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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근 기자의 북한 이야기

“죽은 어머니 고향 가다 평남 안주에서 쓰러져”

중국 관리가 전한 김정일 사망 전말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죽은 어머니 고향 가다 평남 안주에서 쓰러져”

  • 김정일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을까?
  • 알려진 사실과 진실을 잇는 고리(link)를 공개한다.
“죽은 어머니 고향 가다 평남 안주에서 쓰러져”
‘81세 장령(장군)’이 부동자세로 노래를 부릅니다. ‘28세 청년’이 박장대소합니다. 81세 장령은 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 “김정일 사후 장성택과 권력 다툼을 벌일 것”이라는 평가가 무색합니다. 오극렬이 가족과 함께 ‘나의 사랑, 나의 행복’이라는 노래를 부를 때 장성택은 처조카 옆에서 웃고 있습니다. 조선중앙TV가 3월 10일 공개한 이 동영상은 북한의 권력 승계가 생각보다 순조롭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정일이 사망한 지 벌써 석 달이 지났습니다. 독재자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한 매체는 “김정일 죽음의 진실은 통일 후에나 알 수 있을 듯하다”고 보도했더군요.

북한 당국이 발표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겹싸인 정신 육체적 과로로 인해 2011년 12월 17일 오전 8시 30분 현지지도를 가시다가 달리는 야전열차 안에서 중증 급성 심근경색이 발생하고 심한 심장성 쇼크가 합병됐다.”

“다리에 혈전 생겨 고생”

북한의 발표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한 것일까요? 아니면 직무를 하다 목숨을 잃은 것을 알리고자 조작한 것일까요? 그동안 숱한 가설이 나왔으나 대부분 추측 수준에 불과합니다. 국가정보원도 정보력이 떨어진다는 욕을 먹어야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가 최근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 관리들을 만났습니다. 당시 한 중국 측 인사가 사석에서 자신들이 파악한 ‘김정일 사망 뒷얘기’를 들려줬다고 합니다. 이 인사의 증언에는 북한 발표, 한국 정보 당국 견해의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가 담겨 있습니다. 기왕에 알려진 내용과 이 인사의 설명을 종합하면 사실(fact)에 근접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이 그려집니다. 12월 15~17일 김정일의 동선을 재구성해보았습니다. ‘했습니다’로 끝나는 문장은 알려진 사실, ‘합니다’ ‘하네요’로 끝나는 문장은 중국 인사의 증언을 토대로 한 것입니다.

김정일은 죽기 이틀 전(12월 15일) 평양에 위치한 광복지구상업중심을 현지지도했습니다. 이튿날엔 휴식을 취했다고 합니다. 12월 17일엔 자강도 현지지도가 예정돼 있었다고 합니다.

김정일은 죽기 3년 전부터 다리에 혈전이 생겨 고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리를 전 것 같습니다. 가족력과 관련해선 조심도 했다고 합니다.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사인(死因)은 거의 같습니다(심근경색+심장쇼크).

정옥임 의원은 “주로 밤에 활동하고 낮 12시쯤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진 김정일이 기온이 영하 12도이던 날 아침 8시 30분 열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는 발표가 석연치 않다”고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원세훈 국정원장은 지난해 12월 20일 국회에서 “북한 당국이 발표한 사망 시점에 전용열차가 평양 용성역에 있었다”고 보고했습니다. 업무 중 순직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북한 당국이 사실과 다르게 발표했다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김정일은 동이 트기 전에 열차에 올랐다고 합니다. 어머니 고향인 함경북도 회령을 먼저 들른 뒤 자강도로 되돌아가 현지지도할 계획이었다고 합니다. 뇌혈관 병력으로 쓰러진 적이 있는 사람이 한겨울 이른 아침에 활동적으로 움직인 것은 비상식적인 일입니다. 어떤 한국 의사는 ‘미친 짓’이라고 표현하더군요. 죽음을 앞두고 느닷없이 어머니가 떠오르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철권을 휘두르던 독재자도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것일까요?

묘향산에 있는 국제친선관람관(김일성기념관)에 실물 크기의 김일성 밀랍인형이 전시돼 있습니다. 중국에서 위인들의 밀랍상을 만드는 기관인 ‘중국 위인 밀랍상 관’이 1996년 선물한 건데요. 이 기관이 김정일 생모 김정숙의 밀랍인형을 제작해 북한에 선물했다고 합니다. 베이징에서 전달식이 열린 게 12월 16일이라고 하네요. 인터넷을 뒤져보니 한국 언론이 보도하지 않았을 뿐 중국 매체들이 전달식 소식을 전했더군요.

“죽은 어머니 고향 가다 평남 안주에서 쓰러져”
“안주에서 평양으로 되돌아간 특별열차”

김정일은 중국이 ‘김정숙 밀랍인형’을 선물하자마자 곧바로 죽은 어머니에게 헌정하려고 회령 방문 일정을 잡았다고 합니다. 독재자도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은 똑같은 모양입니다. 자강도만 방문하는 일정이었다면 이른 아침에 출발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는 12월 17일 오전 11시 단둥을 거쳐 육로로 귀국했습니다. 당시 언론은 “김정일 사망 사실을 통보받고 귀국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는데요. 지재룡은 김정일이 죽은 사실을 모른 채 베이징을 출발했다고 합니다. 귀국 목적은 밀랍인형을 회령으로 가져가는 거였다고 하네요. 김정일 유고 시 대사는 부임지를 지키는 게 상식인 것도 같습니다. 지재룡은 사흘 만에 비행기를 타고 베이징으로 돌아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한 조문단을 맞았습니다.

김정일 사망 직후 “전용열차가 평양 용성역에 있었다”고 국정원이 밝히면서 ‘평양 별장에서 사망한 것 같다”는 추측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국정원은 이후 첫 발표와는 뉘앙스가 다른 “김정일이 정차해 있던 열차 안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설명을 내놓습니다. ‘사망 시 김정일이 열차 안에 있었다’는 데는 남북 당국 간 이견이 없어진 셈입니다.

그렇다면 김정일이 열차를 타자마자…. 김정일이 탄 열차는 평양을 출발했다고 합니다. 심근경색이 일어난 곳은 평안남도 안주라고 합니다. 안주는 평안남도 서북부에 위치해 자강도와 경계를 이룹니다. 기차에 갖춰진 응급시설이 완벽하지는 않다고 합니다. 응급치료를 하면서 열차는 평양으로 되돌아갔다고 하네요. 김정일은 평양에 도착하기 직전에 숨을 거뒀다고 합니다.

“죽은 어머니 고향 가다 평남 안주에서 쓰러져”
군사 전문가에게 문의해보았더니 첩보위성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110분이 걸립니다. 특정 궤도만 도는 게 아니라 궤도를 바꿔가면서 세계 여러 지역의 첩보를 수집하죠. 미국 첩보위성은 고도를 낮춰 관심 지역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는 능력도 갖췄습니다. 평양을 출발한 열차가 평안남도 서북부의 안주에서 유턴해 평안남도 중남부의 평양으로 되돌아왔다는 결코 길지 않은 시간에 ‘위성들’(미국 일본 한국)은 세계의 어느 곳을 들여다보고 있었을까요.

달리는 열차에서 사망했다는 북한 당국의 발표 내용은 전후사정과 디테일이 생략돼 있지만 사실에서 어긋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죽은 어머니를 찾아가다 객사했다’ 독재자의 마지막 여정치곤 서정적입니다.

신동아 2012년 4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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