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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로 풀어쓴 현대사

美, ‘광란’과 전란 거쳐 최강 경제대국 우뚝

‘파운드→달러’ 세계 경제패권의 이동

  • 조인직 | 대우증권 동경지점장 injik.cho@dwsec.com

美, ‘광란’과 전란 거쳐 최강 경제대국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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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빚 받으려 참전

미국은 1823년 제임스 먼로 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 밝힌 먼로주의, 즉 ‘미국과 유럽은 상호 간섭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상호불간섭주의를 1차대전 당시 그대로 계승하고 있었다. 유럽이 전장(戰場)의 화염으로 뒤덮이건 말건 미국은 ‘우리 일이 아니다’라는 경향이 강했다. 오늘날의 스위스처럼 중립을 표방했기에 막대한 군수물자를 제조, 유럽의 여러 참전국에 팔아 돈을 벌 뿐이었다.

당시 무역대금 결제를 위해 유럽은행에서 미국에 있는 은행으로 달러가 줄기차게 송금됐다. 자연히 금융의 중심도 런던에서 뉴욕의 월스트리트로 옮겨갔다. 그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등은 달러화로 표시된 전시국채(戰時國債)를 발행했는데 미국의 JP모건 등이 대표로 이를 인수(Underwrite)해 월스트리트 금융시장에 내다 팔았다. 전쟁 후 전시국채를 상환하기 위해 승전국은 패전국인 독일에 막대한 양의 배상금을 부과했고, 이를 통해 미국은 달러를 세계 제1의 국제통화로 자리매김한 데 이어 세계 최대의 채권국으로 부상했다.

1차대전 말 미국이 그동안의 먼로주의를 깨고 참전한 표면적인 이유로는 미국 민간 수출 선박에 대한 독일의 잠수함 공격이 거론된다. 영국이 압도적인 해군력을 바탕으로 독일에 물자가 못 가도록 해상봉쇄에 나서자, 독일은 비대칭전력인 잠수함 부대를 동원해 해상 선박을 무차별 공격했다. 미국은 유럽으로 물자를 실어 나르던 자국 민간 선박에 피해가 갔기 때문에 참전했고, 이를 계기로 ‘세계 경찰’의 위용을 처음으로 과시했다는 논리다.

하지만 미국 참전의 보다 직접적인 이유는 영국과 프랑스에 투자한 막대한 전시채권과 무관치 않다. 독일이 승전국이 되면 패전국 영국과 프랑스로부터의 투자금 회수가 요원해지기 때문이다. 당시 연합국의 일원이던 러시아가 1917년 공산혁명 발발로 독일과 휴전하게 되자 여력이 생긴 독일은 프랑스에 공세를 퍼부으며 막판 전세를 유리한 쪽으로 이끌고 있었다. 결국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월스트리트 금융자본의 채권 회수를 위해서 참전을 결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美, ‘광란’과 전란 거쳐 최강 경제대국 우뚝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국 국가들과 패전국인 독일은 1919년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에 1320억 마르크의 전후배상액을 부과하는 ‘베르사유 조약’을 체결했다.

히틀러 자극한 獨 인플레

1차대전은 미국의 가세로 결국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다. 베르사유 조약을 통해 독일에 부과된 전후배상액은 1320억 마르크. 당시 독일 국내총생산(GDP)의 20배나 되는 엄청난 액수였다. 요즘처럼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공적 부조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독일 정부는 금본위제에서 이탈, 마르크화를 불환상태로 계속 발행해 돈가치를 떨어뜨리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돈가치 하락이 정부의 통제 속도를 넘어서 이른바 ‘하이퍼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이 발생하고 말았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나면 처음에 본 가격의 두 배 가격이 매겨진 가격표가 준비될 정도였다. 당시 환율은 1달러에 4조2000억 마르크라는 터무니없는 수준까지 치솟았다. 고액 화폐로 1조 마르크 은화, 100조 마르크 지폐까지 발행됐다. 요즘 그리스를 위시한 ‘빚더미 유로존’ 중에서 그나마 독일이 재정건전성을 과시하면서 유럽 경제의 우등생다운 몸가짐을 보일 수 있는 것은 이런 ‘100년 전의 악몽’이 너무 강렬해 재정을 철저히 관리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프랑스혁명 때부터 채권 발행 주선과 중개, 인수로 돈맛을 본 유대계 금융자본은 무대를 런던에서 뉴욕으로 옮겨가 1차대전 때 본격적인 이득을 보게 된다. 전쟁 중 영국이 패전할 것이라는 정보를 흘려 채권을 헐값으로 떨어뜨린 다음 투자한 덕분에 투자 대비 성과도 매우 컸다. 오늘날 자본시장의 ‘작전’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독일 패전의 배상금이 결국은 유대계 자본의 대표주자 로스차일드 가문의 주머니로 들어간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히틀러의 등장과 맞물려 반(反)유대주의는 하이퍼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독일 민중의 박탈감을 자극했다. ‘베르사유 체제의 해방’을 기치로 내건 히틀러는 결국 자신이 이끄는 나치당을 1933년 제1당으로 만들고, 같은 해 국제연맹도 탈퇴하며 재군비에 나서게 된다.

국가 간 무역역조와 이를 막기 위한 자국 통화의 절하, 그리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상품의 ‘덤핑 판매’를 노리는 수법은 2015년 현재 일본과 유로존 국가들을 중심으로 여전히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 수법이 등장한 것은 1차대전 이후부터다. 1차대전 중에는 ‘안전 자산으로의 회귀 현상(Flight To Quality)’이 일어났다. 1파운드, 1마르크 지폐보다 금을 선호하는 심리다. 요즘에도 시리아나 우크라이나 사태, 이슬람국가(IS) 테러 소식이 들리면 금이나 엔이 상승하는 것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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