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호

특집 | 부동산도 양극화 지옥!

‘지방러’들의 서러운 ‘서울생활기’

“서울은 태어나는 것만으로도 스펙”

  • 입력2018-09-2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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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러’와 ‘지방러’ 간 격차, 갈수록 벌어져

    • 서울에 일자리 집중, 선택의 여지없이 고향 떠나

    • “서울에서 태어나 사는 건 특권이고 스펙”

    • “지방에서도 행복 누릴 수 있는 환경 조성돼야”

    온라인 상에서 화제를 모은 ‘서울러 vs 지방러, 현실판 부루마블 게임 해봤다’라는 제목의 동영상 한 장면. [유튜브 캡처]

    온라인 상에서 화제를 모은 ‘서울러 vs 지방러, 현실판 부루마블 게임 해봤다’라는 제목의 동영상 한 장면. [유튜브 캡처]

    서울(2396만 원), 제주(1026만 원), 부산(977만 원), 일산(944만 원)…. 

    2018년 대한민국에 ‘현실판 부루마블’이 등장했다. 게임 판에 있는 도시는 총 20개. 올해 8월 기준으로 아파트 평당(3.3㎡) 거래가 순서대로 배치한 대한민국 축소판이다. 전국 최저인 울진의 경우 아파트 평당 가격은 264만 원이다. 서울과의 차이가 9배가 넘는다. 서울 중에서도 강남(5055만 원)과 비교하면 그 차가 20배에 가깝다. 

    지난 9월 1일 ‘서울러 vs 지방러, 현실판 부루마블 게임 해봤다’라는 제목으로 인터넷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 공개된 영상 한 편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수도권(서울, 일산)과 지방(진주, 나주) 출신 참가자들의 게임을 소개하는 이 영상은 유튜브 공개 1주일 만에 조회 수 7000을 넘겼고, 댓글에는 ‘이젠 서울 사는 게 스펙이 돼버렸다’ ‘출신지가 계급이 된 사회’라는 자조 섞인 푸념이 넘쳐난다.

    현실판 부루마블 게임의 승자는?

    부루마블은 주사위 두 개의 숫자 합만큼 말을 굴리는 보드게임이다. 현실판 부루마블 게임 참가자들은 제한된 자본금(1000만 원)과 최저임금 수치를 반영한 월급(157만 원)을 받는다. 이들은 타 지역에 잠시 머물 때마다 해당 지역 거주자에게 체류비를 내야 한다. 대출 기회와 부동산 매각 기회는 각각 한 번씩 주어진다. 게임의 승자는 부동산과 현금을 합쳐 가장 많은 자산을 보유한 사람이다. 이 때문에 게임 참가자들은 싼값에 여러 지역을 살지, 체류비가 비싼 지역을 살지를 두고 세심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현실판 부루마블에는 일자리, 교육, 의료 서비스 차이에 따른 서울·수도권과 지방 간의 양극화 현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 게임에서는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서울로 가는 나주 출신자가 검진비가 포함된 서울 체류비 50만 원을 지불하고,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 공연을 보러 서울로 가는 진주 출신자가 티켓값과 굿즈(Goods·상품) 구매비, 서울 체류비를 합한 50만 원을 낸다. 물론 이 돈은 모두 서울 출신 참가자한테 돌아간다. 서울 출신 참가자는 가만히 앉아 돈을 버는 셈. 게임이 진행될수록 ‘서울러’와 ‘지방러’ 간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서울러의 우승이 예견된 상황. 그런데 게임 결과, 예상과 달리 일산 출신자가 서울 출신자를 제치고 이 게임의 승자가 됐다. 어떻게 된 걸까. 바로 ‘체류비 우대권’ 덕분이다. 서울로 회사 면접 시험을 보러 가려면 서울 체류비(299만 원)를 내야 하는데, 이를 면제받은 것. 일산 출신자는 “운이 좋아 이긴 것일 뿐 게임을 계속 이어갔더라면 서울 출신자가 이겼을 것이다. 이번 게임을 통해 출신지에 따른 출발선의 차이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집 한 번 다녀오면 10만 원 깨져”

    한양대학교 총학생회를 비롯한 임직원, 대학생들이 지난해 12월 6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신청사 앞에서 한양대학교 기숙사 신축 허가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스1]

    한양대학교 총학생회를 비롯한 임직원, 대학생들이 지난해 12월 6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신청사 앞에서 한양대학교 기숙사 신축 허가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스1]

    최근 지방에 사는 사람들을 부르는 ‘지방러(지방이라는 단어에 행위자를 뜻하는 -er을 붙임)’라는 신조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경기 출신자는 ‘경기러’로, 인천 출신자는 ‘인천러’로 불린다.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 출신 사람들은 다 합쳐 ‘지방러’로 표현한다. 젊은 층이 모이는 커뮤니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서울에 사는 지방러의 고민과 애환이 담긴 게시물이 많이 올라온다. 

    “서울러가 한 달에 교통비로 4만 원 쓸 때, 경기러는 한 주에 4만 원을 지출해요. 지방러가 본가에 한 번 다녀오려면 적어도 10만 원은 깨지죠.” 

    부산 동구 범일동이 본가인 대학생 주지은(25) 씨의 말이다. 주씨의 동갑내기 대학 동기 중에는 서울러와 경기러가 있다. 이들은 각자 거주지인 집에서 서울 노원구 공릉동 서울과학기술대학교까지 통학한다. 반면 부산에서 올라온 주씨는 학교 인근 원룸에서 자취한다. 

    서울러, 경기러 친구보다 지방러인 주씨가 상대적으로 교통비 부담이 적을 것 같지만 주씨는 “중요한 집안 행사가 아니면 방학, 명절에도 집에 가지 않는다. 집에 자주 갔다가는 파산하고 말 거다”라고 말했다. 

    결국 지방러들은 대학교 기숙사나 근처 원룸에서 자취하면서, 본가에 가는 일은 1년에 한두 번에 그친다. 이 때문에 이들은 집에 가고 싶을 때 언제든 갈 수 있는 서울·경기 사람들이 부러울 수밖에 없다. 

    방학이면 지방러 대학생 사이에서는 ‘짐 맡기기 전쟁’이 벌어진다. 비싼 방값과 생활비를 아껴 고향집에 내려가기 위해 방학이면 지방러 학생들은 방을 빼곤 한다. 최근엔 이 같은 학생들의 고충에 주목한 짐 보관 서비스업체들이 방학 때 짐을 맡아주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비용은 월 10만~20만 원 사이. 주씨는 “이 금액조차 부담스러운 지방러 학생들은 민폐인 걸 알면서도 친구 집에 짐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손바닥만 한 작은 공간에서 타향살이를 해야 하는 점도 20,30대 지방러들의 애환이다. 부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평화롭게 생활하는 서울러와 달리 자취생들은 외로움과 궁핍함을 감내하며 서울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일자리, 교육, 의료 차이가 가른 양극화

    대학생 이선경(21) 씨는 대학 입학과 함께 대전 집을 떠나 서울 홍대입구 인근 고시원으로 터전을 옮겼다. 이씨는 “서울 어딘가에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생각으로 한동안 설레고 들떴다. 그런데 막상 침대와 책상, 간이 옷장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창문 없는 방에 들어서는 순간, ‘과연 이곳에서 내가 살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고 말했다. 

    고시원 생활로 인해 이씨의 일상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혼밥’은 이제 일상이 됐다. 삼각김밥, 소시지, 치즈, 컵라면, 도시락 등 편의점 음식으로는 허기를 채우기에 부족하다. 생활의 질이 떨어지자 어느 순간 몸도 마음도 아프게 됐다. 

    “인스턴트 음식만 먹다 보니 서울에 온 지 5개월 만에 6㎏이 늘었어요. 많이 먹지도 않는데 늘 소화가 잘 안 돼요. 또 밤에는 방 간 소음에 주의해야 해요. 고시원은 방음 시설이 취약해서 조금만 부스럭대도 옆방에 피해를 주거든요. 이런 생활이 계속되다 보니 성격이 점점 예민하고 날카로워지는 것 같아요.”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인구주택총조사 전수집계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우리나라 인구 5142만 명 중 2552만 명이 서울과 경기·인천에 몰려 있다. 국민 2명 중 1명은 수도권에 살고, 나머지 1명은 지방에 산다는 얘기다. 인구 밀집도에 따라 돈도 몰리게 돼 있다. 좋은 일자리와 학교, 의료기관은 모두 수도권에 몰려 있다. 

    지방러들이 고향을 떠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일자리가 서울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부산상공회의소에 따르면 국내 1000대 기업 본사의 4곳 중 3곳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 게다가 지방에서는 서울보다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무조건을 감수해야 한다. 

    “가끔 스스로에게 물어요. 서울에 살고 있는 게 과연 잘하는 짓일까 하고요.” 

    취업준비생인 오승현(21) 씨는 충북 증평군에서 살다 청주시 소재 특성화고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청주 시내 소규모 영상제작사에 입사했지만 수습기간 3개월만 간신히 채우고 퇴사했다. 더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오씨는 “좋은 일자리를 얻으려면 그만큼 노력해야 하고, 취업 준비를 위해 결국 서울에 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직장을 얻기 위해 어린 나이에 홀로 서울 생활을 시작한 오씨를 바라보는 그의 부모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능력 없는 부모 때문에 자식이 고생하는 것 같아 죄책감을 떨치기가 어렵다. 오씨 아버지 오덕환(57) 씨는 “서울까지 멀리 자식을 보내야 하는 부모 마음도 편치 않다”고 털어놨다.

    “길바닥에 돈 버리는 기분”

    일자리는 물론 의료, 교육, 문화 등 대다수의 인프라가 수도권에 쏠려 있다 보니 집값 양극화는 더욱 심할 수밖에 없다. 지난 7월 한국감정원 조사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8·2 부동산 대책 이후 지난 6월까지 11개월간 6.60%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8·2 부동산 대책 이전 1년 상승률(4.74%)을 넘어선다. 

    서울과 달리 지방 주택시장은 8·2 부동산 대책 이후 하락세가 본격화하면서 양극화가 더 심해졌다. 8·2 부동산 대책 이전 1년간 0.01% 오른 지방의 아파트 값은 대책 발표 이후 11개월 동안 1.70% 하락했다. 

    충남 공주시 출신 직장인 박진우(34) 씨는 7년 전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60만 원짜리 집에서 생활했다. 지금은 보증금 4000만 원에 월세 40만 원인 방 두 칸짜리 서울 변두리 연립주택에서 지낸다. 그가 지난 7년 동안 지출한 방값은 무려 5000만 원에 달한다. 

    박씨는 “이래서 사람들이 ‘집값, 집값’ 하는구나 싶다. 말도 안 되지만 너무 속상할 때는 ‘우리 부모님은 서울에 안 살고 지금까지 뭐 했나’ 하는 원망감도 밀려온다”고 털어놓았다. 내년 초 결혼을 앞둔 박씨는 현재 신혼집을 구하는 중이다. 덕분에 다시금 서울과 지방의 집값 차이를 실감하고 있다. 

    “직장 생활 7년 동안 모은 돈에 신용대출 등을 합해 간신히 3억을 마련했는데, 서울에서는 이 돈으로 전세밖에 구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것도 지은 지 20년이 다 된 10평대 아파트에서요.”

    서울에서 살수록 벌어지는 격차

    강원 속초 출신 직장인 김민지(28) 씨는 “서울에서는 방바닥에 누워만 있어도 월급이 반토막 난다”고 농담을 했다. 김씨는 지방에 살다 2010년 경기권 대학에 입학하면서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현재는 서울 구로동 소재 광고회사에서 4년차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연봉은 3200만 원. 지금은 회사 근처에 있는 16.5㎡(5평) 규모의 원룸에서 생활하고 있다. 

    가구는 책상과 서랍장, 화장대, 침대, 간이식탁뿐이다. 그런데도 발디딜 틈 없는 이 방의 가격은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55만 원. 이와 별개로 관리비와 공과금, 교통비를 포함한 생활비로 매달 60만 원 정도가 나간다. 월급에서 100만 원 넘게 고정비가 나가고 나면 남는 건 얼마 없다. 이러니 돈을 모으고 싶어도 모을 수가 없다. 

    “서울에 있는 부모님 집에 사는 입사 동기보다 쓰는 건 반밖에 안 되는데 모으는 돈도 반밖에 안 돼요. 문제는 이 상태에서 과연 경제적 자립이 가능하냐는 거예요. 생활비로 월급을 다 쓰는 사람과 매달 따박따박 월급을 모으는 사람과는 하늘과 땅 차이잖아요. 지방 출신이란 것 자체가 서러워요.” 

    또한 지방러들은 “서울은 태어나는 것만으로도 스펙이 되는 곳”이라고 입을 모은다. 전북 완주군 출신 뮤지컬배우 지망생 하석진(25) 씨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 마냥 부럽다. 서울에는 꿈을 펼칠 기회가 다양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완주에서는 뮤지컬 공연 한 편 보려면 집에서 1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전주 시내까지 나가야 했다. 지방 순회공연을 하지 않는 작품은 아예 관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공연장 규모나 작품 수준도 서울과 지방 간 차이가 확연하다. 

    “저와 함께 뮤지컬배우의 꿈을 키우는 친구들은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어릴 때부터 다양한 작품을 관람하며 각종 오디션에 참가해 무대 경험을 쌓은 친구들과 저는 교육의 질과 문화 수준 차이가 크게 나요. 서울에서 태어나 산다는 것 자체가 특권이고 스펙이에요.”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잡을 대책은 무엇?

    취재 과정에서 만난 지방러들이 자신들의 애로 사항을 토로하면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불리함’이다. 이들 사례에서 보듯이 지방러의 삶은 시간이 갈수록 서울러와의 격차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벌어진다. 애초에 실업난과 저임금, 높은 주거비용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방러가 서울에서 살수록 지출은 늘어난다. 

    하씨는 “지방에서도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좋겠다. 학업과 일자리, 문화생활 등을 지방에서 모두 누릴 수 있다면 서울살이에 대한 로망은 한결 줄어들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서울·수도권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방법은 뭘까. 정부는 그 방안 중 하나로 ‘국가균형발전’을 거론한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균형발전을 국정과제로 설정하고, 지난 3월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개정한 상태다. 이 특별법은 지역 인재를 육성하고 혁신도시를 산업클러스터와 연계해 신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일자리를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이러한 정책이 과연 대한민국 지방러들에게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 줄지 많은 이가 주목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현실판 부루마블’ 영상을 보면 새로운 규칙을 도입한 2차 게임에서는 청년이 지방에서 창업할 경우, 주택 무이자 대출 1회 혜택이 주어진다. 또 지자체가 차곡차곡 쌓은 지역인재육성기금은 지역 인재 육성을 위해 사용되고, 지방에 소재한 기업은 지역인재 채용 제도를 도입해 실시한다. 지역 의료기관이 대거 확충돼 지방 출신자들은 건강검진 받으러 서울까지 가지 않게 된다. 방탄소년단이 전국 순회공연을 하고, 지역 축제가 활성화하자 게임에 참가한 지방 출신자들이 서울 대신 지방으로 몰려들었다. 2차 게임 결과, 진주 출신자가 서울 출신자를 제치고 승자가 됐다. 서울에 가지 않고도 지방에서 모든 걸 해결하게 된 것이 승리의 주요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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