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호

정신과전문의 최명기의 남녀본색

게으른 황제 vs 잔소리 대마왕

  • 최명기 |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 ‘작은 상처가 더 아프다’ 저자 artppper@hanmail.net

    입력2016-10-20 15:2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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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말에 방구들과 씨름하는 남편에게 집안일 도우라, 아이 보라 강요하지 말자. 제대로 못하는 집안일 억지로 시키느니 열심히 일해 돈 더 벌어오라 하는 게 낫다. 아내는 남편이 게으른 것도 싫지만 무관심은 더 싫다. 따뜻한 말로 관심을 가져주면 아내는 ‘불쌍한 남편’을 더 쉬게 해준다.
    부부 상담을 하다 보면 아내가 남편에 대해 가장 많이 흉보는 게 ‘게으름’이다. “꼼짝도  안 하려 한다” “운동을 안 한다” “씻지도 않는다”는 아내들의 하소연은 끝이 없다. 남편은 아내에 대해 가장 많이 짜증내는 게 ‘잔소리’다. “뭐 하나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흠을 잡는다” “끊임 없이 쫑알쫑알 해서 미치겠다”고 호소한다. 게으르니까 잔소리를 하고, 잔소리를 들으면 짜증이 나서 꼼짝도 안 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남편과 아내가 묘사하는 상황은 딴판이다. 무직인 남편이 집에서도 손 하나 까딱 않고 잠만 잔다면 분명 게으른 남편이다. 하지만 상담을 하러 오는 남편 대부분은 어느 정도 성실하게 직장생활을 한다. 하루 종일 직장에서 시달리다 보니 집에서는 꼼짝도 하기 싫다. 맞벌이 부부의 남편은 아내가 일을 하기 때문에 양심에 찔리는지 집안일을 ‘돕는 척’이라도 한다. 하지만 아내가 전업주부라면 “나도 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우 남편의 항변도 이해가 간다.

    아내의 간섭이 너무 심한 경우도 있다. 이런 아내는 ‘완벽한 남편’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화장실에서도 소변이 변기 밖으로 튀어나오니 앉아서 일을 보라고 한다. 또한 끝없이 뭔가를 시킨다. 남편은 아내가 시키는 일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의견 차이가 있으면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비난하면서 지키지 못할 요구를 한다. 그러다 보면 남편은 하고도 욕먹고 안 하고도 욕먹는다. 아내가 설거지를 해달라고 해서 해놓으면 “안 하느니만 못하게 했다” “일을 두 번 하게 만든다”고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이럴 때 남편은? 하고 욕먹느니 안하고 욕먹는 쪽을 선택한다. 아이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남편은 아이가 좋아하는 TV를 하루 종일 보게 하고 자장면을 사주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아내는 아이에게 온종일 TV 보여주고 배달음식 시켜준 게 잘한 짓이냐며 따진다. 남편 처지에선 어차피 욕먹을 거, 안 하고 욕먹는 쪽을 택하는 게 합리적이다.  





    남편은 왜 게으를까

    밖에 나가지 않는 것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어떤 남편은 사람 만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다. 사회불안장애일 수 있다. 결혼 전에는 어떻게든 여자의 마음에 들어야 해 주말에도 끌려다녔지만, 결혼에 골인한 후 원래 성격이 드러난 것이다. 사회불안증이 있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가 사람 만나는 일이다. 주중 5일 동안 내내 회사에서 사람을 만나다 보니 주말에는 좀 쉬고 싶다. 그러나 아내의 눈에는 주말이면 온종일 집에만 있는 남편이 게을러터져 보인다. 그러니 주말이면 답답해서 못 살 지경이다.

    우울증이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기도 한다. 우울증이라고 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눈물 흘리는 모습을 떠올린다. 우울증에 걸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일찍 자려고 해도 잠이 안 온다. 잠을 못 자고 가만히 있으면 죽을 것 같다. 그래서 밤새 게임을 하거나 케이블 TV 채널을 돌리다 죽을 힘을 다해 출근하면 오전 내내 멍하다. 오후부터 서서히 나아져 퇴근할 때쯤 되면 조금 괜찮아진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면 ‘오늘은 일찍 자야지’ 하고 마음먹지만 그때뿐이다. 막상 잠자리에 들면 잠이 안 온다. 그리고 아침이 오는 순간 또다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람도 만나기 싫고, 밖에 나가기도 싫고, 섹스도 하기 싫다. 몇 년 동안 잘 지내던 남편이 이렇게 변하면 아내도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챈다. 병원 치료를 권하거나 보약을 사서 먹인다.

    신혼부부에게 우울증이 있으면 문제가 심각하다. 결혼은 봄, 가을에 많이 하는데, 우울증도 봄, 가을에 가장 많이 생긴다. 결혼하기 전엔 멀쩡하던 남자가 결혼하고 나서부터는 회사만 갔다 오면 아무것도 안 하려 한다. 더욱이 신혼인데도 섹스를 거부하면 아내는 ‘내가 싫어졌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결국 잔소리를 해대지만 소용이 없다.

    아내의 불만이 이해가 되는 사례도 있다. 남편이 마땅한 직업 없이 백수로 지내면 아내가 보기에 남편은 게으르기 짝이 없다. 결혼하기 전에는 그 나름대로 안정적인 직장을 다녔고, 아내도 그런 남편을 믿고 결혼했다. 그런데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한다. 생활비는 아내가 벌어오는 돈으로 충당한다. 그러다 사업이 잘 안 풀리면 집에 눌러앉는다. 다시 취직하려니 창피하다. 아내를 믿고 일을 벌이는 남자일수록 여자가 조금만 뭐라고 하면 “돈 못 번다고 나를 무시한다”며 발끈한다.



    우울증, ADHD, 알코올

    어떤 남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때만 부지런하다. 가령 좋아하는 낚시, 등산, 골프 같은 걸 할 때는 스스로 새벽같이 일어나는데, 아내가 집안일 좀 도와달라고 하면 꿈쩍하지 않는다. 집안일을 도와주면 당장 욕은 안 먹겠지만, 아내의 기대치가 올라가면서 다음에 또 시달리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뭔가 시키면 계속 딴짓을 하느라 제대로 일을 못하는 남자도 있다. 이런 남자는, 시어머니에게 물어보면, 결혼 전부터 그랬다. 어릴 때도 숙제하라고 하면 끊임없이 딴짓을 했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가 있었던 것이다. ADHD가 있는 아이들은 장난을 많이 치고, 가만히 있지 못한다. 이런 증상을 ‘과다행동’이라고 하는데, 대개는 중학생이 될 때쯤 서서히 사라진다. 하지만 부주의하고 딴짓하는 습성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다. 아내가 간곡하게 부탁해도 딴짓하느라 못한다. 재촉하면 “안 그래도 할 생각이었다”며 꾸물거린다. 아내는 속이 타지만, 남편이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다.

    중독 증상도 게으름에 한몫을 한다. 알코올 중독자와 사는 여자는 속이 탄다. 남편이 주중엔 회사 일을 핑계로 술을 마신다. 주말에 가족과 같이 있을 때는 술을 잘 안 마시지만 금단증상 때문에 아무 일도 못한다. 금단증상이라고 하면 흔히 식은땀이 나고 손을 떠는 증상을 떠올리지만, 꼼짝하기 싫고 의욕이 없는 것도 금단증상이다. 술을 끊지 않는 한 ‘주말 게으름’은 계속된다.



    술 마시고 게으름 피우는 남편보다 더 속 터지는 게 게임을 하느라 게으름 피우는 남편이다. 주말에 하루 종일 게임만 하는 게 한심하기 짝이 없다. 게임에 빠진 남편들 중엔 어린 시절 ADHD가 있었던 경우가 많다. ADHD 후유증이 있는 성인은 집중력이 오래 유지되지 못한다. 게임은 적을 찾아내고 총질을 해대느라 순간순간 상황이 변하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다. 아내에겐 최악의 남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아내는 왜 잔소리를 할까. 남편이 변변한 직장도 없이 아내가 벌어오는 돈을 까먹으며 하루 종일 집에서 빈둥거린다면 화가 치밀 만하다. 직장이 있는 남편의 경우에도 밖에서 힘들게 일하는 것은 알지만, 아내는 내내 치우고 남편은 어지르기만 하면 그때도 화가 날 만하다. 하지만 화를 내는 정도엔 개인차가 있다.



    불안, 억울, 공주병

    깨끗한 것에 집착하는 여성이 있다. 남편이 보기에는 충분히 깨끗한데도 하루 종일 쓸고 닦는다. 그러다 보니 남편에게 이것저것 도와달라는 요구가 늘어난다. 남편 처지에선 왜 저러는지 이해가 안 가는데 아내는 찜찜해서 견딜 수가 없다. 남편은 외출했다 돌아오면 한숨 돌렸다 씻고 싶은데 아내는 그런 남편이 지저분해서 참기 어렵다.

    ‘불안 레벨’이 높은 아내는 일을 잠시도 미루지 못한다. 뭔가 얘기를 하면 당장 해야 한다. 남편이 안 하면 자신이 하고 만다. 남편은 아내가 너무 급하다고, 아내는 남편이 너무 느리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여성은 남편에게 일을 맡기지 못한다. 남편더러 게으르다며 타박하지만 막상 남편이 하려고 하면 “됐어” 하면서 자기가 알아서 한다. 정작 남편에게 일을 맡기지도 않으면서 게으르다고 비난만 한다.  

    아내가 부탁하는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를 때도 있다. 학원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라고 부탁하면 남편의 마음은 요동친다. 자기가 보기엔 아이를 억지로 학원에 보낸다고 성적이 오를 것 같지 않다. 그런데도 아내는 요지부동이다. 가고 싶지도 않고, 도움도 안 된다는 생각에 아이는 제때 학원에 가는 법이 없다. 아빠는 도대체 왜 자신이 그런 아이를 위해 ‘학원 라이딩’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아내는 또 어떤가. 남편에게 집안일을 맡기고는 “엉망으로 했다”면서 트집이다. 옷 입는 것, 머리 자르는 것, 밥 먹는 것까지 일일이 물고 늘어진다. 뭐든 자기 식대로 해야 한다면서 지시를 한다. 남편은 나름대로 아무리 노력해도 아내를 만족시킬 수 없다. 지친 남편은 결국 “배 째라” 하면서 드러눕는다.

    어떤 아내는 집에 가만히 있는 것을 참지 못한다. 밖에 나가서 일을 해야지 제대로 사는 것 같다. 여자라고 다 집안일을 잘하는 건 아니다. 이런 여성은 남편은 아이를 자신에게 맡겨놓고 밖으로 나돈다고 느낀다. 남편이 주중에 일찍 들어와 함께 있으면 덜 억울하지만, 주중에 야근이다, 회식이다 하면서 귀가가 늦으면 짜증이 난다. 그러니 주말만 되면 밖으로 나가야 한다. 이때 남편이 힘들다고 하면 게을러터졌다고 여긴다.



    관심과 따뜻한 말 한마디

    늘 똑같이 책임을 나눠야 하는 아내도 있다. 특히 아이 돌보는 문제가 그렇다. 남편이 밖에서 일하느라고 너무 힘들었다고 하면 “나도 아이 보느라 힘들었다”고 한다. 낮 동안에는 똑같이 힘들었으니 저녁 때도 똑같이 아이를 돌봐야 한다고 여긴다. 내가 아이를 보면 왠지 손해를 보는 것 같다. 내가 하면 될 일도 남편에게 시켜야 덜 억울하다. 남편이 녹초가 돼 집에 들어와도 자신이 더 힘들었다고 강변한다. 남편이 다투는 게 지겨워 “그만하자”고 하면 상대 입장을 배려하지 않는다고 몰아세운다. 그러면서 다른 남편들은 집안일도 많이 도와주고 돈도 잘 벌어온다고 비교한다.

    공주병에 걸린 아내도 있다. 자신은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고 모두 남편에게 시킨다. 자기 같은 여자와 살려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며 남편을 하인 부리듯 한다.

    부부가 한 공간에서 살아가다 보면, 내가 편하면 상대방이 불편하고 상대방이 불편하면 내가 편한 경우가 생긴다. 갓난아이가 새벽에 칭얼댈 때 남편이 먼저 일어나 기저귀를 갈아주면 아내는 편해진다. 어느 한 쪽이든 부지런하면 그냥 하고 만다. 게으를수록 남에게 시키려 한다. 서로 자신이 힘들다고 우기는 부부를 보면 대개 둘 다 성실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남편은 집안일을 잘 못하니 하기도 싫다. 반면 아내는 요리하면서 청소도 하고, 세탁기 돌리면서 아이도 본다. 남편에게 억지로 아이를 돌보게 하면 남편은 작은 일에도 아이를 야단치고 울린다.

    그러니 주말에 방구들과 씨름하는 남편에게 집안일 도와달라, 아이 보라 강요하지 말자. 남편이 못하는 집안일을 억지로 시키느니 열심히 일해 돈을 더 벌어오라고 하는 게 낫다. 아내는 남편이 게으른 것도 싫지만 무관심은 더 싫다. 아내가 집안일 할 때 따뜻한 말로 관심을 가져주면 아내는 ‘불쌍한 남편’을 더 쉬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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