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호

위안부 합의 후 1년

“한국은 소녀상 설치 자제하고 일본은 감성적 후속 조치 나서야”

  • 진창수 | 세종연구소 소장 jincs@sejong.org

    입력2017-02-28 13: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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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이 행동을 보여주지 않는 한 일본 대사는 보낼 수 없다.’ 최근 부산 위안부 소녀상 문제에 대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소신이다. 아베 총리는 한국 정부가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설치를 막지 않음으로써 한일 합의를 위반했다고 인식한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의 일반적인 정서는 일본이 진정한 사죄를 하지 않는 한 소녀상 설치를 막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본국으로 초치된 주한 일본 대사가 언제 돌아올 것이냐가 핫이슈로 등장했다.

    문제는 부산 소녀상 설치로 악화된 한일관계를 수습하기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현재 탄핵 정국인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원하는 대로 소녀상을 옮길 수도 없는 상황이고, 일본도 명분 없이 대사를 한국에 귀환시키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처럼 양국의 기싸움이 지속되면 일본으로선 대사 귀환 시기가 점차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도 일본과의 협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문제를 방치할 수 없다. 한일 양국이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방에 책임이 있다고 인식하는 한 출구전략을 모색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과거사 갈등 반복 이유

    한일관계에는 왜 과거사 갈등이 반복될까. 한일관계가 수평적이고 대등하게 바뀌어가고 있으나 이를 조정할 메커니즘이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한일관계 악화에 영향을 준 첫 요인은 감정적인 차원에 있다. 일본 내에서는 ‘한국에 언제까지 사죄해야 하나’ 하는 피로감이 형성됐다. 게다가 한국에 대한 일본 내 비판적 여론은 양국 국민 간 감정싸움을 부추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욱 더 심각한 점은 일본인들이 한일관계 악화의 원인이 한국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현재 한일 양국 국민의 감정이 최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째, 이익의 측면에서는 한일이 서로를 경쟁 상대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은 일본을 선진 모델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컸다. 그러나 삼성 등 글로벌 기업으로 성공한 사례가 나타나면서 일본을 추월했다는 자신감이 커졌다. 반면 일본은 1990년 이후 장기침체를 겪으며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상대적으로 커진 한국 경제에 대한 경쟁의식이 생기고, 한국에 추월당할 위기감마저 느끼고 있다. 한일관계가 수직적인 협력관계에서 수평적 경쟁관계로 변화했지만 새로운 형태의 협력 시스템이 형성되지 못한 채 상대방에 대한 경쟁의식만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 탈냉전 이후 냉전체제하의 반공연대가 약화되면서 한일관계의 구심력이 저하됐다. 중국의 급부상과 일본의 상대적 저하에 따라 미중 양강구도 아래 동북아에서 세력 전이가 나타나고, 한국의 상대적 국력 상승으로 중국을 둘러싼 인식과 전략에 차이가 나타나게 됐다. 한국에 중국은 최대 교역국가이면서 북한에 대한 영향력도 있어 대중관계의 전략적 중요성 역시 커지고 있다. 이에 반해 일본에서는 중국의 강대국화에 대한 경계가 심화하고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갈등으로 중국 위협론이 확산됐다. 이러한 한일 간 구심력 저하는 중국을 둘러싼 갈등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로 인해 일본은 한국을 건너뛰고, 한국은 일본을 무시하고 있다.

    넷째, 한일관계가 국내 정치 이슈가 되면서 외교 당국자는 양국 관계 개선의 활로를 찾기가 힘들어졌다. 한일 교섭과정이 공개된 상황에서 일반 국민은 한일관계에서의 외교적인 배려를 외교적 패배로 인정하는 경향이 많다. 외교 담당자도 장기적인 국익보다 단기적 여론에 매몰되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양국 외교 당국자가 국익 우선의 전략적 외교를 하려면 그에 따른 국내 정치적 책임을 질 용기까지 필요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 결과 정부는 여론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고, 적극 외교보다 국내 비판세력을 설득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한일 양국은 경쟁을 넘어 외교전쟁의 상황에 돌입했다고 할 수 있다.   



    합의 후 1년간 성과와 아쉬움

    돌이켜 보면 2015년 12월 28일 한일 양국의 위안부 합의 이후 1년은 새로운 국면 전환의 계기로 삼아 한일관계를 안정화할 수 있는 시기였다. 한일 전문가 대부분은 이 합의에도 불구하고 소녀상 설치 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인해 한일관계가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기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위안부 합의 이후 1년간을 되돌아보면 양국 관계는 회복세를 띠면서 점차 우호적 방향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한일 양국 모두 갈등의 한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을 가졌다. 위안부 합의가 최선은 아니라도 차선의 선택이었다는 평가가 한일 관계의 회복력으로 작용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내 한국 불신의 중요한 배경인 한국의 중국 경사(傾斜)론도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한국이 일본과 공동의 가치를 가진 한 배를 탄 동료라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한국 내에서도 아베 총리가 위안부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하고 정부 예산으로 보상하겠다는 결정을 평가하면서 아베 정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잦아드는 것처럼 보였다.

    위안부 합의 이후 1년은 리더십의 태도가 양국 관계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일깨워준 시기였다. 한일관계가 국내 정치화하면서 국민 여론에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리더십이 여론의 방향을 제시하고 여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었다.   

    하지만 2015년 합의 이후 한일 정부의 태도에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2015년 위안부 합의는 리더십의 결단으로 이루어진 역사적 선택이었다. 한국 정부에는 피해자 할머니들이 생존해 있을 때 명예회복을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고, 일본 정부는 한일관계를 회복해 동북아 질서를 주도하고자 하는 전략적인 필요성이 존재했다.



    그러나 양국 정상의 고뇌에 찬 결단에도 한일관계가 국내 정치화하면서 양국 모두 불만의 목소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현재처럼 합의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과 시민단체의 반대 목소리가 양국의 정치적인 분위기를 좌우하는 상황에서는 국민 감정을 전략적으로 관리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한국 내 불만은 대부분 피해자 할머니들의 동의를 얻지 않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합의를 추진한 데 있었다. 설사 여러 이유에서 정부가 위안부 할머니에게 사전 동의를 얻지 못했다고 해도 합의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위안부 할머니를 위로했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런 상징적인 만남은 과거사 갈등 해소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 이러한 과정이 누락되면서 위안부 합의에 대한 반대 세력의 목소리는 커질 수밖에 없었다.

    10억 엔으로 모든 성의를 다했다고 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도 합의 이행에 악영향을 끼쳤다. 한국 국민은 일본 총리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사죄의 뜻을 표하는 감성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사죄 편지를 보내는 것은 털끝만큼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해 한일 양국의 공분을 샀다. 아베 총리의 이러한 태도로 인해 10억 엔과 소녀상 이전을 연계하고자 하는 일본 우파의 노림수가 일본 사회에 먹혀들었다. 그 결과 한일 합의의 기본 정신인 반성과 사죄가 슬그머니 사라지고 ‘10억 엔=소녀상 이전’만 부각되는 상황이 됐다. 이처럼 한일 양국의 리더십이 중요한 순간에 진정성을 담은 실천적인 행동을 하는 것에 주저함으로써 위안부 합의의 정신이 퇴색되는 양상이 됐다.  



    소녀상으로 다시 꼬인 한일관계

    최근 부산 소녀상을 둘러싼 갈등은 한일 양국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줬다. 부산 소녀상 설치로 불거진 일본 정부의 강경 조치는 한일 합의에 대한 인식 차에서 기인한다.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출연한 10억 엔이 사실상 사죄와 반성이 포함된 법적 책임에 준하는 돈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그 사실을 부정하고 화해 치유의 목적이라는 것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러한 양국 정부의 인식 에 불만을 가진 한국의 시민단체가 합의 내용을 근본적으로 불신하면서 소녀상 설치를 강행하게 된 것이다.

    국제적인 상식에 비추면 외교 공관 앞에 일본인이 그토록 싫어하는 소녀상을 설치하는 것은 적절한 행동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한국적 정서로는 일본 정부가 진정한 반성과 사죄를 하지 않는 한 소녀상 이전과 관련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부산 구청이 소녀상을 철거했다가 시민들 압박에 못 이겨 다시 세운 것은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정부가 이러한 상황이 되기까지 방치한 것은 국제사회의 눈에는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으로 비친다.

    한국의 처지에서 보면 일본 정부가 통화스와프 교섭 중단을 포함한 고강도 보복 조치를 취하는 것에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는 소녀상 설치의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하지만, 최근 한국의 탄핵 정국 속에서 일본 정부가 막무가내 식으로 강경조치를 취하는 것에는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즉 일본 정부가 현재의 비상 상황을 이용해 한국을 길들이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혹은 어차피 한국에서 소녀상이 설치될 것이라면 한국에 계속 압박을 가해 더 이상 소녀상이 설치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은 아닌지 하는 불신이다. 이번 사건은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와 함께 위안부 합의를 준수하면서 한일관계의 난국을 헤쳐가려는 의지가 약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한일 양국 정부는 소녀상 이전 사안에 매몰되지 말고 한일 합의를 실천해가야만 한다. 우선 부산 소녀상 설치에 대한 한국 정부의 명확한 방침을 밝힐 필요가 있다. 윤병세 외교 장관이 부산 소녀상 설치에 대한 국제적인 입장을 설명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발언에만 그치지 말고, 부산의 지방정부, 시민단체와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적극적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아베 정부도 위안부 할머니의 한을 풀어준다는 합의의 정신으로 되돌아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위한 감성적 조치를 포함한 후속조치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한일 정부의 노력이 더해질 때 한일 합의는 공고하게 유지될 수 있다. 지금처럼 양국 정부가 국내 여론에 매몰된다면 한일관계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한일 양국 정부가 국내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전략적인 판단을 할 때 비로소 한일관계는 발전할 수 있다.



    진 창 수

    ● 1961년 경남 김해 출생
    ● 서강대 정외과 졸업, 일본 도쿄대 정치학 박사
    ● 저서: ‘한일관계, 이렇게 풀어라’(공저) ‘일본 아베정권의 역사인식과 한일관계’(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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