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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화 원류 탐험기 ⑫

‘모비딕’ 사냥의 출항지 뉴베드퍼드·낸터키트

허무와 절망 넘어선 ‘극기적 긍정’의 미학

  • 신문수 서울대 교수·미국문학 mshin@snu.ac.kr

‘모비딕’ 사냥의 출항지 뉴베드퍼드·낸터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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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 사냥의 출항지   뉴베드퍼드·낸터키트

‘모비딕’의 저자 허먼 멜빌.

그의 자부심 그대로 ‘모비딕’은 이제 미국 소설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일 뿐만 아니라, 인간 사유의 깊이와 광활한 상상력의 한 정점을 표상하는 대작으로서 세계문학의 판테온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찍이 영국의 소설가 서머싯 몸은 ‘모비딕’을 세계 10대 소설의 하나로 꼽은 바 있고, 최근에는 모리스 블랑쇼, 호르헤 보르헤스, 질 들뢰즈와 같은 사색가들 또한 ‘모비딕’을 길잡이로 하여 그들 자신의 독특한 사색의 지평을 열어 보였다.

모비딕, 그 극적인 재발견

멜빌과 ‘모비딕’의 자취를 찾는 여정은 나에겐 언제나 각별한 설렘을 동반했다. 한때 온 시간을 바쳐 씨름하던 학위 논문의 대상이었기에 내 젊은 날의 잔영이 늘 앞장을 서곤 했기 때문이다. 매사추세츠 서쪽 피츠필드의 생가에서도, 뉴욕 이스트 26번가 104번지, 멜빌이 숨을 거둔 옛 집터에서도, 브롱스의 우드론 묘지의 멜빌 무덤에서도, 그의 모습을 불러내고자 하면 거의 언제나 그의 소설과 힘겨운 대화를 나누던 시절의 내 영상이 겹쳐졌다.

예컨대 이 글을 준비하기 위해 그가 ‘모비딕’을 쓰던 무렵의 행장을 되짚어 보면서 나는 1850년 12월13일자, 뉴욕의 편집자 에버트 다익킹크(Evert Duyckinck)에게 보낸 그의 편지 속 다음의 구절에서 눈길을 멈추었다.

여기 시골에서 바다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방이 눈으로 덮여 있군요. 아침에 일어나면 마치 대서양 상의 배에서 현창으로 밖을 내다보는 듯이 밖을 내다봅니다. 이곳 내 방은 배의 선실 같습니다. 밤중에 잠이 깨기라도 하면 삐걱이는 바람 소리를 듣습니다. 집에 돛을 너무 많이 달았다고 상상합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지붕 위로 올라가 굴뚝에 색구를 쳐야겠다고 생각하지요.



멜빌은 ‘모비딕’을 쓰면서 이렇게 고래잡이 시절을 회상하면서 거기에 몰입해 살고 있었다. 그해 추수감사절에는 식구들을 모두 보스턴 처가로 보내고 피츠필드에 일부러 혼자 남아서 원고를 쓰기도 했다. 그는 머리에 솟구치는 생각과 이미지들이 언어로 형상화되기 전에 사라지지 않을까 조바심이 나서 늘 시간이 아까웠다. 그는 다익킹크에게 이렇게 써보내기도 했다.

“나에게 쉬운 문체로 글을 잘 쓰는 50여 명의 젊은이를 보내줄 수 있겠습니까…? 그만한 수의 작품을 계획하고 있지만 그것을 따로따로 생각해볼 충분한 시간을 마련할 수가 없군요.”

멜빌은 이렇게 2년여를 오로지 모비딕에 매달려 쓰고 또 썼다. 멜빌 덕분에 나 또한 이 순수한 열정의 시간들을 음미할 행운을 누렸기에 이런 구절들에 새삼 눈길이 가는 것이다.

‘모비딕’ 첫머리의 무대이자 19세기 세계 포경업의 중심지였던 뉴베드퍼드와 낸터키트를 둘러보기 위해 길을 떠난 것은 2006년 7월 하순의 어느 날이었다. 방학 중 한 달여 체류하던 케임브리지 생활을 마감하는 기념여행이었다. 하버드대 동아시아어문학과에서 공부하는 Y양, 어학연수를 온 P양이 길동무를 자청해 동행했다. 케임브리지의 렌터카 업소에서 빌린 차를 타고 우리는 보스턴을 경유해 곧장 남쪽으로 달렸다.

순례자 청교도들이 세운 도시 플리머스를 지나 15분쯤 달리니 곧 뉴베드퍼드이다. 보스턴에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여정이다. 전에도 이곳을 두서너 번 찾은 적이 있으나 그때마다 오후 늦은 시각이어서 유명한 ‘고래잡이 박물관(The Whaling Museum)’과 ‘모비딕’에 소개된 ‘뱃사람들의 교회(Seamen’s Bethel)’ 내부를 보지 못해서 늘 아쉬움이 남아 있던 차였다.

이 두 건물과 바로 지척에 있는 항구 일대가 ‘국립 뉴베드퍼드 고래잡이 사적 공원(New Bedford Whaling National Historical Park)’으로 지정되어 있다. 토요일 아침이라서 그런지 거리는 한산했다. 우리는 교회와 박물관 문이 열리길 기다리면서 포석이 깔려 한층 고풍스러운 느낌을 자아내는 거리 이곳저곳을 걸었다. 나는 이내 초라한 봇짐을 겨드랑이에 끼고 거리 저편에서 터벅터벅 걸어오는 듯한 이스마엘의 환영과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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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수 서울대 교수·미국문학 mshi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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