩가가 전한 이야기에 따르면 묵타난다의 실제 삶은 그가 신도들에게 그토록 강조했던 금욕 수행과는 거리가 한참이나 멀었다. 묵타난다는 주변의 모든 여성을 성적 유혹이나 추행의 대상으로 삼았고, 이런 행동은 그가 미국에 오기 훨씬 전인 인도에서부터 시작됐다는 것이다. 심지어 인도 가네스푸리의 아시람에는 그가 묵던 방에서 여성들의 기숙사로 연결되는 비밀 통로가 있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또 부모가 교단에 관리를 위탁한 열세 살 소녀를 그가 처녀성을 검사한다는 핑계로 성추행했다는 폭로마저 이어졌다. 게다가 폭로 내용은 성적 추문에 그치지 않았다. 공동체 내부에서 질서 유지라는 이름의 공공연한 폭행이 있었고, 이 일을 전담하는 인물들도 있었다. 또 불법적인 총기 소유에서부터 ‘봉사’라는 이름의 강제 노역까지 묵타난다의 공동체는 라즈니시 공동체와 놀랍게도 흡사했다. 비난이 거세지자 묵타난다는 이런 폭로가 예수를 비롯한 많은 성인(聖人)이 겪게 마련인 근거 없는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해명은 떠난 신도들을 되돌아오게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묵타난다의 공동체는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명상 프로그램 참여 비용으로 한 주 동안 25만 달러를 벌어들인 적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탈세 목적으로 수표나 신용카드는 일절 받지 않았다. 내부인의 증언에 따르면 묵타난다 역시 스위스 은행에 1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입금해두었는데, 이 역시 라즈니시의 경우와 유사하다. 묵타난다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알 수 없지만, 폭로 기사가 나오기 전인 1982년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했다. 기사가 나간 후 신도들의 탈퇴가 줄을 이었고, 이 스캔들을 계기로 깨달은 동양 구루들이 왜 이렇게 흡사한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는지에 대한 논의가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스캔들과 관련된 기본적인 사실들

동양 구루들이 일으킨 스캔들의 원인을 묻기 전에 스캔들과 관련된 몇 가지 사실을 분명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스캔들의 주인공이 된 두 사람은 자신에게 쏟아진 비난을 동양 구루에 대한 미국 사회의 편견과 음모, 신도들의 영적 각성을 위해 의도된 연출, 위대한 종교 지도자라면 으레 겪게 마련인 종교적 수난 등으로 해명했다. 더 많은 조사가 필요하지만, 라즈니시의 비서 쉴라가 사법 당국의 수사를 거쳐 공무원 폭행, 방화를 비롯한 폭력, 살인 미수의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살았고, 라즈니시 역시 쉴라의 공소 내용을 인정하고 미국에서 추방당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게다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과 아프리카 여러 나라가 라즈니시의 입국과 체류를 거부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추방을 미국의 음모라고 폄하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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