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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씸죄 뒷말’, 탈북 엘리트 구속 내막

‘스파이’인가, ‘입막음’인가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괘씸죄 뒷말’, 탈북 엘리트 구속 내막

  • ● 北정권 비판해온 A박사 ‘스파이 혐의’로 구속
    ● 일본 정보기관 돈 받고 군사기밀 넘긴 혐의
    ● “괘씸죄 걸린 게 아닌가”<정보당국 전직 고위인사>
    ● 탈북민이 ‘정보 장사’ 뛰어드는 까닭
    ● “해외 기밀 유출은 국익 해치는 범죄”
‘괘씸죄 뒷말’, 탈북 엘리트 구속 내막
“작은 통신사가 메이저 언론도 해내지 못하는 특종을 생산하는 비결이 뭔가?”

2010년 1월 뉴욕타임스(NYT) 기자가 서울 관악구 신림본동의 한 허름한 다세대주택을 찾아왔다. 취재 내용은 ‘한국의 발 빠른 통신사가 북한에서 은밀히 정보 수집해’라는 제목으로 그해 1월 24일자 NYT에 실렸다. “탈북민, 인권운동가로 이뤄진 열린북한방송이 휴대전화를 이용해 북한의 언론 통제를 허물고 있다. 수용소 같은 북한에서 내부 소식 누설은 혁명 같은 일이다”라고 NYT는 보도했다.

열린북한방송은 북한 내 정보원을 확보해 기사를 작성했다. 북한 관료 혹은 주민과 직접 통화해 정보를 획득했다. 하루 두 번 북한으로 단파방송도 송출했다. △북한 실상 △한국 소식 △국제 뉴스를 북한 주민에게 알렸다. NYT 기사에서 ‘인권운동가’는 열린북한방송 대표이던 현 바른미래당 소속 하태경 의원, ‘탈북민’은 최근까지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으로 일한 A박사다. 열린북한방송은 하 의원의 국회 진출에도 도움을 줬다.


하태경 의원과 함께 일해

A박사는 북한에서 ‘수재(秀才)대학’으로 일컫는 평성이과대학을 졸업했다. 국가과학원 산하 대학으로 한국 카이스트(KAIST)에 비견되는 곳이다. A박사는 대학 졸업 후 국가과학원과 호위사령부에서 일했다. 호위사령부에서는 북한 ‘로열패밀리’ 건강과 관련한 일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 입국한 후 국민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 충남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통일부 정책자문위원회 자문위원,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원을 지냈다.

A박사는 성격이 강한 편이다. 하 의원과의 의견 대립으로 다툰 후 열린북한방송에서 나와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를 세웠다. 이 센터는 열린북한방송과 비슷한 방식으로 북한 정보를 한국에 공개했다. A박사는 유력 탈북 인사 B씨에 대해 간첩설(說)을 제기하기도 했다. 북한 후계 구도를 두고 ‘김정남’ ‘김정철’이 각축할 때 ‘김정은’을 거론한 이도 그다.

정보 당국 한 관계자는 “망명 인사 중 상위 20~30%에 해당하는 정보력을 가졌다”고 A박사를 평가했다. 물론 A박사가 공개한 정보 중 사실이 아니거나 신빙성이 의심스러운 것도 꽤 있다.

북한 출신 엘리트 지식인으로 손꼽히던 A박사에게 시련이 찾아온 때는 올해 7월이다. A박사는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다른 탈북민의 부러움까지 받으며 잘나가던 망명 인사가 하루아침에 ‘스파이’가 돼버린 것이다. 민감한 대북 정보를 돈을 받고 일본 정보기관에 넘겼다는 게 혐의의 골자다. 정보 당국 전직 고위인사는 “A박사가 괘씸죄에 걸린 게 아닌가 싶다”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A박사와 친분이 있는 한 인사는 “잘못이야 했겠으나 ‘입막음’용이란 생각도 든다”고 했다.

이○○ 전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은 한국에서 ‘얼굴 없는 황장엽’이라고 불렸다. 2005년 5월 72세 나이로 망명해 12년간 한국에서 익명의 삶을 살다가 지난해 6월 2일 타계했다. 그는 평양에 남은 가족의 안위를 걱정해 별세할 때까지 이름이 공개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북한 당국도 한국 망명 사실을 알고 있으나 고인의 유지에 따라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정보 장사’에 나서는 탈북민

이 전 대의원은 망명한 북한 인사 중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다음으로 고위직을 지낸 인물이다. 무기체계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했다. 아버지는 이영무 국군 초대 항공사령관, 장모는 장택상 전 총리의 딸이다. 가족 배경이 이런데도 북한에서 고위직에 오른 것은 1986년 6월 준공된 대동강 하구 서해갑문 설계에 참여해 큰 성과를 거둔 덕분이다.

남재준 원장 시절 국가정보원은 이 전 대의원에게 자문비 명목으로 활동비와 생활비를 보조해줬다.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 적(籍)을 두는 형식이었다. 박근혜 정부 때 그는 김일성에 반대하다 해외에 망명한 박갑동, 이상조, 정추 씨 등이 1991년 조직한 ‘구국전선’의 책임자를 맡았다.

A박사가 이 전 대의원의 비서 역할을 했다. ‘신동아’가 구국전선 관련 내용을 보도한 적이 있는데(2015년 10월호), A박사가 전화를 걸어와 “이○○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 줄 아느냐” “지금 어떤 일을 하시는지 아느냐” “어떻게 구국전선을 기사로 다룰 수 있느냐”고 격하게 항의하면서 “기사를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이 전 대의원은 일본 내각정보조사실(이하 내조실· 한국 국정원에 해당) 정보관들과도 만났다. 내조실은 일본인 납치자 문제 등과 관련한 자문을 이 전 대의원에게 요청했고, 이 전 대의원은 내조실을 도와줬다. A박사도 이 전 대의원과 함께 내조실 인사들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보기관에도 탈북 인사는 중요한 정보원이다. 자문료 명목으로 편의를 제공하는 경우도 많다.

‘정보 장사’를 하는 탈북민 수가 적지 않다. 북한 정보를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것이다. 국정원, 국군정보사령부, 국군기무사령부(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해편)는 경쟁적으로 대북 정보를 수집한다. 군사안보지원사가 주관하는 군부대 안보 강연은 탈북민들이 경제적 수입을 얻는 일자리다. 정보 당국이 탈북민에게 돈을 주고 인터넷에 북한을 비판하는 글을 올리게 한 적도 있다.

앞서 언급했듯 일본 정보기관도 탈북민에게 돈을 지급하고 정보를 수집한다. 북·중 국경으로 출장을 가 확보하기 쉽지 않은 ‘근로자’(월간지) ‘조선인민군’(북한군 기관지) 같은 매체를 구해오면 1부당 액수를 책정해 지급하기도 했다. 북한 내부 문건도 같은 방식으로 거래된다. 중국에서 북한 인사들과 직접 접촉해 얻은 정보를 ‘파는’ 탈북민도 있다. 북한에서 만든 것처럼 문건을 위조해 ‘장사’하거나 중국에서 연출해 촬영한 동영상을 북한 내부 동영상으로 둔갑시켜 파는 경우도 있다.


“A박사 PC에서 군사기밀 발견”

A박사가 설립한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도 ‘정보 비즈니스’를 했다. 일본 정보기관 요원으로부터도 소정(所定)의 자문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A박사는 ‘김정은 통치자금’ ‘974부대 실체’ ‘김여정 남편’ ‘북한 파워 엘리트 분석’ 등 민감할 수도 있는 정보를 공개했다. 그가 공개한 정보는 북한 정권에 적대적인 게 많았다. 보수 정권 시절엔 정부 의뢰를 받아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통일부에도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의 유서와 김정은의 미래’ ‘통일한국에서 온 선물’ 등 책도 썼다.

공안 당국은 A박사의 혐의를 군 정보기관 출신 인사들의 대북 정보 해외 유출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포착했다. A박사 측 PC와 하드디스크에서 군 정보기관이 생산한 군사기밀이 발견됐으며 정보를 유출한 인사와 A박사가 e메일을 교환한 것도 확인했다. A박사가 돈을 받고 기밀정보를 일본 정보요원에게 넘겼다는 것이다. A박사 측은 통상의 자문료를 받은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A박사 가족은 “해외에 넘겼다는 정보는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홈페이지에 이미 공개된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대북 정보를 수집해 가공한 후 외부에 제공하는 게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가 그간 해온 일이다. 정보 세계에서는 ‘기브 앤드 테이크(Give & Take)’가 작동한다. 받는 게 있어야 주는 게 통례다. ‘정보 장사’ 경험이 있는 한 탈북 인사는 “탈북민을 대북 정보 수집에 활용하다가 내치는 경우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 안보 전문가는 “돈을 받고 일본에 기밀을 넘기는 행위는 국가에 해가 되는 큰 범죄”라고 강조했다. 대북 정보를 다루는 탈북민들은 이 시각에도 위태롭게 벼랑 위를 걷고 있다.


신동아 2018년 12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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