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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민둥산 푸르게 하는 게 공인으로서 나의 마지막 소명

고건의 꿈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北 민둥산 푸르게 하는 게 공인으로서 나의 마지막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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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업화, 민주화, 새천년거버넌스 세 시대를 겪으면서 그때마다 시대적 과제를 맡아 일하는 행운을 누렸다. 내가 뭘 더 하겠나. 명예를 탐하겠나.
  • 북한 산림녹화는 나의 꿈이 아니라 우리의 꿈이다.
  • 5월 말 평양에서 우리가 심포지엄을 여는데 그때 북한에 공식 제안하려 한다.”
北 민둥산 푸르게 하는 게 공인으로서 나의 마지막 소명
고건(76) 전 국무총리는 십 수 년 넘게 대중목욕탕에서 반신욕과 요가로 건강을 관리했다. 날마다 서울 동숭동 자택 근처 목욕탕에서 몸을 씻으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목욕탕을 못 다니게 됐다. 장사가 잘 안 되고, 기름값이 올라 단골 목욕탕이 문을 닫았다. 대중탕이 찜질방으로 다 바뀌었더라. 간신히 한 군데를 찾았는데, 집에서 멀어 이제는 이발할 때만 들른다. 목욕탕에 이발소가 생기게 된 사연이 있다. 서울시장 할 때 일이다.”

1980년대 후반 어느 가정주부가 ‘고건 서울시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퇴폐이발소가 동네까지 들어와 두 아들을 보낼 곳이 마땅찮다”는 내용이었다. ‘대중목욕탕에 이발소를 만들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시청 보건사회국장이 “보건사회부 규정이 막고 있다”면서 난색을 표했다. “보사부 규정이 위생적인 이발을 위해서 있는 게 아닌가. 무시하고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보사부는 나중에 서울시를 따라 규정을 바꿨다.

서울 지하철 5·6·7·8호선과 내부순환도로를 보자.

고 전 총리는 “1989년 겁도 없이 2기 지하철사업에 나섰다”고 회고록에 썼다. 2기 지하철은 11년 후인 2000년 12월 6호선을 끝으로 완공됐다. ‘임명직 서울시장 고건’이 착수한 사업을 ‘민선 서울시장 고건’이 마무리한 것. 고 전 총리는 서울시장을 두 번(1988~1990년, 1998~ 2002년) 지냈다.

내부순환도로-강변북로 순환노선은 1989년 어느 날 밤 ‘고건 시장’이 서울 도시계획전도를 뚫어져라 쳐다보다 토지보상이 필요 없는 한강변과 홍제천 위에 도로를 내는 묘안을 구상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듯 고 전 총리만큼 국가적 과제뿐 아니라 한국인의 삶과 일상 구석구석에 손때를 묻힌 공인(公人)은 찾아보기 어렵다. 장관 세 번(교통부·농수산부·내무부), 서울시장 두 번, 국무총리 두 번(김영삼·노무현 정부), 도지사, 국회의원, 대통령 권한대행(2003년 2~4월).

우리가 푸른 산을 갖게 된 데도 고 전 총리의 손길이 닿아 있다. 내무부 새마을담당관을 맡고 있을 때 ‘국토 조림녹화 10개년 계획’을 세웠다. 고 전 총리 역시 치산녹화 계획을 수립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누렇다 못해 붉은 北 민둥산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남북 소통과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고 전 총리 얘기가 나왔다. “의욕이 대단하다” “직접 전화 걸어 동참을 요청하시더라” “사명감마저 느껴졌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1972년 ‘고건 내무부 새마을사업담당관’이 “저 형편없는 산을 녹화하라”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입안한 ‘국토 조림녹화 10개년 계획’은 선견지명(先見之明)이었다. 가난하던 그 시절 흘린 땀이 우리 땅을 푸르게 했다. 한반도를 찍은 위성사진을 보면 누렇다 못해 붉은 속살을 드러낸 북녘의 민둥산과 푸르다 못해 검은 남녘의 산이 대비된다.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공조림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다. 그 시작에 고 전 총리가 있다.

34세의 부이사관 고건은 박정희 대통령 앞에서 직접 보고했다. △모든 국민이 나무를 심고 가꾸는 ‘국민조림’ △홍수, 산사태가 반복되니 이를 막는 ‘속성조림’ △장기적으로는 실질적 이득이 되는 ‘경제조림’이 보고의 골자였다. 박 대통령이 밝은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부터 ‘국토 조림녹화 10개년 계획’은 국가정책이 됐다.

고 전 총리가 5년 전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일이 3월 19일 본궤도에 올랐다. 그가 입안, 기획, 준비한 아시아녹화기구가 공식 출범한 것. 이장무 기후변화센터 이사장, 김진경 평양과학기술대 총장, 권병현 미래숲 대표, 김동근 겨레의 숲 공동대표, 이세중 평화의 숲 이사장이 고 전 총리와 함께 공동대표를 맡았다.

아시아녹화기구의 첫 프로젝트가 한반도 녹화 계획이다. 영어로는 Green Korea Project. 쉽게 말해 ‘북한 나무 심기’다. 고 전 총리는 열정을 불태우던 30대 초반의 경험을 70대 후반 나이에 북쪽에 이식해주려 한다. 북녘의 민둥산을 푸르게 물들여 ‘그린 코리아’를 완성하는 게 숙원이면서 소망이다.

고 전 총리는 인터뷰 요청을 사양했다. “관심 가져준 것은 고맙지만, 당분간 언론 인터뷰 안 하는 게 원칙”이라고 했다. 인터뷰가 아니라 설명을 듣는 형식으로 3월 13일 서울 연지동 그의 사무실에서 마주 앉았다. 약속시각보다 일찍 도착해 회의 탁자 앞에 앉아 그를 기다렸다. 탁자에는 북한 산림녹화 관련 자료가 정리돼 놓여 있었다.

고 전 총리는 기억에 의존해 말하는 법이 거의 없었다. 질문을 들은 후 자료에서 관련 대목을 찾아 얘기하곤 했다. 자료의 특정한 부분을 가리키면서 이 대목을 읽어보라고 할 때도 있었다. 대화를 나누면서 고 전 총리와 기후변화센터에서 함께 일한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그와 관련해 쓴 글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고 전 총리는 자신이 확고한 전문성을 갖고 있지 않다고 판단하면 철저하게 발언을 아끼고 열심히 받아 적었다. 몇 차례 그의 바로 곁에 앉을 수 있는 행운을 얻었을 때 나는 정작 회의에서는 그저 건성으로 참여하며 그가 써내려가는 메모지를 훔쳐보았다. 어떻게 그렇게 여러 사람이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는 이야기를 그처럼 가지런히 정리하는지 그저 감탄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더 큰 감탄은 늘 며칠 후에 밀려온다. 며칠 후 다시 열린 회의에서 그는 어김없이 참석자 중 가장 탁월한 전문가가 돼 있었다. 그 며칠 동안 그는 엄청나게 많은 책과 자료를 읽었고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수합해 나타난 것이었다. 그는 참으로 무섭게 노력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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