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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에세이

어느 판사의 재판 전 10분

  • 정재민 | 판사, 소설가

어느 판사의 재판 전 10분

나는 판사다. 수도권의 법원에서 형사단독재판을 맡고 있다. 일주일에 이틀 재판을 한다. 이렇게 말하면 다른 날은 사무실 창가 화분에 물을 주면서 보내는 줄 아는 사람도 있는데, 실은 법정에 들어가지 않는 날이 더 바쁘다. 하루 재판에 들어가기 위해 수백 내지 수천 쪽에 달하는 기록을 읽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법정에 들어가기 전 10여 분 동안은 비교적 여유로운 편이다. 실무관이 대형 마트에서 사용하는 철제 수레에 기록들을 모두 담아서 법정으로 가져가버리기 때문에 기록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어서다.



판사의 2대 필수 장비

책상 위에서 기록이 치워지면 가장 먼저 엄지손가락에서 골무를 뺀다. 기록을 읽고 있는 판사와 그렇지 않은 판사를 구분하는 법은 손가락에 파란색 고무골무가 씌워져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골무는 지문이 있는 쪽에 수십 개의 돌기가 도돌도돌 붙어 있어 기록을 촤악, 촤악, 촤악 흥을 담아 빠르게 넘기면서도 더도 덜도 말고 딱 한 장씩만 넘어가게 제어해준다.

골무는 지우개 달린 연필과 함께 판사의 양대 필수 장비다. 제아무리 크고 복잡한 사건도 따지고 보면 왼쪽 손가락에 끼운 골무와 오른쪽 손에 든 연필 사이에서 해결된다.

주말에 집에 기록을 들고 가서 일할 때 골무가 없으면 마치 차로 가야 할 먼 길을 걸어가야 할 것처럼 막막함이 밀려온다. 할 수 없이 손에 침을 발라 기록을 넘겨야 하는데, 간혹 기록에 섞여 있는 반성문에서 자신이 매독이나 헤르페스에 감염됐다고 고백하는 대목이 등장할 때에는 골무가 더 아쉬워진다.

재판 기록이 실려 나가고 손가락에서 골무를 뺀 뒤엔 옷장으로 가서 법복과 넥타이가 걸린 옷걸이를 꺼낸다. 오각형 법원 로고가 비단뱀 등짝의 무늬처럼 반복적으로 새겨진 회색 넥타이를 맨 다음 검은 법복을 걸친다. 사시사철 같은 법복이다. 법복은 겨울 코트보다 얇고 여름옷보다 두꺼워서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 법복의 왼쪽 가슴 안쪽에는 노란색 실로 내 이름이 흘림체로 새겨져 있다. 법복의 목에서 무릎에 이르기까지 수직으로 떨어지는 자주색 옷깃 뒤로 숨은 단추는 모두 다섯 개. 법복을 입을 때만큼은 단추를 다 채운다.

거울 앞에 서서 넥타이와 법복의 위치를 정렬한다. 나부터도, 나처럼 얼굴이 못생긴 판사에게 재판받는 것은 상관없지만, 넥타이가 돌아간 판사로부터 법과 원칙을 지키라는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아서다. 거울을 보면서 법복이 내게 어울리는지도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은연중에 내가 과연 판사인지를 묻게 된다. 물론 나는 판사이지만 그래도 판사인지를 묻는 것이다. 판사면 당연히 판사인 것이지 자꾸만 자신이 판사인지를 묻는 판사가 판사인가, 라고도 묻는다.



마음이 편안한 판사

아울러 지금 내 마음이 편안한지도 묻는다. 총명한 판사, 성실한 판사, 친절한 판사, 다 좋지만 나는 마음이 편안한 판사를 으뜸으로 친다.  강박증도, 일중독도, 열등감도, 인정중독도, 결벽증도, 불안으로 인한 조급증도, 피해의식도 없이 마음이 편안한 판사를 말한다.

마음이 편안한 판사는 굳이 친절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당사자들이 판사 때문에 추가로 상처를 받지 않는다. 중립을 지키려고 기계적으로 애쓰지 않아도 편파적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고 법복을 입은 참여관이 들어와 인사를 하면 나는 메모지를 넣은 검정 가죽 서류 홀더를 옆구리에 끼고 참여관과 함께 사무실을 나선다. 법복을 입고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법정까지 걸어가는 길에는 여느 때보다 진중해진다. 평소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는 친한 동료를 우연히 만났을 때에도 마치 원장님이라도 된 것처럼 점잖은 미소만 건네게 된다. 법복을 입고서는 화장실도 가지 않는다.

법정이 가까워지면서 가슴속에 설렘과 긴장감의 농도가 짙어진다. 판사의 권능이 대개 법정에서 발현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중요한 이유는 사건 기록의 주인공을 직접 만나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를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안나 카레리나를 직접 만날 수는 없지만, 법정에서는 사건 기록의 주인공을 직접 만날 수 있다. 누군가를 바로 지금 만나고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대단한 사건이다.

사무실에서 기록을 아무리 여러 번 읽더라도 피고인과 눈을 맞출 수는 없다. 사람은 제대로 안 만나고 기록만 보면서도 얼마든지 논리적으로 빈틈없는 판결문을 써낼 수 있겠지만, 그것은 재판이 아니다. 사건 기록에서는 피고인을 이름, 나이, 직업, 주소 따위로 특정하지만 그런 정보는 사회가 구별의 편의상 붙여놓은 표지일 뿐 그 개인의 고유한 참모습은 아니다.



피고인과의 눈맞춤

나는 한 사람의 눈빛을 마주 보고 음성을 듣기 전까지는 그를 만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혼은 신이 육체에 불어넣은 숨결이고, 영혼은 눈빛과 목소리를 통해서 그 고유한 모습을 드러낸다고 믿기 때문이다. 절차적으로는 사건이 내게 배당된 순간 내가 그 피고인의 판사가 되겠지만, 나는 피고인을 만날 때 비로소 그의 판사가 됐다고 느낀다. 판사와 피고인의 눈빛과 목소리가 뒤엉키는 법정에서 비로소 판사가 판사가 되고 피고인이 피고인이 된다고 믿는다(이렇게 말하면 마치 내가 대단한 참 재판을 하는 것 같지만 그저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생각만).

법정 앞에 서서 나를 기다리던 경위가 밝은 표정으로 목례를 한다. 눈이 맑고 인상이 온화하고 자세에 기품이 있는, 존재 자체로 법정에 점잖은 권위가 드리워지는, 내가 닮고 싶은 분이다. 경위의 “모두 일어서주십시오”라는 구령에 따라 판사가 법대 앞에 앉기까지 모든 사람이 일어선다. 이 순간 판사의 기분이 좋은 줄 아는 사람도 있던데, 사실 여간 긴장되고 부담스럽지 않다. 그 많은 눈동자가 법관에 대해 우호적인 존경보다는 냉정한 판단을 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법정에선 판사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피고인들과 방청객들은 물론 우리 법원의 직원들에게서조차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냉정하게 판단받는 것이다. 피고인들은 불안해하거나 억울하고, 피해자들은 울분에 차 있고, 검사는 예리한 칼을 드리우고 있다. 그 누구도 판사의 실수를 용서하지 않는다. 허물 많은 한 인간으로서 그 예민하고 팽팽한 사위 한가운데에 선다는 것이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마이크를 켜고 다시 골무를 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어느 판사의 재판 전 10분
정 재 민

● 서울대 법대 졸업,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사법연수원 수료(32기)
● 前 구유고유엔국제형사재판소(ICTY) 재판연구관, 외교부 영토법률자문관  
● 제10회 세계문학상, 제1회 매일신문 포항국제동해문학상 수상
● 저서 : ‘보헤미안랩소디’ ‘국제법과 함께 읽는 독도현대사’ ‘소설 이사부’ ‘독도 인 더 헤이그’



신동아 2016년 11월 호

정재민 | 판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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