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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시대 살아가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익 극대화’ 아니다

  • 김용기 |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 seriykim@ajou.ac.kr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익 극대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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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 임원들의 별난 경제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익 극대화’ 아니다

미국 200대 기업 CEO로 구성된 이익단체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홈페이지. 이 단체는 공적 이익에 봉사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로 불리는 대·중소기업 간, 정규·비정규직 간 임금격차 또한 대기업 주도 경영전략인 외주화 경향에서 비롯됐다. 외주화에 따른 임가공비는 최소한으로 책정됐다. 이는 제조업 내 대·중소기업 관계를 형성했다. 공공부문마저 이를 따라 했다. 그 결과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 간 임금 수준은 100대 35로 3배나 차이가 난다.

대기업은 일자리를 가진 자 중 오직 12%만 누릴 수 있는 꿈의 직장이다. 하지만 대기업 근무조차 젊은이들에게는 ‘탈출’의 대상이 됐다. 상명하복 문화와 불필요한 보고 및 연장 근로로 괴로워하다 떠나는 것이다.

물론 기업의 이러한 행태는 나름의 합리적 선택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정규직에 대한 해고나 임금 인하가 그리 쉽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 변동의 위험성을 외주화를 통해 이전한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 경제의 GDP 대비 가계소득 비중의 하락이나 소득 및 자산의 양극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OECD 국가 중 최악이다. 심지어 2006∼2010년 가계소득과 기업소득 증가율은 1.7%와 18.6%로 17배의 차이가 발생했다. 복지제도가 취약한데 가계소득까지 줄어들고 고용은 갈수록 불안해졌다. 서구에선 휴식과 여행으로 인식되는 은퇴 이후의 삶이 한국에선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된다. 기업으로선 합리적 선택이었을지 몰라도 이제 국민경제의 근간을 흔들기에 이르렀다.

사실 한국 기업 고위 임원들의 경제관은 좀 유별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다. 최고경영자(CEO)의 상당수는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주장을 그대로 본떠 되뇐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직원들을 구조조정하면서 자신은 수십억 원을 가져가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없다.  

직원들을 구조조정할 바에야 자신이 옷을 벗는 일본 경영진의 예를 들 것도 없다. 되도록 국내 고용을 유지하려는 독일 기업 경영진의 태도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자유기업의 본고장인 미국의 CEO들조차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미국 200대 기업의 최고경영자로 구성된 대기업 이익단체가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Business Roundtable)’이다. 이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이윤 극대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981년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은 ‘기업의 책임에 관한 성명서’에서 “사적인 이익뿐 아니라 공적인 이익에도 봉사”하겠다는 태도를 뚜렷하게 천명했다. 최근에도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을 최우선으로 한다.



기업 경영자는 피고용자나 채권자, 공급자, 지역사회와 사회 전체, 그리고 주주 등을 모두 이해관계자로 인식한다. 기업의 이익만을 추구하거나 주주의 이익만을 주장하지 않는다. 프리드먼이 말하는 기업의 역할이 이익 추구라는 견해는 전간 시기(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 국가개입주의라는 시대 상황을 비판한 이상적인 자유주의 주장에 불과하다. 현실에선 그런 극단적인 자유주의 주장이 적용될 수 없다.



재벌 해체냐, 규제냐

양극화가 심화하는 사회에서 불만의 화살은 대기업을 겨냥한다. 특히 선거 시기에 투표권을 지닌 개인과 중소상공인 다수는 대기업에 반대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내세운다. 1980년대 이후 경제민주화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집권 여당조차 선거 시기 경제민주화를 주창하는 이유는 이러한 정치적 불가피성에서 비롯된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경제민주화는 두 가지 상이한 양태를 띤다. 첫째는 대기업의 정치적 영향력을 우려해 그들을 해체하는 것이다. 둘째는 대기업에 대한 일방적인 매도를 경계하며 국민경제에 대한 기여를 높이는 방향으로 대기업을 규제하는 것이다. 이처럼 상이한 접근 방식은 한국에서도 2000년대 초반 참여연대(재벌 해체)와 대안연대(재벌 규제)의 논쟁에서 드러났다.

미국에서도 ‘새로운 산업질서(독점적 거대기업의 등장)’에 대한 시각의 차이가 대통령선거의 중요 쟁점이 된 적이 있다. 1912년 대선에서 민주당 윌슨 후보는 “독점은 정치를 돈으로 사버리고 민주주의를 끝장낼 것이다. 그들은 미국 정부를 소유할 것이다”라며 독점 대기업의 해체를 주장했다. 윌슨의 최측근이자 이후 윌슨에 의해 대법원 판사로 지명된 루이스 브란데스는 “우리는 금권(Money Trust)을 깨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금권이 우리를 깰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진보당 후보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좋은 독점과 나쁜 독점을 구분해야 한다”며 대기업 집단에 대한 일방적인 매도를 경계하고, 국민경제에 대한 이들의 기여 가능성을 중시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1901∼1909년 공화당 출신 대통령으로 재임한 인물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으나 1908년 대선에 재출마하지 않고 공화당의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후보를 지원해서 그를 당선시킨 인물이다. 이후 대통령 태프트의 임기 중 정책에 실망한 루스벨트가 1912년 대선에 다시 출마한 것이다.

선거는 결국 당시 공화당 지지자들의 표가 분산되는 바람에 민주당의 승리로 끝났다. 민주당 윌슨이 41.9%(선거인단 435석)를 득표한 반면, 진보당 루스벨트는 27.4%(선거인단 88석)를 얻었다. 현직 대통령이던 공화당 태프트 후보는 23.1% 득표(선거인단 8석)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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