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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의 특산품 ⑥

우리 茶의 발원지를 찾아서 하동 화개 야생차

함박눈 벚꽃잎 群舞에 茶香은 더 짙어가고…

  • 글·사진: 양영훈 여행작가 travelmaker@empal.com

우리 茶의 발원지를 찾아서 하동 화개 야생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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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차의 역사가 시작된 지리산 자락 화개골에는 사방천지가 차밭이다. 4월 중순부터 5월말까지 이어지는 차 재배 시기에는 새벽이슬 머금은 차를 따려는 농민들의 손길도 분주하다. 근래 들어 더 넓고 깊어진 차의 효용성과 가치를 알아보기 위해 차 수확이 한창인 화개골을 찾았다.
우리 茶의 발원지를 찾아서 하동 화개 야생차
‘공산무인 수류화개(空山無人 水流花開)’라는 옛말이 있다. ‘빈 산에 인적이 없어도 물은 흐르고 꽃은 핀다’는 뜻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해남 일지암에 은거하던 초의선사에게 써준 글귀로도 유명하다. 지리산 자락의 하동 화개골을 찾을 적마다 이 말이 생각난다. 화개골이야말로 사시사철 맑은 계류(溪流)가 쉼 없이 흘러내리고, 갖가지 꽃들이 철 따라 피어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화개’하면 흔히 ‘십리 벚꽃길’을 먼저 떠올리게 마련이다. 영산(靈山) 지리산에서 흘러내린 화개천과 나란히 이어지는 찻길 양쪽에는 아름드리 벚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춘흥(春興)을 못 이긴 벚나무들이 일제히 꽃부리를 펼치는 4월 초순이 되면, 이 벚꽃길은 경향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함박눈 같은 꽃잎이 흩날리는 벚나무 아래로 다정히 손잡고 걸어가는 연인들도 곧잘 눈에 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길을 ‘혼례길’이라 부르기도 한다.

화개골에서는 한겨울에도 꽃구경을 할 수 있다. 계곡 양쪽의 가파른 산비탈이 온통 야생 차나무로 뒤덮여 있는데, 이곳에서는 지리산의 생령(生靈)들이 겨울채비를 시작하는 11월부터 본격적으로 겨울에 들어선 12월 사이에 하얀 차꽃이 연이어 피고 진다.

순백의 꽃잎과 황금빛 꽃술을 가진 차꽃은 무성한 잎에 가려져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지만 가지를 살며시 들추면, 정갈하고 단아한 자태의 차꽃이 소담스레 핀 광경을 볼 수 있다. 차꽃 향기도 차향(茶香) 못지않게 그윽하고 은은하다.

4m가 넘는 차나무

하동 쌍계사 부근의 화개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차 생산지다. 전남 보성이나 제주도의 차밭은 대부분 20세기에 들어와 대대적으로 조성된 것이다.

반면 화개골 일대에는 약 1300년의 세월 동안 산비탈의 바위틈에서 스스로 번식하고 성장한 야생 차나무가 적지 않다. 그중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차나무도 있다. 높이가 4m15cm나 되는 이 나무의 수령은 자그마치 1000년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러나 화개골 일대에 야생 차나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근래 들어와서 사람의 손으로 심고 가꿔진 인공 차밭도 많아졌다.

화개면의 차 재배농가는 2004년 기준으로 685가구에 이른다. 재배면적은 370ha, 생산량은 325t이다. 생잎 수매가를 기준으로 한 연소득만도 216억원이나 된다고 한다. 정식 허가를 받은 녹차 가공업체는 60여 개다. 그러나 차 재배농가에서 대부분 가내수공업 형태로 고급 수제차를 직접 만들어 팔기 때문에 실제 녹차 가공업체는 수백 군데를 헤아린다.

현재 우리나라 최대의 차 생산지는 전남 보성군이다. 화개골을 포함한 하동의 차 재배면적은 보성에 뒤지지만, 그 역사는 가장 길다. 천년고찰 쌍계사의 동구인 석문마을에는 오늘날까지도 차의 시배지(始培地)가 남아 있어 화개골의 차 재배 역사가 결코 녹록지 않음을 말해준다.

우리나라에 차가 처음 도입된 것은 신라 선덕여왕 때 도당(渡唐) 유학생들에 의해서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차를 재배한 것은 신라 흥덕왕 3년(828)부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해 12월 당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된 김대렴이 갖고 들어온 차의 종자를 흥덕왕이 쌍계사 주변의 지리산 자락에다 파종하도록 명했다는 내용이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다. 그리고 얼마 뒤인 문성왕 2년(840)에도 진감선사 혜소가 중국에서 가져온 차의 종자를 쌍계사 주변에 심고 옥천사(지금의 쌍계사)를 대가람으로 중창했다고 전한다.

고려 때에 이규보(1168∼1241)가 쓴 ‘동국이상국집’에도 화개 차에 관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즉 이 골짜기에서 생산되는 찻잎을 따기 위해 장정이나 노약자를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주민이 동원됐고, 험준한 산속에서 간신히 따 모은 차는 주민들에게 등짐을 지워 개경까지 운반토록 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다성(茶聖)’이라 부르는 초의선사의 ‘동다송(東茶頌)’에도 “지리산 화개동에는 차나무가 4∼5리에 걸쳐 자라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차밭이 이곳보다 더 넓은 곳은 없다고 생각된다. 화개동 골짜기 안에는 옥부대가 있고, 그 아래에는 칠불선원(오늘날의 칠불사)이 있다. 선원에서 좌선하는 승려들은 항상 찻잎을 채취해서 달여 마신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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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양영훈 여행작가 travelmaker@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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