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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벽 근무’ 다반사 성희롱 사건 조작도

퇴사 거부자 ‘인격 고문’

  • 박은경 객원기자 | siren52@hanmail.net

‘면벽 근무’ 다반사 성희롱 사건 조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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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장이 생계 유지의 최전선인 이들에게 퇴사 압박은 생명의 위협이다.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강퇴(강제퇴직)’, ‘찍퇴(찍어서 퇴직)’ 대상자에겐 갖가지 ‘인격 고문’이 자행된다. 이래도 ‘사람이 미래’인가.
‘면벽 근무’ 다반사 성희롱 사건 조작도

두산모트롤이 명예퇴직 거부자를 배치한 ‘면벽 책상’. [사진제공 · 전국금속노조 경남지부]

사무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사물함을 마주하고 덩그렇게 놓인 탁자 형태 책상과 의자 하나. 책상 위엔 컴퓨터도 없어 빈자리처럼 썰렁하다. 오른쪽엔 칸막이가 쳐 있고 그 너머 여러 개의 책상에선 직원들이 업무에 열중해 있다. 같은 공간, 전혀 다른 풍경.

3월 말, 한 장의 사진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우리 사회가 소란스러워졌다. ‘면벽(面壁) 수행’이란 비아냥거림과 더불어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두산그룹 계열사 두산모트롤의 ‘명퇴 거부자 면벽 자리 배치’ 사건이다.
 


“저 사람 붙어다니지 마”

두산모트롤은 지난해 12월 사무직 20여 명에게 명예퇴직을 통보했다. 대상자 중 한 명인 40대 중반 이모 씨가 퇴직을 거부하자 회사는 그를 대기발령했다. 이어 책상을 다른 직원과 분리해 사물함 앞으로 옮기고 아무런 업무도 부여하지 않았다. 회사가 요구한 건 ‘근태시간’과 ‘행동수칙’ 엄수. 민주노총 소속 전국금속노조 경남지부가 입수한 ‘행동수칙’의 내용은 이랬다.
 
‘정해진 근무시간 준수, 10분 이상 자리 이탈 시 팀장에게 보고를 통한 승인 후 이탈, 쉬는 시간 이외 흡연 금지, 졸거나 취침 금지, 사적인 개인전화 금지, 쉬는 시간 이용 또는 부득이한 경우는 팀장의 승인 후 통화, 스마트폰을 통한 게임·카카오톡·인터넷 등 사용 금지, 개인적 탐독 금지(경영·소설·잡지·사보 등), 어학 공부 금지’.
 
또한 오전 8시 30분 출근 때부터 오후 5시 30분 퇴근 때까지 시간대별로 ‘근태시간’을 정해 오전·오후 각 15분 간 휴식, 점심시간 1시간 외에는 ‘대기시간’을 지키도록 했다. 말 그대로 하루 종일 정해진 휴식시간과 점심시간 외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꼼짝없이 책상 앞에 앉아 있으라는 지시였다.

두산그룹의 또 다른 계열사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해 12월 신입사원을 포함한 입사 1~2년차 직원까지 퇴직 대상에 포함시켰다가 논란을 빚었다. 여기에 두산모트롤 사건까지 불거지자 두산그룹의 슬로건인 ‘사람이 미래다’는 분노한 누리꾼들에 의해 ‘구조조정이 미래다’로 패러디될 정도다.

지난해 임금피크제 도입에 이어 올해 1월부터 정부의 이른바 ‘양대 지침’이 노동 현장에 적용됐다. 업무 능력이 현저히 낮은 저성과자 해고를 가능케 하고, 취업규칙 변경 요건을 완화하는 것이 골자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상당수 대기업이 1~2년 후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이 되는 직원들을 미리 내보내려고 악랄한 수법을 동원하고 있다는 직장인들의 호소가 쏟아진다.

3년 전 외국계 회사에 몸담은 50대 초반 A씨는 회사에 불어닥친 구조조정 여파로 강제퇴직당했다. 사무실 인원 축소 방침을 거부한 그는 회사에 찍힌 끝에 ‘성희롱 가해자’로 몰렸다. 같은 부서에서 근무한 여성 과장은 피해자가 됐다. 명예퇴직 대상자이던 두 사람이 퇴직을 거부하자 회사는 한 직원을 회유해 있지도 않은 성희롱 사건을 조작하고, 사내 성희롱신고센터에 제보케 했다. 회사는 곧바로 진상 조사에 착수했고, 졸지에 성희롱 사건 주인공이 된 두 사람은 극구 부인했지만 회사는 ‘증인의 제보’를 내세워 A씨와 여성 과장을 쫓아냈다. 여성 과장은 ‘성희롱 피해자’ 신분임에도 쫓겨났지만 심한 모멸감을 느껴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치심과 모멸감, 분노를 안고 퇴직한 A씨는 나중에 증인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그에게 전화를 걸어 따져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나는 그 일과 무관하다”는 발뺌이었다. 이후 A씨는 정신과 치료를 받았지만 마음을 못 잡고 전국을 떠돌며 방황했고 끝내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폐인이 되다시피 했다.
 


“사람 할 짓이 아니었다”

노무법인 신영 김광훈 이사(공인노무사)는 요즘 기업 분위기를 이렇게 전한다.  
 
“기업의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상시화하면서 책상을 창고나 화장실 앞으로 옮기고 컴퓨터를 치운 뒤 종이 한 장과 펜 한 자루만 주고 ‘네가 적고 싶은 대로 적어라’고 하거나 근무시간 중에 휴대전화를 만졌다고 시말서를 쓰라는 경우도 있다. 업무시간에 화장실 가는 것까지 체크해 업무 성적에 반영하기도 한다. 다른 직원들에게 ‘찍퇴(찍어서 퇴직) 대상자와 붙어 있으면 너희들 인사고과도 안 좋을 것’이라고 압력을 넣어 대상자를 ‘왕따’시킨 사례도 있다.”

장기간 경기침체로 인한 기업의 구조조정 바람이 거세지면서 희망퇴직, 명예퇴직을 빙자한 ‘강퇴(강제퇴직)’, ‘찍퇴’도 성행한다. 지난해 말 직장인 전용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블라인드(BLIND)’를 서비스하는 팀블라인드는 자사 서비스 이용 직장인 중 현재 재직 중인 회사에서 ‘2015년 희망퇴직이 있었다’고 응답한 622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관련 설문조사를 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 중 77%가 “희망퇴직 시행 과정에서 동료가 퇴직 압박을 받는 것을 목격하거나 직접 겪었다”고 답했다.
 
회사가 희망퇴직을 강요한 방식으로는 32.8%가 ‘희망퇴직 거부 시 인사발령, 정리해고 등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압박’을 꼽았다. 29.4%는 ‘희망퇴직 대상자로 정해졌다는 통보’, 12.5%가 ‘부서별 인원 할당으로 반드시 누군가는 나가야 한다는 압박’이라고 답했다. ‘하던 업무 박탈, 다른 직원과의 물리적 격리’, ‘지속적 면담, 망신 주기, 폭언 등 심리적 모욕감’, ‘상사나 팀장의 부탁과 호소’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강퇴, 찍퇴 과정에서 순순히 안 나가는 퇴직 대상자에겐 회사 측이 온갖 모욕과 냉대, 모멸감을 줘 결국 제 발로 나가게 하는 ‘인격 모독’, ‘인격 살인’이 자행된다. 다음은 과거 정보통신회사에 근무하면서 수개월간 구조조정 실무를 담당한 40대 후반 김모 씨의 토로다.
 
“기업이 구조조정에 돌입하기 전 미리 명예퇴직자, 희망퇴직자 숫자를 정한다. 지원자가 목표치에 미달하면 추가로 내보낼 직원 리스트를 만들고 그들을 어떻게든 내보내려고 갖은 수법을 동원한다. 전혀 연고가 없는 지방으로 발령 내거나 뚜렷한 실적을 낼 수 없는 단순 업무 부서로 보내 ‘실적 저조’를 핑계로 해고한다. 이전 회사에 있을 때 희망퇴직자 명단에 오른 부장급 임원 5명을 한 방에 몰아넣고 업무를 주지 않은 채 복사 같은 허드렛일을 시켰다. 컴퓨터 엑셀 작업 같은 실무도 시켰는데, 예전 부서장일 때 부하직원들이 해주던 작업이라 이들은 할 줄 모른다는 걸 알고 시킨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업무를 주고는 서로 경쟁시켜 모멸감을 갖게 하고 실적 부진으로 해고하기도 했다. 결국 5명 중 2명은 제 발로 회사를 나갔다. 위에서 시키니까 했지만, 정말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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