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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로 본 중국 | 장쑤성

돈이 곧 행복이라는 운하의 古都

풍요와 전쟁의 공존

  • 글·사진 김용한 | 중국연구가 yonghankim789@gmail.com

돈이 곧 행복이라는 운하의 古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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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쑤성의 ‘자랑’은 꽤 많다. ‘물고기와 쌀의 마을(魚米之鄕)’이라 불릴 정도로 예부터 물산이 풍족했고, 운하가 만들어낸 절경과 부드러운 말투의 미녀도 빼놓을 수 없다.
  • 하지만 개혁·개방의 여파로 장쑤성의 아름다움이 점점 색이 바래져 안타깝다.
돈이 곧 행복이라는 운하의 古都
강남의 봄은 따뜻하다. 훈훈한 남풍에 꽃은 일찍 피어나고, 운하에는 쪽배가 한가로이 떠다닌다. 강남에 몰려든 사람들은 제각기 영화 속 주인공처럼 사진을 찍고 낭만적인 풍경을 화폭에 옮겨 담는다.

‘소’는 ‘자소 소(蘇)’자다. 쑤저우(蘇州)의 고소(姑蘇)산에 자소(紫蘇) 박하가 많아서 붙은 이름이다. 그러나 ‘소생하다’는 다른 뜻처럼, 쑤저우의 봄은 실로 소생하는 듯한 기분을 안겨준다. 장쑤(江蘇)성은 이 지역 양대 중심도시 장닝(江寧·난징의 옛 이름)과 쑤저우(蘇州)의 앞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이를 단 한 글자로 압축하니 ‘소(蘇)’가 되었다. 장쑤성의 성도는 난징이지만, 문화적 헤게모니는 쑤저우가 쥐고 있다.

베이징 능가한 강남의 영화

‘하늘 위에 천국이 있고, 땅 위에 쑤저우와 항저우가 있다(上有天堂, 下有蘇杭).’

이 속담에 ‘낚여’ 쑤저우를 찾은 중국인들은 “이게 천국 같다고 한 거야?”라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한다. 쑤저우 역시 급속한 개발로 옛 정취가 상당 부분 사라진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천국 같다’는 말이 단순히 아름다운 경치만을 가리키는 것일까.

맹자는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고 했다. 인류의 역사는 어찌 보면 배고픔에 대한 투쟁의 역사다. 장쑤성은 ‘물고기와 쌀의 마을(魚米之鄕)’이라고 불릴 만큼 물산이 풍부했다. 사마천도 “(강남은) 쌀로 밥을 짓고, 물고기로 국을 끓인다. 과일과 어패류를 자급할 수 있고, 땅에 식물이 풍부하여 기근 걱정이 없다”고 했다. 이런 땅이 천국으로 보이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으리라.

풍부한 물산이 밖으로 유통되지 않고 자체 소비로만 끝난다면 부를 창출할 수 없다. 사마천의 말처럼 “강남에는 굶어죽는 사람도 없지만 천금을 가진 부자도 없다.” 강남은 수양제의 대운하 건설로 큰 전환점을 맞는다. 고구려를 침공한 장본인이기도 한 수양제는 6년간 550만 명을 동원해 총 1750km의 운하를 건설하고 향락적인 뱃놀이로 백성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돈이 곧 행복이라는 운하의 古都

쑤저우 강남명원에서는 그림 그리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대운하는 강남과 강북의 교역을 활성화해 경제를 성장시켰고, 중국을 사회문화적으로 통합하는 데도 기여했다. 오늘날에도 베이징과 항저우를 잇는 징항대운하는 중요한 수상 교통로로 여겨지니, 대운하 건설은 여러모로 큰 업적이다. 당나라 시인 피일휴는 “사치스러운 뱃놀이만 안 했다면, 수양제의 공로가 우임금보다 어찌 작겠는가!”라고 탄식했다.

풍요로운 경제는 화려한 문화를 낳았다. 많은 시인묵객은 강남의 정취에 흠뻑 젖어 시와 노래를 남겼다. 은퇴한 고관대작들 역시 날씨 좋고 풍경 좋은 강남에서 여생을 보냈다. 이들은 집에 있으면서도 자연 속을 노니는 처사(處士)처럼, 초야에 은거한 선비처럼 살고자 했다. 이런 배경에서 강남명원(江南名園)이 탄생했다. 정원에 기암괴석이 있고 연못이 있다. 집 안에서도 산과 호수를 벗하며 사는 기분을 내게 해준다.

강남은 지속적으로 발전해 명대에 이르러 강북을 완전히 압도했다. 조선 선비 최부(崔溥)는 중국을 두루 살핀 후 물산, 재력뿐 아니라 인심과 문화적 수준까지 모두 강남이 강북보다 낫다고 기록했다. 천자가 사는 베이징조차 “주민의 번성함, 누대의 훌륭함, 물화의 풍부함이 쑤저우나 항저우에 미치지 못한다”고 실망을 금치 못했다. 청말(淸末) 서태후는 별장 이화원을 지으면서 쑤저우 거리를 재현한 구역을 만들었다. 강남의 영화는 천하의 중심마저 능가했다.

반복된 대학살의 역사

장쑤성은 강북과 강남을 잇는 교통의 요지다. 물산은 풍부하고 도시마다 중요한 거점이 된다. 쑤저우는 신흥강국 오나라의 수도로서 춘추전국시대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오왕 합려는 이곳에서 힘을 키워 남방의 강국 초나라의 수도 영을 점령했고, 그 아들 부차는 천군만마를 호령하고 중원을 위협하며 춘추시대의 네 번째 패자로 등극했다.

난징은 삼국시대 손권이 오나라의 수도로 삼은 이래 6개 왕조, 10개 정권의 수도가 되어 ‘육조고도 십조도회(六朝古都 十朝都會)’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얻었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이고 북쪽은 거친 장강이 흐르는 천혜의 요새다. 제갈양도 난징을 보고 “종산(鐘山)에 용이 서려 있고, 석두(石頭)에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으니 실로 제왕이 자리 잡을 땅”이라고 극찬했다. 오의 손권, 명의 주원장, 태평천국의 홍수전, 중화민국의 쑨원과 장제스 등 숱한 영웅이 난징을 근거지로 삼았다.

장강 북변에 자리 잡은 양저우는 강북과 강남을 잇는 요지로 대운하 건설 이후 크게 부유해졌다. 당나라 시인 장호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양저우에서 살다 죽는 것만이 합당하다”고 노래했다. 양저우에 온 수양제는 수도 낙양에 되돌아가지 않았고, 건륭제는 수서호(瘦西湖)의 별장에서 휴가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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