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호

‘자칭 메시아’ 비난 뚫고 평화 담론으로 미국인 사로잡아

통일교 창시자 문선명의 미국 발자취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14-07-23 11: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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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욕판 청춘콘서트’ 대박
    • 미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논쟁적인 한국인
    ‘자칭 메시아’ 비난 뚫고 평화 담론으로 미국인 사로잡아

    문선명 총재가 인수한 미 브리지포트 대학 전경.

    문선명 총재. 8월 12일이면 세상을 떠난 지 2주기가 된다. 그러나 미국에 남긴 그의 자취는 더 뚜렷해지고 있다고 한다.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를 창시한 그는 국제적으로 교세를 넓힌 대표적 종교인으로 통한다. 영국 ‘선데이타임스’는 1991년 ‘20세기를 만든 1000명’ 중 한국인으로 문선명을 이승만, 김일성과 함께 선정했다. 특히 미국에서 문선명 총재(이하직함 생략)는 “가장 유명하고 논쟁적인 한국인”으로 손꼽힌다.

    “메시지의 힘”

    역대 한국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한류 스타, 200만 재미교포가 있는데, 왜 미국인은 그에게 가장 강렬하게 끌렸을까?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주제로 여겨졌다. 로드무비처럼 그가 미국에서 걸어온 길을 따라가 봤다.

    문선명은 한국에서 통일교의 기반을 어느 정도 닦은 뒤인 1971년 12월 어렵게 비자를 받아 미국으로 갔다. 2개월 뒤인 다음 해 2월 3일 뉴욕 맨해튼의 명소인 링컨센터에서 첫 강연회를 열었다. 그러나 미국인의 시각으로 볼 때, 그는 국민소득 10분의 1 수준의 후진국에서 온, 영어를 거의 못하는 중년(53세)의 동양인 남자였다. 더구나 그는 A석 25달러 등 당시로선 고가의 입장료까지 요구했다. 객관적 정황상 이 강연은 ‘흥행 참패’로 끝났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청중이 구름처럼 몰렸다. 통역으로 진행됐지만 반응이 뜨거웠다. 강연 후 미국 신문·방송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고 한다. 양창식 천주평화연합(UPF) 세계의장은 이를 “메시지의 힘”으로 설명한다.

    당시 문선명은 강연회에 ‘통일십자군(One World Crusade)’이라는 은유적 이름을 붙였다. 강연회에 앞서 이를 ‘뉴욕타임스’ 등 언론에 파격적으로 광고했다. 그리고 이렇게 역설했다.

    “공산주의가 미국을 위협한다. 프로테스탄트의 국가 미국에서 기독교가 몰락한다. 청소년이 마약과 난잡한 생활로 타락한다. 미국은 지금 위기에 직면해 있다. 미국은 환자이고 불이 난 집이다. 나는 미국을 치유할 해법을 가지고 왔다. 나는 의사이고 소방수다.”

    문선명은 미국의 병을 치유할 해법으로 기독교 도덕정신의 부흥을 제시했다. 양 의장의 설명에 따르면 문선명의 단순명료한 소리는 사람들을 압도했다. 벽안의 청중은 비밀을 들킨 듯 놀랐고, 각성했고, 세상을 보는 그의 관점과 처방에 수긍했다.

    3년여 뒤인 1974년 9월 18일 문선명은 더 강력해져 있었다. 이날 뉴욕 맨해튼의 또 다른 명소인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그의 강연회엔 3만여 명이 몰렸다고 한다. 통일그룹에 따르면 문선명은 1976년 6월 1일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 5만 명을 상대로, 같은 해 9월 18일 워싱턴DC의 상징인 모뉴먼트 광장에서 30만 명을 상대로 강연했다고 한다. ‘뉴스위크’는 6월 14일 그를 표지에 올렸다.

    문선명은 여러 자리에서 “나는 한국 사람이되 미국 사람 이상으로 미국을 사랑했다. 미국을 너무 사랑해 내 모든 것을 미국에 투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나아가 그는 “미국은 자유세계의 마지막 교두보다” “세계의 생존 문제가 미국에 달려 있다” “미국은 70억 인류의 화합을 일궈낼 21세기 로마 역할을 완수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을 사랑한 한국인”

    마이클 발콤 통일교 미국협회장에 따르면, 미국 사회 일각에서 문선명은 미국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함께 치유해나가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미국 대중이 한국인 중 문선명을 가장 잘 기억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동양인이든 서양인이든 자기 처지에 관심을 기울여주고 함께 걱정해주는 사람에게 먼저 끌리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미국인이 ‘무니스(Moonies·통일교 신도의 별칭)’가 됐다.

    문선명의 통일교는 미국에서 엄청난 부를 일궜다. 이는 교세 확장으로 이어졌다. 그는 1976년 460만 달러에 뉴욕 맨해튼 8번가 34번로의 43층 호텔을 사들였다. 이 호텔은 지금 시세 4억 달러의 4성급 뉴요커 호텔이 됐다. 그가 매입한 맨해튼 센터는 현재 시세 1억 달러의 공연회의장으로 쓰인다. 이곳엔 CNN, 알자지라 방송이 입주했거나 입주해 있다. 그는 미국 번영의 상징이던 티파니 빌딩도 사들였다.

    또 그는 대서양 해변을 낀 아름다운 캠퍼스로 유명한 코네티컷 주 브리지포트대학을 인수했다. 이 대학의 닐 알버트 살로넨 총장은 “각 학과가 지속적으로 발전한다.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전 세계에서 유학생이 온다”고 말했다.

    낚시가 취미인 문선명은 수산업에서도 수완을 발휘했다. 1970년대 미국은 세계 4대 어장 중 3대 어장을 가졌지만 그 바다를 황무지처럼 버려뒀다. 그는 1974년 이후 7년간 참치잡이에 나섰다. 지금 미국 정부는 아시아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이 만나는 황금어장인 베링해협 부근에서 20척에 대해서만 조업 허가를 내주는데 이 중 3척이 통일교 소속이다. 김기훈 통일교 미국총회장은 “고기가 잡히는 대로 현지에서 값비싸게 수출한다. 뉴요커 호텔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낸다”고 말했다.

    통일교는 현재 수백 척의 중형 선박을 보유하고 있으며 해산물 가공회사, 낚시선박 제조 회사, 다수의 일본 식당도 운영한다. 김 총회장은 “공시 자료 외에 미국 내 사업규모를 정확하게 공개하지는 않는다. 막대한 수익을 올린다”고 말했다.

    문선명은 1982년 5월 보수 성향 일간지인 ‘워싱턴타임스’를 창간했다. 이 신문사는 올해 흑자를 기대한다. 맥데빗 재단이사장은 “우리 신문은 온라인에서 전기를 마련했다. 미국 전체 보수 성향 여론의 구심점이 된다. 미국 의회 영향력 3위에 올랐다”고 말했다.

    문선명은 반공보수로 일관했다. 1973년 공화당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로 사임 위기에 몰렸을 때 문선명은 “용서하라, 사랑하라, 뭉치라”며 닉슨 지지 운동을 벌였다. 닉슨은 고마웠던지 1974년 2월 그를 백악관으로 초대했다. 지금도 공화당은 문선명과 그의 워싱턴타임스에 대해 ‘한 식구’ 같은 감정을 갖고 있다고 한다. 6선인 맷 새먼 공화당 의원은 기자 앞에서 문선명을 “대단한 분”이라며 치켜세웠다.

    문선명은 세계의 기본 단위가 가족이며 기독교적 가족 가치의 회복으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해왔다. 그는 실질적 행동강령으로 부부간 정조 의무를 절대시한다. 또 유엔 산하 통일교 시민단체인 UPF를 통해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화해를 추구하는 운동을 중동에서 지속적으로 펴왔다. UPF 주관으로 이들 종단 관계자들이 예루살렘에서 평화 호소 행진을 벌인 장면은 서구 언론에 널리 보도됐다.

    미지의 담론들

    미국의 통일교 산하 학교, 호텔, 신문사, 기업, 시민단체, 교회(110여 개소)는 한학자(문선명의 부인) 총재가 취임한 이후 경영효율을 높이고 교계 조직을 활성화하는 데에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이곳의 미국인 관계자들은 “레버런 문(Reverend Moon·문 목사·문선명을 친근하게 부르는 말)은 영(靈)적으로도 사업적으로도 통찰력을 발휘했다. 모든 자산을 교단 소유로 뒀다. 그를 기리고 감사해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미국에서 문선명은 꽤 논쟁적인 인물로도 알려졌다. 비판적인 영·미 언론은 그에 대해 신도를 세뇌한 의혹, 탈세 혐의로 11개월 수감된 전력, 매년 수천 쌍을 합동결혼 시킨 점, 스스로를 메시아로 칭한 점을 지적해왔다.

    통일교 측은 세뇌 의혹에 대해 “미 법무부 대변인이 1978년 10월 24일 ‘통일교의 세뇌공작은 근거 없다’는 점을 밝혀 해소됐다”고 말했다. 탈세 혐의에 대해선 “액수도 적었고 1억2000만 미국 시민의 대표자들이 ‘문선명 탄압’이라고 항의했다. 억울한 면이 많다”고 했다. 합동결혼에 대해선 “중매결혼이든 연애결혼이든 합동결혼이든 배우자를 고르는 방식은 개인이 선택하면 될 문제다. 합동결혼 부부가 일반 결혼 부부보다 이혼율이 낮다. 결혼 후 가족을 신앙 차원에서 더 소중하게 여긴다”고 했다.

    메시아로 칭하는 점에 대해 조지 스탈링스 대주교는 “일반인은 문선명을 메시아의 육체적 재림으로 꼭 생각할 필요가 없다. 예수가 말한 가족가치를 복원해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점에서 ‘이론적 메시아(theoretical messiah)’로 볼 수도 있다”고 했다.

    반공주의자인 문선명이 북한과 매우 가깝게 지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그는 평양에서 김일성을 면담했고 통일교는 대북사업을 활발하게 펴왔다. 이를 두고 김동규 고려대 명예교수는 “극과 극은 상통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상당수 한국인은 외국인 앞에서 수줍어한다. 이들을 설득하고 변화시키고 행동으로 이끌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러나 문선명은 미국에서 이 일을 익숙하게 하던 일처럼 했다. 미국의 치유, 분쟁의 종식, 인류의 구원 같은 거대 담론을 세계를 향해 주장해 영향을 끼쳤다. 동시에 많은 논쟁거리를 던졌다.

    미국 속 문선명의 삶은 미지의 담론을 지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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