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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찬반논쟁

한반도 유사시 일본 협력 긴요

  • 조진구 | 고려대 글로벌일본연구원 연구교수

한반도 유사시 일본 협력 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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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韓 주일미군, 日 재한일본인 정보 필요
  • ● 군사비밀정보 제공 ‘의무화’ 아니다
  • ● 다른 나라들과 체결한 협정과 차이 없어
  • ● 양국에 이익, 동아시아 안정에도 기여
한일 양국이 지난 11월 23일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을 체결했다. 2012년 무산된 바 있는 이 협정은 사드 배치만큼이나 격렬한 논란을 불러왔다. 국익을 위한 협정이라는 국방부의 설명에 ‘졸속 협정’ ‘매국 협정’이란 비판이 나온다. 학자들의 찬반 양론을 들어본다.  



한반도 유사시 일본 협력 긴요

11월 23일 서울 국방부 청사에서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서명식이 열렸다. [뉴스1]

1993년 3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뒤 일본 정부는 한반도 유사시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를 비밀리에 시작했다. 관방부 (副)장관을 책임자로 하는 ‘4성청(내각안전보장실, 외무성, 방위청(現 방위성), 경찰청) 회의’는 법적 차원에서 다양하게 검토한 끝에 자위대법의 개정이나 신규 입법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의 합동참모본부에 해당하는 자위대의 통합막료회의도 자위대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조치에 대해 검토했으며, 1994년 7월 ‘K반도사태 대처계획’이란 제목의 극비 문서를 완성했다. 여기에는 한반도에서의 정보활동 강화, 연안 및 중요 방호 대상 경비, 경계태세 강화, 한국 거주 일본인의 피난, 미군에 대한 일본의 후방 지원, 해상수송로 방호 등 12개 항목에 걸쳐 자위대가 할 수 있는 조치들과 문제점들이 지적돼 있다.

‘자위대의 수송능력으로 재C방인(邦人, 자국인) 및 미국인을 수송하는 것은 가능하다’ ‘분쟁 발생 전이라면 작전 준비에 약 1주, 작전 실시에 약 4일이 필요하다’.



제공 목적 외 사용불가

위 인용문은 이 극비 문서의 ‘재C방인의 피난(evacuation)’ 항목에 포함된 것이다. ‘C’는 한국을 가리키며, 자위대는 한반도 유사시 한국 거주 일본인을 본국으로 피난시키는 데 열흘 정도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당시 한국 내 일본인 약 2만 명의 절반 정도가 거주하던 서울과 인천, 부산을 거점으로 자위대의 수송기와 수송함, 정부 전용기를 이용해 피난시킨다는 계획을 세웠으며, 상황이 악화돼 한국의 민간 공항과 항만을 이용하지 못할 때는 오산 미군기지에 거주하는 미군 가족들을 일본으로 피난시키는 대신 일본인들을 미군 수송기로 피난시킨다는 아이디어도 제시됐다.

지난 11월 23일 한민구 국방장관과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는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정식명칭은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국 정부 간의 군사비밀정보의 보호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양국이 발효에 필요한 국내 절차를 마치면서 협정은 곧바로 발효됐는데, 일본에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다. 일본은 한국의 이지스함이 포착한 북한 미사일 발사 정보나 탈북자를 통해 입수한 인적 정보(Humint), 한반도 유사시 한국 거주 일본인(2015년 12월 현재 3만8060명)의 피난 관련 정보 제공에 관심이 크다.

반면 한국에서는 찬반 논란이 거세다. 일본의 우수한 감시 및 탐지 자산, 다양한 첩보수집과 분석능력을 활용할 수 있게 돼 우리의 안보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국방부의 설명에도 ‘졸속 밀실 협상’ ‘굴욕적 매국 협상’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2012년 6월 대통령 외유 중 차관회의를 거치지 않고 비밀리에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사실이 드러나 비판이 쏟아지자 우리 정부는 협정 체결 1시간 전에 이를 연기하는 외교적 무례를 범했다. 당시 협정 반대파들이 내건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국회에서 충분한 설명을 한 뒤 협정을 체결하겠다는 약속을 국방부가 지키지 않았다 △독도, 일본군 위안부 등 과거 역사에 기인한 국민의 대일 감정을 고려하지 않았다 △협정이 한·미·일 vs 북·중·러 대립구도를 고착화하고 군사적 긴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이는 현재의 협정 반대파들이 내세우는 이유와 큰 차이가 없다. 물론 이번 협정은 지난 10월 말 국방부가 협상 재개 방침을 밝히고 도쿄와 서울에서 실무회담을 거쳤다는 점에서 외교 협상의 모양새는 갖췄다. 다만 절차적으로나 시기적으로 부적절했다. 국회 관련 상임위에서의 사전 설명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국민이 대통령의 퇴진과 탄핵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서둘러 체결해야 할 만큼 긴급한 사안은 아니었다.



日 외교안보정책 대전환  

그러나 ‘굴욕적 매국 협상’이었는지는 잘 따져봐야 한다. 이 협정은 군사비밀정보의 교환 절차 및 교환된 정보의 보호와 관리 절차를 규정하는 것이다. 상대가 제공한 군사비밀정보를 바탕으로 자국의 국내 법령에 따라 적절한 보호 조치를 취하고 제공 목적 이외에는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이기에 군사비밀정보 제공을 협정 체결 당사자에게 ‘의무화’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파는 협정의 내용보다는 한반도에서 일본의 군사적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우려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은 아직도 한반도에 대한 야심을 버리지 못했다고 본다. 하지만 이는 비현실적인 가정이며, 보통의 일본 국민은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2012년 12월 제2차 아베 정권이 등장한 이후 일본의 외교·안보 정책엔 ‘대전환’이라 불릴 만큼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중국의 국력 증강으로 인한 동아시아 세력 균형의 변화, 핵과 미사일 개발을 가속화하는 북한의 비대칭적 군사능력 증대에 대해 일본은 미일동맹 강화를 통한 억지력 강화와 자체 방위(군사)능력 강화로 대처하고 있다.

2013년 12월 아베 총리는 자신의 지론대로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모방한 일본판 NSC를 만들었다. 2014년 1월 NSC 사무국 역할을 하는 국가안전보장국이 신설돼 아베 총리의 책사(策士)로 알려진 외무사무차관 출신의 야치 쇼타로가 국장으로 임명됐다. NSC는 현재 중요 외교·안보 정책 입안과 조정의 컨트롤타워다. 이런 변화는 2013년 12월 17일 국가안전보장전략(NSS)의 채택으로 이어졌으며, 이에 입각해 방위계획 대강(大綱)과 중기 방위력 정비계획도 채택됐다. NSS는 10년  앞을 내다보고 만든 외교·안보 정책 결정을 위한 지침서로 ‘국제협조주의에 입각한 적극적 평화주의’를 국가이념으로 제시했다.

한편 헌법상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각법제국의 헌법 해석에 대해 ‘금치산자’라고 비판해온 아베 총리는 자위대 창설 60주년인 2014년 7월 1일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각의(국무회의) 결정을 했다. 헌법 해석의 변경을 통한 사실상의 개헌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2015년 4월 27일 미일 외교·국방장관 회담에서는 1997년 9월 개정된 ‘미일방위협력을 위한 지침(가이드라인)’의 재개정이 합의됐다. 이틀 뒤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미 연방의회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한 아베 총리는 ‘적극적 평화주의’가 일본의 미래를 이끌어갈 목표라고 밝히면서, 신가이드라인을 법적으로 뒷받침하는 안보 관련 법안의 처리를 약속했다. 안보 관련 법안은 전쟁 법안이라는 비판에도 국회를 통과했으며, 그 과정에서 일본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분열과 혼란을 겪었다.

냉전 종식 이후 일본은 국제 공헌이라는 명분 아래 자위대의 활동범위를 확대하고 미군과의 공동 활동 기회도 늘려왔는데, 이 가이드라인으로 자위대와 미군의 협력 내용을 구체화했다. 2015년 재개정된 가이드라인에서 자위대의 활동범위는 대폭 늘어났으며, 미일안보체제는 안보조약상 범위를 넘어 세계 규모로 확대됐다. 더구나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가이드라인의 재개정은 한반도 유사시를 상정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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