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호

청년 보고서

‘생계형’ 청년창업 현주소

“세금 안 내도 된다고? 시장 없는 게 더 문제!”

  • 입력2018-05-06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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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명 중 8명 ‘생계형’ 창업…1년 내 폐업 ‘절반’

    • 대형 업체에 밀리고, 경쟁 업체 너무 많아

    • “한시적 재정 지원은 일시적 도움일 뿐”

    • 시장과 아이템 발굴 지원 노력 ‘절실’

    김재용(29·가명) 씨는 ‘청년창업가’다. 2012년 첫 사업으로 휴대전화 액세서리 인터넷 쇼핑몰을 차려 제법 돈을 모았다. 

    “그때 제가 스물세 살이었습니다. 당시 군 제대 후 대학에 복학한 친구들이 절 부러워했어요. 자신들은 아직 부모님한테 용돈 받는 학생인데, 저는 날로 사업을 확장해나가는 엄연한 사업가였으니까요.” 

    그러나 몇 년 후 사정이 달라졌다. 대학 졸업 후 직장에 취업해 기반을 닦아나가는 친구들을 보며 김씨는 부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당시 스마트폰 액세서리 전문 브랜드가 대거 등장하면서, 경쟁에 밀린 그는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월급보다 적은 사업 수익

    2017년 9월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열린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 창업스타트업 거리 축제 ‘IF 2017’이 방문객으로 붐비고 있다. [뉴스1]

    2017년 9월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열린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 창업스타트업 거리 축제 ‘IF 2017’이 방문객으로 붐비고 있다. [뉴스1]

    뒤늦게 취업 시장에 나온 김씨가 내세울 것은 딱히 없었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기엔 나이가 많았고, 취업 경험이 없어 경력사원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2016년 그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해 커피 회사에 취업하려던 계획을 접고, 부모가 대출로 마련해준 돈으로 직접 커피숍을 냈다. 그가 취업을 포기하고 재창업을 택한 데는 ‘청년들에게 창업 권하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했다고 한다. 

    “당시 창조경제를 거론하는 사회 분위기가 강했어요. 창업에 도전하면 새로운 길이 열릴 것 같았습니다. 비록 커피숍이지만, 신메뉴를 개발하면 승산이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신메뉴를 내놓으면,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그보다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 나오더군요.” 



    김씨는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청년창업가다. 최근 몇 년 사이 정부와 민간의 창업 지원 자금이 늘면서 청년창업이 활성화됐다. 2016년 기준 청년창업(만 15~34세)은 22만6082건으로 청년 인구 대비 1.7%를 차지한다. 5년 전인 2011년(1.6%)보다 0.1%포인트 증가했다. 

    하지만 최근 5년간 커피숍 창업은 200% 넘게 증가했다(중소벤처기업부, 2018). 김씨 가게 근처만 해도 커피숍이 5개나 더 있다. 평일 오전 7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 종일 주문 받고 음료를 만드는 김씨. 가게 임대료를 내고 대출금을 갚고 나면 그의 수중에 남는 돈은 중소기업 신입사원의 평균 연봉(2500만 원)보다 적다. 그는 “앞날이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송수영(여·가명) 씨는 2015년부터 수공예 캔들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세 군데 디자인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다. 

    “직장 생활을 10년 정도 하고 나니 재충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두 달간 해외여행을 다녀온 뒤 디자인 공부를 좀 더 해서 조건이 더 좋은 회사에 취업하자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전문성이 부족한 30대 여성이 구할 수 있는 직장에는 한계가 있었다. 1년 넘게 재취업에 실패하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창업을 결심했다. 

    올해로 창업 4년차. 그사이 캔들 공방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는 “백화점 이벤트 행사나 플리마켓(flea market) 입점 신청을 하면 10곳 중 4곳이 캔들 업체”라고 했다. 지난해 송씨가 손에 쥔 수익은 2000만 원가량. 마지막 회사를 퇴사할 때 받은 연봉보다 한참 적은 금액이다. 송씨는 지난해 결혼해 얼마 전 첫아이를 출산했다. 남편과 함께 캔들 공방을 운영한다. 그는 “우리 부부야 어떻게든 살아가겠지만,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답답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창업으로 자신의 꿈을 실현한다”는 해석은 청년창업이 증가한 배경을 절반만 설명할 뿐이다. 김씨와 송씨의 사례에서 보듯 청년 취업난이 청년창업을 늘린 주요한 요인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청년 실업률은 9.9%로 통계청이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역대 최고치다.

    8000억 투입한다는데…

    최근 창업은 크게 두 가지 유형, 기술형 창업과 생계형 창업으로 나뉜다. 기술형 창업은 신기술에 기반한 사업 모델을, 생계형 창업은 도·소매업과 숙박, 음식점업 등 비교적 진입이 쉬운 사업을 가리키는 용어다. 이러한 구분법으로 볼 때 국내 청년창업은 생계형 창업 비율이 매우 높다. 

    현대경제연구원이 2017년 4월 내놓은 ‘20대 청년 창업의 과제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30대 청년 사업자들은 주로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점업에 종사한다(표 참조). 상대적으로 기술력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제조업 종사 비율은 20,30대 모두 8% 안팎에 불과하다. 특히 20대 청년창업가의 도·소매업 의존도가 두드러진다. 전 연령대의 창업 중 도·소매업 비중이 28.5%인데, 20대에 한정하면 그 비중이 37%로 상승한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창업기업 실태조사’(2017)에서도 기술을 내세워 창업하는 청년은 많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 이 조사에 따르면 2013~2015년 3개년을 합산해 평균한 기술 기반 업종 창업 비중은 20대에선 25.3%, 30대에선 31.8%에 그쳤다. 청년창업의 다수가 생계형 창업에 몰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청년창업 생존율이 낮다는 사실. 통계청의 영리기업 대상 ‘기업생명행정통계’에 따르면 20대 청년이 창업한 신생기업의 절반(53.4%)은 1년까지만 생존했다. 2년까지 생존한 기업은 36.0%, 3년까지 생존한 기업은 26.6%에 불과하다. 신생기업 전체의 생존율(1년 62.4%, 2년 47.5%)과 비교하면 10%포인트 안팎으로 낮은 수준이다. 해당 업종에 종사한 기간을 뜻하는 업력 또한 짧은 것으로 조사된다. 업력이 3년 이내(2013~2015)인 기업이 20대는 88.1%, 30대는 69.1%에 달한다. 이는 전체 기업(60.8%) 대비 매우 높은 수준이다(현대경제연구원).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정부가 청년창업 지원에 발 벗고 나선다 해도 실제 창업에 뛰어들고 싶어 하는 청년이 많을 것으로 기대할 순 없는 노릇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2017년 실시한 ‘한국교육고용패널조사’에 따르면 4년제 대학생 중 5%만이 졸업 후 진로로 ‘창업’을 꼽았다. 전문대 재학생들의 ‘창업 의사’는 제로(0%)로 나타났다. 창업진흥원의 ‘2017 창업인식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년들은 창업에 대한 지식과 능력, 경험이 부족해서(41.7%) 창업을 기피한다. 그러나 마땅한 창업 아이디어나 아이템이 없고(35.1%), 창업에 실패하면 재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도(31.6%) 창업을 꺼린다. 

    최근 정부가 마련한 청년창업 활성화 방안의 핵심은 ‘재정 지원’과 ‘규제 완화’다. 갈래는 세 가지다. 첫째, 기술혁신 창업. 창업경진대회 등을 통해 스타 창업자를 발굴하고, 유망기업의 성장 촉진을 위해 연구개발(R&D), 투자 등을 지원한다. 둘째, 생활혁신 창업.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세운 청년창업을 촉진하며 소셜벤처 창업도 활성화한다. 셋째, 창업 부담 완화 및 창업 친화적 환경 조성. 청년이 창업하면 매출 규모와 관계없이 세금을 감면해준다. ‘창업마을 조성’ 등 자율적 교류 및 협업 생태계도 구축한다. 

    3월 15일 정부는 이러한 청년창업 지원책을 포함한 ‘청년 일자리 대책’을 발표하고, 4월 5일 3조9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편성했다. 이 중 20%인 8000억 원을 청년창업 활성화에 사용할 예정이다. 대규모 예산 투입이 마중물 역할을 하도록 해 청년 일자리 문제를 풀어내겠다는 청사진이다. 


    2017년 5월 제주시에서 열린 플리마켓. 소자본 창업에 나선 청년들은 “과밀 경쟁에 시달리지 않을, 장기적으로 경쟁력 있는 사업 아이템 발굴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뉴시스]

    2017년 5월 제주시에서 열린 플리마켓. 소자본 창업에 나선 청년들은 “과밀 경쟁에 시달리지 않을, 장기적으로 경쟁력 있는 사업 아이템 발굴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뉴시스]

    그러나 벌써부터 “청년창업은 돈 문제가 아니다”라며 정부 대책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송수영 씨는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캔들 공방이 흔치 않아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며 “그러나 지금은 캔들 공방이 너무 많아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청년창업이 활성화되지 않는 것은 정부가 돈을 지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청년들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기술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시장을 발굴하고, 청년창업가들이 사업 아이템을 제대로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는 대책은 여전히 마땅치가 않다. 정부의 이번 대책은 기존 청년창업 대책을 답습하며 다만 지원금 규모와 지원 대상 범위를 확대했을 뿐이다.

    업종 불문 레드오션에서 기회 찾으려면

    생계형 청년창업의 실패를 줄이는 데는 정부가 시행하려는 사업자금 및 세금 지원, 창업 공간 무료 지원 등이 ‘일시적’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이제 막 창업하는 신규 청년창업가에겐 구미가 당기는 혜택이다. 그러나 경기난과 과밀 경쟁 등 창업 시장의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대책은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의 지적이다. 

    “생계형 창업은 업종 불문하고 레드오션입니다. 수십 년간 노하우를 쌓아온 창업가도 과밀 경쟁으로 퇴출되는 시대예요. 청년창업가가 뭔가를 잘못해서 문제가 아니라, 창업이 유망한 시장 자체가 없습니다. 정부가 성장성 높은 시장을 발굴해 청년들이 혁신적 아이템 위주로 창업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생계형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려면 무엇보다도 “창업교육 시스템이 개편돼야 한다”고 이병태 교수는 지적한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정규 교육과정에서 기업가 정신을 익히고 창업 교육을 받아야 ‘취업이 어려워 차선으로 무턱대고 창업하는’ 현상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하지 않은 창업가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청년들이 전에 없는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을 교육하는 정책 또한 필요하다. 최근배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의 말이다. 

    “혁신형 창업의 핵심은 창업가가 관심 있는 분야에서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내고, 여러 사람과의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다른 산업을 복합 적용해나가는 겁니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은 여전히 표준화된 지식을 더 많이, 빨리 습득하는 데 머물러 있어요. 이런 교육을 받지 못한 청년들은 전에 없는 아이디어를 상상하는 역량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정부가 청년들에게 창업을 강요하다시피 하니 결국 생계형 창업으로 내몰리는 겁니다.”

    29세? 34세?
    제도마다 다른 ‘고무줄’ 청년 나이…청년은 헷갈려!

    3월 15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에서 세 번째)이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청년일자리대책 보고대회 겸 제5차 일자리위원회’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3월 15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에서 세 번째)이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청년일자리대책 보고대회 겸 제5차 일자리위원회’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이번 정부의 청년 일자리 대책에서 눈에 띄는 대목 중 하나는 ‘지원의 범위’를 확대했다는 점이다. 일례로 만 34세 이하 청년이 창업을 하면 매출 규모에 관계없이 5년간 법인세와 소득세를 100% 면제해주기로 했다. 기존 만 29세 청년까지 첫 3년간은 75%, 이후 2년간 50%의 세금을 면제해줬다. 앞으로 이와 같은 세금 지원 관련 정책은 만 29세 이하에서 만 34세 이하로 확대될 예정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정책의 근거가 되는 조세특례제한법에 청년이 만 29세 이하로 규정돼 있는데, 조만간 만 34세 이하로 법안을 개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각종 대책마다 청년의 나이가 달라 혼선을 빚고 있다. 이번 청년 일자리 대책에 포함된 청년창업사관학교, 청년전용창업지원사업은 만 39세까지 지원 대상에 해당한다. 그러나 청년고용촉진특별법상 청년은 만 15~29세이고, 농림축산식품부가 진행하는 청년 지원책에서 청년은 만 18~39세다. 지자체마다 청년의 나이가 또 다르다. 경기도는 만 19~34세, 부산시는 만 15~29세를 청년으로 간주한다. 36세인 청년창업가 송수영 씨는 “만 35~39세는 청년으로 간주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며 “청년 일자리 지원 방안마다 다른 대상 연령 기준을 통일해줬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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