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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타인의 리뷰

천문학자 이석영 연세대 교수가 본 ‘그래비티’

“‘사이언스 픽션’ 아닌 가슴 뛰는 다큐멘터리”

  •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천문학자 이석영 연세대 교수가 본 ‘그래비티’

  • ● ‘자연의 섭리’에 대한 믿음을 통쾌하게 깬 영화
    ● ‘그래비티’에서 찾은 과학적 오류
    ● 우주를 통해 인간을 연구하는 학자들
    ● “우리는 모두 별에서 온 존재”
[김도균 기자]

[김도균 기자]

‘그래비티’는 2013년 10월 국내 개봉해 큰 인기를 모은 영화다. 허블우주망원경을 수리하던 우주비행사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 분)가 갑자기 폭파된 인공위성 잔해의 공격을 받아 우주를 떠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개봉 당시 우주에 대한 사실적 묘사와 뛰어난 영상미로 호평받았고, 이를 바탕 삼아 올해 8월 말 재개봉했다. 

이석영(52)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교수는 이 영화를 2013년과 올해 두 번 봤다. 매번 “세상에 이렇게 뛰어난 영화가 있다니” 하며 감탄했다고 한다. 

그는 미국 예일대 천문학과에서 은하(galaxy)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캘리포니아공과대학(칼텍) 연구원으로 일했고, 영국 옥스퍼드대 물리학과 교수도 지냈다. ‘사이언스’ ‘네이처’ 등 세계 최고 수준 학술지에 논문을 100편 이상 게재한, 명실상부한 천문학계 석학이다.


별이 쏟아지는 연구실

인공위성 파편이 우주에 퍼지면서 우주비행사를 재난에 빠뜨리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 [유튜브 화면 캡처]

인공위성 파편이 우주에 퍼지면서 우주비행사를 재난에 빠뜨리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 [유튜브 화면 캡처]

‘그래비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이 교수의 연구실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한쪽 벽에 걸린 커다란 사진이었다. 어두운 우주 공간을 찬란하게 물들인 별빛의 향연에 눈이 부셨다. 

“지구에서 11억 광년쯤 떨어져 있는 은하단의 모습입니다. 은하가 많이 모여 있는 곳을 은하단이라고 하는데, 이 사진에 찍힌 건 ‘아벨2670’이에요. 우리 연구팀이 칠레에 있는 미국 망원경으로 촬영한 결과물이죠.” 

알고 보니 이 교수 등 연구진은 ‘아벨2670’을 관찰해 은하 진화의 비밀을 푸는 데 도움이 될 단서를 찾아냈다. 그 결과를 천문학 분야 최고 권위지 중 하나인 ‘천체물리학저널 레터스(The Astrophysical Journal Letters)’에 게재하기도 했다. 매우 아름다운 동시에 과학적 발견에 도움을 준 사진인 셈이다. 

문득 사람들이 천문학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도 이 사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의 비밀을 풀어내는 ‘과학’이지만, ‘하늘과 바람과 별’에 대해 이야기하니 조금은 낭만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 교수도 이 생각에 동의했다. 그는 자신을 종종 ‘천-문학자’라고 소개한다고 말했다. ‘문학’에 좀 더 힘을 실어 발음함으로써, 자연과학이지만 인문학적 속성도 가진 천문학의 매력을 강조하는 것이다. 

“세상에 아마추어 물리학자, 아마추어 기계공학자는 드물죠. 하지만 아마추어 천문학자를 자처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천문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그래비티’ 같은 영화가 개봉하면 극장을 찾고, 블랙홀이나 은하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발표되면 귀를 기울이고, 종종 밤하늘의 별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람은 더 많아요. 천문학자는 그 재미있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입니다.” 

늘 연구하는 분야 이야기를 스크린에서 보는 것도 즐거우셨나요. 

“사실을 말하면 저는 SF영화를 즐기지 않아요. 과학은 제 삶이니까 여가시간엔 좀 동떨어진 걸 보고 싶죠. ‘그래비티’도 2013년 개봉 초기엔 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큰 인기를 끌면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제게 ‘그래비티’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겁니다. 견디다 못해 극장에 갔어요. 일종의 의무감이었죠(웃음).” 

그랬는데 막상 보니 재미있으시던가요?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많은 분이 이 영화를 ‘공상과학영화’로 봤을 겁니다. ‘공상’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우리 삶과 동떨어진, 일상을 벗어난 이야기로 받아들였겠죠. 저한테는 리얼 다큐멘터리였어요. 제가 사는 동네 이야기를 누가 찍어서 보여주는 것 같다고 할까요. 영화 속 우주인들이 공포를 느낄 때 똑같이 공포를 느끼고, 맨 마지막에 살아서 귀환할 때는 똑같은 희열을 느꼈습니다. 영화 배경으로 캄캄한 하늘이 나올 때마다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앞으로 내가 과학영화를 보고 이렇게 또 좋아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이번에 재개봉한 뒤 다시 봤는데 여전히 참 좋았습니다.” 

‘정말’ ‘아주’ ‘무척’ 등 최상급 부사가 연거푸 쏟아졌다. “뭐가 그렇게 좋으신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의 섭리’에 던지는 심오한 질문

“‘그래비티’는 우리에게 ‘지구에서 땅을 밟고 산다는 게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많은 사람이 땅을 딛고 걷는 것, 식물이 대지에 뿌리내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죠. 그런데 우리가 사는 곳에서 590km만 떨어져도 그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는 겁니다. 우주에서 식물을 키우면 뿌리가 사방팔방으로 뻗어가요. 바닥이라는 게 따로 없죠. 그런 상황을 목도하면 우리가 말하는 ‘자연의 섭리’라는 건 과연 뭘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래비티’의 배경이 바로 지상에서 590km 떨어진 상공, 허블우주망원경이 있는 곳이다. 영화 속에서 스톤 박사가 눈물 흘리던 장면이 문득 떠올랐다. 박사의 눈물은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대신 투명한 구슬이 돼 공중을 둥둥 떠다닌다. ‘그래비티’는 이런 세상이 존재한다는 걸 우리에게 생생히 보여줬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더는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걸 자연계의 일반 원리로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를 지배해온 거대한 상식이 무너진 자리에서 새로운 질문이 시작된다. 

이 교수는 “베토벤의 현악사중주를 처음 들은 사람들이 ‘profoundly profound(심오하게 심오하다)’라고 평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영화가 그렇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또 깊다”고 말했다. 

영화 ‘그래비티’가 이 교수의 가슴을 뛰게 만든 이유는 또 있다. 수많은 위험이 도사린 우주 공간에 기꺼이 뛰어드는 ‘사람’의 모습을 그렸다는 점이다. 이 교수는 “이 영화를 보면 수많은 과학자가 우주에 나간다. 하지만 살아남아 돌아오는 건 단 한 명뿐이다. 그런 참사를 겪고도 인간은 좌절하지 않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우주를 탐험하려 하고, 누군가는 그 일에 참여한다. 인류의 오랜 질문을 풀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이 언제나 있다.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이들이, 인류의 이름으로 대단한 일을 해내는 거다. 그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미국 NASA에서 일하며 그런 과학자를 많이 보셨겠군요. 

“보통 과학자를 ‘너드(nerd·세상 물정 모르는 공붓벌레)’라고 하죠. NASA에서 제가 만난 과학자들은 한국 과학자보다 좀 더 너드 같았습니다. 순진하고, 세상에 대해 항상 궁금해하고, 시킨 일 열심히 하고(웃음).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우리가 다 같이 큰일을 하고 있다’는 데 대해 어마어마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어요.” 

이 교수는 이 대목에서 화성 탐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천문학자인 리처드 고트(Richard Gott)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과거 한 저널에 글을 기고해 ‘지금 당장 사람을 화성에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현재 과학기술 수준으로 볼 때 인간이 화성에 도착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돌아오지는 못한다. 영화 ‘마션’ 같은 상황이다. 고트 교수는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당장 화성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하며 여러 논거를 들었다. 당시 상당수 과학자가 이 주장에 동의했다고 한다. 해당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기꺼이 자원하겠다는 이도 적잖았다. 이 교수는 “일반인 눈에는 비윤리적인 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다시는 지구에 돌아오지 못할지라도 직접 화성에 가서 인류가 가진 수많은 의문을 풀고 싶어 하는 과학자도 있는 거다. ‘그래비티’의 우주인들을 보면서 그런 내 주위 과학자들이 생각났다”고 했다.


그래비티의 ‘옥에 티’

긴 찬사가 이어졌다. 이 교수에게 ‘그래비티’가 매우 특별한 영화라는 걸 충분히 이해했다. 이제는 조금 삐딱하게 묻기로 했다. 

그래도 교수님, 영화 전체가 마냥 좋기만 하신 건 아니죠? 

“과학적으로 좀 잘못된 부분이 눈에 띄긴 했습니다.” 

갑자기 대화가 흥미진진해졌다. “뭐가 틀린 건가요?” 다시 물었다. 

“영화 처음을 떠올려보세요. 스톤 박사에게 주어진 미션은 지구에서 590km쯤 떨어져 있는 허블우주망원경을 고치는 겁니다. 영화에서는 이 망원경이 공중에 가만히 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죠.” 

이 교수가 벌떡 일어나 칠판 앞에 섰다. 그리고 이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동그란 지구 위 어느 지점에 허블우주망원경을 표시하는 점을 찍었다. 

“허블우주망원경은 이 위치에서 지구 중력의 영향을 받습니다. 떨어지지 않으려면 지구를 중심으로 궤도 운동을 해야 해요. 그 원심력으로 지구 중력과 균형을 맞추는 겁니다. 이때 이동 속도는 초속 8km예요. 

자, 허블우주망원경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지구 주위를 빙빙 돌고 있습니다. 이 궤도에는 스톤 박사와 국제우주정거장(ISS), 중국의 톈궁 등이 같이 있죠. 중간에 폭발하는 러시아 스파이 위성도 마찬가지고요. 영화에서는 러시아 정부가 자국 위성을 미사일로 폭파하면서 파편이 쏟아져 스톤 박사를 공격하는 걸로 나옵니다. 그 여파로 ISS가 참혹하게 부서졌을 때 우주인 코왈스키(조지 클루니 분)가 스톤 박사에게 경고하죠. “이 파편이 90분 뒤 다시 우리를 공격할 것”이라고요. 실제로 90분 뒤 거대한 파편 구름이 다시 스톤 박사를 향해 몰아칩니다. 

과학적으로 볼 때 허블우주망원경이 있는 지점에서 초속 8km로 공전할 경우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90분이 걸리는 건 맞습니다. 단 ‘그래비티’는 그 시간 동안 파편뿐 아니라 스톤 박사, ISS, 톈궁 또한 초속 8km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한 듯해요.” 

파편과 스톤 박사가 같은 속도로 같은 궤도를 돌 경우, 영화에서처럼 90분 간격으로 맞닥뜨리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죠. ‘그래비티’에서는 스톤 박사가 허블우주망원경이 있는 지점에서 파편의 1차 공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90분 뒤 ISS에서, 다시 90분 뒤 톈궁에서 연달아 파편 구름과 마주합니다. 마치 ISS 등 다른 구조물은 제자리에 있고 파편만 공전하는 것처럼 보여요. 그게 아니라는 거죠. 원칙적으로 말하면 러시아가 위성을 폭파했다 해도 같은 궤도에 있는 한 그 파편이 스톤 박스를 따라잡지 못합니다. 둘의 이동 속도가 같으니까요. 만약 파편이 미사일 충격 때문에 속력을 좀 더 얻었다면, 중력과 원심력의 평형이 깨져 궤도 밖으로 탈출하게 됩니다. 이때도 역시 스톤 박사를 공격할 수 없어요.” 

그럼 영화의 설정 자체가 틀린 거네요. 

“우주에서 위성 파편이 스톤 박사를 공격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이 교수는 다시 한번 칠판 앞에 섰다. 아까 그린 지구 위에 서로 교차하는 두 개의 공전궤도를 그려 넣고 번호를 붙였다. 

“만약 스톤 박사가 1번 궤도, 우주 파편이 2번 궤도로 돌고 있다면 90분이 지났을 때 같은 지점에서 마주칠 수 있을 겁니다. 거대한 우주에서 하나의 점 같은 존재들이 이렇게 만날 확률은 굉장히 낮지만, 수학적으로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단 이 대단한 우연이 처음엔 허블우주망원경, 그 뒤에 ISS와 톈궁에서 차례로 발생하기는 매우 어렵죠.”


우주마저 파괴된다면…

이석영 연세대 교수가 연구실 칠판 앞에 서서 우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도균 기자]

이석영 연세대 교수가 연구실 칠판 앞에 서서 우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도균 기자]

‘과학적 사실’과 다른 내용 때문에 영화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지지는 않았나요. 

“처음 ‘그래비티’를 볼 때는 이 부분에 대해 생각도 못 했어요. 이번에 다시 보면서 비로소 허점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을 하느라 영화에 집중하지 못한 건 길어야 1, 2분 정도일 겁니다. 할리우드 영화제작자들은 과학을 다룰 때 전문가에게 매우 철저하게 자문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비티’ 제작진도 뭘 몰라서 그런 내용을 넣은 게 아닐 거예요. 영화의 극적 장치로 이 정도는 허용해도 괜찮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사실 이 작품에서 파괴된 위성 잔해가 우주 공간에 대재앙을 일으키는 설정은 우리한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줍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과학적으로 다소 틀린 부분이 있어도 의미 있는 설정이라고 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신다면요? 

“머잖아 우리가 직면할 우주쓰레기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거죠. 인류가 우주에 올려 보낸 인공위성이 벌써 수천 개에 달합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수명이 다했고, 여기저기 부서진 것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생겨난 크고 작은 파편 3만여 개가 지금 우주를 떠돌고 있습니다. ‘그래비티’에는 스톤 박사가 우주망원경을 수리하다 실수로 나사 한 개를 놓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매우 작은 나사지만 초속 8km 속도로 궤도를 돌다 다른 물체와 부딪치면 치명적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중력과 원심력의 균형을 잃고 지구로 추락할 경우 인간을 공격할 수 있고요. 그런 잠재적 위험을 품은 조각들이, 마치 바닷속의 미세플라스틱처럼 우리 머리 위를 점점 더 많이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영화 ‘그래비티’에 등장하는 중국의 첫 우주정거장 톈궁도 4월 초 수명을 다해 남태평양 칠레 앞바다에 떨어졌다. 당시 추락 직전까지 과학자들이 정확한 낙하 지점을 예측하지 못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톈궁은 다행히 지표면을 비켜갔지만 ‘우주 낙하물’의 공포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우주 선진국인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이 아무 제약 없이 우주 공간을 이용하는 데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예전에 잘사는 나라들이 상대적으로 못사는 나라에 핵폐기물을 수출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죠. 최근에는 일부에서 ‘핵폐기물을 우주로 보내자’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도 아니에요.” 

이 교수가 다시 한번 칠판 앞에 섰다. 이번엔 커다란 원, 좀 작은 원, 그리고 점 하나를 차례로 그렸다. 

“맨 왼쪽이 태양, 가운데가 지구입니다. 오른쪽은 우리가 ‘L2 포인트’ 또는 ‘라그랑주 점(Lagrangian Point)’이라고 부르는 지점이고요. 태양과 지구 사이 거리는 약 1억5000만km입니다. L2 포인트는 지구로부터 150만km 떨어진 곳에 있죠. 이 위치에 물체를 보내면 지구에서 볼 때 한자리에 영원히 정지해 있는 걸로 보여요. 태양 및 지구가 잡아끄는 힘과 해당 물체의 원심력이 균형을 이뤄서입니다. 지금 과학자들은 바로 이 지점에 망원경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우주를 안정적으로 관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누군가 분명 ‘저기에 쓰레기를 버리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꺼낼 겁니다. ‘지구에 두면 안 좋은 나쁜 물질을 저리 보내면 지구에는 아무 문제가 안 생기지 않겠느냐’고 설득하겠죠. 그리고 원자폭탄을 처음 개발한 나라가 그 성능을 시험했듯, 관련 기술을 가진 누군가는 분명 그런 시도를 하려 할 겁니다. 이미 3만 개 넘는 우주 부유물이 우리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쓰레기까지 보내면 우주 환경은 어떻게 될까요.”


우주가 선물한 생명

영화 ‘그래비티’의 두 주인공 산드라 블록(오른쪽)과 조지 클루니는 우주 공간에서 표류하는 인간의 공포를 실감 나게 연기했다.

영화 ‘그래비티’의 두 주인공 산드라 블록(오른쪽)과 조지 클루니는 우주 공간에서 표류하는 인간의 공포를 실감 나게 연기했다.

아름다운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셨군요. 

“‘그래비티’를 보는 내내 온갖 생각이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제가 학술 행사 등으로 유럽에 자주 가는 편입니다. 그때 비행기에서 땅을 내려다보면 어느 쪽으로 시선을 돌려도 잘 정돈된 모습이 보여요. 완만한 구릉과 푸른 밀밭이 펼쳐지고, 곳곳에서 소가 풀을 뜯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풍경을 보고 ‘낙원 같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겐 그 풍경이 아름답게 여겨지지 않아요. 1500년 전만 해도 그 땅이 전부 원시림이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멀리 갈 것 없이 로빈 후드가 활을 쏘던 시절로만 거슬러가도 유럽 전역에 빽빽한 숲이 있었습니다. 이후 농경화와 산업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그 지역 환경을 바꿔버렸죠. 연구자들이 뒤늦게 황폐해진 자연을 목도하고 ‘아, 우리가 유럽을 다 해먹었구나’라고 자성합니다. 돌아보니 미국도 마찬가지예요. 이제 쓸 수 있는 방법은 막 변화를 시작하려는 브라질을 ‘잡는 것’ 뿐이죠. ‘원시림이 사라지면 인류는 산소 부족으로 살 수 없게 돼’라면서요. 우주도 이런 전철을 밟게 되지 않을까, 저는 종종 그런 걱정을 합니다.” 

선진국들의 ‘우주 약탈’이 조만간 현실화할까요. 


“글쎄요. 지금 제가 알고 있는 건 대구튀김 요리 ‘피시앤드칩스’로 유명한 영국 바다에서 대구가 더는 잡히지 않는다는 겁니다. 바다코끼리 몸속에서는 언제부턴가 빨대가 발견되고요. 육지에 이어 바다 또한 빠른 속도로 파괴되고 있는 겁니다. 이런 현실에서 누군가는 머잖아 우주를 바라볼 겁니다. 달에 가서 희토류를 캐올 테고, 점점 더 멀리 눈을 돌리겠죠.” 

우주가 지구만큼 파괴되는 데는 그래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요. 

“재앙이 내가 사는 동안에 벌어지지 않는다 해도,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 무엇인지 자명하다는 생각을 하면 안타깝습니다.” 

우주를 정말 사랑하시는군요. 

“우주는 곧 나이고, 나는 곧 우주이기 때문입니다.” 

이 교수의 이 말이 처음엔 ‘천-문학자’의 ‘문학적’ 수사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진지했다. 그에게 인간은 우주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 몸의 대부분을 이루는 ‘물’의 원료 수소는 거의 100% 빅뱅을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우주가 태어나고 약 1초가 흐른 순간부터 최대 3분 사이에 일어난 핵합성을 통해 수소와 헬륨 원자핵이 탄생했죠. 우리 몸의 다른 구성 성분인 산소, 질소, 마그네슘, 인, 황, 구리, 철 등은 초신성에서 왔어요. 수십억 년 전, 이름 모를 초신성이 평생을 바쳐 모은 귀한 중원소를 은하에 환원하지 않았다면 지구 생명은 결코 시작되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 몸속의 어느 한 구석도 우주에서 오지 않은 것이 없어요. 이 땅에 있는 모든 존재는 별의 후예이고, 곧 우주의 후예인 겁니다.” 

그래서 우주 탄생의 비밀을 풀고, 은하의 진화와 별의 생멸에 대해 연구하는 건 곧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인간의 오랜 질문을 풀어나가는 과정이라는 게 이 교수 생각이다. 그는 “천문학의 단 한 가지 단점은 지나치게 재미있다는 점”이라며 “‘그래비티’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우주와 생명, 인간에 대해 생각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동아 2018년 10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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