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호

현직은 ‘슈퍼 갑’ 재취업 공직자는 ‘슈퍼 을’

<심층취재> 공직자 재취업 실태

  • 구자홍 기자 | jhkoo@donga.com

    입력2014-07-23 11:2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공직자윤리위 재취업 심사 유명무실
    • 재취업 승인 공직자 52%, 업무 관련 기업行
    • 재취업 제한요건 강화해야
    •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잠복했던 ‘관피아’ 문제를 수면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관료+마피아’의 합성어인 관피아는 공직자가 퇴임 뒤 직무 연관성이 큰 민간 기업에 취업해 자신이 속한 기업의 이익을 챙기는 데 앞장서거나, 기업의 잘못으로 처벌이 예상될 때 방패막이 구실을 한다고 해서 만들어진 신조어다. 퇴직 공직자의 재취업 실태를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관피아 문제를 들여다봤다.
    현직은 ‘슈퍼 갑’ 재취업 공직자는 ‘슈퍼 을’

    김진태 검찰총장이 지난 5월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관피아 척결’ 관련 전국 검사장회의를 주재했다.

    인체는 몸을 지탱하는 골격계와 몸 구석구석에 영양소를 공급하는 호흡 순환계, 그리고 근육과 피부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다. 어느 하나라도 제 기능을 못하면 생존에 큰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 사회를 인체에 빗대보면 골격계는 국가 운영의 근간이 되는 정부 등 공직 사회, 영양소를 공급하는 호흡 순환계는 재계, 우리 몸의 다수를 점하는 근육과 피부 등은 국민에 비유할 수 있다.

    취업 제한은 없다?

    관피아 문제의 심각성은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위해 균형을 잡아야 할 골격계일부(퇴직 공직자)가 그 임무를 마친 뒤 호흡 순환계와 결탁해 영양소를 특정 부위로만 실어 나르는 데 있다. 영양소를 제때 공급받지 못한 근육과 피부는 괴사하고, 너무 많은 영양소를 공급받아 나 홀로 과대성장한 세포는 ‘암’으로 변질돼 몸 전체의 생존을 위협한다. 일부 대기업으로 경제력이 집중돼 사회문제가 되면서 경제민주화 요구가 거세진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 눈에 전현직 관료들이 ‘이익’을 매개로 뭉친 마피아 조직으로 비치는 주된 이유는 공직자가 퇴직 후 재취업을 통해 그들만의 이해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다. 퇴직 후 2년 이내에 민간 기업에 취업한 공직자의 재취업 사례를 살펴보면 관피아 문제가 현실 속에 얼마나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알 수 있다.

    # 경찰- 대전에서 경찰서장을 두루 지낸 A씨는 2012년 말 퇴직하고 6개월 뒤 경비전문업체 S사 충청본부 상근고문으로 취업했다. 퇴직 전 강원도와 경기도에서 경찰서장을 지낸 B씨 역시 2011년 2월 말 경찰청을 퇴직한 뒤 1년 6개월 만에 S사 경기본부 고문으로 취업했다. 경비업법은 경찰청장과 각 지방경찰청장에게 경비업체 허가는 물론 지도와 감독권을 부여한다. 특히 관할 경찰서장은 경비업 배치 허가 업무를 담당한다. 그 때문에 경찰서장 출신 인사가 경비업체에 취업한 것은 밀접한 직무 연관성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국방부- 국방부 미군기지이전사업단에 근무한 C씨는 2012년 7월 말 퇴직하고 하루 뒤에 곧바로 H산업개발 부장으로 취업했다. C씨가 H산업개발에 입사한 지 10개월 뒤인 2013년 5월 H산업개발 컨소시엄은 1263억 원 규모의 용산 주한미군기지이전 기지차량정비시설 및 다운타운지역 지원시설 건설공사를 수주했다.

    기무사령부 방산지원실장과 모 기무부대장을 지낸 D씨는 2012년 말 전역한 뒤 한 달 만에 S탈레스 고문으로 재취업했다. S탈레스는 통신전자와 레이더 등 군 첨단장비를 개발하는 방위산업체로 기무사령부 방산지원실장 직무와 업무 연관성이 매우 높다. 국군화생방방어사령부 연구소장과 참모장을 지낸 E씨는 2011년 3월 전역한 뒤 1년 3개월 뒤 K패션머티리얼에 취업했다. 고기능성 원사와 원단을 제조하는 K패션머티리얼은 군사용 복합소재와 스마트 군복 개발 등에 참여한 업체로 국방부와의 업무 연관성이 깊다.

    # 특허청- 특허청의 화학생명공학심사국장을 지낸 F씨는 2011년 10월 퇴직 후 다섯 달 만에 D합성 사외이사로 취업했다. D합성은 화학 관련 개발업체로 계면활성제 관련 각종 특허를 보유한 회사다. D합성이 보유한 특허는 주로 화학생명공학심사국에서 담당한다.

    # 환경부- 자원순환정책과장을 지내고 지방환경청장으로 퇴임한 G씨는 2012년 5월 퇴직 후 두 달 만에 한국플라스틱자원순환협회 부회장에 취임했다. 환경부 자원순환국은 1회용품의 사용과 과대포장 등을 규제하는 부서로 1회용품 업체들이 회원사로 가입한 협회와의 업무 연관성이 매우 크다.

    보험사로 간 경찰간부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관피아의 폐단을 막기 위해 ‘(공직자가)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 부서 업무와 밀접한 관련 있는 사기업체에 퇴직일로부터 2년간 취업할 수 없도록 규정(제17조 1항)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재취업을 금지한 공직자윤리법 규정이 제대로 가동되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

    시민단체 참여연대가 2006년부터 해마다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승인한 공직자의 재취업 실태를 분석한 결과,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퇴직 전 업무와 밀접해 취업해서는 안 될 민간 기업에 취업한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일례로 2012년 6월 1일부터 2013년 5월 31일까지 1년 동안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밀접한 업무 연관성이 없어 취업이 가능하다고 확인해준 퇴직 공직자 재취업 288건 가운데 부처 업무 특성상 해당 업무를 특정하기 어려운 감사원과 국가정보원, 대검찰청, 법무부 퇴직자 42건을 제외한 246건 중 52%에 해당하는 128건이 부처 업무 관련 업체 또는 단체에 취업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전체 조사대상의 10.2%인 25건의 경우 퇴직 전 부서 업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현직은 ‘슈퍼 갑’ 재취업 공직자는 ‘슈퍼 을’

    6월 10일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왼쪽)가 당내 ‘관피아 방지 특위’ 위원장인 강기정 의원과 얘기를 나눈다.

    2012년 6월부터 지난해 5월 말까지 퇴직 후 재취업한 경찰 출신 인사들은 대부분 손해보험사에 취업했다. 경남지방경찰청에 근무한 한 경찰관은 2012년 2월 퇴직한 뒤 7개월 만에 L손해보험 사고조사실장으로 취업했고, 전남지방경찰청 산하 모 경찰서 교통조사계장 출신 인사는 2011년 8월 퇴직 후 1년 4개월 뒤 H생명보험 보험범죄조사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교통사고 등 자동차보험 관련 분쟁에서 경찰의 조사 결과가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보험사들이 경찰 출신을 많이 영입한 것은 보험 분쟁에 대비해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공정거래위원회 출신의 경우 대형 로펌 또는 불공정 거래 등으로 공정위 규제를 많이 받는 민간 기업으로의 이직이 잦았다. 공정위에서 규제개혁법무담당관을 지낸 H씨는 지난해 2월 퇴임 한 달 뒤 국내 최대 K법률사무소에 전문위원으로 재취업했는데, 기업 규제에 대한 각종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K법률사무소와 공정위 업무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공정위 경쟁제한규제개혁작업단 부단장을 맡았던 I씨는 지난해 1월 공정위를 퇴직하고 한 달여 뒤 국내 대표적인 제과업체와 편의점 업체에 동시에 비상근 자문역으로 재취업했다. 두 업체는 시장 지배적인 재벌 계열사들로 공정위가 추진하는 경쟁제한규제개혁작업단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세청에서 세무서장을 지낸 J씨는 2012년 6월 말 퇴직 후 한 달 만에 S왕관 부사장으로 취업했다. S왕관은 각종 병마개를 제조하는 대기업 계열사로 주세법에 따른 주류용기 납세증명표지 등 국세청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서울의 한 지방국세청장을 지낸 K씨도 2011년 2월 퇴직 후 1년 6개월 만에 한 주류업체 감사로 재취업했다. K씨가 취업한 주류업체는 국세청으로부터 세제와 관련해 규제를 받는 국내 대표 기업이다. 퇴직 전 업무와 연관성이 큰 기업에 취업하려던 K씨는 공직자윤리위원회 심사를 거쳐 취업했다.

    지난해 2월 말 국세청을 퇴직한 L씨는 퇴직 직후 O회계법인 자문위원으로 취업했다. 그런데 이 회계법인은 안전행정부가 고시한 퇴직공직자 취업제한대상업체 가운데 하나였음에도 L씨는 공직자윤리위 심사를 통과해 퇴직 다음 날 곧바로 취업했다.

    참여연대는 ‘퇴직 후 취업제한제도 운영실태 보고서’에서 L씨의 재취업 사례와 관련, “안전행정부가 고시한 취업제한대상업체에 포함됐음에도 공직자윤리위원회가 부서 업무 연관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사회생활’ 시작한다

    퇴직한 공직자 가운데 다수가 부처 업무와 연관이 큰 민간 기업에 용이하게 재취업할 수 있는 것은 현행 공직자윤리법이 취업 제한업체 범위를 ‘소속 부서 업무’로 한정하기 때문이다. 공직자윤리법 제17조 1항은 ‘퇴직일로부터 2년간’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 부서의 업무’로 취업제한 범위를 규정하고, 공직자윤리법 시행령 제32조는 업무 관련성 범위를 과장 이하 직원은 ‘해당 과의 업무’, 상위 직급자는 ‘직무상 지휘 감독 부서의 업무’로 한정했다. 그러나 공직자들의 재취업 사례를 살펴보면 이 같은 협소한 취업제한규정으로는 실효성을 거두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정책 수립은 물론 금융기관에 대한 관리 감독권을 가진 금융위원회 출신 인사들이 민간 금융사 고위직으로 재취업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금융정보분석원에 근무한 M씨는 2012년 8월 퇴직 후 공직자윤리위 심사를 거쳐 I캐피탈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금융정보분석원장을 지낸 N씨는 퇴직 후 열흘 만에 H증권 사장으로 취업했다. 금융위 팀장을 지낸 O씨도 퇴직 후 석 달 만에 한 증권사 임원으로 취업했다.

    금융권의 한 고위 임원은 “인·허가를 다투는 기업에서는 퇴직 공직자를 영입할 때 업무 연관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겠지만, 관리 감독을 받는 금융사들은 업무 연관성보다 (퇴직 공직자가 몸담았던) 조직 내 평판을 더 중요시한다”고 말했다. 그는 “퇴직 공직자를 모셔오는 이유가 당장 기업에 이익을 가져오기 위해서가 아니다”라며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불이익을 피하려는 측면이 더 강하다”고 말했다.

    박근용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퇴직 공직자 상당수가 업무 연관성이 큰 민간 기업에까지 재취업이 가능한 이유는 공직자윤리법이 이해충돌의 범위를 협소하게 규정하기 때문”이라며 “하루빨리 포괄적 업무 연관성까지 감안해 취업 제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여전히 온정적이고 소극적으로 업무 연관성을 심사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 후속 조치로 고위 공직자의 직무 관련성 기준을 ‘소속 부서’가 아닌 ‘소속 기관’으로 더 엄격하게 규정한 ‘공직자윤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7월 15일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퇴직 관료들의 재취업 관행에 어느정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기대한다.

    불이익 막는 방패

    대기업 등에서 퇴직 공직자를 선호하는 것은 기업에서 성장한 이들이 갖지 못한 관(官)의 풍부한 인맥 때문이다. 공직자가 퇴직 후 민간 기업에 재취업하면 ‘사회생활을 시작한다’고 얘기한다. 공직에서 벗어나 일반 사회에 편입한다는 의미에서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퇴직 공직자는 재취업 이후에도 이전에 몸담았던 공직과 관련 있는 업무를 주로 맡는다.

    한 건설사 고위 임원은 “퇴직 공직자를 모셔오는 이유는 단 하나”라며 “회사의 이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민간 기업으로 이직한 뒤 성공한 분도 있고 그렇지 못한 분도 있다”며 “공직 경험을 살려 기업의 이윤 창출에 기여하면 롱런할 수 있지만, 1~2년 내에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금방 도태되고 만다”고 말했다. 그는 “공직 사회는 업무 실적 여부와 상관없이 정년이 보장되지만, 기업은 그렇지 않다”며 “실적이 나쁘면 언제든 짐을 싸야 하는 것이 기업 문화”라고 말했다.

    한 중소 건설사 대표는 “인허가 권한을 가진 건설·토목 직군의 공직자를 영입하면 각종 입찰 때 불이익을 피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공개입찰이라 하더라도 입찰참가제한 조항 등을 통해 유불리가 갈린다”며 “퇴직 공직자는 입찰 조건 등에서 자신이 몸담은 기업에 유리하도록 그 나름의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공직에서 물러나 민간 기업에 취업한 공직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사회에 나온 뒤 갑에서 을로 신분이 바뀐 것을 실감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업에서는 퇴직 공직자를 진정한 의미에서의 ‘을’로 보지 않는다. IT전문기업의 한 고위 임원은 “기업에 온 퇴직 공직자들은 남들이 접근하기 힘든 대관(對官) 업무를 통해 고공 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며 “공직 사회에 비해서는 ‘을’이겠지만, 공직 사회와 ‘가교’ 노릇을 할 수 있는 공직자 출신 인사는 사내에서는 여전히 ‘갑’의 지위를 누린다”고 말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